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231
제 231화
78장. 다섯 번째 변곡점 – 1화
“아……?”
갈라딘이 탄식을 터뜨린 것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없던 상공에서 오색의 영롱한 창이 낙하하는 순간이었다.
‘플레어 스피어?’
어떤 마법인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5원소의 힘을 담은 플레어 스피어가 저런 모습이니까.
문제는 플레어 스피어의 위용이었다. 그것은 자신이 알던 마법의 모습이 아니었다.
초월 마법.
어렵지 않게 저 마법의 존재를 떠올릴 수는 있었는데, 문제는 어떻게 대응을 하느냐였다.
방어? 회피? 선택이 필요했다.
“이런다고 내가 도망이라도 칠 것 같은가!”
갈라딘이 선택한 것은 방어였다. 전신의 기운을 끌어올려, 몸 전체를 맹렬히 감싸는 방어의 역장을 만들어 냈다.
그것은 매우 위력적이며 폭발적인 것이었다.
공격의 용도로 써야 할 오러가 몸을 중심으로 회전하며 만들어 내는 철벽의 방어선.
갈라딘은 입술을 질끈 깨물고, 강하하는 플레어 스피어와 정면으로 맞섰다.
쿠우우우!
이윽고 플레어 스피어와 갈라딘의 방어 역장이 맞부딪혔다.
과연 소드 마스터의 역장답게 플레어 스피어는 쉬이 방어벽을 뚫어 내지 못했다.
자레드의 입장에서는 8만이라는 엄청난 양의 마나를 쏟아부은 필살기이기는 했으나, 그것이 갈라딘의 목숨을 바로 빼앗지는 못했다.
“초월 마법도 한계는 명확해!”
갈라딘이 소리쳤다.
그리고 움켜쥐고 있던 검을 조금씩 앞으로 내밀며 힘을 불어넣기 시작하자, 역장은 더욱 거칠게 플레어 스피어를 밀어냈다.
한데 바로 그때.
스르륵.
갈라딘은 등 뒤에서 느껴지는 싸늘한 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그곳에 자레드가 있었던 것이다.
“도대체 어떻……. 끄아아악!”
이유를 물어볼 새도 없이 갈라딘은 자레드가 쏘아 낸 라이트닝 볼트의 전류 구체에 몸을 부르르 떨어야만 했다.
플레어 스피어에 주의를 너무 많이 빼앗긴 탓에 주변 경계에 소홀했던 것이 패착이었다.
하지만 이상했다.
오러가 만들어 낸 역장은 자체적으로 마나 간섭 효과를 가진다.
즉, 함부로 이 안을 파고드는 텔레포트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자신의 등 뒤에 촘촘하게 포개어지듯, 붙어 있는 차원문의 향연을 보고 갈라딘은 짐작할 수 있었다.
자레드가 디멘션 도어를 초월 마법 형태로 시전해서 역장을 통과해 들어온 것이라고.
수많은 차원의 틈을 겹치고 겹쳐서, 그 틈을 하나의 통로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제기랄…….”
자레드가 기습을 펼친 원리는 파악했지만, 문제는 그 바람에 약해진 오러였다.
빠지지직!
“크아아아아악!”
갈라딘이 비명을 질렀다.
기어이 역장을 뚫고 들어온 플레어 스피어는 그대로 갈라딘의 몸 전체를 강타했다.
피할 순간도, 고개를 돌릴 순간도 없이 펼쳐진 최악의 상황이었다.
“크어! 크어! 크아아아아!”
지옥불 위에서 화형을 당하는 것만 같은 격렬한 고통이 전신을 휘감았다.
고통을 참아야겠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을 정도로 플레어 스피어의 위력은 강력했다.
오색의 빛깔을 가진 불길이 갈라딘을 중심으로 타오르며, 그의 모든 것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이나 눈썹과 같은 체모는 말할 것도 없고, 입고 있던 갑옷까지 빠르게 녹여 버렸다.
마치 용광로에 빠진 것처럼, 새빨갛게 변한 것들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자레드……!”
파아앗!
갈라딘이 괴성을 지르며, 입고 있던 갑옷을 가까스로 벗어 내서는 집어 던졌다.
몸 여기저기에서 화상이 가득했고,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울러 제때 눈을 감지 못한 한쪽 눈은 열기에 녹아내려, 안구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라딘은 죽지 않았다.
오히려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며 위기를 벗어났고, 고통을 촉매제로 삼아 육신의 힘을 끌어올렸다.
“후우.”
자레드가 한숨을 내쉬었다.
방금 전의 일격을 위해서 무디두스의 기도를 가져다 썼다.
이제 마력을 재충전하는 기회는 24시간 뒤로 미뤄졌다.
한 방에 끝나길 바랐지만, 역시 소드 마스터는 소드 마스터였다. 결코 녹록지 않은 상대였다.
‘사각(死角)을 노린다.’
하지만 이번 일격으로 갈라딘의 확실한 약점은 만들어 냈다.
잃어버린 왼쪽 눈.
그로 인해 왼눈을 중심으로 무조건 생길 수밖에 없는 사각지대가 자레드의 노림수였다.
“뒈져라!”
지이잉!
다음 순간, 자레드를 향해 오러가 날아들었다.
분명 빠르고, 예리하며, 날카로운 오러인 것은 전과 다름이 없었지만.
‘초점이 빗나가고 있어.’
방향이 맞지 않았다.
오러가 발출되는 단계에서는 미세한 차이겠지만, 자레드에게 닿을 즈음에는 위치의 차이가 컸다.
‘근거리 난투로 가겠어.’
자레드가 승부수를 꺼내 들었다.
지금은 갈라딘의 부상으로 말미암아, 자신에게로 승기가 확실히 넘어온 상황이었다.
여기서 여유를 부리다가는 핸디캡에 대한 적응을 끝낸 갈라딘에게 되레 역풍을 맞을 수도 있었다.
그것이 바로 노련한 군인의 강점이자 두려운 점이었다. 위기를 곧 기회로 만들기 때문이다.
이 점을 잘 아는 자레드이기에 절대 변수가 될 만한 요소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끝낸다!”
“널 죽이고야 말겠다, 자레드!”
독기를 머금은 두 남자가 다시금 격돌했다.
자레드는 일격에 큰 부상을 입는 것을 막기 위해, 마력 치환술 카드를 꺼내 들었다.
[고대 마법서 – 마력 치환술] [체력 1이 하락할 대미지를 20의 마력 소모로 대체할 수 있습니다. 단, 마력 치환술이 적용되는 동안에는 마력 회복이 멈춥니다.]지금껏 수많은 전투에서 쏠쏠하게 사용해 왔던 녀석이었다.
그리고 수만의 마력을 가진 지금, ‘체력 대체’에 더할 나위 없이 시너지가 좋은 선택지였다.
까앙! 지잉!
쿠아아아! 콰아아아아!
사방으로 불꽃이 튀고, 마법이 만들어 낸 먼지구름과 불기둥이 하늘 높이 치솟으며.
본격적인 2차전이 시작됐다.
* * *
한편 그 시각.
“크리비아 놈들만 막으면 된다! 죽이려고 욕심낼 것 없다! 시간만 끌어도 우리가 훨씬 유리하다!”
갈라딘을 대신해 렌투스 제국군을 지휘하고 있는 오스카는 영리하게 전투를 이끌어 가고 있었다.
그의 냉정한 판단으로 볼 때, 크리비아 제국군 소속의 레나, 엘라, 라키스, 나오미는 상당히 껄끄러운 상대였다.
특히 나오미와의 일전에서는 잠시나마 수세에 몰린 적도 있었다.
같은 7클래스였지만, 노련함의 차이를 확실히 느꼈던 것이다.
후방에서 갈라딘의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 것도 오스카는 좋은 조짐이라고 여겼다.
자레드의 손발을 최대한 오래 묶어 둘수록 유리해지는 것은 자신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렌투스 제국군의 고급 전력을 총동원해서 크리비아 지원군의 동선을 막았다. 적극적인 저지(沮止)에 나선 것이다.
그사이, 기마대를 위시한 렌투스 제국군은 해일처럼 매섭게 신데르스 왕국군을 덮쳤고…….
결과는 신데르스 왕국군의 대패였다. 오랜 기간 크고 작은 전투로 단련된 렌투스 제국군을 신데르스 왕국군은 당해 내지 못했다.
이윽고 요새가 함락되며, 신데르스 왕국군은 또 한 번 패퇴했다.
이번에는 맹추격을 받았고, 그 과정에서 다수의 병력을 잃었다.
그뿐만 아니라, 지뢰지대의 지뢰를 제거하고 생존한 몬스터 군단들도 합류를 마쳤다.
가뜩이나 열세를 면치 못했던 신데르스 왕국군은 이로 인해 완전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궤멸의 전조였다.
이렇게 되자, 오히려 크리비아의 지원군이 넓게 포위를 당하는 형국이 되었다.
신데르스 왕국군이 너무 쉽게 무너지는 바람에, 의도치 않게 적진 한가운데에 갇히게 된 것이다.
‘여기서 주요 전력을 몰살시키고, 자레드까지 제거할 수 있다면…….’
오스카의 머릿속에는 새로운 미래에 대한 청사진이 그려지고 있었다.
잘하면 신데르스 왕국은 물론이거니와, 크리비아 제국까지 도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들의 핵심이 모두 이곳에 동원되었기 때문이다.
기둥이 사라지면 그 위에 세워 놓은 것들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니까.
콰아아아앙!
바로 그때.
저 멀리서 거대한 폭음이 들렸다.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들려온 소리였다. 지축도 흔들렸다.
“각하, 이쪽은 완벽한 승세를 잡았습니다. 그러니 부디 승리해 주십시오!”
오스카가 두 손을 모으며, 기도하듯 갈라딘을 향해 소원을 빌었다.
그리고 굳게 믿었다.
무패의 소드 마스터 갈라딘.
그가 이번에도 제국의 영웅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승전보를 가져올 것이라고.
* * *
투타타타! 투타타타!
“끄극! 끅!”
“끄어어억!”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갈라딘에게 오스카가 보냈던 보병들은 전장에 들어서기도 전에 모두 타넥스에게 요격당해 죽었다.
마력을 그리 많이 소모하지도 않는 ‘콩알’만 한 마력탄에도 병사들은 죽어 나갔다.
발전한 마도 공학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였다.
타넥스의 앞에서는 아무리 잘 무장한 병사라고 한들, 파리 목숨보다도 못한 신세가 될 뿐이었다.
같은 시간.
“크윽…….”
갈라딘이 무릎을 꿇었다.
그의 전신은 온통 할퀸 상처가 가득했다.
플레임 버스트로 말미암아 나타난 화마귀들이 몸에 붙은 불을 먹잇감으로 삼아, 그의 온몸을 물어뜯은 탓이었다.
“……윽.”
신음을 토한 것은 비단 갈라딘뿐만이 아니었다.
복부를 중심으로 자레드의 로브에도 온통 핏물이 남긴 흔적들이 가득했다.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서 피하고 또 피했지만, 마지막 2번의 공격에서는 결국 오러에 당하고 말았다.
1m도 채 안 되는 거리에서 오러를 피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다만 치명상은 아니었다.
한 번은 옆구리 살을 찢고 지나갔고, 다른 한 번은 배 앞을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한 끗 차이.
이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상황이 바로 지금이었다.
오러가 손가락 한 마디의 길이만 더 파고들었어도, 생과 사의 갈림길은 달라졌을 수도 있었기에.
“내가 졌다고……?”
갈라딘이 반쯤 풀린 눈으로 자레드를 응시하며 말했다.
그것은 자레드에게 하는 말임과 동시에 자신에게 되묻는 말이기도 했다.
“멋진 전투였어, 갈라딘 공작. 하지만 당신에게 발목을 붙잡히기엔 내가 해야 할 일이 많아.”
“베르하드도 어쩌지 못했던 나를…….”
“그분은 그분, 나는 나지. 그 차이일 뿐이야.”
“내게 패배란 없었다. 절대 패배란 있을 수도 없는…….”
“현실을 받아들여.”
자레드가 인상을 찌푸린 채, 배를 붙잡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행히 아주 깊은 상처는 아니어서, 고통은 충분히 참을 만했다.
이 정도면 복귀 즉시, 헤이즈의 집중 치유를 받으면 말끔히 회복될 듯했다. 그것이 바로 치유사의 무서운 점이고.
“자레드…….”
“음?”
“데스먼드 제국과 마탑주가 널 노리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나?”
“알고 있지.”
갈라딘의 말은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지만, 자레드의 표정은 덤덤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죽더라도 그들이 너를 노릴 것이다…….”
“걱정 마. 곧 그놈들도 저승의 네 곁으로 보내 줄 거니까.”
자레드가 덤덤하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