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269
제 269화
86장. 전후 수습 – 1화
격전의 현장은 순식간에 시간이 멈춰 버린 것처럼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이카젤라가…….”
“죽었어.”
가장 먼저 그 광경을 목격한 것은 레나와 나오미였다.
물론 자레드가 반드시 승리하리라고 믿기는 했다. 그것은 당연한 믿음이었다.
하지만 이토록 빨리 이카젤라의 목숨을 거둘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던 것이다.
그나마 자레드를 믿고 기대했던 동료들은 놀라긴 했어도 넋이 나간 표정까지 짓지는 않았다.
문제는 증원군으로 막 도착한 교단의 정예 단원들과 데스먼드 제국 소속의 마법사였다.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기습.
이 때문에 그들의 대응이 다소 늦어지기는 했지만, 최대한 신속하게 움직인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사이에 이카젤라가 죽어 버렸다.
데스먼드 제국에서 황제보다 더 기둥 같은 존재이자 국가를 수호하는 수호신이라고 불리던 마법사.
그가 죽은 것이다.
‘드디어 9클래스가 됐어.’
자레드는 지식이 오롯이 개방되며, 동시에 체내에서 확실하게 느껴지는 아홉 개의 서클에 감격스런 표정을 지었다.
이 세계에서 눈을 뜬 이후, 자레드의 목표는 딱 두 가지였다.
그것은 바로 다가올 성마 대전을 대비하는 것 – 물론 처음에는 다른 ‘주인공’의 몫이라고 생각했지만 – 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9클래스에 이르러, 마법의 극의를 완벽하게 깨우치는 것이었다.
‘내가 해냈어!’
기쁘고 감격스러웠다.
비록 이카젤라의 죽음이 험난한 여정의 끝이 아닌, 시작의 신호탄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자레드에게 시사하는 바는 컸다.
인간이 오를 수 있는 검과 마법의 정점. 소드 마스터와 9클래스의 마법사를 모두 쓰러뜨렸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성마 대전을 준비할 수 있는 ‘자격증’을 얻은 듯한 느낌이었다.
상태창에 칭호 하나가 새로이 등장하여 점멸을 반복하고 있었지만, 자레드는 우선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렸다.
그것은 막 입구를 통해서 제단 안으로 진입하고 있는 데스먼드 제국의 지원군이었다.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이카젤라만이 죽었을 뿐.
그의 추종자는 여전히 제단 안팎에 존재하고 있었다.
‘페트리 팩션.’
자레드가 바로 9클래스의 마법인 페트리 팩션, 약칭 석화 마법을 시전했다.
“…….”
그 순간, 입구로 어지러이 섞여 들어오던 마법사와 단원들이 한데 뭉쳐서는 돌덩어리가 되어 버렸다.
석화 마법의 특징은 광역 타격이 가능한 마법이면서, 동시에 10초간 돌처럼 굳는다는 점이었다.
여기서 핵심은 어떤 돌로 변하느냐는 점이다.
언뜻 생각해 보면 돌이 되니까 물리나 마법 공격에 면역이 되니 버프 마법인가 싶기도 할 테니까.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시전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공격할 때는 완벽한 돌이 되어서 우수한 방어를 수행하는 것은 맞았다.
하지만 석화의 시전자가 그 위로 아주 약한, 미미한 바람이라도 일으킨다면?
파츠츠츠!
한 줌의 재.
그야말로 돌가루가 되어 허망하게 흩어지는 것이다.
“아아아아……!”
그 광경을 지켜보던 단원들이 절망으로 가득 찬 탄성을 터뜨렸다.
절망, 저주, 암울, 낙담.
이런 단어밖에 머릿속에서 떠오르지 않는 광경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선두에 앞서 들어온 사람 중에는 7클래스 마법사도 있었기 때문이다.
마법사들의 세계에서는 사실상 대마법사의 반열이라고도 불리는 7, 8클래스의 마법사들.
하지만 자레드의 앞에서는 평등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한낱 ‘제물’일 뿐이었다.
‘캐스팅 시간이 다소 걸리는 석화 마법을 시전했을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겠지. 아니, 내가 지금 9클래스라는 사실조차 모를지도.’
자레드는 처음부터 노림수가 있었다.
이카젤라와의 전투에서 자레드가 숨 쉴 틈도 없이 그를 집요하게 공격했던 이유는 하나였다.
상대적으로 클래스에서 열세인 자신에게 이카젤라가 9클래스 마법을 시전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선택적 회피라는 방어법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성공하면 방어할 수 있지만, 각도나 타이밍이 빗나가면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래서 9클래스 마법의 캐스팅을 막기 위해 그야말로 맹공을 퍼부었고, 노림수는 정확히 먹혀들었다.
보통 9클래스 마법사는 전장에서 대단위 광역, 혹은 즉사 효과가 있는 마법을 사용할 때.
앞에 가드를 두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에서도 통용되었던 방법이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캐스팅 시간을 벌기 위해 일종의 방패막이를 두는 것이다.
보통 6에서 7클래스의 마법사를 앞에 세우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그렇게 앞에서 마법사가 시간을 벌어 주면, 9클래스 마법을 캐스팅하여 대지에 죽음을 선사한다.
하지만 의 플레이어들은 불만이 많았다.
9클래스 마법이 위력적인 것은 사실이나, 플레이어가 바보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9클래스 마법사 플레이어가 마법 캐스팅에 들어가면, 이유 불문하고 집중 공격이 이어졌다.
빛을 발한 것은 신속한 저격이 가능한 마궁수였다.
그래서 웃기면서도 슬픈 일이지만, 한참 수준이 떨어지는 마궁수의 저격에 9클래스 플레이어가 비명횡사하는 일도 있었다.
‘ 개발진은 이런 것이 9클래스 마법사의 아이덴티티라며 그대로 뒀지.’
개발진은 빗발치는 플레이어들의 패치 요청을 묵살하고, 그대로 뒀다.
그 결과.
집요하게 빈틈을 파고들기 위해 연구하던 마법사 플레이어들이 꼼수를 발견해 냈다.
‘모션 캔슬.’
약칭 모캔이라고 불리는 동작이었다.
마법을 캐스팅한 상태에서 연달아 세 번을 추가 캐스팅하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물론 동시에 두 개의 마법을 쓰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마치 그것이 가능한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그렇게 마법을 캐스팅한 다음, 세 차례의 연속 ‘가짜’ 캐스팅을 하게 되면?
즉시 9클래스 마법을 시전할 수 있었다.
양손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이 유일하게 모양 빠지는 구석이긴 했지만, 효과는 만점이었다.
모션 캔슬이 있으면, 최소 1.5초 이상 걸리는 마법 시전을 0.3초 수준까지 단축할 수 있었다.
‘베르하드 정도가 아니면 이제는 나를 막을 수 없어. 아니, 베르하드도 날 막을 수 없다.’
자레드는 확신이 있었다.
자신에게는 일반적인 9클래스 마법 외에도 데큐플 트랜센던스까지 가능한 초월 마법이 있다.
“…….”
자레드의 두 눈이 붉게 반짝이며, 이내 제단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적의 모습을 훑었다.
그리고.
‘데큐플 트랜센던스 페트리 팩션.’
10단계의 초월 형태로 강화한 석화 마법을 시전했다.
석화 마법의 일반적인 형태는 특정 범위를 돌로 만드는 광역 마법이지만.
데큐플 트랜센던스로 강화하면, 마치 ‘핀셋 집기’를 하듯 정밀하게 대상자를 지정할 수 있었다.
파팟. 팟. 팟.
타깃이 된 적들의 모습이 붉게 빛나며, 석화 마법의 먹잇감이 되었음을 알렸다.
‘확실하게 끝낸다.’
자레드는 양손을 하늘 높이 펼치며, 석화의 저주를 대지 위에 흩뿌리기 시작했다.
적들에게는 대재앙, 아군에게는 승전의 깃발이 될 대단위 마법의 시작이었다.
* * *
“내가 아는 석화 마법이 아니다…….”
“이카젤라 님까지 죽은 마당에 과연 저희가 자레드라는 괴물을 상대할 수 있을까요……?”
“게다가 석화 마법은 9클래스 마법이지 않습니까. 이미 자레드는 9클래스가 된 겁니다!”
평소 카코 교단과 관계가 썩 좋지는 않았어도, 데스먼드 제국 마법사단은 나름 유서 깊은 조직이었다.
그래서 자레드가 이끄는 별동대가 제단을 기습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마법사단은 즉각 움직였다.
혹시라도 마탑이 무너지면, 이는 데스먼드 제국의 중추가 무너지는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랴부랴 현장으로 출동했는데, 이미 놀라운 일이 두 번이나 벌어졌다.
이카젤라는 자레드의 손에 갈가리 찢겨 허공에서 참살되었고.
용맹하게 앞서 진입했던 데스먼드 마법사단 부단장 일레스는 석화 마법에 가루가 되어 버렸다.
본인이 죽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부부단장인 메이크는 7클래스 마법사로서 제법 실력 있는 인물이었지만, 동시에 현실적인 인물이기도 했다.
이미 상황은 정리됐다.
방금 전 자레드가 시전한 석화 마법은 기존의 석화 마법보다 훨씬 더 발전한 형태.
단지 하늘에서 한 줄기 빛이 빗발치듯 지면을 내리쳤을 뿐인데.
단숨에 천 명에 가까운 교단의 단원, 병사, 마법사들이 전멸해 버렸다.
차라리 혈투를 벌이다가 쓰러졌다면, 장렬한 전사라고 생각하며 위안이라도 삼을 텐데.
그것도 아니었다.
그저 한 번 빛이 반짝였을 뿐이고, 그것을 뒤집어쓴 자들은 모조리 재가 되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잠시 멈칫하는 사이.
쿠우웅!
또 한 번의 석화 마법이 제단 전역의 적들을 무차별적으로 타격했다.
프스스스…….
대재앙이 한 번 휩쓸 때마다 1천에 가까운 목숨이 마치 파리 목숨처럼 허무하게 사라졌다.
메이크는 저런 괴물을 상대할 자신이 없었다.
장담할 수 있었다.
자레드에게 마법 하나라도 시전하면 그나마 선방하는 것일 거라고.
이카젤라도 저승으로 간 마당에 이카젤라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자신이 자레드를 이길 가능성은 없다고 봤다.
“항복하자.”
“……예?”
“자레드가 선사한 죽음의 흔적들이 사방에서 흩날리고 있다. 우리라고 다를 것 같으냐?”
“…….”
마법사단 소속의 마법사들 중 메이크의 말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모두가 이미 느끼고 있었다.
전세가 기울었다는 것을.
그래 봤자 자레드는 한 명일 뿐이지 않느냐며 사기를 끌어올리기에도 상황은 좋지 못했다.
“검은 태양이 지는구나…….”
메이크가 체념한 듯.
두 눈을 감고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음성 증폭 마법을 이용해, 상공에서 거침없이 공격을 퍼붓고 있는 자레드에게 외쳤다.
“항복하겠소!”
* * *
데스먼드 마법사단이 항복하면서 전장에 변화가 일어났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모두가 일제히 무릎을 꿇고, 무기를 내던지며 항복을 선언했던 것이다.
‘두려움은 전염 효과가 크지.’
내 노림수가 정확히 먹혀들었다.
전투를 길게 끌지 않기 위해서 마력을 아끼지 않고 초월 마법을 두 번이나 퍼부은 덕분이었다.
단 두 번의 9클래스 초월 마법을 시전하기 위해 무려 18만의 마력이 동원됐다.
그럼으로써 단 몇 초 만에 2천이 넘는 목숨이 한 줌의 가루가 되어 사라지는 모습을 연출해 경고 효과는 충분했고.
데스먼드 마법사단을 위시한 제국군의 항복을 손쉽게 받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교단의 단원들은 끝까지 저항했다.
물론 그들의 앞에 펼쳐진 미래는 결코 장밋빛이 아니었다.
주요 마법 전력이 부실한 교단의 단원들 중에 나를 상대할 자가 없었던 탓이다.
그 결과.
“마탑을 위하여!”
“카코 교단을 위하여!”
승산이 없음을 직감했는지, 단원들이 일제히 암흑 제단으로 몸을 날리기 시작했다.
자체 인신 공양.
스스로의 목숨을 바쳐 마왕 레크나트의 현신을 위한 제물이 되는…… 참으로 그들다운 최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