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240
제 240화
80장. 꼼수와 버그의 힘 – 1화
“폐하.”
“응?”
“갑자기 이런 말씀을 드리면 정말 무례하고 못났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괜찮아. 네가 내게 하는 말이라면 무엇이든.”
조심스럽게 운을 떼는 헤이즈의 말에 자레드는 웃으며 답했다.
비단 그것은 헤이즈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동료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서로에게 벽이 없길 바랐다.
‘황제 폐하’가 아닌 한 사람의 동료로서 편하게 대해 주기를 바랐다.
“항상 폐하가 떠올라요. 곁에 있으면 있는 대로, 떨어지면 더 절실하게 폐하를 생각하게 돼요.”
“…….”
전생의 모태솔로 34년 동안 연애세포 하나 없는 삶을 살았다고 한들, 연애가 뭔지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자레드는 헤이즈의 일편단심을 오래전부터 느껴 왔다.
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눈을 떴을 때, 자신을 반겨 준 이가 바로 헤이즈였다.
헤이즈는 자신이 시키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군말 없이 했고, 심지어 산적의 습격 당시 자신을 대신해 죽으려고 했던 적도 있었다.
그녀의 애정은 결코 마르지 않는 우물처럼 늘 샘솟았고, 그 방향은 오롯이 자레드에게로만 향했다.
그러니 어찌 그녀의 마음을 모를까?
자레드는 자신의 허리를 휘감은 헤이즈의 손을 잡은 채, 잠시 생각에 잠겼다.
본인의 감정을 솔직하게 곱씹어 보고 싶었다. 과연…… 자신은 헤이즈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나를 이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 가장 아껴 주고 사랑하는 사람이지. 헤이즈를 놓치고 싶지 않아.’
생각의 나래를 좀 더 펼쳤다.
과연 헤이즈의 곁에 자신이 아닌 다른 남자가 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상상임을 알면서도 절대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늘 마음에 걸리는 것은 다가올 성마 대전이었다.
성마 대전의 끝에 자신이 과연 살아남을지 어떨지는 지금으로서 판단할 수 없는 일이었다.
누구의 피도 흘리지 않고 끝날 재앙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을 것이고, 거기에 자신도 포함될 수 있었다.
‘헤이즈의 마음을 묶어 두고 싶지 않아. 적어도 지금은 때가 아니야.’
자레드는 그렇게 생각했다.
혹시나 잘못될지 모를 자신의 미래를 생각해서라도, 마음의 방향을 정해 두고 싶지 않았다.
가슴속 깊은 곳에 자리했던 누군가를 잃었을 때의 상실감은 상상을 초월할 테니까.
“헤이즈.”
“……네?”
“모든 이야기는 나스 대륙을 마왕에게서 완벽하게 지켜 내고 나서 그때 얘기하도록 하자. 지금은 내게 조금 부담스러운 감정이야.”
“역시…… 그렇겠죠? 죄송해요, 폐하. 제가 주제넘게 너무 많은 감정을 표현했나 봐요.”
“아냐, 고마워. 그리고 나 같은 사람을 마음에 담아 줘서 정말 고마워. 그렇기에 더 소중하게 생각하고 싶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지금은 우리에게 닥쳐올 미래, 그것 하나만 생각하자. 이것 하나만으로도 갈 길이 바빠.”
“네, 폐하! 늘 그랬듯이 폐하의 곁에서 열심히 노력하는 헤이즈가 되겠어요!”
어느새 환한 미소를 지으며 헤이즈가 힘주어 말했다.
슬프고 먹먹한 마음을 애써 감추려는 것이 느껴져 마음이 짠했지만, 자레드는 자신이 한 말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눈 좀 붙여 둬. 본격적인 미궁 공략은 이제부터 시작이니까.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을 거다.”
“네, 폐하.”
휘이이이.
어느덧 더 싸늘해진 미궁의 41층 전역에 칼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화르르륵.
자레드는 마나를 모닥불에 힘껏 불어넣으며, 그 위에 블레이즈로 거친 불길을 만들어 냈다.
그러자 주변은 다시금 제법 따뜻해졌다. 칼바람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 * *
아침.
날이 밝음과 동시에 11인의 공략이 재개됐다.
모두가 잠든 새벽 시간, 나는 다섯 차례 정도 주변의 마수와 교전을 벌였다.
제법 맷집이 좋은 녀석들이기는 했지만, 내 마법 앞에선 언제 죽느냐는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나는 녀석들을 이래저래 공격해 보면서, 늘 그랬듯이 약점을 찾아냈다.
애초에 의 몬스터들은 완전무결한 녀석이 없으며, 모두에게 약점이 존재했다.
다만 가이드북이나 게임 노트 등을 통해 알려진 바는 없으므로, 플레이어가 직접 약점을 찾아내야만 했을 뿐이다.
그래서 몬스터들의 약점을 많이 아는 플레이어일수록 공략 속도가 확연히 빨랐다.
그러나 자신의 이런 ‘노하우’를 절대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다. 남 좋은 일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한마음 한뜻으로 성장을 해야 하는 팀이다. 공략의 노하우를 숨길 이유가 없었다.
“41층에 있는 마수들은 전방과 후방, 양쪽 모두에 방어의 강점이 있어. 외피가 두 겹으로나 강화가 되어 있기 때문이지만, 그래도 빈틈은 당연히 존재하지.”
“어디입니까?”
“측면. 정확하게 말하자면 우측 측면이 가장 취약해. 전방과 후방의 방어력이 10이라면, 우측 측면의 방어력은 2에 불과하다.”
“……폐하, 설마 새벽에 직접 녀석들의 약점을 파악하신 겁니까?”
“잠도 안 오고 해서 말이오. 하하하. 뭐, 정확히는 잠을 안 자도 되는 것이지만.”
나는 라키스의 물음에 웃으며 답했다.
그러자 이자벨과 아슈르가 각각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폐하와 함께 있다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항상 미래를 대비하고, 현재에서 최선을 찾는 분이시니까요.”
“폐하의 곁에만 있으면 자다가도 떡이 떨어지지요. 모든 것이 너무 편합니다.”
“자, 가자. 우리의 첫 번째 목표인 50층까지는 아직도 꽤 많이 남았으니.”
나는 동료들을 독려하며 다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약점까지 일러 주는 족집게 강의를 마친 마당에 이제 남은 것은 속도감 있게 공략하는 것뿐이다.
확실히 조합이 좋았다.
애초에 개개인의 전투 능력이 뛰어난 것도 크게 한몫을 했지만, 팀의 구성이 좋아 마수들이 대거 나타나도 결코 밀리는 법이 없었다.
우선 가장 기본적인 공격 옵션인 검과 마법이 풍부했고, 그 안에서도 역할군이 확실히 나눠졌다.
레나는 몬스터들을 한곳에 끌어모으는 도발 탱커의 역할을 담당했고, 엘라와 라키스는 맹렬한 공격으로 마수들을 노렸다.
마이라는 대열을 이탈하여, 측면이나 후방으로 선회하는 마수들을 전담하는 식이었다.
마법은 내가 주공을 맡은 가운데, 나오미가 보조를 맡았다.
그리고 미아는 팀원 전체를 윈드 웨이를 통해 가속을 돕거나.
바람을 이용한 상승 기류를 만들어 내며, 아슈르의 신출귀몰한 위치 선정을 도왔다.
이자벨은 팀에 부족한 디버퍼로서의 역할을 전담했다.
이자벨의 주술에 끊임없이 속박, 둔화, 실명, 방어력 감소가 걸린 마수들은 우리를 제대로 노리지도 못했다.
클로이는 기본 체력이 약한 마수들을 집중적으로 노렸다.
일취월장한 그녀의 실력은 이제 스승인 포르미도를 능가했다고 말해도 될 정도로 뛰어났다.
단검이 한 번 번뜩이면, 마수는 그 즉시 혀를 빼물고 숨이 끊어질 정도였다.
그리고 헤이즈는 디바인 세븐의 경지를 바탕으로 폭넓게 팀원들의 체력을 조율했다.
그녀의 압도적인 신성력은 동료들의 체력이 9할 이하로 떨어질 틈조차 주지 않았다.
그런 덕분에 모두가 최상의 컨디션에서 전투를 치를 수 있었다.
체력이나 부상에 대한 걱정 따위는 1g도 하지 않고 말이다.
그리고 나는 공략을 하면서 확실한 견적 하나를 낼 수 있었다.
하급 마수 정도는 군단의 단위로 공격한다고 한들, 절대 우리를 이길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우리가 41층에서 상대한 몬스터의 수준이 딱 그 정도의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계산이 서는 전투!
그래서 좋았다.
이렇게 데이터를 하나씩, 차곡차곡 쌓아 가야 한다.
성마 대전을 앞두고 ‘예행연습’을 할 수 있는 곳은 나스 대미궁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신난다, 신나!”
공략을 즐기는 미아의 기분 좋은 외침이 모두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했다.
분명 헌터들에게는 처절한 생존의 전쟁터인 나스 대미궁 상층계가…… 우리에게는 즐겁게 성장하는 축복의 장이 되고 있었다.
* * *
그로부터 얼마 후.
“워…….”
“제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것이 거미인데, 이렇게 확대된 모습으로 보게 되리라고는……. 욱.”
“아빠는 겁쟁이래요!”
“미아, 아빠가 다른 건 다 괜찮은데 거미는 정말……. 으으으!”
자레드 일행을 반긴 41층의 보스 몬스터는 ‘카타스나’라고 불리는 거대 거미였다.
보통의 거미가 아무리 크다고 하더라도 주먹만 한 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 반면.
카타스나의 몸은 얼핏 봐도 귀족가의 5층짜리 대저택만큼이나 거대했다.
그러니 여덟 개의 다리에 다닥다닥 붙은 솜털하며, 연신 깜빡이는 홑눈들이 징그러울 정도로 클 수밖에 없었다.
“레나.”
“네, 폐하.”
“이번 공략은 너와 내 호흡만 잘 맞으면, 나머지 동료들은 코를 파면서 공략을 해도 된다.”
“정말요?”
환히 웃으며, 자신감 넘치는 멘트를 내뱉는 자레드의 반응에 모두의 이목이 쏠렸다.
신기했다.
자레드는 마르지 않는 우물처럼, 늘 기발한 공략법을 내놓곤 했다.
그것은 허풍도, 거짓도 아닌 순도 100% 진실인 완벽한 공략법이었다.
여기 있는 모두가 자레드의 꼼수와 버그의 혜택을 톡톡히 본 사람들이었다.
자레드를 어느 순간부터 ‘신’처럼 떠받들게 된 것도 괜한 믿음 때문이 아니었다.
정말 전지전능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던전과 몬스터에 관한 한 모든 것을 꿰뚫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번 대미궁 41층의 카타스나 공략에도 기발한 혜안(慧眼)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레나, 내가 먼저 카타스나의 패턴을 유도할 거다. 녀석은 특정 거리가 되면, 무조건 거미줄과 독액을 발사해. 가장 먼 사람에게.”
“폐하께서 그 역할을?”
“그렇지. 내가 거리를 유지해서, 그 패턴을 유도할 거야. 그러면 4초 동안은 오로지 공격 동작을 하는 데 시간이 소모되지.”
“그 시간이 다른 팀원들의 공격 타이밍이군요!”
“맞아. 그렇게 패턴을 소화하고 나면, 녀석은 가장 가까이 있는 대상을 노린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어요. 그때 제가 도발 기술을 이용해서 녀석의 관심을 끄는 거죠?”
“잘 알고 있구나. 대신 강하게 도발할 필요는 없어. 1초 정도만, 다른 팀원이 아닌 너만 볼 수 있도록 하면 된다.”
“그다음은요?”
“내가 네게 끌린 관심을 다시 끌어올 수 있을 만큼의 강력한 마법을 시전할 거다.”
“그러면 다시 저 거미의 관심이 폐하에게로 가고…… 아까 말씀하신 패턴이 다시 나오는?”
“빙고. 정답이야. 참 쉽죠?”
“폐하, 제게 중요한 역할을 맡겨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레나가 자레드를 향해 힘껏 고개를 숙였다.
여기 있는 검사 모두가 사실 소드로 시작하는 수식어가 붙어도 무방할 정도의 실력자들이었지만.
자레드의 앞에서는 하나같이 스스로를 한없이 작게 여기고, 늘 겸손했다.
“잘해 보자, 레나. 다가올 성마 대전에서도 오늘처럼 너와 내가 호흡을 맞출 일이 많을 거다.”
자레드가 레나의 어깨를 두드려 주며, 그녀를 격려했다.
자레드는 믿었다.
머지않은 시일 내에 그녀는 마왕군이 아닌, 크리비아 제국을 위한 ‘통곡의 벽’이 될 것이라고.
그녀의 만개한 기량은 지금 이 순간에도 멈추지 않고, 레벨과 함께 쭉쭉 성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