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265
제 265화
85장. 혈투 – 1화
이카젤라와의 전투는 아주 오래전부터 머릿속에서 수많은 방식으로 시뮬레이션을 해 왔다.
9클래스의 흑마법사.
그 정도면 마왕은 아니더라도, 서열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마족의 실력쯤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수많은 시뮬레이션 속에서 다양한 레퍼토리를 떠올렸고, 모든 과정을 머릿속에 새겨 넣었다.
그런 내가 이카젤라를 상대로 가장 먼저 선택한 옵션은 바로 이것이었다.
[옵션 6 : 뒤틀린 일격 – 대상을 노린 ‘첫 번째’ 공격이 최대 99.9%의 대미지를 발생시킵니다.]6성의 신발 아티팩트인 ‘뒤틀린 장화’에 연계되어 있는 옵션이다.
사실 지금까지 많이 간과했던 옵션이기도 했다.
별 의미가 없는 가벼운 공격으로 첫 번째 공격 찬스를 소진했던 경우가 왕왕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카젤라를 앞에 두고는 공격 하나하나가 매우 중요한 만큼, 처음부터 확실한 노림수로 그를 상대해야 했다.
인파 속에서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내 모습을 이카젤라가 확인하는 순간!
‘역시.’
전투에 능숙한 마법사답게 이카젤라는 블링크를 시전하려 했다.
즉각적인 발현이 가능한 마법인 만큼, 사실 가장 당연한 선택지이기도 했다.
하지만.
프스슷.
이카젤라의 블링크는 실패로 돌아갔다.
내가 그를 향해 도약하기 전, 의도적으로 다량의 마력을 사방에 흩뿌려 두었기 때문이다.
꽤 많은 양의 고농도 마력을 방출시킨 상태였기에 순간적인 공간 왜곡이 필요한 블링크가 실패로 돌아간 것이다.
“아니……?”
이카젤라도 자신의 블링크 마법이 무산되자 순간 당황했는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사이.
나는 헤이스트를 활용한 폭발적인 도약으로 이카젤라의 바로 코앞까지 도달할 수 있었고.
뻐어어억!
그대로 녀석의 복부에 크러싱 피스트 마법으로 대폭 강화된 주먹을 힘껏 꽂아 넣을 수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얼굴 한가운데를 타격하고 싶었지만, 각도가 좋지 않았다.
“커헉!”
이카젤라는 신음과 함께 걸쭉한 침을 토해 내며, 포물선을 그리면서 뒤로 날아갔다.
9클래스 마법사라고 해서 불사의 무적이라거나 몸이 단단한 강철로 이루어져 있지는 않다.
결국, 뼈와 살로 이루어진 인간이라는 점에서 나나 이카젤라나 똑같았다.
즉, 실수는 고통으로 대가를 치러야 하고, 패배는 죽음으로 직결될 뿐이다. 아주 평등하게.
“침입자다! 적이다!”
“저 마법사를 잡아라!”
제단 안이 밖에 비해 어둡기도 하고 경황도 없어서인지 교단의 단원들은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뿐만 아니라, 끌려온 백성들 사이에 내가 데려온 동료들이 섞여 있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하는 듯했다.
모든 것이 설계였다.
마탑으로 올라오던 도중, 강제로 호송되던 마을 주민들의 행렬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호송이라고 하기에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지만, 그것이 위장된 것임을 쉽게 간파했다.
그래서 호송대의 경계가 느슨해진 틈을 타서, 적당히 몇 사람을 구출해 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들의 옷을 빌려 입고, 검과 방패 그리고 타넥스 같은 장비들은 아공간에 숨겨 뒀다.
보통 황궁으로 들어오기 위한 과정은 숱한 검문과 검색의 연속이지만.
역설적으로 이미 ‘무장 해제’ 상태가 확인된 포로나 다름없는 이들에 대해서는 프리패스였다.
게다가 이카젤라가 은밀히 진행 중인 의식이었던 만큼, 황궁 남서쪽에 위치한 작은 쪽문을 통해 들어온 것도 특이점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우리는 마탑 내부로 잠입하는 작전에 성공했다.
“나오미 경! 지휘를 부탁하오!”
“예, 폐하!”
나는 사전에 약속한 대로 나오미에게 전원의 지휘를 맡겼다.
목적은 하나뿐이다.
제단 안팎의 혼란을 유도해 암흑 제단을 완전히 초토화시키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 아공간에 남김없이 챙겨 온 타넥스도 전부 등장시켰다.
총 20기.
동료 일곱과 함께 활약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충분한 숫자였다.
아니나 다를까.
-마기 감지 아티팩트와 연계합니다. 마기가 느껴지는 모든 대상을 적으로 간주, 말살합니다.
투타타타! 타타타!
인공지능 올라의 무미건조한 목소리와 함께 마력탄 난사가 시작됐다.
“커헉! 크허어억!”
“실드……! 어억.”
마력 보유량과 더불어 마력탄의 성능이 크게 향상된 타넥스였다.
초기에 제작된 7성형 타넥스는 마력탄을 7개의 캐논으로 방출하는 형태였지만.
지금은 9성형 타넥스로 10개의 캐논을 사용하며, 기존 타넥스에 비해 마력탄의 위력도 3배나 높아졌다.
이를 마법에 비유하자면, 예전 타넥스는 1클래스 매직 미사일 수준이라면 지금의 타넥스는 3클래스의 파이어볼 정도의 위력이었다.
쿠웅! 투웅!
여기저기서 타넥스의 마력탄에 저격당한 암흑 단원들이 마치 추풍낙엽처럼 픽픽 쓰러져 갔다.
“모두 도망치세요! 이런 곳에서 헛되이 목숨을 잃어서는 안 되는 거잖아요!”
그사이, 레나는 끌려온 백성들의 포승줄을 풀어 주며, 그들을 대피시키기 시작했다.
고아였고, 믿었던 고아원 원장에게 배신을 당했던 과거의 기억이 있기 때문인지.
비슷한 방식으로 믿었던 카코 교단과 마탑주 이카젤라에게 속은 백성을 열심히 돕는 모습이었다.
나는 동료들에게 후방을 맡기기로 했다.
아공간은 열어 뒀고, 그 안에 보관하고 있던 자레드 지뢰들도 모두 밖으로 소환시켜 놨다.
이자벨이 그것을 적재적소에 숨겨, 제단 곳곳에서 이쪽으로 향할 단원들의 목숨을 노릴 것이다.
바로 그때.
우우우웅.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던 이카젤라가 흑색 로브를 흩날리며, 상공으로 날아올랐다.
배에 시원하게 박은 내 주먹의 위력이 꽤 컸던지, 녀석의 입가에는 흐르다 만 피가 묻어 있었다.
“이게 누구신가……. 크리비아 제국의 누추한 황제께서 이런 귀한 곳에 강림을 하셨어?”
이카젤라는 제단 입구에서 단원들이 타넥스와 동료들에 의해 죽어가고 있었지만, 시선 한 번 주지 않았다.
그저 그의 눈에는 나만 보이는 듯했다.
단원들의 목숨이야 자기 알 바 아니고, 가장 위협적인 나만 제거하면 된다고 판단한 듯했다.
매정하고 냉정한, 아니…… 인간쓰레기와 같은 녀석의 성격에 딱 알맞은 대응이었다.
[유스티아의 가호] [진실을 꿰뚫는 눈을 통해, 악신의 가호를 받고 있는 사람의 외형을 검은 테두리로 판별합니다.] [악신의 가호를 받고 있는 상대에게 평소보다 200% 추가된 대미지를 입힐 수 있습니다.]예전에 내게 내린 가호 중의 하나인 유스티아의 가호를 따라 부여되었던 ‘눈.’
그 덕에 이카젤라의 외형은 검은빛 테두리를 두른 것처럼 어둡게 빛나고 있었다.
나탈리도 악신의 가호를 받고 있기는 했지만, 피격이 없던 전투였기에 딱히 문제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이카젤라는 달랐다.
놈은 9클래스의 흑마법사이기에 무혈 승리와 같은 요행은 바라기 힘들었다.
그렇다면 유스티아의 가호가 가져다줄 영향에 대해서도 주의할 필요가 있었다.
200% 추가된 대미지를 이카젤라에게 입힐 수 있다는 점은 강점이 되겠으나, 반대로 내가 당하면 그만큼 큰 타격을 입게 되니까.
“이카젤라, 이 쓰레기 같은 놈.”
“극찬에 감사를 드려야겠군.”
“네놈에게 고통 받을 수많은 백성을 더 이상은 외면할 수가 없어 찾아왔다.”
“자신 있어? 초월 마법인지 뭔지 하는 마법을 쓸 줄 아니까 온 세상을 다 가진 느낌인가 보지?”
이카젤라는 도발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내게 불의의 일격을 당했음에도 그다지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오늘 반드시 널 죽이고, 이 지독한 악연을 끝내겠다.”
“황제, 잘 들어. 내가 죽는다고 해서 이 모든 것이 끝날 것 같아? 오히려 시작일 뿐이지.”
“그렇겠지. 그렇겠지만…… 적어도 인간들의 세계에서 네놈이 풍기는 악취는 맡지 않아도 되겠지.”
“크하하하! 악취라! 그것 참, 신박한 표현이네!”
이카젤라가 크게 웃었다.
녀석의 말이 맞다.
이카젤라가 죽어도 심판의 날은 예정대로 진행된다. 이것은 바꿀 수 없는 미래다.
라는 MMORPG 게임의 세계관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이 세계의 정해진 ‘결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마왕 레크나트는 레크나트고, 이카젤라는 이카젤라다.
그리고 내가 이카젤라를 꼭 죽여야 하는 이유는 하나 더 있다. 바로 9클래스 진입의 필요조건이기 때문이다.
강제된 운명이기도 하다.
이카젤라를 죽이지 않으면, 나는 영원히 9클래스가 될 수 없으니까. 그러면 성마 대전 대비라는 내 계획은 당연히 물거품이 된다.
“이카젤라, 오늘 끝장을 내자. 어설프게 도망칠 생각은 하지 말고, 목숨을 걸어라.”
“그건 내가 할 소리인 듯한데. 일단 제단까지 들어온 용기는 높이 사지. 반드시 네놈을 죽여서 그 시체를 마왕 레크나트 님의 현신을 위한 제물로 쓸 것이다.”
“뚫린 입으로 뭔 소리인들 못 할까.”
나는 흘러내린 옷소매를 끌어올리며, 다시금 체내의 마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상대는 어쨌든 9클래스 마법사다. 방심하거나 빈틈을 보이는 순간, 저승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생각보다 금방이다.
“그럼 시작해 볼까?”
파파팟! 팟! 팟!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카젤라의 형체가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많은 복제 형상이 생겨났다.
2클래스 마법인 미러 이미지와 유사하기는 한데, 생겨난 형상의 개수가 달랐다.
아마도 흑마법의 변칙이 적용되었거나 마기를 이용해서 강제로 증폭시킨 환상인 듯했다.
“제길.”
나는 짐짓 크게 뜬 눈으로 당황한 체를 했다.
[환상 차단 : 미러 이미지와 같은 환상 마법을 이용한 착시가 통하지 않습니다.구현된 환상은 본체와 달리, 푸른빛의 형상으로 보이게 됩니다.]
물론 기만술이었다.
심안의 효과 중의 하나인 ‘환상 차단’을 이용해서 나는 정확하게 이카젤라의 본체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있었다.
과아아아!
이카젤라의 환영들이 일제히 나를 향해 쇄도하기 시작했다.
상공에 자리를 잡고 있던 수많은 복제 형상들이 일제히 내게 날아드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저마다 흑색 로브를 흩날리고 있는 탓에 마치 칠흑의 물결을 보고 있는 듯했다.
‘보인다.’
이카젤라의 본체가 다수의 허상들과 함께 우측으로 크게 도는 호선을 그리며 이동하고 있었다.
나와 가장 가까운 직선거리에 위치한 허상은 폭소를 터뜨리며, 양손을 현란하게 움직이는 등.
의도적으로 내 시선을 잡아끌기 위한 제스처를 취했다.
우우웅! 우웅!
그뿐만 아니라, 견제의 목적이 다분해 보이기는 하지만 매직 미사일도 시전하는 모습이었다.
이것은 8클래스의 백마법인 시뮬라크럼에 더 가까워 보였다.
단순한 가짜 형상이 아니라, 실제적인 공격을 가할 수도 있는 ‘분신’이었기 때문이다.
빠직! 빠직! 빠지지직!
나는 대응할 마법으로 8클래스의 전격 계열 마법인 퍼펙트 스톰을 선택했다.
거친 전류의 폭풍!
인체를 노리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악랄한 수단이었다.
그리고.
시선은 우측으로 돌고 있는 이카젤라의 정반대 방향인 좌측으로 향했다.
기만에 기만을 얹는 전략.
두뇌 싸움이라면 자신 있는 내가 선택한 그럴듯한 연기의 선택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