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241
제 241화
80장. 꼼수와 버그의 힘 – 2화
얼마 후.
전투 시작과 동시에 마법을 있는 대로 쏟아부은 나는 41층의 보스 몬스터인 카타스나의 관심을 완벽하게 끌었다.
머리가슴의 윗부분에 달린 녀석의 수많은 홑눈들이 일제히 나를 보며, 눈을 깜빡거렸다.
“크윽……. 징그러워.”
세상 강한 사람인 줄 알았던 라키스가 부르르 떠는 모습을 보니,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덕분에 조금이나마 남아 있던 긴장이 완전히 풀렸다.
프스스스!
나는 헤이스트로 빠르게 카타스나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녀석이 확정적으로 원거리 공격 패턴을 가져가는 위치가 있다.
에서는 자체의 거리 측정 시스템에 따라 미터(m)를 쟀지만, 여긴 현실이다.
알음알음 거리를 찾아야 한다.
“…….”
내 명령에 따라 모두가 숨을 죽인 채, 언제든 공격에 나설 준비만을 하고 있었다.
레나도 방패와 검을 든 채, 슬금슬금 카타스나 가까이로 접근하는 중이었다.
바로 그때.
“쿠이이잇!”
카타스나가 괴성을 내지르며 거미줄이 나오는 항문 언저리를 나를 향해 조준하기 시작했다.
썩 유쾌한 시각적인 풍경은 아니지만, 나는 즉각 퍼펙트 실드를 펼칠 준비를 했다.
언뜻 보기에는 단순한 거미줄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자체가 엄청난 강산성을 가진 거미줄이다.
즉, 닿는 순간 몸이 묶이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피부가 녹아 버리기까지 하는 것이다.
즉사까지 이르지는 않지만, 거미줄이 닿은 피부는 평생 죽은 피부가 되어 재생되지 않는다.
“모두 공격!”
명령을 내렸다.
지금부터 거미줄을 방출하고, 고개를 돌려 내게 독액을 발사하고, 가까운 딜러를 노릴 때까지.
카타스나의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녀석을 완벽하게 노릴 수 있는 ‘극딜’ 타임이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카타스나를 향해 맹렬한 공격을 시작하는 동료들의 모습이 보였다.
장관이었다.
공중을 수놓은 마법과 화살부터, 화려하게 흩날리는 검기까지.
그 무엇 하나 가볍게 무시할 수 있는 공격이 없었다.
쿠웅!
“크윽! 역시 제법이군.”
이윽고 날아든 거미줄이 퍼펙트 실드의 방어 역장을 거칠게 후려쳤다.
산성의 기운과 물기를 동시에 머금은 거미줄이라 그런지, 먼 거리를 날아오며 실린 운동량이 상당했다.
다음 순간.
“크우우웁!”
이번에는 정면으로 몸을 돌려 내게 모든 시선을 고정시킨 카타스나가 우악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리고 거의 성인 남성의 몸뚱이만 한 크기로 응축된 녹색 액체를 내게 뿜어낼 준비를 했다.
“제길.”
독액이다.
독액 자체야 뒤집어쓰더라도 만독불침지체인 내게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
하지만 색깔만 봐도 벌써부터 역한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듯한 느낌이 문제였다.
“웨에에엑!”
이윽고 카타스나가 독액을 토해 냈다.
나는 이번에는 퍼펙트 실드가 아닌 바람의 장벽을 펼쳤다.
좀 더 전방에서 확실하게 막아 내기 위함이었다.
퍼펙트 실드는 내 근처에서 역장이 만들어지므로, 뒤끝이 근처에 남게 되기 때문이다.
퍼엉! 퍼엉! 퍼엉!
솨악! 솨악!
“꾸이이익!”
그사이에 카타스나를 포위한 채, 맹공을 퍼붓는 동료들의 모습이 보였다.
과연 41층까지 올라오면서 꾸준히 호흡을 맞춘 동료답게 유기적인 플레이가 일품이었다.
그때.
“쿠오오.”
패턴이 리셋 된 카타스나가 가까운 먹잇감을 찾기 시작했다.
“하아아압!”
레나의 일성(一聲)과 함께 순식간에 붉은 기운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완벽한 도발.
레나가 자랑하는 자신만의 고유 기술이자, 빠져나올 수 없는 어그로의 늪이다.
아니나 다를까.
도발에 완벽하게 이끌린 카타스나는 다른 곳에 시선을 돌릴 틈도 없이 레나에게로 다리를 뻗었다.
터엉!
하지만 레나가 앞으로 내뻗은 방패가 너무나도 쉽게 카타스나의 공격을 받아 냈다.
레나에게 41층의 보스 몬스터가 가진 완력은 그다지 큰 위협이 되지 못하는 듯했다.
분명 묵직하게 체중을 실은 카타스나의 다리 공격이었지만, 레나는 제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플레어 스피어.’
다음 선택지는 플레어 스피어.
갈라딘을 죽인 심판의 창으로 5원소의 힘을 한데 모은 위력적인 8클래스 마법이다.
“이거나 받아라!”
나는 힘껏 투창을 하듯이 플레어 스피어를 카타스나를 향해 던졌다.
그리고.
퍼어어어엉!
“꾸아아아악!”
홑눈의 한가운데를 명중한 플레어 스피어가 폭발을 일으키며 카타스나의 많은 눈에 상처를 냈다.
“후욱! 후욱! 후욱!”
이내 숨결이 거칠어지며, 카타스나가 다시 내게로 거미줄을 방출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계속 공격해! 죽을 때까지!”
나는 다시금 주의를 환기하며, 동료들을 독려했다.
푸슈슈슛!
이전보다 더 굵고 양이 많아진 거미줄이 나를 향해 맹렬하게 쇄도했다.
볼 때마다 마치 나를 향해 똥을 싸는 듯한 모습이라 영 적응이 되진 않았지만…… 무시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좀 영리하게 가 볼까.’
방식을 바꿔 디멘션 도어를 펼쳤다.
날아드는 거미줄의 경로를 계산해서 사선으로 반쯤 누운 차원문의 입구를 내 앞에 만든 뒤.
위이이잉.
그 출구를 카타스나의 머리가슴 위에 바로 열었다.
고도의 집중과 계산이 필요한 공간 마법이지만, 내게는 오래전부터 손과 몸에 익은 마법이었다.
다음 순간.
후웅!
내게 날아들던 카타스나의 거미줄이 종적을 감췄다.
“꿰에엑!”
그리고 바로 저 멀리서 들려온 것은 다름 아닌 카타스나의 비명이었다.
흡사 돼지 멱따는 소리처럼 들리는 기분 나쁜 쇳소리였다.
자신의 몸에 산성의 거미줄이 철퍼덕 내리쳐 외피가 녹아내리고 있음에도, 카타스나는 정해진 패턴을 열심히 수행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내게로 시선을 돌렸고, 역시나 독액을 퍼부을 준비를 했다.
그래도 디멘션 도어의 정체를 인지하기는 했는지, 발사 각도를 조절해 나를 노리는 모습이었다.
‘모든 층계를 버그와 꼼수로 공략할 수는 없겠지만……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악착같이 누려야지.’
버그와 꼼수로 꿀빨기.
지금까지 나와 내 동료들의 성장을 이끌어 온 승리 공식이 아니던가?
전생의 ‘신태풍’이 현생의 ‘자레드’에게 남긴 선물이나 다름없는 지식을 무시할 생각은 없었다.
쏴아아아!
이윽고 날아드는 카타스나의 독액을 보며, 나는 미소를 지었다.
즐겁고…… 재밌었다.
나 혼자가 아닌 많은 동료들과 함께 같은 목표를 두고, 같은 공간에서 호흡한다는 사실이.
솨악! 솨악! 솨아아악!
“끄에에! 끄에에!”
바보가 되어 버린 보스 몬스터.
그리고 신명나게 녀석을 베어 넘기는 동료들의 칼부림(?)과 마법 난사 속에서.
그렇게 카타스나도 빠르게 생명의 불씨를 잃어 갔다.
이후로도 공략은 계속 진행됐다.
매 층계의 보스 몬스터를 잡을 때마다 확정적으로 4성 이상의 아티팩트가 드롭 됐다.
나는 아티팩트의 옵션을 심안으로 확인한 뒤, 가장 필요한 사람에게 우선적으로 분배했다.
내가 착용을 위해 노리고 있는 것은 마력과 지혜에 옵션이 집중된 아티팩트였지만, 아직까진 나오지 않았다.
원래 아티팩트라는 게 그렇다.
꼭 얻고 싶다고, 필요하다고 갈망하면 그 순간부터는 어찌 된 까닭인지 잘 나오지 않는다.
대신 주변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아티팩트는 끝없이 쏟아진다. 본의 아니게 기부 천사가 된 셈이다.
어쨌든 사전에 이야기를 끝내 놓은 우선순위에 따라 계속 아티팩트를 분배했다.
4성급 이상의 아티팩트이다 보니, 착용할 때마다 주요 스탯이 100에서 200단위는 우습게 올라갔다.
동료들의 성장이 가시적으로 보이니 확실히 뿌듯했다.
마치 자식을 키우는 느낌이랄까.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 * *
나스 대미궁 44층의 보스 방.
‘드디어!’
세 층수 만에 다시 꼼수를 활용할 수 있는 녀석이 등장해 나는 기쁨의 쾌재를 불렀다.
얼음의 왕, 아이슬라.
우리가 상대해야 할 보스 몬스터의 이름과 별칭이다.
섬 형태로 구현된 보스 방은 녀석의 이름에 맞게 매서운 칼바람이 사방에서 불어닥치고 있었다.
쿠웅! 쿠웅!
저 멀리서 어림짐작으로도 15m는 족히 넘는 신장을 가진 아이슬라가 배회하듯 움직이고 있었다.
비유하자면 거대한 얼음 골렘을 보는 듯했다.
인간형의 몸이기는 하지만 살점과 같은 생체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빙결된 ‘물’,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이번 공략의 핵심은 화염인가. 내가 가장 자신 없는 분야인데.”
“그러게요. 제 궁마법의 유일한 약점이 화염 쪽이 약하다는 것인데……. 난감하게 됐군요.”
공략 방법을 지레짐작한 나오미와 아슈르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나오미는 일전에 나와 전투를 치렀을 때도 그랬지만, 물 계열의 마법에 강점이 있는 마법사다.
그런 반면 상대적으로 화염 계열의 마법은 위력이 약했다.
내 화염 마법의 위력과 비교하자면 1할 정도? 그러니 나오미가 자신 없어 하는 것도 당연했다.
다들 아이슬라를 보자마자, 마치 주입식 교육이라도 받은 것처럼 화염을 떠올렸다.
이런 고정관념이 문제다.
얼음 그 자체로 똘똘 뭉친 보스 몬스터이기에 당연히 ‘화염’으로 상대해야 한다는 생각.
“자, 이번에는 마법사들이 활약할 차례인 듯한데! 마법사를 제외한 모든 직업군은 마법사 엄호만 신경 쓰면 된다.”
“폐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41층에서 43층까지 이어진 공략에서 탱커로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레나가 아쉽다는 듯 말했다.
내심 또다시 중요한 역할을 부여받을 줄 알았는데, 개점휴업을 하라니 실망한 모양이었다.
“저 보스 몬스터의 이름은 아이슬라. 단순히 화염으로 타격을 입히려고 하면, 아마 몇 주는 공략을 해야 할 거야. 녹을 만하면 자체적으로 결빙을 시키는 패턴이 있거든.”
“아…….”
내 말에 가장 먼저 탄성을 터뜨린 것은 나오미였다. 그녀가 이어서 물었다.
“폐하, 그러면 어떻게 공략해야 합니까? 정공법이 아니면, 역으로 비트는 겁니까?”
“그렇소. 결빙의 끝을 봐야 하지. 녀석을 얼리고, 얼리고, 또 얼려야 하오. 특히 많은 물을 쏟아부어서 지금보다 몸집이 세 배는 불어나도록 해야 하오.”
“……!”
일행 전체가 술렁였다.
얼음 그 자체인 보스 몬스터의 덩치를 키워 주라니! 듣기만 해도 황당한 모양이었다.
나도 그랬었다.
에서 아이슬라를 처음 공략했던 팀이 ‘얼려서 깼습니다!’라는 후기를 남겼을 때.
하고 바로 그 밑에 댓글을 남겼을 정도니까. 물론 나중에 그 댓글은 내 흑역사가…… 됐다.
“나오미는 계속해서 아쿠아 스웜과 워터 밤을 이용해서 아이슬라에게 수분을 공급하고.”
“예, 폐하.”
“미아는 아이슬라의 불어난 몸집이 얼어붙을 때마다 계속 거세게 바람을 불어 줘. 물이 흘러내릴 틈조차 없도록.”
“알겠어요, 폐하!”
“아슈르.”
“빙결 궁마법으로 정밀하게 타격하겠습니다.”
아슈르는 내가 명령을 내리기도 전에 바로 자신의 할 일을 알아차렸다.
척하면 착.
내가 원하는 가장 이상적인 팀플레이의 모습이다.
“빙하의 땅에 온 가소로운 침입자들……. 극한의 추위로 너희의 모든 것을 얼어붙게 해 주마.”
이내 우리의 존재를 인지한 아이슬라가 고개를 돌리고, 내 쪽을 향해 거대한 입을 벌리기 시작했다.
빙하의 숨결!
그 숨결에 닿는 모든 것을 꽁꽁 얼려 버리는 매서운 일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