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232
제 232화
78장. 다섯 번째 변곡점 – 2화
퍼억!
그리고 갈라딘을 발로 밀쳐 내자, 그가 힘없이 뒤로 나자빠졌다.
너덜너덜해진 양팔은 근육과 살점이 찢기고, 심지어 뼈까지 녹아내려 있었다.
“하아.”
갈라딘이 한숨을 토해 냈다.
“폐하……. 폐하의 목숨만은 꼭 보전해 주었으면 한다. 폐하께 죄가 있다면, 나를 벗이자 신하로 두었다는 것이다.”
자레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더 하고 싶은 말은?”
“데스먼드 제국과 마탑은 네가 생각하는 것, 그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다. 이번 몬스터 군단도 녀석들의 작품이다.”
“그렇겠지. 전력으로 렌투스 제국을 집어삼킨 후, 그다음의 전투를 철저하게 대비할 것이다.”
“네 뜻대로 해라. 패배자가 말이 길었군…….”
길게 숨을 토해 낸 갈라딘은 편하게 몸을 뻗고는 두 눈을 감았다.
그리고.
쇄애애액!
자레드가 아공간에서 꺼낸 검을 이용해 갈라딘의 목을 확실하게 베었다.
렌투스 제국의 유일무이한 소드 마스터가 쓰러지는 순간이었다.
[갈라딘이 사망했습니다.] [칭호 ‘다섯 번째 위기를 극복한 자’를 획득하였습니다!] [칭호 획득에 따라 보상으로 ‘트리스티스 아일랜드’의 지도 일부를 얻었습니다!] [당신은 나스 대미궁 80층까지 향하는 확실한 정답지를 얻게 되었습니다.]‘드디어.’
100층까지 필요한 정답지 중에서 8할을 얻었다.
지금의 흐름대로라면, 다음번의 ‘여섯 번째 위기’를 극복하면 남은 퍼즐을 채울 수 있을 듯했다.
“크윽.”
갈라딘과의 혈투는 결코 녹록지 않았다. 소드 마스터의 위용은 결코 허황된 것이 아니었다.
단순 일대일 전투였기에 망정이지, 주변에서의 지원이 있었다면 오히려 고전했을 가능성이 컸다.
자레드는 먼저 갈라딘의 수급을 챙겼다. 적장을 죽였다는 완벽한 증거로 이만한 것이 없으니까.
그리고 갈라딘의 시체로부터 아티팩트를 속속 챙기기 시작했다.
렌투스 신검을 포함한 총 일곱 개의 아티팩트였다.
대부분이 레나나 엘라, 라키스에게 나눠 주기 좋은 ‘검사용’ 아티팩트였다.
‘일단 챙겨 놓고, 나중에.’
당장은 착용 중인 로하드의 거울 갑옷도 아직 전장에 있는 마궁수를 상대로 효과가 좋았기에.
자레드는 우선 모든 아티팩트들을 아공간에 보관해 두기로 했다.
남은 것은 임시 사령관인 오스카를 중심으로 북진하고 있을 렌투스 제국군을 쫓는 일이었다.
과아아아!
자레드가 하늘 높이 상공으로 단숨에 날아오르자, 저 멀리 보이는 수많은 불빛들이 보였다.
“벌써 저기까지…….”
과연 렌투스 제국군이었다.
활활 타오르고 있는 요새만 다섯 곳이 넘었다.
순식간에 그들에게 함락된 신데르스 왕국군의 요새와 성채였다.
파아앗!
최대치로 속도를 끌어올린 자레드가 플라이 마법으로 북상하기 시작했다.
텔레포트를 쓸까 했지만, 만약에라도 있을지 모르는 마력 간섭을 피하기 위해 최대한 조심했다.
뚝. 뚝. 뚝.
선혈이 흘러내리는 갈라딘의 머리, 그 얼굴의 두 눈이 허공의 어딘가를 처량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
전투에서 승리했다는 쾌감. 그리고 대의를 위해 거침없이 적을 죽여야만 하는 씁쓸함.
만감이 교차한 자레드는 조용히, 아무 말 없이 북쪽으로 향할 뿐이었다.
* * *
내가 전장에 합류하기 시작하면서 전투의 양상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가장 첫 번째로 꺼낸 노림수는 적의 총사령관인 오스카를 붙잡는 것이었다.
오스카가 이끄는 많은 전투 마법사들이 나를 노리고 집요하게 달려들었지만, 타넥스가 좋은 방패 역할을 해 주었다.
완전 방어 모드로 기동을 시킨 타넥스는 방어 역장을 펼치며, 마법사들의 공세를 받아 냈다.
나는 타넥스를 믿고, 오로지 오스카만을 노렸다.
갈라딘에게서 입은 부상이 회복되지는 않았지만, 전투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서 오스카를 악착같이 밀어붙였고, 완벽히 분쇄하는 데 성공했다.
적의 사기를 대폭 떨어뜨린 것은 역시 전장의 한가운데에 던져진 갈라딘의 목이었다.
오스카는 이 때문에 분노했고, 이성을 잃고 내게 덤볐다가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다.
전투를 치러 본 결과, 오스카의 실력은 나오미에 준할 만큼 상당히 날카로운 구석이 있었다.
아울러 심안으로 살핀 상태에서도 나오미보다 살짝 모자란 정도에 잠재력이 꽤 풍부해 보였다.
그래서 그를 죽이지 않고, 생포하여 우선 포로로 삼기로 했다.
그 정도의 인재라면, 내가 활용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갈라딘의 심복이었던 그가 내게 마음을 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터.
그저 미래를 위한 하나의 보험 정도로만 생각하기로 했다.
* * *
자레드의 합류로 인해 흐름이 완전히 뒤바뀐 전세는 렌투스 제국군을 악화 일로로 치닫게 했다.
우선 퇴로가 완전히 막혀 버렸다.
자레드가 후방에서 대단위 공격 마법을 퍼부으며 북상했기에, 그들은 감히 뒷걸음질을 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반강제적으로 북진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사기가 크게 오른 신데르스 왕국군이 반격에 나서며 압박을 하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결국 포위당한 형태가 된 렌투스 제국군은 줄줄이 죽어 나갔다.
그러자 자레드를 상대할 어떤 견제력도 존재하지 않음을 인지한 렌투스 제국의 병사들은 앞다투어 항복하기 시작했다.
자레드는 렌투스 제국이 비장의 카드로 꺼낸 한 수가 이번 전투로 완벽히 무너진 것을 확인한 뒤.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다.”
승부수를 던졌다.
지난 정복 전쟁에 투입된 국력의 회복이 아직 덜 된 상태였지만…… 다시금 군을 일으켰다.
이번 기회를 놓치고, 렌투스 제국이 전열을 정비하면 다시는 일을 도모하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하물며 렌투스 제국은 지금 다수의 전력을 잃은 상태가 아닌가?
물론 렌투스 제국의 황제 루틀러 4세가 그야말로 ‘미친 척’하고 데스먼드 제국에 도움을 요청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한 번 손을 벌리는 것이 어렵지, 두 번이나 세 번은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렌투스 제국과 맞닿은 서부, 동부 전선의 병력을 동원해 즉시 군대를 출동시켰다.
아울러 통신석을 이용해 이즈엘과의 긴급 협의도 거쳤다.
크리비아 제국에서 출발한 본대(本隊)가 신데르스 왕국의 대규모 텔레포트 마법진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정말 뜻하지 않았던 전쟁.
렌투스 제국의 그릇된 욕심으로 발발한 크리비아-렌투스 전쟁은 바로 2차전에 돌입했다.
이는 이번 전쟁의 원흉이기도 한 이카젤라마저도 놀랄…… 자레드의 크나큰 승부수였다.
* * *
그로부터 몇 개월 후.
“나의 제국이……. 허망하군.”
루틀러 4세는 사방이 불길로 뜨겁게 타오르고 있는 황궁의 전역을 보며 허탈해하고 있었다.
진즉에 곁에 있었어야 할 갈라딘과 렌-세븐은 이미 자레드의 손에 의해 불귀의 객이 된 지 오래였다.
심지어 기사단과 마법사단도 박살이 났다.
그나마 이 정도 버틴 것은 제국 내에 남아 있는 모든 고급 전력을 끌어모아 대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크리비아 제국군의 거센 공격 앞에서는 완벽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거기에다가 큰 타격을 준 것은 바로.
“데스먼드 제국, 이 개XX들!”
종국에 이르러 마수를 드러낸 데스먼드 제국의 ‘개수작’이었다.
렌투스 제국이 크리비아 제국에 연전연패를 거듭하는 것을 보고, 기습적인 선전포고와 함께 국경을 넘은 것이다.
그 바람에 렌투스 제국의 남서쪽에 위치한 대영지 두 개가 데스먼드 제국의 손아귀에 넘어갔다.
나름 광물자원이 풍부하게 생산되는 곳으로 알짜배기 땅이었다.
전세는 이미 크게 기울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루틀러 4세의 전의를 상실하게 만든 것은.
황궁의 상공에서 오연히 자리한 채, 지면으로 거침없이 마법을 퍼붓고 있는 자레드의 모습이었다.
아무도 감히 그에게 대적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엑스퍼트급의 기사는 자레드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했고, 7클래스 미만의 마법사는 날아오르는 족족 ‘격추’됐다.
단 한 사람.
가장 껄끄러운 적은 자레드 하나뿐인데, 그 하나를 아무도 무너뜨리지 못했다.
“내 편이면 축복의 신, 적이면 재앙의 신이라고 부르던 백성들의 노래가 헛된 말은 아니었군. 큭.”
루틀러 4세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연전연패를 거듭하며 흉흉해진 민심은 그를 욕하고, 자레드를 추앙하는 민요를 등장시켰다.
내용인즉슨, ‘재앙의 신’인 자레드를 우리 편으로 만들어 ‘축복의 신’으로 만들자는 것이었다.
이는 역사상 유례없는 대풍년과 더불어 국가의 모든 톱니바퀴가 완벽하게 맞물려 돌아가고 있는 크리비아 제국을 부러워하는 말이었다.
문화, 복지, 법치, 행정……. 무엇 하나 흠잡을 곳이 없는 크리비아 제국의 백성이 되고 싶다는 것.
그것이 대다수 백성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생각이었다.
민심이 떠난 자리에 화려한 옥좌는 아무 의미도 없었다.
“나의 나라는 끝났다.”
루틀러 4세가 단언하듯 말했다.
희망이 없었고, 기댈 구석도 없었다. 남은 것은 오직 공허함뿐.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병사들을 독려하며, 죽음을 각오한 최후의 일전을 외쳤던 그였지만.
자레드가 전장에 나타난 순간부터 모든 것이 달라졌다.
저항? 반격? 무의미했다.
그를 상대로 느낀 것은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추락하는 상실감과 무력감이 전부였다.
스으윽.
루틀러 4세가 품속에 날카로운 단도 하나를 꺼내 들었다.
파우페르 왕국의 국왕처럼 자레드의 손에 붙잡혀 처형을 당하느니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그때.
위이이잉!
거친 소환음과 함께 방금 전까지만 해도 상공에 머물고 있던 자레드의 인영이 바로 코앞에 다가왔다.
“히익!”
루틀러 4세의 곁을 지키던 마법사가 둘 있었지만, 그들은 자레드를 보자마자 내빼 버렸다.
목숨은 하나니까.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이니까.
냉큼 도망쳐 버리는 그들의 모습이 더 이상 야속하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대왕.”
“…….”
“항복하시오. 그렇게 하면 갈라딘 공작의 유언에 따라 당신의 목숨은 반드시 살려 줄 터이니.”
“갈라딘의…… 유언?”
“어떤 일이 있어도 당신의 목숨은 보전하게 해 달라는 그의 유언이 있었소.”
“……멍청한 놈.”
루틀러 4세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욕지거리나 내던지고 죽을 것이지, 죽기 전에 감상에 젖어 자기도 아닌 친구이자 황제인 자신의 목숨을 구명하고 죽었다니.
“뜻대로 하시오. 조리돌림을 하든 뭘 하든……. 내 목숨조차 내 뜻대로 할 수 없게 됐군.”
투욱.
루틀러 4세가 들고 있던 단검을 바닥에 내던지고는 자레드에게 무릎을 꿇었다.
가장 확실한 항복이었다.
“조용히 여생을 보내시오. 다른 생각은 하지 말고. 아무것도 꿈꾸지 말고.”
“패배자가 무슨 말을 할까.”
루틀러 4세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나스 대륙에는 렌투스 제국마저 집어삼킨 크리비아 제국이라는 거대한 공룡이 나타났다.
대륙 영토의 무려 4할을 차지하는 거대 제국의 탄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