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388
제 387화
121장. 계속되는 성장 – 4화
‘웬만한 여자 수영 선수 뺨칠 정도로 어깨를 키웠네. 하긴 엘라의 말이 아무 것도 할 게 없으면 재미 삼아 하는 게 푸시업이라고 했지.’
나를 처음 만난 이후 6년 동안 레나의 ‘취미 생활’이 되어 버린 것이 팔굽혀펴기인 셈이니까.
그녀의 듬직한 어깨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그간 매번 두꺼운 갑주를 착용하고 있어서 무장을 벗은 상태를 볼 일이 없었는데.
오늘 다시 보자, 레나의 건장함이 다시 한번 느껴졌다.
이 정도면 에서 이름을 날렸던 통곡의 벽 레나의 스펙은 진즉에 훌쩍 뛰어넘었다.
“허허, 이 늙은이의 마나를 더욱 키울 수 있는 수단이 있다고?”
이어 베르하드에게서도 변화된 자신의 몸을 느낀 탄성이 이어졌다.
이것이 바로 ‘스탯’의 힘이다.
스탯은 한계치를 따로 정해 놓지 않는 한, 포인트를 투자할 때마다 계속 올릴 수 있다.
지금의 내가 그렇잖은가.
베르하드, 아니 카스트로조차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양의 마력을 가지고 있다.
아마 베르하드는 그가 사용할 수 있는 마나에 분명 한계치가 있었을 것이다.
시스템이 적용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나스 대륙에서 지구, 지구에서 비카르나 행성으로 넘어오면서 이들에게도 상태창의 ‘축복’이 내렸다.
이제 나를 포함한 열 명의 동료들에게는 한계라는 단어가 사라지게 됐다.
성장을 위한 동력을 얻으면 얻을수록 계속 자신의 상태를 갱신하며, 위로 나아갈 수 있게 됐다.
누구든 말이다.
“오!”
“와아!”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스탯 수치를 높일 때마다 몸에서 가감 없이 변화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근력을 높였다면 울끈불끈 솟아나는 근육과 힘이 느껴지게 되고.
민첩을 높였다면 분명히 자신은 변한 것이 없는데 전보다 훨씬 몸이 가벼워진 것을 느껴지게 된다.
이것은 경지가 높으면 높을수록 변동의 폭이 커져서 더욱 확실하게 체감이 되기에 도저히 모를 수가 없는 것이다.
“다들 테스트해 보세요. 이 정도 포인트로 얼마만큼의 변화가 있는지 알아야 동기부여도 확실히 되겠죠.”
한 번 더 주의를 환기했다.
지금부터의 원정은 나를 위한 동료들의 지원이지만, 동시에 자신의 성장을 위한 장이기도 했다.
이익은 한번 볼 수 있을 때 극대화해서 얻어 놔야만 나중에 빛을 발하게 된다.
한마음 한뜻으로 시작한 원정이니만큼, 모두에게 좋은 기회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 * *
다음 날.
-아니 저건 하루살이 아니냥! 하루살이가 저렇게 클 수가 있는 것이냥?
“그러게. 거대화된 세계라는 것은 진즉에 알았지만 그 간극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군.”
초월의 돌을 이용해 워프를 마친 우리는 바카지에나 행성의 남부에 안착할 수 있었다.
남부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은 원작에서 ‘그나마 딛고 움직일 만한 단단한 땅이 있는 곳이 남부다.’라는 표현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들 원작을 잘 숙지한 덕분인지 모두 이곳이 바카지에나 행성의 어디인지 금세 알아보는 눈치였다.
우왜애애앵!
이리 보고 저리 봐도 하루살이처럼 생긴 녀석이 굉음에 가까운 날갯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녀석은 인육(人肉)에는 관심이 없는지 멈추지도 않고 멀리 날아가는 모습이었다.
“바카지에나 행성의 왕인 기가노스는 한눈에 보아도 저 녀석이 분명해 보이네요.”
나는 저 멀리 지평선 너머로 보이는 거대한 검은 구름을 가리켰다.
구름이라는 표현을 쓰기는 했지만 정확하게는 아주 느린 속도로 공중을 유영하는 비행체였다.
일종의 거대 우주선이라고 봐도 됐는데, 실제로 기가노스는 팔다리가 있는 인체형이 아니었다.
‘기가노스는 서울과 인천 일대의 땅덩어리를 전부 합친 만큼의 거대한 크기를 지니고 있다.
스스로의 의지로 그 크기를 다시 한번 네 배 이상 불리는 것이 가능한 존재다.
아울러 기가노스의 체내에는 수많은 기관이 존재하는데, 이 기관들은 다양한 피조물을 만들어 내 적을 공격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원작의 내용을 곱씹었다.
크기가 어느 정도 되는지 가늠하는 자체가 무의미하게 느껴질 만큼 기가노스의 몸은 거대했다.
아마 머물고 있는 공간에 도착한다면, 하늘에 보이는 것이 온통 기가노스의 몸밖에 없을 것이다.
구름도, 쏟아지는 빗물도 모조리 가려 버리는 기가노스는 거대한 하늘 그 자체였으니까.
‘크다’는 것은 그만큼 ‘강하다’라는 뜻과 직결된다. 애초에 활용할 수 있는 운동에너지의 한계치가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움직임이 대단히 느려지며, 또한 미세 부위를 타격하는 공격에 약하다는 것을 뜻한다.
빛에는 늘 어둠이 따르듯, 장점에는 그만큼 숨겨진 단점이 존재하는 것이다.
물론 모두가 거대화된 이 세계에서 기가노스의 힘에 감히 도전할 수 있는 존재는 없을 터였다.
하지만 우리는 정말 티끌만큼도 못한 존재로 느껴질 만큼 작았다.
그것은 적의 눈에 띄지 않고 추적당하지만 않는다면 언제든 장점으로 바꿀 수 있는 특징이었다.
“천천히 북상하죠. 어차피 우리의 존재를 인지하더라도 대응 자체는 늦을 겁니다. 아니, 빨리 대응할 필요가 없이 즐길지도.”
이 행성은 앞서 비카르나 행성과 달리 생활 개체수 자체가 많지 않은 곳이다.
개체 비율로 본다면, 20:1에 가까울 정도로 적은 숫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원 연합에 참여한 것은 바로 ‘거대화’라는 특성 때문일 것이다.
‘왕 ‘기가노스’가 강림하는 것만으로도 지구는 엄청난 쓰나미와 강풍에 휘말릴 수 있다.
그래서 외계 문명은 끊임없이 각성자들에게 기가노스의 존재에 대해 경고를 해 왔다.
그가 작정하고 지구와 충돌해 버리면, 그날로 지구는 멸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박도혁 녀석이 공들여 쓴 내용만 봐도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를 쉬이 가늠할 수 있을 정도.
총 여덟 개의 행성 중에서 1년 후에 가장 위협이 될 곳은 단언컨대 이곳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바로 그때.
우끼! 우끼끼! 우끼!
평범하게 자란 잡초마저도 5미터가 훌쩍 넘는 수풀들 사이에서 오랑우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당연한 얘기지만, 행성의 특성에 맞게 대형화된 오랑우탄이었다.
어림잡아도 최소 50m.
아파트 17층 높이는 족히 넘는 녀석들이 긴 팔을 휘저으며 달려오고 있었다.
무리의 수는 마치 우리와 짝이라도 맞출 속셈이었는지 딱 9마리였다.
카스트로는 앞서 비카르나 행성에서 그랬듯 차원 간 연락을 차단하기 위해 상공으로 사라졌다.
전투에는 참여하지 않지만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은 카스트로였기에 나는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물론 상공에 머물며 차원 연결 수식을 활용해서 연결을 차단하는 동안, 수많은 실험을 할 것이다.
카스트로가 아까 잠깐 남겼던 말에 따르면, 각 행성마다 특유의 파장, 파형이 있다고 한다.
이를 잘 연구하면 마음먹은 대로 차원과 차원을 뛰어넘는 마법을 개발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카스트로는 그 마법을 꼭 개발해서 쇠퇴일로를 걷고 있는 드래곤 일족 전체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고 싶다고 했다.
그들만의 세상을 찾아 떠나 영원히 정착하고 번식하고 번영하려는 것이다.
나스 대륙에서 인간과의 공존은 언젠가 깨질 수 있는 살얼음과도 같은 것이니 말이다.
나는 드래곤과 공존해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친(親)드래곤 성향의 황제지만.
훗날 내 후손은 다를 수 있었다.
실제로 엘라나 나오미 같은 경우는 드래곤에게 받은 도움은 분명히 인정하면서도.
장기적인 안목으로 볼 때는 결국 드래곤이 인간들을 해하리라고 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예상외로 제국의 많은 군인과 헌터들 사이에서 팽배한 의식이기도 했다.
과거에 무척 오만했으며, 분명 인간의 목숨을 하찮게 여긴 전례가 있는 드래곤의 업보이기도 했다.
어쨌든 목적이 분명하면서도 제 역할을 확실히 해 주는 카스트로이기에 나는 그를 믿었다.
“한낱 오랑우탄이 이렇게 무섭게 느껴질 줄은……. 긴장 바짝 해야겠네요.”
검을 축 늘어뜨리고 있던 엘라가 다시금 검을 고쳐 쥐었다.
그리고 나는 곧바로 아공간에서 소환한 타트라 넥스 9기를 모두에게 장착시켰다.
사전에 각각의 생체 정보를 등록해 두었기에 각자 주인을 찾아가 몸에 알맞게 착용됐다.
“데리, 괜찮아?”
-으애오옹!
데리는 헤이즈가 착용한 타트라 넥스의 등 쪽에 위치한 작은 공간에 쏙 들어갔다.
딱히 녀석을 생각하고 만든 공간은 아닌데, 마침 몸이 딱 알맞게 들어가는 자리가 됐다.
원래는 비상시를 대비해 마정석을 넣는 공간이지만 일부를 뺀 것이다.
여차하면 내가 착용한 타트라 넥스에서 마정석을 지원하거나, 아공간에서 꺼내면 되는 문제.
그래서 크게 신경 쓰진 않았다.
“한 가지만 명심해요. 대형화라는 것은 곧 약점도 똑같이 커졌다는 뜻입니다.”
나는 중요한 대전제를 한 번 더 강조해 주었다.
크기에 압도되어서 판단력과 전의를 상실하게 만드는 것이 이 녀석들의 전형적인 패턴이다.
그러니 반대로 대응하면 된다.
커진 크기만큼 상대방의 치부도 같이 커졌다고 생각하고 자신 있게 먼저 파고드는 것.
그것이 이번 행성 공략을 위한 전략 전술의 핵심이었고, 이는 기가노스도 예외가 아니었다.
“파멸의 창은 아끼도록 하고.”
대신 회심의 필살기로 사용할 수단에 대해서는 봉인하도록 지시했다.
파멸의 창은 기가노스에게 써야만 의미가 있으니까.
사전에 정보가 노출되어서 좋을 게 없었다.
“진격합니다!”
“제가 먼저 앞장서지요!”
타트라 넥스의 착용으로 원활한 공중 기동이 가능하게 된 라키스와 엘라가 먼저 돌격했다.
예전에는 타트라 넥스를 착용한 공중전을 치르는 것이 매우 어색했던 그들이었지만.
수년간 틈날 때마다 연습을 해 온 덕에 이제는 움직임이 매끄럽고 자연스러워졌다.
공중에서 급강하를 하거나 혹은 급선회, 급발진, 급상승을 하더라도 기동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
우끼이! 우끼이!
달려드는 우리가 날파리처럼 보였는지 오랑우탄들이 열심히 허공에 손을 휘저었다.
그때마다 웅웅거리며 바람소리가 들렸지만, 움직임 자체가 위협적이지는 않았다.
물론 방심해서는 안 된다.
소 뒷걸음질치다가 쥐 잡는 격으로라도 한 대를 맞게 되면, 타트라 넥스부터 박살이 날 테니까.
‘저놈이 대장이군.’
나는 오랑우탄 무리 중에서 유독 근엄한 표정을 지은 채로 팔짱을 끼고 있는 녀석을 바라보았다.
마치 취하고 있는 포즈가 동료들을 지켜보는 내 모습과 판박이인 듯해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끼에에에엑!
녀석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양팔로 박수를 열심히 쳐 대며 나름 기세를 올렸다.
가까이 오기만 하면 박수를 쳐서 찌그러뜨려 죽여 버리겠다는 그런 뜻인 듯했다.
“콧구멍 크기가 무슨 대문 크기만 하네.”
파아앗!
100m 정도 거리를 둔 지점에서 타트라 넥스를 공중 대기 상태로 둔 나는 플라이 마법을 전개, 녀석에게 쇄도했다.
목표 지점은 처음부터 한 곳이었다.
바로 콧구멍.
거인의 세계에 왔으니.
소인(小人)의 삶에 알맞게 인체의 신비를 체험할 예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