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383
제 382화
120장. 압도적인 힘으로! – 2화
“와, 와, 와아아아악……!”
“뭐, 이리 비명을 지르고 그래?”
“마법사님, 드래곤님, 다크 엘…….”
“그레이 엘프.”
“아앗! 그레이 엘프님! 기사님, 궁수님, 고양이님…… 까지.”
“하하하, 그렇게 신기해?”
“당연하죠! 영화 속 분장이나 배역이 아니라, 진짜로 실재하는 분을 본 것 아닙니까?”
“인사해. 이건 통역 마법을 그려 넣은 마정석이야. 들고 있으면 대화는 문제없을 거야.”
“아, 정말요? 안녕하세요! 저는 박도혁이라고 합니다!”
“반가워요. 이분이 저희가 가야 할 길을 밝혀 주실 계시자님이시군요?”
“계시자까지는 아니지만.”
“어쨌든 만나서 반가워요. 이자벨이에요.”
박도혁에게 제일 처음으로 살가운 웃음과 함께 인사를 건넨 것은 이자벨이었다.
박도혁은 떨리는 손으로 겨우 그녀의 손을 잡고는 악수를 나눴다.
어찌나 손이 떨렸는지!
맞잡은 이자벨이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박도혁의 손을 보고 피식 웃을 정도였다.
다들 돌아가며 인사를 나눴다.
각각의 성격에 따라 표정과 태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박도혁을 존중하는 마음은 모두가 같았다.
베르하드나 카스트로도 박도혁을 깔본다거나 무시하는 눈빛은 전혀 없었다.
전적으로 자레드의 설명을 신뢰했고, 그가 이 일의 ‘원흉’이 아닌 유일한 ‘열쇠’임을 믿었던 것이다.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르니까 다시 한번 처음부터 상세하게 에 대해서 브리핑해 줘.”
“네, 준비됐어요.”
자레드의 요청에 따라 박도혁의 설명이 시작됐다.
수십 개가 넘는 화이트보드 전체에 빼곡하게 그려진 그림들은 엄청난 디테일을 자랑했다.
자레드가 동료들을 데리러 떠난 후, 물 한 번 마신 시간을 빼면 쉴 새 없이 그린 그림이었다.
그런 탓인지 열심히 그림을 그리느라 혹사한 오른팔 전체가 얼얼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우선 비카르나 행성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소형 정찰용 강철 로봇인…….”
“메카트라나.”
클로이가 손을 번쩍 들며 기억 속의 이름을 바로 끄집어냈다. 열심히 외운 흔적이었다.
“네, 맞습니다. 메카트라나는 생김새가 무당벌레처럼 생긴 녀석이에요. 언뜻 외형만 보면 단단해 보이지만, 약점은 머리와 몸통 사이의 접합부에요.”
“사람으로 따지면 목이라는 얘기죠?”
“맞습니다. 거기에는 강철 세공이 전혀 들어가지 않아서 힘만 주면 검으로 자를 수 있어요. 다만 눈의 회전이 빨라서 신속하게 절단해야 눈에 안 띄어요.”
다음 순간.
파팟!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클로이가 박도혁의 옆을 전광석화처럼 스치고 지나가더니.
사악!
그가 입고 있던 바지 옆단으로 삐져나와 있던 작은 실밥을 단숨에 잘라냈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아주 살짝 베는 소리만 들린 일격이었다.
“헐…….”
박도혁은 갑자기 당황한 나머지 말을 채 잇지 못하고 다리만 부르르 떨었다.
물을 많이 마셨더라면 진즉에 바지에 뭔가를 지렸어도 지렸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이 정도면 될까요?”
“추, 추, 충분할 것 같습니다.”
박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레이 엘프.
머리부터 발끝까지 회색빛이 물씬 풍기는 이 여성 엘프는 마치 죽음의 화신을 보는 듯했다.
이런 사람을 동료로서, 아니 그 위에서 리더로 통솔하고 있는 자레드는 대체 실력이 어느 정도일까?
일반인인 박도혁으로서는 짐작도, 상상도 안 되었다.
그저 대단하다, 라는 말 외에는 어떤 말로 표현해야 할지도 난감할 뿐.
모두가 고도의 집중 상태를 유지한 가운데, 브리핑은 계속되었다.
중간에 너무 피곤해진 박도혁이 잠시 잠을 청할 때는 자레드가 이어받아서 설명을 이어 갔다.
그렇게 일행 모두에게 주어진 24시간 중 12시간을 훌쩍 보내고.
최종 숙지를 마친 모두가 허기를 느끼기 시작했을 때쯤.
자레드가 박도혁을 통해 주문하도록 시킨 수많은 배달 음식이 창고 앞에 도착했다.
그것은 나스 대륙에서는 단 한 번도 먹어 본 적 없는!
그러나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손쉽게 접할 수 있는 간식과 별식의 향연이었다.
“음식 냄새가……. 도저히 참을 수가 없군.”
“많이 역하십니까?”
“그게 아니라 너무 맛있을 것만 같아서 냄새만 맡아도 군침이 마구 돈다는 뜻이다. 이건 무엇이냐?”
먹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 레나의 반응이 폭발적일 줄 알았는데, 의외의 인물이 격한 반응을 보였다.
베르하드였다.
물론 옆에서 레나도 우와, 하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어디에다 눈을 두어야 할지 난감해하는 모습이었다.
“치킨이라고 부릅니다. 닭을 튀겨서 만든 것이지요.”
“치킨? 화로에 구운 것이냐?”
“아닙니다. 기름에 튀긴 것입니다. 다만 튀기기 전에 생닭에다가 다양한 양념을 미리 재워 두죠.”
“허허……. 꿀꺽.”
“드셔 보시죠. 먹고 남길 만큼 많이 시켰으니까요.”
“폐하! 저도! 저도 먹어 볼 수 있게 해 주세요!”
“레나, 먹어 볼 수 있게 부탁할 게 아니라 제발 먹어 달라고 시킨 거야. 모두 예의 차리지 말고 어서들 마음껏 드십시오!”
자레드의 외침에 각자가 관심 있는 음식을 향해 탐욕(?)의 손길을 마구 뻗치기 시작했다.
치킨에 관심을 보인 것은 레나와 베르하드, 그리고 블랙 드래곤 카스트로였다.
실제로 카스트로는 드래곤들 중에서도 유별나기로 소문난 미식가이기도 했다.
어지간한 음식이나 와인은 질 좋게 만든 것이 아니면 먹자마자 바로 독설부터 퍼부을 정도.
“우, 우와아! 진짜 맛있어요!”
“허어, 이 껍질……. 짭조름하면서도 매콤한 것이 아주 일품이구나. 미쳤는데, 맛이? 치킨이라 했느냐?”
“크흠……. 상당히 맛있군.”
손에 잡히는 대로 닭다리와 날개를 집어, 한 입에 가득 베어 문 셋의 공통된 반응이 나왔다.
별미 중 별미!
미각을 집중적으로 자극하는 맛에 마치 최고의 음식이라도 먹은 것처럼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무래도 이 고기 튀김은 소스에 찍어 먹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그렇지 않아요, 이자벨 단장님?”
“제 생각은 다르답니다, 황후 마마. 아무리 생각해도 소스를 부어 놓고 살짝 불려야 제 맛인 듯해요.”
“음……. 그럼 너무 소스에 절여진 느낌이잖아요? 살짝 찍어 먹어야 튀김옷의 바삭한 느낌을 같이 느낄 수 있을 듯한데.”
“에이, 그렇게 하면 소스의 풍미를 느낄 수가 없잖아요. 무조건 부어 먹어야 합니다.”
한편 다른 곳에서는 어떻게 먹느냐를 두고 열띤 논쟁이 붙었다.
논란의 음식은 바로 탕수육.
헤이즈는 ‘찍먹’을 주장했고, 이자벨은 ‘부먹’을 주장했다.
그리고 이 논란의 첫 번째 희생양은 바로 아슈르였다.
“아슈르 경! 한번 먹어 보세요. 이 고기를 소스에 찍어 먹는 것과 소스에 담갔다가 먹는 것. 어떤 게 더 맛있는지!”
“하하하.”
자레드는 흡족한 표정으로 식사의 현장을 지켜보았다.
순진한 박도혁은 어떻게 만들었는지 설명을 부탁하는 동료들에게 자세하게 말을 이어 가는 모습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짜장면이 훨씬 맛있는 것 같군요.”
“제 생각은 달라요. 짬뽕이야말로 면을 활용한 요리 중 단연 으뜸이라는 생각입니다.”
거기에 이어서 라키스와 엘라의 짜장면, 짬뽕 논쟁까지!
덕분에 애꿎은 피자가 인기 없는 음식으로 전락해 홀로 덩그러니 놓여 있는 상태였다.
즐거운 식사 시간은 계속 이어졌다.
특히 뒤늦게 피자에 손을 댄 라키스는 맛을 보는 내내, 나스 대륙에 두고 온 딸을 떠올렸다.
“폐하, 이 피자라는 것은 미아가 보면 정말 좋아할 것 같습니다. 재료들이 딱 미아의 입맛에 맞는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경도 그렇게 생각하오?”
“예, 폐하.”
“안 그래도 짐에게 아공간이 있으니, 다음에 나스 대륙에 돌아갈 때 이 음식들을 넉넉히 가져가도록 합시다. 아공간에 있으면 상하거나 변질되지 않을 테니.”
“그래 주실 수 있겠습니까?”
“더 나아가서 레시피를 확실하게 숙지해서 메리 요리장으로 하여금 만들어 보게 하는 것도 좋겠소.”
“오오! 참으로 현명한 생각이십니다, 폐하! 제국 백성들에게 신선한 충격이 될 것입니다!”
다른 이들의 생각도 라키스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보기에 징그럽거나 맛이 유별난 별식이 아니라, 누가 먹어도 충분히 맛있을 대중적인 음식들이었다.
‘고칼로리’라는 가장 큰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비만이야 나스 대륙에서도 흔한 문제 중 하나일 뿐이다.
물론 먹을거리에 부족함이 없는 귀족들 사이에서 주로 만연하는 ‘귀족 병’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다들 새로운 음식을 맛보며 즐기는 모습을 보니, 이 자리를 마련한 자레드도 마음이 뿌듯했다.
한편으로는 나스 대륙에 새로운 음식 연구의 바람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도 됐다.
신의 손이라는 이름으로 명성이 자자한 요리의 신 메리의 손을 거친다면!
치킨, 피자, 탕수육, 짜장면, 짬뽕 모두 원래의 음식보다 더 맛있는 별미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음식들은 기술과 레시피만 있으면 충분히 나스 대륙에서도 만들 수 있는 음식이기도 했다.
* * *
마지막 출정을 앞둔 새벽.
약 6시간 정도에 해당하는 대기 시간을 남기고, 카스트로를 제외한 모두가 잠이 들었다.
창고에 미리 준비해 둔 간이침대에 누워 다들 잠을 청했고.
깨어 있던 것은 나와 카스트로만이 유일했다.
혹시나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잠을 방해할까 싶어서 창고 밖에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던 내게.
카스트로가 조용히 다가와 말을 건넸다.
“자레드.”
“네, 카스트로 님.”
“아까부터 계속 물어보고 싶었는데, 네 눈에는 밤하늘에 보이는 것이 전혀 없는 건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비카르나 행성계와 연결된 보랏빛 줄기 하나는 보입니다.”
“아냐. 그것 하나만 보여서는 안 돼. 나도 이번에 새로이 차원 연구를 하다가 깨닫게 된 사실인데…….”
카스트로가 살며시 자레드의 양쪽 관자놀이를 감쌌다.
처음에는 이게 뭔가 싶어 순간 흠칫했지만, 이내 따스한 기운이 스며드는 것을 느끼고는 마음을 놓았다.
카스트로가 뭔가를 보여 주기 위해서 일종의 버프 마법을 사용하고 있음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다음 순간.
“아!”
자레드는 탄성을 터뜨렸다.
보랏빛 줄기 하나만 보이던 밤하늘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하얀 ‘끈’이 보이기 시작해서다.
방금까지 볼 수 없었던 것을 볼 수 있도록 필터를 씌운 것처럼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우주 저 멀리 어딘가에서 지구 여기저기에 내려와 얽히고설켜 있는 수많은 끈이었다.
“이게 설마 차원 간섭이 일어난 상태의 지구를 보여 주고 있는 겁니까?”
“맞다. 꼬여도 제대로 꼬여 버렸지. 나스 대륙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엉망이다.”
“……과연 그렇군요.”
확실히 심했다.
이대로 시간이 흘러간다면, 차원 연합에 손도 못 쓰고 그대로 당할 것만 같았다.
애초에 이렇게 많은 끈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적이 침투할 수 있는 루트가 매우 많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거듭 말하지만, 세상일에 공짜는 없다. 나는 차원 연구를 최우선 목적으로 넘어왔다. 그러니 희생을 강요하지는 말아라. 이미 희생은 차원 대전에서도 충분히 했으니까.”
“물론입니다. 해 주실 수 있는 만큼만 해 주십시오. 모자란 것은 제가 채우겠습니다.”
자레드는 웃으며 말했다.
진심이었다.
희생은.
분명 누구에게도 강요할 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