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244
제 244화
80장. 꼼수와 버그의 힘 – 5화
이자벨에게 빠르게 설명을 이어 갔다.
마이너스 방어력, 즉 음수 방어력이라 불리는 ‘음수 버그’의 핵심은 두 가지다.
최대한 빨리 디버프와 주술을 중첩시켜서 방어력을 완벽하게 낮추는 것이다.
그다음은?
내 손가락 하나면 해결된다.
간단명료한 설명이 끝나자, 이자벨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매번 말씀드리지만…….”
“신기하다고?”
“네. 항상 신기하네요. 저희뿐만이 아니라, 폐하도 이곳은 처음이실 텐데요.”
“뭐, 통찰력과 예지력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랄까. 적당히 생각해 줘. 많이 알면 다쳐.”
“폐하, 예전 일 기억나시나요?”
“동방 대륙에 대해 얘기했던 그때 말하는 거야?”
“네, 맞아요. 폐하는 그때도 늘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얘기를 했었죠. 마치 다른 세계의 이야기 같은…….”
“아직도 내 출신을 의심하는구나? 하지만 전에도 보여 줬잖아? 난 바렛 폰 유칼레스 자작을 아버지로 둔 엄연한 나스 대륙 사람이야.”
“훗, 그렇다고 해 두죠. 자, 그럼 바로 준비할게요.”
이자벨이 영문을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내 옆에 바로 자리를 잡고 섰다.
동료들은 단다네스를 상대로 열심히 ‘노느라’ 정신이 없었다.
녀석의 가장 까다로운 패턴인 독연 내뿜기가 만독불침지체로 사실상 무위로 돌아갔으니.
그나마 녀석에게 남은 공격 옵션은 육중한 몸으로 깔아뭉개거나, 거머리 같은 애벌레를 쏘는 것밖에 없다.
하지만 형편없이 느린 이동 속도로는 우리를 압사해 죽일 생각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꾸었고, 거머리도 체력이 낮아 즉각 터졌다.
아슈르가 산책하듯 단다네스의 앞을 거닐며 여유롭게 활을 쏴도 문제없었던 것이다.
“모두 산개!”
화아아악!
명령을 내리기 무섭게 모세의 기적처럼 동료들이 양옆으로 피해 섰다.
“그우우우.”
단다네스는 오겹으로 쌓인 지방 덩어리 속에 파묻힌 눈을 껌뻑이며 내게 걸어왔다.
우리만큼이나 녀석도 참 여유로워 보였다.
하기야 자신이 불사에 가까운 체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테니 그 여유가 이해는 간다.
“가자, 이자벨!”
나는 이자벨의 손을 잡고, 바로 멀티 텔레포트를 전개했다.
그러자 제법 멀었던 거리가 단숨에 좁혀지며, 우리는 단다네스의 어깨 위에 사뿐히 안착했다.
[옵션 6 : 확정적 해체 – 10초간 적의 모든 방어력 수치를 0으로 만듭니다. 쿨타임 24시간]확정적 해체를 걸었다.
내게 항상 극한의 대미지 딜링이 필요할 때, 늘 좋은 동반자가 되어 준 공격 옵션이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즈르므 프브르즈 느안.”
“으지르하이 사르.”
“레트 소이스레 사르.”
내가 알려 준 순서 그대로 이자벨의 주술이 연이어 들어갔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연계였다.
그 순간.
“꾸이익?”
자신의 몸에 일어난 큰 변화를 느꼈는지, 단다네스가 돼지 멱따는 소리를 냈다.
나는 바로 심안을 이용해 녀석의 방어력을 살폈다.
[물방 : -21393] [마방 : -12303]자체 보정으로 자신의 방어력을 복구하려 했던 그 속도만큼 방어력이 더 떨어졌다.
이 정도 방어력이면…… 말해 봐야 입만 아픈 사실이기는 하지만 사실상 사망 선고나 다름없다.
왜냐고?
“잘 가라.”
내가 손톱으로 단다네스의 볼을 꾹, 하고 눌러 주는 순간.
뻐어어엉……!
단다네스의 거대한 몸뚱이가 마치 물 풍선처럼 쉽게, 그리고 시원하게 터져 버렸기 때문이다.
[‘나스 대미궁 47층 공략자’의 칭호를 얻었습니다!] [레벨이 1 올랐습니다!]나스 대미궁, 지하 47층 공략에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오!”
투욱. 투우욱. 투욱.
이번에는 제법 개수가 되는 아티팩트가 단다네스의 체액이 남긴 흔적의 자리에 우수수 떨어졌다.
버그로 꿀을 빨았으니.
이제는 그에 합당하게(?) 보상받은 전리품 분배를 할 시간이다.
* * *
자레드는 우선 마력과 관련된 반지를 더 챙길 수 있었다.
그간 레벨업을 포함해서 다양한 경로로 오른 스탯을 볼까 싶었지만, 일단 참았다.
이왕이면 50층까지 공략을 마치고, 라디우스를 포함한 신의 가호를 모두 받았을 때.
바로 그때!
상태를 점검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직 큰 목표가 있는 만큼, 미리 축배를 들고 싶지 않았다.
[레벨 500 이상. 8클래스 이상. 나스 대미궁 50층 이상 공략. 암흑 교단 1개 궤멸]주신 라디우스가 요구했던 조건 네 가지 중에서 50층 공략을 뺀 나머지는 모두 달성했다.
각 층을 공략할 때마다, 레벨 1이 확정적으로 오른다는 것이 가장 큰 메리트였다.
특히 처음 공략을 시작한 자레드의 동료들은 47층까지 올라오면서 공략 보상으로만 47의 레벨업을 경험했다.
그 외에도 몬스터들을 남김없이 싹쓸이하며 올라왔으니, 증가 폭은 두 배에 달했다.
“……꿈만 같네.”
아슈르가 이번 분배 순번으로 지정되어 스탯에 맞게 건네받게 된 ‘신속의 반지’를 어루만졌다.
자레드가 심안으로 스탯의 구성을 살펴보자, 근력과 민첩 위주로 구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클로이는 앞서 대미궁 46층에서 유사한 아티팩트를 분배받았기에, 아슈르에게 순번이 온 것이다.
착용해 보니 과연 전신의 근력이 2할 이상 강화되는 느낌과 함께 움직임도 가벼워졌다.
자레드가 아티팩트를 건네면서 말했던 체감의 수준과 정확히 똑같았다. 마치 정해진 숫자를 보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어때, 전투는 할 만한가?”
그때, 옆에 있던 라키스가 자연스럽게 말을 건넸다.
자레드는 ‘트리스티스 아일랜드 지도’를 보면서 다음 층으로 진입하기 위한 타이밍을 잡고 있었고.
그래서 자레드를 제외한 모두는 잠시나마 꿀맛 같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할 만한 정도라는 표현이 어울리나요? 사실상 무능한 활잡이로 얹혀 가는 느낌이라 면목 없을 따름입니다.”
“자책은 웬만해서는 하지 말게. 폐하께서는 자기를 쓸모없다 여기는 것을 원치 않으시네.”
“제가 실언을 했군요.”
“어떤가! 폐하가 곁에 있다고 생각하면, 근심과 걱정이 모두 사라지지 않던가?”
“네! 정확히 보셨습니다! 미궁을 올라오면서 한 번도 ‘생존’을 걱정한 적이 없어요!”
라키스의 말에 아슈르가 맞장구를 쳤다.
라키스는 수백, 아니 수천 번도 넘게 느낀 감정이라 특별할 것이 없었지만…… 아슈르는 아니었다.
“믿으면 되네, 폐하를.”
“그러게요. 왜 이 자리에 함께 계시는 다른 모든 분이 조금도 불안해하시지 않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아슈르의 말 그대로였다.
여기 있는 동료들 모두는 성격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자신의 안전을 걱정하지는 않았다.
대신, 본인에게 주어진 역할은 완벽하게 수행해 냈다.
요령? 꼼수?
절대 없었다.
그것은 아슈르가 오래전부터 헌터들과 함께 미궁을 공략하며 늘 원했지만, 안타깝게 이기심의 늪에 가려 볼 수 없었던!
무한한 책임감과 신뢰였다.
“자, 지금부터 5분! 5분 동안은 안정적으로 48층에 입장할 수 있으니 모두 서두르자고!”
이윽고 때가 됐음을 알리는 자레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무 짧은 휴식에 대한 작은 불평 하나 없이, 모두 해맑은 미소와 함께 다음 층으로 향했다.
* * *
나스 대미궁 49층.
“……?”
보스 몬스터 ‘세크리’는 이해할 수 없는 적들의 반응에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자신은 태생부터가 피학적인 것을 즐기는 존재였다.
그래서 어느 정도 체력이 줄어들게 되면, 그때마다 육체가 강화되도록 되어 있었다.
누가 자신을 이렇게 만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세크리는 자신의 체력이 떨어져도 당황하지 않았다.
체력이 줄어든 만큼 몸은 더 강해졌고, 그런 구조는 세크리를 49층의 최강자로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이곳을 찾아온 불청객들은 이상하게도 인내심이 많았다.
세크리가 육체 강화를 하기 위해선 몸을 웅크린 채로 정신을 집중할 시간이 10초 정도 필요했다.
이 시간은 단순한 지능을 가진 세크리가 생각해도, 적들이 공격을 퍼붓기 너무 좋은 기회였다.
그렇잖은가?
움직이지 않는 표적만큼 맞추기 쉬운 것도 없고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이 멈추어 있을 때, 전혀 공격을 하지 않았다.
진득하게 기다렸다.
마치 변화를 기다려 주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그 순간.
세크리는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이 전에 체력을 잃을 때마다 육체가 연신 강화되었던 것은 10초라는 시간 동안 적들이 자신을 공격해서였다는 것을.
즉, 강화되는 시간 동안 누적된 대미지의 몇 곱절 이상이 육체 강화의 원동력으로 쓰였던 것이다.
하지만 침입자들은 한 줌의 공격도 하지 않았고, 그 결과.
“…….”
몸에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강화될 것이라고 믿었던 몸은 놀라우리만치 매끈했다.
“다시 공격. 다음 패턴까지 쭉 빼자. 그럼 또 똑같이 저렇게 웅크리고 있게 될 거야.”
자레드가 단언했다.
그 말에 모두가 의심 없이, 무심히 공격을 쭉쭉 퍼부었다.
소모되는 힘과 체력, 마나를 아끼지 않는 맹공이었다.
“크와아악!”
독기가 오른 세크리가 일행들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사족보행을 하는 원숭이와 비슷하게 생긴 세크리의 움직임은 제법 빨랐고, 도약 폭도 상당했다.
“여긴 못 지나가!”
화아아악!
“키엑!”
하지만 작정하고 앞을 틀어막는 레나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도발로 관심을 묶어 버린 레나는 세크리를 방패와 장검으로 밀어 내며, 동료들의 공격이 편하도록 개활지로 유도했다.
참을 수 없는 유혹처럼, 빠져나올 수 없는 레나의 도발은 그야말로 파리지옥이었다.
세크리가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는 사이.
슈아아! 쿠아아!
쇄액! 솨악! 푸우욱!
온갖 마법과 검격, 데스 힐과 궁마법, 주술이 빗발쳤고.
“크와아아아악!”
약이 바짝 오른 세크리는 이렇다 할 공격도 해 보기 전에 또다시 패턴 플레이에 들어갔다.
이것은 마치 무조건적인 반사와도 같아서, 조건을 충족하니 자동으로 이뤄지는 ‘엿 같은’ 변화였다.
딜컷. 다시 딜.
딜컷. 다시 딜.
세크리는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는 말들이 자레드의 입에서 계속 터져 나왔다.
문제는 그때마다 자신의 체력은 쭉쭉 깎이고, 지금보다 강해질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나마 레나에게 치명상을 입으면서까지 자레드와 일행을 노리려고 해도.
자레드가 ‘멀티 텔레포트’ 마법을 이용해 손쉽게 모든 동료를 멀리 이동시켜 버렸다.
세크리는 약만 잔뜩 올랐을 뿐, 어떻게 손쓸 방법이 없었다.
그나마 마지막 발악이랍시고 달려들었다가, 레나의 도발에 이어지는 라키스의 검기에 도리어 중상만 입었을 뿐이었다.
“자, 세크리의 패턴 마지막! 모두 죽을 때까지 묵직하게 있는 대로 다 퍼부읍시다. 이제 강화 패턴은 안 나와요.”
그리고.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는 자레드의 멘트와 함께.
쿠과과과과!
그동안 최후의 일격을 아껴 왔던 모두의 총공격이 이어졌다.
그리고 얼마 후.
“키에에에에……!”
세크리는 자신이 왜 이리 허망하게 죽어야 하는지, 아주 작은 실마리조차 얻지 못한 채.
“꾸엑.”
그만 절명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