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23
제 23화
8장. 아티팩트 사냥꾼 – 3화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불청객의 기습과 함께 시작된 갑작스러운 전투.
델루크는 대응할 새도 없이 순식간에 수세에 몰린 뒤, 쏟아지는 상대의 공격에 제대로 피할 새도 없이 상처를 입었다.
온몸에서 피가 흐르지 않는 곳이 없었다.
옷은 불탔고, 상처는 벌어지고 찢어졌으며, 시야는 순간순간 암전(暗轉) 상태가 될 정도로 매우 나빠졌다.
입구를 통과하지 않고 아지트에 들어온 것도 믿기지 않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상대가 하나부터 열까지 자신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예측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마치 미래를 내다보고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좀처럼 당황하지 않는 델루크였지만, 등골이 오싹한 기분을 느끼며 식은땀까지 흘렸을 정도였다.
델루크는 오랜 기간 사악하고 악독한 술법을 수련해 왔다. 인체로부터 생기와 영양분을 양손으로 흡수하는 특수한 술법이었다.
그래서 최대한 상대에게 접근한 뒤, 몸을 터치해서 그로부터 생기를 빼앗는 공격을 즐겼다.
팔을 잡으면 팔이 쪼그라들었고, 얼굴을 잡으면 얼굴이 쪼그라드는 식이었다.
특히 심장이 있는 왼쪽 가슴을 잡힐 때는 치명적이라서, 거의 즉각적인 죽음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상대는 헤이스트를 이용해 집요하게 거리를 유지하며, 절대로 접근할 수 있는 거리를 주지 않았다.
그 대신, 신성력을 덧씌운 마법으로 미친 듯이 자신을 괴롭혔다.
델루크에게 가장 치명적이었던 것은 첫 번째 기습 공격으로 당한 성 패럴라이즈 마법이었다.
이것 때문에 델루크는 3초 동안 아무것도 못 하는 마비 상태에 빠졌는데, 지금 몸에 있는 상처 중 9할이 그때 만들어졌다.
“쿨럭! 쿨럭!”
델루크가 검은 피를 토해 냈다.
라이프 포스 베슬을 잃어버린 이후, 델루크는 급격히 생기를 잃고 늙어 가고 있었다.
그것이 없으면 죽어도 부활을 할 수 없기에 외부 활동을 전혀 하지 않았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아지트의 보안이 뚫린 것이다.
“델루크! 반응이 느리군!”
퍼어억!
“끄아아악!”
이번에는 등 뒤였다.
상대는 기민하게 헤이스트를 이용해 빠른 기동으로 자신의 앞뒤로 계속 자리를 바꿨다.
그때마다 신성력이 듬뿍 담긴 마법이 작렬했는데, 쇠약해진 델루크의 몸으로는 버텨 내기 힘든 수준이었다.
그는 자신이 백마법보다 신성력에 약하다는 사실도 아주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단 한 번도 일반 백마법을 쓰지 않았다.
“하악, 하악.”
어림짐작으로 4클래스 정도 될 것 같은 상대 마법사.
6클래스인 자신에 비하면 2계단이나 낮은 상대지만, 몸이 예전 같지 않았다.
시간!
시간만 좀 더 주어진다면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을 것 같은데, 상대는 전혀 여유를 주지 않았다.
바로 그때.
순간적으로 몸을 돌려, 흑마법을 펼치려 했던 델루크를 향해 묵직한 무언가가 날아들었다.
뻐억!
“크어억!”
지팡이로 머리를 맞았다.
그것도 평범한 지팡이가 아니라, 마력의 힘이 잔뜩 실린 지팡이였다.
스트랭스 마법까지 더했는지, 델루크는 순간 눈앞이 아찔해지는 경험을 하며 옆으로 픽 쓰러졌다.
“이 정도로는 안 죽는다는 것을 알아, 델루크.”
쓰러진 델루크의 귓가로 아련하게 상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자신이 쓰러지는 가운데서도 나름대로 어떻게든 반격할 타이밍을 노리고 있었다는 것을.
노림수는 무산됐다.
그리고 델루크에게 즉각 들어온 것은 그의 힐(Heal) 마법이었다.
평범한 힐 마법이라면 델루크의 상처와 체력을 치료하는 소중한 마법이 되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신성력으로 버무려진 화이트 힐이었기 때문에 델루크와는 완전 상극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몸속에 치료제 대신에 독약을 주입해 넣는 것과 똑같은 이치였다.
“끄윽! 끄으으으윽!”
델루크가 신음을 토해 냈다.
전투가 시작된 이후, 단 한 번도 제대로 반격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했다.
기습적으로 펼쳤던 노림수는 상대의 정확한 회피에 완벽히 실패했고, 그때마다 델루크는 맹공을 온몸으로 받아 내며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내가…… 내가 이렇게 죽는가?’
리치가 된 이후 처음으로 델루크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꼈다.
피하고 싶은데, 도망치고 싶은데 몸이 허락해 주지를 않았다.
10년, 딱 10년!
고대하고 고대하던 마왕의 현신까지 이제 10년 안팎으로 남았을 뿐인데,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신의 축복을 온몸으로 느껴 봐라!”
“끄아아아!”
이번에 상대가 꺼내 든 마법은 성 클린 마법이었다.
보통의 클린 마법은 모든 것을 깨끗하고 정갈하게 만드는 정화의 기능을 한다.
하지만 여기에 신성력이 가미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정화의 기운이 닿는 모든 것을 신성력으로 불태워 버리는 일종의 번(Burn) 형태가 되는 것이다.
치이이익. 치익. 치이이익!
델루크의 몸 전체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것은 피부를 파고 들어가, 뼈와 관절까지 태워 버리는 고통스런 공격이었다.
완벽하게 당했다.
마치 철저하게 분석을 당한 것처럼 손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당하고 또 당했다!
분했다. 하지만 내면에서 치솟는 분노와 달리, 역설적으로 상황은 최악을 맞이하고 있었다.
“델루크, 네가 기다리는 마왕은 아직 오지 않아. 그 대신, 네가 선량한 탐험가와 마법사들을 죽이면서 얻은 많은 혜택을 내가 취해 주겠어. 감사히 말이야.”
“도대체 어떻게, 어떻게 네놈이 나를?”
“궁금하면 지옥에 가서 저승의 신에게라도 물어보든지!”
쑤욱!
그가 일갈하며, 성 라이트 마법의 백색 조명 구체를 그대로 델루크의 입안으로 밀어 넣어 버렸다.
마치 억지로 무언가를 먹이듯, 강제로 벌어진 상황이었다.
꿀꺽.
뱉어 내지 못한 조명 구체를 델루크가 삼켜 버렸다. 아니, 자신도 모르게 삼켜졌다.
그리고.
“크읍!”
델루크는 심장 깊은 곳에서부터 전해지는 극한의 고통에 단말마의 비명을 질렀다.
엄청난 고통이 전신으로 급격히 뻗어 나가는 것과 달리, 입에서는 제대로 된 신음도 흘러나오지 못했다.
폐부와 심장을 쥐어짜는 느낌.
그것은 차마 고통을 토해 낼 수조차 없을 정도로 최악의 고통을 선사했다.
“지옥에나 가라.”
화르르륵!
비틀거리는 델루크의 발밑에서 4클래스의 마법, 파이어 월의 불길이 거세게 타올랐다.
“…….”
그것으로 끝이었다.
점점 잦아들던 심장 박동이 멈췄고, 델루크는 타오르는 불길 위로 힘없이 쓰러져 그야말로 화형(火刑)을 당하는 신세가 됐다.
설산 속의 아지트에 몰래 숨어, 조용히 재기의 때를 기다리고 있던 것치고는 허무한 최후였다.
* * *
[레벨업! Lv. 6 달성!] [레벨업! Lv. 7 달성!]‘깨알같이 레벨이 또 올랐네.’
던전에서 오르는 것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제법 레벨이 올랐다.
다만 델루크의 경지에 비하면 얻은 경험치의 양은 적었다.
아마도 스토리상에서 라이프 포스 베슬을 잃고 ‘죽어가던’ 델루크를 처치했기 때문인 듯했다. 난이도 보정이 살짝 있었던 듯싶다.
어쨌든 나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쓰러진 델루크를 살폈다.
완벽하게 죽은 것이 확실했다.
이번에도 심안은 자신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경고 : 신성력에 대한 저항력이 약화되어 신성력에 ‘과민 반응’하는 상태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신성력에 대한 직, 간접적인 노출을 반드시 피해야 합니다.]델루크의 상태를 심안으로 살핀 뒤, 경고 메시지를 확인하고는 확신을 갖고 신성력 마법 공격만 집요하게 퍼부었던 것이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오랜 기간의 휴식으로 가라앉아 있던 내면의 힘을 끌어올리기 위해 델루크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나는 여유를 절대 허용하지 않았고, 델루크는 자신의 화력을 2할 이상 발휘하기도 전에 죽었다.
순식간에 끝나 버린 상황.
옆에서 지켜보던 이자벨라가 연신 고개를 휘저으며,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리치를 죽였어! 언뜻 외형만 봐도, 수십 년은 족히 살았을 늙은 리치였는데?
“그만큼 약점이 많은 리치이기도 했지.”
-지금껏 많은 백마법사를 봤지만, 너처럼 과감하게 리치에게 도전하는 마법사는 본 적이 없어.
“확신이 있으면, 도전하는 것은 쉬운 일이지. 난 이길 수 있겠다는 100%의 확신이 있었거든.”
이자벨라에게 말한 대로, 나는 델루크의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움직임 패턴, 회피 패턴, 그리고 노림수 패턴까지.
델루크가 밥 먹듯이 공략했었던 보스 몬스터였던 만큼, 행동 하나하나를 달달 외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놈은 아마 끝까지 의문 속에 죽어갔을 것이다. 어떻게 들어왔는가부터 시작해서, 자신을 어떻게 이리 잘 알고 있는지 궁금했겠지.
지금쯤 저승길을 향해 가고 있을 테니, 아마 거기서는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을 테지.
-어떻게 너 같은 실력의 마법사가 작은 영지에 있는 거지? 네 실력이면 충분히 백작 이상의 작위는 물론이고, 고관대작의 자리도 얻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칭찬 고마워. 하지만 갈 길이 멀어. 마법사는 9클래스가 진정한 극의라고 할 수 있고, 난 아직 4클래스일 뿐이니까.”
-너, 정말 무서운 녀석이구나. 그런데 좀 멋있는 거 같고?
“갑자기 결론이 왜 그런 방향으로 나가냐?”
-정말 놀라워! 솔직히 많이 멋진데!
이자벨라는 연신 탄성을 터뜨렸다. 오랜 시간 많은 사람을 지켜봤을 이자벨라의 눈에 내가 꽤 특별하게 보이는 모양이었다.
“후, 어디 보자.”
쓰러진 델루크의 오른손에서 팔찌를 쑥 빼냈다.
스르르르.
앙상한 뼈마디는 어느새 한 줌의 재가 되어 흩어지고 있었다.
라이프 포스 베슬이 없는 리치의 뻔한 최후이기도 했다. 부활할 수단이 없으니, 소멸하는 것이다.
나는 팔찌의 옵션을 확인했다.
[델루크의 팔찌 : 악몽(惡夢)] [분류 등급 : 5성] [옵션 1 : 마력 100 증가] [옵션 2 : 지혜 50 증가] [옵션 3 : 마법 방어력 10 증가] [옵션 4 : 반경 50m 내에 있는 모든 생명체의 부정적인 감정에 반응합니다. 부정적인 감정은 팔찌에 쌓여, 더 강력한 형태의 팔찌로 바뀝니다.현재 수집된 악몽 0 / 1000] [옵션 5 : 상대보다 자신의 레벨이 낮을 경우, 근력, 지혜 스탯이 2배 향상된 상태로 적용됩니다.]
‘분류 등급 판정이 5성이나 될 줄이야. 역시 성장형 아티팩트네! 고정형 아티팩트와 달리 옵션이 꾸준히 증가하고 늘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매력적이지. 지금의 내게는 최고의 아티팩트야!’
바로 팔찌를 착용했다.
스탯창에서 마력과 지혜, 마법 방어력이 동시에 오르는 것이 보였다.
아티팩트 덕분에 과거에 지혜가 15이던 때를 벗어나 이제 115가 됐다.
이론상으로는 지혜 스탯이 15였던 때보다 마법 대미지가 2배 증가한 것이다.
같은 4클래스 마법이라고 해도, 다른 마법사들에 비해 분명히 좋은 화력을 보여 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5번 옵션은 레벨의 열세를 극적으로 뒤바꿀 수 있는 비장의 한 수가 될 터다.
“응? 저게 뭐지?”
한데 바로 그때.
나는 재가 되어 흩어진 델루크의 흔적 위에 남아 있는 한 권의 책을 볼 수 있었다.
‘델루크에게서 서적 종류가 드롭 된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확실히 기억에 없는 물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 있는 것을 보면, 뭔가 사연을 담고 있는 책이 틀림없을 것 같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책을 펼쳐 보았다.
단, 부활한 대상은 본 술법서로 자신을 부활시킨 ‘주인’에게 육체적, 정신적으로 예속됩니다.]
“부활?”
-뭐야, 자레드? 왜 갑자기 그윽한 눈빛으로 날 보는 건데?
그 순간, 내 시선이 자연스럽게 이자벨라에게로 향했다.
-응? 왜 그렇게 보냐고.
왠지 쓸 만한 부하를 한 명 늘릴 기회가 공짜로 생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