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298
제 298화
93장. 황도의 대혈투 – 5화
과정이 복잡하기에 나는 최대한 세심하게 설계를 했다.
공간 왜곡 버그를 실현시키려면 우선 함정이 될 차원문이 마력을 풍부하게 머금고 있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차원문을 다양하게 이용해 회피하면서, 통로를 통과할 때마다 대량의 마력을 풀었다.
차원문 안쪽에 마력을 방출해 둔 것이라 외부에서는 전혀 알아볼 방법이 없었다.
내가 부지런히 작업을 하는 동안, 무라스카는 나의 이동 경로를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보였다.
무라스카가 단순히 감각과 본능에 의존해서 나를 쫓는 것이 아니라, 치밀하게 빈틈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애초부터 알고 있었다.
무라스카가 내 머리 위에서 놀기를 바라고, 내 전략 전술을 일찌감치 간파하고 있다는 것을.
그것을 한 번 더 비튼 것이다.
역의 역, 이것이 전략이었다.
‘오겠군.’
그리고 무라스카의 눈빛에 확신이 가득 차는 순간, 드디어 승부수를 던질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잡았다, 쥐새끼!”
내가 미리 봐 둔 차원문으로 들어가자, 무라스카가 곧바로 출구 차원문으로 이동하는 것이 보였다.
경로를 예측한 것이다.
일단 차원문에 한 번 들어가면, 출구로 나가는 것은 불가항력이라 피할 수 없다.
무라스카의 노림수는 녀석을 기준으로 한다면, 분명히 성공한 것은 맞았다.
‘하지만 시간을 벌었지.’
파스슷! 파슷!
나는 차원문 안으로 들어가면서 일찌감치 9클래스 공간 왜곡 마법, 디멘션 브레이크를 전개했다.
이 녀석이 버그의 핵심이다.
디멘션 도어와 디멘션 브레이크를 연계하여 공간을 찌그러뜨리고, 그 과정에서 버그를 유발하는 것.
이 작업을 성공시키기 위해, 무라스카에게 내 몸을 제물로 바친 셈이 됐다.
‘헤이즈, 잘 부탁한다.’
과감하게 승부수를 던질 수 있었던 것은 전투 내내 나를 지켜보고 있던 헤이즈의 존재 덕분이었다.
그녀는 상당한 장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원거리에서 계속 내게 치유술과 각성술을 전개했다.
마치 코앞에서 치유술을 전개하는 것처럼 순도와 농도에 전혀 변함이 없었다.
그 말은 곧, 그녀가 살아 움직이는 신성력 그 ‘자체’나 다름없다는 것을 뜻했다.
나는 장담할 수 있었다.
아마도 헤이즈는 앞으로도, 이후로도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대륙 최고의 치유사가 될 것이다.
다음 순간!
쑤우우욱!
어쩔 수 없이 나와야 하는 차원문의 출구로 내 몸이 빠져나왔다.
그리고.
“내가 그것을 모를 줄 알았나?”
푸욱! 푸욱! 푸욱!
예상했던 공격이 이어졌다.
일찌감치 마검을 대기시켜 놓았던 무라스카는 거침없이 마검을 내 몸에 찔러 넣었다.
“크아아악!”
참을 수 없는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무라스카가 내게 접근한 덕분에 오러 블레이드를 무리해서 구사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마검의 개수가 많다 보니, 오러 블레이드가 어지러이 쏘아지면서 자기도 피해를 볼 것을 염려한 듯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전한 것은 아니었다.
푸푹! 푹! 푹! 푹!
찰나의 순간에 정말 셀 수도 없을 정도의 수많은 공격이 이어졌다.
마치 수많은 병사들이 돌아가면서 내 몸에 장검을 찔러 넣는 그런 느낌이었다.
‘조금만 더.’
시간이 아직 모자랐다.
디멘션 브레이크는 모션 캔슬을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1초에서 2초 사이.
그 시간이 내게 더 필요했다.
나는 바로 ‘대회복’을 발동시켰다. 하루에 한 번밖에 쓸 수 없는 기술이지만, 모든 외상과 체력을 회복하기에는 효과적이니까.
“잔재주가 있군!”
푸욱! 푹! 푹!
무라스카의 말대로 그것은 일시적으로 시간을 버는 잔재주에 불과했고, 상황을 바꾸지는 못했다.
바로 그때.
시이이잉!
나는 멀리서 맹렬하게 날아오는 하나의 화살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아슈르가 쏜 것이 분명한 화살이었는데, 그 화살의 끝에서는 백색의 기운이 이글거렸다.
‘신성력 화살.’
헤이즈와 아슈르의 연계였다.
화살촉에 작은 크기의 마정석을 붙이고, 거기에 신성력을 최대한으로 응축시키는 것이다.
악 성향의 마족에게 신성력은 상극이기 때문에 당연히 일반적인 공격보다 위력적이었다.
‘그렇다면!’
푸욱!
“크악!”
나는 아공간에서 소환한 멸살의 단검을 바로 무라스카의 허벅지에 찔러 넣었다.
100%의 확정 크리티컬 히트가 터지기에 제아무리 마족의 외피라고 한들, 찔러 넣는 것은 쉬웠다.
적절한 연계였다.
덕분에 무라스카의 대응이 반 박자 늦어졌고, 그가 뒤에서 날아온 무언가에 고개를 돌렸을 때는.
퍼석!
“끄어어어!”
신성력을 머금은 아슈르의 화살이 무라스카의 오른쪽 눈에 힘차게 박힌 후였다.
다음 순간.
‘지금이다!’
드디어 내가 노리던 때가 왔다.
살점이 찢기고 갈라지는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확실한 ‘처단’을 위해 준비해 왔던 승부수.
디멘션 브레이크를 전개했다.
지이잉! 지이잉!
그러자 거대한 공간 왜곡 파장에 휘말린 차원문이 마치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듯 심각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하아압!”
이어서 데큐플 트랜센던스 크러싱 피스트를 전개했다.
앞서 트랜센던스 마법을 사용하면서 마력을 대거 소진한 탓에 즉각 무디두스의 기도를 썼다.
퍼어억!
“크억!”
피를 흘리는 와중에도 나는 뚝심 있게 무라스카의 배에 시원한 한 방을 먹이는 데 성공했고.
화살 공격으로 부상을 입은 탓에 즉시 대응할 수 없었던 무라스카는 뒤로 쭉 밀려났다.
“됐어!”
그 순간, 나는 쾌재를 불렀다.
밀려난 무라스카의 몸이 평범한 공간이 아니라, 왜곡으로 일그러진 차원문들의 소용돌이로 쭉 빨려 들어갔기 때문이다.
쉬이이이이!
상공에 만들어진 차원문 블랙홀이 주변의 차원문들을 닥치는 대로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공간 왜곡 버그의 시작이었다.
아울러 들어갈 수는 있지만 절대 나올 수는 없는 생지옥의 시작이기도 했다.
물론 조금이라도 생존할 수 있을, 일말의 여지를 남길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래서.
“…….”
꾸드득. 꾸드드득.
나는 그 위에 재차 디멘션 브레이크를 시전할 준비를 했다.
게걸스럽게 차원문을 먹어 치우는 이 버그의 블랙홀도 짓눌러 없애 버릴 생각이었다.
* * *
같은 시각.
“도대체, 여긴…….”
무라스카는 전혀 영문을 알 수 없는 공간에 떨어져 있었다.
사방을 가득 메운 것은 끝없이 펼쳐진 암흑의 향연.
아무것도 없다기보다는 불빛 하나 없는 검은 벽으로 사방이 둘러싸인 그런 느낌이었다.
그리고 벽을 따라서 초록색 섬광을 뿜어내는 정체불명의 문자들이 쏟아져 내리는 중이었다.
용언도 아니고, 마계 문자도 아니고, 인간의 언어도 아닌, 특이한 문자였다.
터엉!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마치 철문이 잠기는 듯이 둔탁한 소리가 천장에서 들려왔다.
파앗! 파앗!
쿠우웅! 쿠웅!
무라스카가 이리저리 몸을 날렸지만, 돌아오는 것은 벽에 부딪혀 튕기는 자신의 몸이었다.
“스키아, 탐색.”
시이잉! 시잉!
채챙! 챙! 티잉!
그뿐만 아니라, 사방으로 펼쳐 내보낸 마검도 멀리 가지 못하고 벽에 부딪혀 떨어졌다.
사방이 꽉 막힌 공간.
입구와 출구를 전혀 찾을 수 없는 이질적인 곳에 무라스카는 홀로 떨어져 있었다.
“자레드! 이 인간 마법사가 되지도 않는 개수작을 부리는구나!”
“구나……! 나……! 나!”
위협성 발언을 짙게 담은 무라스카의 목소리도 덧없이 메아리쳐서 돌아올 뿐.
세상과 격리된 느낌.
익숙한 암흑이 아니라, 어색한 심연에 갇힌 듯한 느낌에 무라스카의 눈빛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한데 바로 그때.
우드드드! 우드드드!
“어어?”
무라스카는 자신을 사각의 형태로 둘러싸고 있던 공간이 서서히 줄어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출구도, 입구도 없이 갇혀 있는 공간이 점점 작아지는 것만큼 엄청난 공포도 없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
무라스카의 외침은 여전히 소리 없는 아우성이었다. 그사이에도 내부는 순식간에 쪼그라들었고.
“크아아악! 으아아악!”
어느새 몸을 짓누르기 시작하는 공간의 압박이 무라스카의 전신을 찌그러뜨리기 시작했다.
우드드득! 와득! 오드득!
“끄억, 끄윽. 끄…….”
제아무리 마족이라고 해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할 수는 없는 법.
모든 것이 차단된 공간 속에서 압축되어 버린 무라스카는 몇 초를 채 버티지 못하고 결국 압사했다.
꾸드득. 꾸득.
이미 무라스카의 숨통은 끊어졌지만, 암흑의 공간은 냉정하게 무라스카를 더 찌그러뜨리고 짓눌렀다.
그리고 얼마 후.
샤아아아……!
사방이 꽉 막혀 있던 암흑 공간의 봉인이 풀리며, 내부의 세계가 세상의 빛을 다시 보았을 때.
투우욱.
정사각형으로 압축되어 버린 무라스카의 시체가 힘없이 지면으로 뚝 떨어져 내렸다.
마족 서열 2위.
무라스카의 ‘개죽음’이었다.
* * *
[마족 ‘무라스카’를 제거하여 마족 사냥꾼의 수치가 1 올랐습니다.] [즉시 당사자와 제자들에게 스탯이 분배됩니다.] [현재 마족 사냥꾼 : 66 / 99]“원래 승부는 한 방이지.”
나는 상태창을 보란 듯이 채운 마족 사냥꾼의 스탯 수집 상태를 바라보며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노림수가 통했다.
사실 정공법대로 무라스카와 싸울 수도 있었다.
탐색전을 통해 알아본 결과, 이길지 어떨지는 몰라도 최소한 무라스카의 손에 ‘죽지’는 않겠다는 계산이 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게 필요한 것은 단기전이었고, 그래서 내 몸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동료들을 믿고, 특히 헤이즈를 믿었기에 가능했던 도박이었다.
“이게 무라스카의 압축 파일이라고 보면 되나? 녀석, 심연 속에서 수많은 데이터 찌꺼기를 봤겠지.”
직접 경험하지 않았지만,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예전에 대균열을 방문했을 때도 그렇고, 현생의 일부는 여전히 데이터가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세계가 비현실이라는 것은 아니다.
단지 사실적이고 현실적인 논리를 넘어서, 라는 세계관의 영향을 받고 있을 뿐.
잠깐 사이.
[마족 ‘바르’를 제거하여, 마족 사냥꾼의 수치가 1 올랐습니다.] [마족 ‘루카’를 제거하여, 마족 사냥꾼의 수치가 1 올랐습니다.] [현재 마족 사냥꾼 : 68 / 99]스탯이 두 차례 올랐다.
하나는 외성을 뚫고 들어가 내성 안에서 살육전을 벌이던 마족 하나가 죽은 것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여기에 있던 마족이 아니었다.
즉, 대륙 전역의 전선 어딘가에서 승전보가 도착한 것이다.
클로이 여왕, 마이라, 루크 제독, 게니츠 제독.
어쩌면 이름 모를 병사의 희생이거나 군인의 숭고한 자폭이었을지도.
어쨌든 이로 인해 대륙 전역에 남은 마족의 수는 서른하나가 됐다.
강림한 마족의 약 3할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방금 무라스카가 비명횡사했다.
나는 전장의 가운데로 향했다.
보여 주고 싶었다.
용맹하게 싸우고 있는 아군에게는 적의 수괴가 참혹한 최후를 맞이했음을 과시하고 싶었고.
적에게는 서열 2위건 무엇이건 간에 내 앞에서는 결코 무적이 아님을 보여 주고 싶었다.
몇 초 후.
나는 음성 증폭 마법을 이용해, 대혈투가 벌어지고 있는 전장 전역의 모두에게 힘껏 소리쳤다.
“무라스카가 내 손에 죽었다!”
그 순간.
“…….”
마치 화면을 정지시키기라도 한 것처럼, 전장에 적막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