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245
제 245화
80장. 꼼수와 버그의 힘 – 6화
“50층…….”
나는 앞선 층들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규모가 큰 50층을 보고는 감탄했다.
무엇보다 우뚝 솟아 있는 산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이 크리비아 제국에서 가장 높은 산인 크라비우스 산을 쏙 빼닮았다.
‘크라비우스 산’은 해발 5,252m의 산으로 내가 고도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산이기도 하다.
‘파라디소에서 50층은 밸런스가 정말 안 맞아도 한참은 안 맞는다는 말이 많았지.’
옛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당연한 얘기지만 꼼수는 없다.
개발진이 공들여 만든 것으로 알려진 층이라서 그런지 아주 사소한 버그도 없었다.
애초부터 완벽하게 제작되어 출시된 탓에 이후에도 패치 노트에 그 흔한 수정 문구 한 줄 실리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늘 의 광고나 홍보 영상을 볼 때면, 나스 대미궁 50층의 영상이 꼭 있었다.
그래도 될 만큼 잘 만들었다는 것이 플레이어들의 일반적인 평가였고, 내 생각도 같았다.
‘문제는 세이브 포인트가 있는 곳이다 보니 진짜 어렵게 만들었다는 거지. 게다가 성마 대전의 하위 호환 형태이기도 하고…….’
나는 에서 50층이 갖는 의미를 곱씹었다.
나스 대미궁 50층을 패치로 추가했을 당시, 개발진은 간접적으로 이와 같은 정보를 공개했었다.
[50층은 저희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전장으로, 본 게임의 메인 테마인 ‘성마 대전’의 축소 형태를 경험할 수 있게 제작되었습니다.]실제로 50층의 보스 몬스터는 ‘아마라(Amara)’라고 불리는 거인형 몬스터였다.
실루엣이나 뒷모습 등으로 공개된 마왕의 모습과 아주 흡사하게 생긴 녀석이었다.
정확한 수치는 직접 제시된 것이 없지만, 플레이어들은 아마라의 종합 전투력을 마왕의 25% 정도의 수준이라고 짐작했다.
물론 정확한 분석은 아니어서 맹신할 수는 없지만, 그나마 다수의 의견을 종합한 내용이었으므로 어느 정도 신뢰는 갔다.
50층에는 세이브 포인트가 있다.
아마라를 죽이면 51층으로 향하는 차원문이 열리는데, 그에 앞서 ‘미궁석’이라는 돌을 얻는다.
이것이 바로 대상자가 다시 미궁을 왔을 때, 입구에서 바로 51층으로 워프할 수 있도록 돕는 돌이다.
물론 아무한테나 나눠 주는 것은 아니고, 아마라를 죽이면서 ‘아마라의 낙인’이 찍힌 사람에게만 미궁석이 주어진다.
낙인이라는 명칭 때문에 왠지 께름칙하게 들리기는 하지만, 디버프 효과 같은 것은 없다.
그저 미궁석을 받을 자격이 있음을 인증하는 일종의 ‘참 잘했어요’ 도장 같은 것이었다.
‘여기만 공략하면…….’
나는 상당한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지금껏 신의 가호가 내게 쓸모가 없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설령 이름이 없는 신이라 하더라도 가호를 내리면 마력 500은 너끈하게 올려 줬다.
워낙 마력 수치가 높다 보니 500이 하찮게 느껴질 수 있지만.
마법으로 따지면 6클래스와 7클래스 마법을 한 번씩 쓸 수 있는 마력이다. 절대 적지 않다.
무명의 신이 이럴진대, 라디우스를 위시한 신들이 내게 힘을 실어 준다면 그 규모는 상당할 터이다.
‘선 성향의 신이 내게 줄서기를 한다면, 악 성향의 신은 아무래도 마왕이겠지.’
현재 나의 가장 큰 적수라고 볼 수 있는 이카젤라에게 악신이 제법 붙어 있긴 하겠지만.
나는 의심할 여지도 없이, 마왕에게 가장 많은 악신이 있으리라고 여겼다.
솔직히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인외의 존재와 사생결단을 벌인다는 것이 과연 어떤 느낌인지.
인간보다는 차라리 신에 가까운 존재, 마왕.
녀석을 직접 만날 날이 이제 그리 머지않았다.
아직 내 명령이 떨어지지 않은 상태라, 동료들은 자리를 지킨 채로 재정비 중이었다.
한데 바로 그때.
쿠웅! 쿠웅!
방금까지 조용하고 고요했던 층의 지축이 흔들리기 시작하며, 육중한 물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보미네이션이다.
나타난 어보미네이션의 수는 일단 보이는 것만 열 마리.
나스 대미궁에 들어온 헌터들이 이들과 마주한다면 아마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쳤을 규모다.
체력이 어마어마한 데다가, 걸어 다니는 ‘독액 살포기’나 다름없어서 매우 위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다르다.
이제는 반복 학습된 공략을 통해, 어보미네이션을 효과적으로 상대할 방법을 알고 있는 것이다.
“새롭지 않은 녀석들은 이제 공략법을 따로 알려 주지 않을 거야. 그래도 잘 공략하리라 믿는다.”
“예, 폐하!”
어린 미아부터 장년의 나오미까지 있는 11인 파티.
하지만 남녀노소의 차이를 전혀 느낄 수 없을 만큼, 모두와 호흡을 완벽하게 맞춰 왔다.
이제 50층은 시험의 장이다.
‘작은 성마 대전.’
이 안에서 과연 얼마나 우리가 단합된 힘으로 돌파할 수 있는지를 가늠할 지표가 될 것이다.
물론 내게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전원 공격!”
50층 공략이 시작됐다.
* * *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자레드 일행의 공략은 순풍을 타며, 문제없이 진행됐다.
어보미네이션 군단을 장액을 이용한 디버프 상태의 유발 후, 전처럼 내장부터 파괴하는 방식을 통해서 모조리 몰살시켰다.
이 과정에서는 자레드뿐만 아니라 라키스, 아슈르, 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앞다투어 자원했다.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공간으로 들어가는 공격이었지만, 이를 마다하는 사람은 놀랍게도 하나도 없었다.
이윽고 일행을 두 번째로 반긴 것은 ‘강화형 고블린’이었다.
이름만 고블린이지 사실상 사람과 비슷할 정도로 몸을 키운 살상형 병기나 다름없었다.
애초에 이성 자체를 거세한 상태로 보이지 않는 ‘코어’에서 계속 나오는 녀석들이었다.
모두가 다양한 경로로 대응을 했지만, 가장 신난 것은 ‘20세 미만’의 조합인 레나와 미아였다.
“레나 언니! 중심 쪽으로 바람길을 잡아 줄게요!”
“좋아! 바로 여기야!”
“왼쪽, 바람 망치 들어가요!”
“오케이!”
쿠웅! 콰앙!
미아는 윈드 웨이 마법과 상승, 하강 기류를 이용해 레나의 위치를 자유자재로 이동시켰다.
그리고 레나가 도발 기술을 이용해 고블린을 한 점으로 모아 놓으면.
미아가 다시 반경 5m는 족히 넘는 거대한 바람 망치를 이용해, 위에서 그대로 고블린을 내리쳤다.
와득!
그러면 제아무리 인간을 빼닮은 형태로 강화된 고블린이라고 한들, 골격이 버텨 낼 재간이 없었다.
망치에 내리 찍힌 고블린은 기이한 형태로 비틀린 채, 그야말로 ‘으깨어져’ 비명횡사를 할 뿐이었다.
‘확실히 레나와 미아가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춘 티가 난다.’
자레드는 레나-미아 조합의 시너지가 가장 좋다고 봤고, 동료들의 생각도 같았다.
도발, 즉 어그로 능력은 뛰어나지만, 상대적으로 레나는 기동력이 떨어지는 편에 속한다.
물론 기동력을 커버할 수 있는 방어력은 물론이거니와, 검기를 다룰 수 있는 공격력도 갖췄지만.
소위 에서 ‘거북이’, ‘뚜벅이’라고 불리는 탱커 계열과 유사한 스탯 구조였다.
단숨에 원거리 도약이나 원거리 지원을 펼칠 수 있는 기술이 없기에 종종 눈뜨고 상황만 보는 광경이 연출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빈틈을 완벽하게 메워 주는 것이 미아였다.
미아는 마치 ‘레나 사용 설명서’를 가지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유려하게 그녀를 컨트롤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레나를 탱킹하기에 가장 좋은 지점에 안착시켰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레나는 미아가 자신을 착지시킨 위치에 대해 불만을 표한 적이 없었다.
사소한 위치 선정의 요구까지도 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성격이 좋아서? 아니었다.
레나만큼 깐깐한 사람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아무 말도 않는 것은 그만큼 미아의 위치 선정 능력이 뛰어나서였다.
“폐하! 북서쪽 언덕은 걱정 마세요! 저희가 맡을게요!”
목청껏 외치는 레나의 목소리에 든든해진 자레드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헤이즈, 오로지 공격에만 전념할게. 나머지는…… 부탁해.”
“새삼스럽게 부탁은 무슨! 믿고 맡겨! 이래 봬도 나, 디바인 세븐이라고.”
자레드의 시선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동쪽 전선으로 달리는 클로이에게로 옮겨졌다.
디바인 세븐이 되면서, 헤이즈는 이제 원거리에서도 치유술을 전개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보통 중급 이하의 치유술은 직접 손을 갖다 대고 몸에 치유의 기운을 불어넣는 것이 정석이었다.
하지만 디바인 세븐부터 활용이 가능한 ‘상급 치유술’은 거리에 구애받지 않는 치유가 가능했다.
물론 아주 거리가 멀어지면 전달률이 떨어져, 치유 효율의 하락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이를 충분히 감수할 수 있을 만한 메리트가 있었다. 멀리서 지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아무래도 방어에 약할 수밖에 없는 헤이즈가 안정적 포지셔닝을 할 수 있는 근거가 됐다.
“…….”
파아앗!
무표정한 얼굴로 빠르게 공간을 가르는 클로이의 이동 속도는 상당했다.
자레드의 마법과 비교해 볼 때, 트랜센던스 헤이스트를 시전한 수준보다 훨씬 빨랐다.
즉, 순수 이동 속도로만 놓고 보면 자레드가 클로이에게 밀린다는 얘기다.
물론 블링크나 텔레포트와 같은 공간 이동 방식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푹! 파샥! 푸욱! 파샤샤!
클로이가 강화형 고블린 하나의 목숨을 취하는 과정에는 단 한 번의 ‘일격(一擊)’만 필요했다.
단도로 정확히 경동맥만 긋고 지나가는 클로이의 동작에는 군더더기가 전혀 없었다.
심지어 멈추거나 속도를 늦추는 행동 자체도 없었다.
마치 바람처럼 곁을 스쳐 지나가며, 목숨의 불꽃을 하나씩 꺼뜨렸던 것이다.
고블린들은 자신이 죽었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픽 쓰러지거나, 피 분수를 쏟아 내며 바로 기절할 뿐이었다.
그사이.
“쿠에에에!”
제법 눈썰미 좋은 고블린 하나가 클로이에게 단검을 던졌다.
‘봤어.’
분명히 클로이는 단검의 경로를 확인했다.
하지만 개의치 않는 듯, 무시하고는 계속 고블린들을 죽였다.
파슷!
그러는 동안, 날아든 단검 하나가 클로이의 어깨에 상처를 내고 지나갔다. 제법 큰 상처였다.
하지만.
“이 정도쯤이야!”
헤이즈는 일찌감치 클로이에게 치유술의 기운을 불어넣는 중이었다.
그래서일까?
스르륵.
분명 방금까지 피가 튀고 살점이 깊게 파인 상처가 순식간에 아물어 버렸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말끔해진 것이다.
고통에 인상을 찌푸릴 법도 했지만, 클로이는 오히려 치유의 기운을 느끼며 웃고 있었다.
“극공, 극딜.”
헤이즈야 일행 전원과 호흡을 맞추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가까운 것이 역시 클로이였다.
콘셉트는 확실했다.
클로이는 헤이즈를 지원자로 둔 상태에서는 철저하게 방어를 포기했다. 즉, 몸으로 때웠다.
그리고 공격에 모든 역량을 집중했다. 방어에 대한 생각 자체를 일절 하지 않는 것이다.
그 결과.
꾸엑! 크엑! 어엑! 께엑!
클로이는 단 30초도 되지 않는 시간에 벌써 40마리에 가까운 강화형 몬스터를 처치하고 있었다.
11인의 공략 팀에는 자레드라는 ‘괴물’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실…… 모두가 괴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