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33
제 33화
12장. 귀하신 분이 이런 누추한 곳에? – 2화
엘라의 상태도 바로 확인했다.
[엘라 – Lv. 95] [근력 : 326][체력 : 179] [마력 : 23][지혜 : 17] [민첩 : 45][매력 : 10] [물리 방어력 : 33] [마법 방어력 : 44] [특수 성향 : 변칙적 검술 SS / 맞춤형 교육 S / 광폭화 A] [일반 성향 : 자유, 돈] [아티팩트 ‘광란의 질풍검’을 보유 중입니다.]‘엘라에게 스승의 자질이 있어! 그렇다면 클로이가 그녀와 함께 있는 것도 그녀에게서 무언가를 배우기 위함인 건가?’
특수 성향에 적혀 있는 ‘맞춤형 교육’에 나는 눈을 번뜩였다.
저것은 내가 레나에게 스승을 구해 줄 경우, 가장 최우선으로 살피기로 했던 성향 중의 하나였다.
맞춤형 교육은 스승이 될 사람이 자기가 내키는 대로 제자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제자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포인트를 본능적으로 짚어 내는 특성이었다.
돈을 최우선으로 추구하는 엘라의 성격을 생각하면 뭔가 미스 매치인 것 같기도 했지만, 어쨌든 그녀에게는 이 특성이 있었다.
나는 엘라가 단지 돈만 밝히는 검사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스승으로서의 역할을 괜찮게 하는 모양이다.
그러니 그레이 엘프의 전사가 이렇게 그녀의 밑에서 가르침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때, 자리에 착석한 클로이를 본 엘라가 말했다.
“클로이, 한잔할래?”
“괜찮습니다. 술은 이성을 마비시키고, 감성을 필요 이상으로 끌어올립니다.”
“까칠하긴! 나중에 좋아하는 남자라도 생기면, 이런 술 한 잔은 기본으로 해야 할 텐데?”
“안 마시는 사람을 만나면 되겠죠. 제가 상대에 맞출 생각은 없습니다.”
“역시, 우리 클로이! 이런 차가운 점이 난 마음에 든단 말이야! 나는 닳고 닳아서 그런가……. 잘 안 되더라고?”
꿀꺽- 꿀꺽- 꿀꺽-.
엘라가 단숨에 맥주 한 잔을 들이켰다. 어림잡아도 500cc는 넘는 잔인데, 원샷이었다.
그녀가 맥주잔을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아저씨, 한 잔 더!”
지금이 대화에 끼어들기 가장 좋은 시기라고 생각했다.
나는 헤이즈와 이자벨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두 사람은 여기서 잠깐 이야기 나누고 있어. 저 사람과 얘기를 좀 하고 올 테니까.”
“영주님, 도대체 무슨? 호위도 없이 전혀 모르는 사람과 대화하시는 건 안 돼요!”
“자레드, 내 생각도 같아. 조심하는 게 어떨까?”
걱정 어린 시선이 쏟아졌지만, 나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엘라가 호전적인 성격이기는 해도, 아무에게나 시비를 걸지는 않는다.
그리고 클로이는 냉정하다.
본능적으로 나를 경계하기는 하겠지만, 주변에 많은 눈이 있으니 행동 하나하나를 조심할 것이다.
“걱정 마.”
나는 짧게 말을 끊고는 바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막 말문을 열려는 찰나.
“실례지만…….”
“됐어. 어린애한테는 관심 없거든? 꼬리치지 마.”
말을 채 매듭짓기도 전에 엘라의 반응이 세게 돌아왔다.
25살의 나이에 어린애 취급을 받으니 기분이 묘했다. 물론 엘라가 현재 32세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초면에 정중하게 건네려던 말이 칼같이 잘렸기 때문일까?
헤이즈가 참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서는 엘라에게 달려왔다.
“저기요, 죄송한데요!”
“죄송하면 네 자리로 가. 이 남자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왜 초면에 합석하고 말을 거는 거야?”
엘라의 차가운 목소리가 귓전을 파고 들어왔다. 중저음의 허스키한 목소리라 그런지 더욱 날카롭게 들렸다.
엘라의 옆에 앉은 클로이는 조용히 팔짱을 낀 채 아무 말도 없었다. 그저 흘깃흘깃 나를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이분은 우리 크리비아 영주의 영주님이시고, 자작님이세요! 그럼 그에 맞는 예를 갖추셔야 되는 것 아니에요?”
헤이즈의 거센 반응에 술집 전체의 분위기가 확 가라앉았다.
저마다 우리 영지에 대해 많은 얘기를 하던 헌터들은 내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이내 말소리를 낮추는 모습이었다.
“영주인데, 그게 뭐? 귀족이라고? 미안하지만 나도 귀족이야.”
“저희 영주님은 자작이세요.”
“보아하니 하녀 같은데, 겁이 하나도 없네? 하녀야, 나도 자작이야. 작위는 뭐 세상에 하나만 있는 줄 아니?”
“…….”
반격의 레퍼토리가 사라진 헤이즈의 입이 굳게 다물어졌다.
엘라가 나를 모욕했다고 생각해서 대뜸 나섰던 것 같은데, 결국에는 본전도 못 건진 셈이 됐다.
이해는 했다. 처음부터 늘 한결같았던 헤이즈니까 그런 모습이 싫거나 언짢지는 않았다.
“헤이즈, 이자벨과 함께 나가 있어. 끼어들지 마. 네가 함부로 대할 수 있는 분이 아니다.”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나는 헤이즈를 질책하듯 말을 이어 갔다.
그녀의 진심과 별개로, 이 자리에 그녀는 없는 게 나아 보였다.
두 사람이 빠르게 자리를 비웠다. 덕분에 다시 나와 엘라, 그리고 클로이 셋만이 남았다.
그리고 내가 말을 이어 가려는 찰나, 엘라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미안해요. 워낙에 술집을 좋아하다 보니 자주 오는데, 치근덕대는 녀석들이 많았던 터라 반응이 날카로웠네요.”
“아닙니다. 하녀의 무례에 대해서 제가 사과드리겠습니다. 저는 자레드입니다. 크리비아 영지의 영주죠. 그리고 당신에게 말을 건 것은…….”
“당신이란 말도 낯간지럽네요. 엘라라고 불러 주세요. 옆에 있는 아이는 제자인 클로이.”
빠른 통성명이 됐다.
이런 대화가 익숙한 모양이다.
보통 영주라고 하면 어떤 영지이건 간에 상대가 저자세를 보이는 것이 대부분인데.
엘라는 전혀 그런 것이 없어 보였다. 클로이도 마찬가지였다.
“엘라, 영지에는 어떤 일로?”
“여기가 공기도 좋고,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서도 자유롭다고 해서 한 번 찾아와 봤어요. 괜찮으면 1년 정도 머물다 갈까 하고.”
“여행과 제자의 수련을 함께 겸하는 겁니까?”
“굳이 의미를 부여한다면 그렇겠네요. 저는 지역이나 국가에 얽매이지 않아요. 그래서 어디든 마음대로 갈 수 있어요. 크리비아 영지도 예외는 아니죠.”
“엘라, 초면에 갑작스럽지만 한 가지 부탁을 해도 되겠습니까? 충분한 보상은 반드시 하죠.”
“정말 초면에 갑작스럽긴 하네요. 합석도 깜짝 놀랐는데, 뜬금없이 제안까지 하시다니?”
“두 분을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아서 말입니다.”
“놓치고 싶지 않다……. 저와 클로이를 아세요? 클로이는 제자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저도 나스 대륙 북부에 온 건 이번이 처음인데? 우리를 모르잖아요?”
그녀의 말이 맞았다.
클로이가 본격적으로 의 스토리 내에서 유명해지기 시작한 시점은 블랙 오크의 지도부를 암살하는 시점부터다.
그때가 성마 대전이 발발할 무렵이니, 지금으로부터 10년 후다.
지금은 여기서 클로이를 만난 것이 의외일 정도로 알려진 행보가 전혀 없는 시점이었다.
엘라도 마찬가지다.
내 기억으로 엘라는 나스 대륙 남부에서 주로 활동했던 네임드였다. 북부에 왔다는 기록은 없다.
한데 지금 이 시점에 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스토리에서 누락 되거나,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되어 적히지 않은 내용인 모양이다.
“남부 지방의 소식도 줄곧 챙겨 듣고 있어서 말입니다. 타지의 정보에 관심이 많거든요.”
“과한 오지랖이긴 하네요. 북부의 이런 작은 영지에 계신 분께서 이역만리 먼 곳의 소식을 궁금해하신다니…….”
순도 100%의 팩트로 이루어진 엘라의 직설적인 발언이 가시처럼 가슴을 후벼 팠다.
맞는 말이다.
내가 예전보다 훨씬 몸집을 키워 두기는 했어도, 여전히 크리비아 는 작은 영지다.
소드 마스터나 9클래스 마법사 한 명만 영지를 찾아와도, 이 땅의 모든 것이 전멸할 것이다.
“저는 영지를 키우고 싶습니다. 그리고 유망한 인재들을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싶고요.”
“영주님, 우리 돌려서 얘기하지 말죠. 제게 말을 건 것은 분명 그만한 용건이 있어서일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녀는 노련했다.
전생의 나이로 보면 34살인 나와 차이를 느낄 수 없는, 아니 나보다 훨씬 노련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눈치가 빨랐다.
조심스럽게 예의를 갖춰 접근한 것이 괜한 헛수고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좋아요. 본론부터 말하죠. 제게 레나라는 검사 유망주가 한 명 있습니다. 그 아이를 가르쳐 주십시오.”
“저는 이미 제자가 있어요. 클로이도 요청을 받아 가르치고 있는 아이예요.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그만큼의 시간과 장소, 그리고 금전을 필요로 하는…….”
“잠깐!”
나는 바로 말을 끊었다.
은근슬쩍 영업을 하려는 것 같은 엘라의 모습에 내가 먼저 선수를 쳤다.
“돌려서 얘기하지 말죠! 좋습니다. 1년에 5000골드면 두 분의 발걸음을 멈추는 데 충분하겠습니까? 개인 저택도 내어드리죠.”
영지에는 내 소유로 된 개인 별장이 있다. 10년 전쯤에 영지의 재정을 무리하게 끌어다 써서 만든 별장이다.
정작 만들어 놓고 제대로 지내 본 적은 없는 유령 저택이었는데, 얼마 전에 하녀들을 보내 깨끗이 청소해 두었다.
혹여 레나나 다른 유망주의 스승이 될 사람을 모셔 오게 되면, 머물 곳이 꼭 필요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5000골드요?”
순간 엘라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옆에서 묵묵히 이야기를 듣던 클로이의 눈빛도 심하게 흔들렸을 정도였다.
현생에서의 5000골드면 전생의 가치로는 50억 원쯤 된다. 양쪽의 물가에 미루어 짐작해보면 그렇다. 1년에 50억 원이니, 한 달로 따지면 4억 원이 훌쩍 넘어가는 셈이다.
그렇다면 50억 원이나 되는 돈을 과연 레나에게 투자할 가치가 있는가?
단언컨대 있다.
최고의 유망주와 최고의 스승이 만나게 된다면, 특수 성향에 숨겨진 잠재 능력이 폭발하는 것은 정말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잘 키운 인재 하나는 영지 전체를 먹여 살리고, 영지의 위험을 능히 방어해 낼 수 있다.
최근에 치료제 판매 수입으로 톡톡히 재미를 본 만큼, 총알은 충분했다.
“선금으로 드리죠. 물론 공증을 받은 계약서 한 장은 작성해야겠지만.”
나는 강하게 승부수를 던졌다.
일단 엘라와 클로이를 우리 영지에 눌러앉히고 싶었다.
아마 돈과 자유분방함을 좋아하는 엘라는 오랜 시간 영지에 얽매이지는 않겠지만, 클로이는 또 다를지도 모른다.
할 수만 있다면!
미래의 네임드가 될 그녀를 우리 영지에 두고 싶었다. 내 사람으로 만들 수 있으면 더욱 좋고.
“저는 스승님의 뜻대로 하겠어요. 어디를 가든 사람 사는 세상인 것은 다를 게 없으니까요.”
엘라가 묻기도 전에 클로이가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수동적인 대답만 하는 것이 아닌 것으로 봐서는 그녀도 자기 나름대로 목소리를 내는 듯했다.
그러자 엘라가 내게 물었다.
“자레드, 날 믿어요?”
나는 솔직하게 답했다.
“아뇨, 지금의 당신은 전혀 믿지 않아요. 돈을 받은 당신을 전적으로 믿을 뿐이죠.”
“호호, 그 대답은 마음에 드네요. 최근에 들어 본 말 중에 가장 섹시한 멘트였어요. 좋아요. 조건을 받아들이죠.”
“계약 성립입니까?”
“네. 자레드, 가르칠 아이는 어디에 있죠? 미리 말하지만, 그 아이는 클로이와 함께 훈련을 하게 될 거예요. 클로이, 괜찮지?”
“그 아이가 겁이 많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클로이가 차디찬 말로 감정을 갈무리했다.
그렇게 계약은 성립됐다.
뜻하지 않은 귀한 손님의 방문.
유망주인 레나의 놀라운 성장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극적인 전환점이 생각보다 일찍 찾아오고 있었다.
* * *
그날 밤.
엘라와의 계약이 성립됐다.
그녀와 클로이는 내 권유대로 별장에 머물기로 했다.
나는 하녀장을 시켜 두 사람을 수행할 하녀들을 넉넉히 골라 보냈다.
그만큼 내 손이 줄기는 했지만, 신경 쓰일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레나와의 정식 인사는 내일 아침에 하기로 했다. 내가 참여하는 자리에서 말이다.
자정.
예전 같았으면 피곤해서 잠들었을 시간.
하지만 고르자스의 목걸이 덕분에 피로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어쨌든 나는 바로 책상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잉크 펜을 들었다.
이유인즉슨, 본격적으로 기록을 남기기 위함이었다.
지금까지는 상황에 맞게 떠오르는 전생의 기억들로 대처해 왔었고, 사실 큰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영지가 발전하고, 내 주변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생각할 것이 많아졌다.
에서의 수많은 정보와 지식을 포스팅 하며 머릿속에 각인했었던 나이기에 기억이 갑자기 사라질 염려는 없었지만.
문제는 이따금씩 기억이 안 나는 부분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시간이 지나면서 휘발성을 띠고 사라지는 지식의 양이 꽤 됐다.
그래서 기록을 남기기로 했다. 나스 대륙어가 아닌 한글로 말이다. 한글로 써 두면, 내가 아닌 그 누구도 알아볼 수 없을 것이다.
“수기(手記) 작업이니 시간은 2주쯤 걸리려나?”
얼추 그 정도 기간이 예상됐다.
앞으로 영지가 더 발전하면, 이렇게 한가로이 기록을 남길 생각도 하기 어려울 시점이 올지도 모른다.
확실한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
유비무환이 아니던가?
앞으로 내게 닥쳐올지 모르는 수많은 시련, 그리고 의외의 인물에 대한 기억을 되짚기 위해서!
파라디소 노트(Paradiso Note)의 집필은 반드시 내게 꼭 필요한 작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