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392
제 391화
122장. 작은 고추의 매운맛 – 4화
‘죽어라.’
기가노스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물론 그 미소는 어느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미소였다.
하찮은 미물들.
아무리 발버둥을 쳐 봤자 미물은 미물이다. 그저 조금 날카로운 반격이었을 뿐, 해프닝으로 넘길 일이 되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꾸르르르릉!
‘……?’
기가노스는 자신의 몸 하단부에서 느껴진 거대한 충격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단순한 충격이 아니었다.
하단부에서부터 참을 수가 없는 고통이 신경 줄기를 따라 폭주하듯 치솟는 끔찍한 고통이었다.
이 정도로 심각한 고통을 최근 느낀 적이 있었던가?
기가노스는 단언컨대 없다고 할 수 있었다.
거대한 기가노스의 몸은 고통의 신호가 뇌에 도달하기까지의 시간이 무척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잘한 고통의 경우에는 신호가 신경 줄기를 따라가다가 사라지기도 할 정도였다.
그런데 마치 번개가 번쩍인 것처럼 격렬한 통증을 느꼈다는 것은 큰일이 벌어졌음을 말하는 것이었다.
다음 순간.
“크허?”
기가노스는 우지끈 하는 소리와 함께 자신의 몸이 기우뚱하는 것을 느꼈다.
균형이 무너진 느낌.
그것은 기가노스의 몸으로 살아가게 된 이후, 단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는 감각이었다.
압도적으로 큰 몸체는 분명 변화에 둔감하기는 하였지만, 그런 만큼 안정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뭐가 잘못되어도 한참은 잘못된 느낌이었다.
그리고.
“…….”
살점에 파묻힌 하나의 눈을 아래로 내린 기가노스는 저 멀리서 흩날리는 뭔가를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다리에 해당하는 부위가 갈가리 찢겨져 떨어지고 있는 장면이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기가노스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생각은 바로 현실 부정이었다.
정말 말도 안 됐다.
수십, 아니 수백의 동족들이 물어뜯고 할퀴어도 외피조차 뚫기 힘들었던 것이 자신의 몸이었다.
하지만 그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그렇게 단단했던 몸이 마치 종이처럼 찢어져 나가는 모습이었다.
콰과과과과!
“끄어어어어!”
기가노스가 비명을 질렀다.
엇박자로 도착한 통증의 후폭풍이 뇌부 전체를 휘감으며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불러일으킨 탓이다.
이제야 실감했다.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됐다고.
쿠웅! 쿠우웅! 쿠웅!
변화 없는 안정에 익숙해져 있던 몸은 갑작스럽게 일어난 변화에 능숙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기가노스의 몸은 마치 대형 건물이 붕괴하듯이 기우뚱하면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콰직! 콰지지직!
기가노스는 전력을 다해서 다른 신체 부위로 몸을 지탱하기 위해서 애썼다.
그 과정에서 몇 개의 산과 드넓은 들판이 할퀴고 부서지며, 수많은 동족의 희생을 만들어 냈다.
참 하찮은 희생이었다.
영문도 모른 채로 그저 중심을 잡기 위해 발버둥치는 왕의 발길질에 깔려 죽거나 터져 나가면서 죽었기 때문이다.
‘빠르다.’
더 큰 문제는 아래에서 문제를 일으킨 불청객이 어느새 자신의 ‘복부’에 해당하는 부위까지 진출했다는 점이었다.
믿기지 않았다.
기가노스의 신체 내부는 단순한 육신이 아니었다.
끝을 쉽게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몸이면서 동시에 미로처럼 뒤섞인 복잡한 공간이었다.
그래서 기가노스 본인도 스스로를 생체가 아닌 하나의 구조물이라고 생각할 때도 있을 정도.
하지만 불청객은 마치 만능의 지도를 갖고 있는 것처럼 헤매지 않고, 정확히 핵심만 짚었다.
화아아악!
“크어어!”
이어진 2차 후폭풍에 기가노스가 비명을 질렀다.
한 행성계의 왕이 보일 수 있는 모습이라고 하기에는 한없이 부끄럽고 부족한 일면이었다.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자신의 몸을 보란 듯이 누비는 적이 있음에도 즉각 손쓸 수 없는 자신이 그저 무기력하게 느껴졌다.
무기력이라니!
자신에게 절대 용납될 수 없는 하찮은 단어였다. 그런데 그것이 현실이 된 것이다.
“끄어어어!”
현실을 부정하면 부정할수록 고통의 강도는 더욱 세졌다.
복부 쪽에서 엄청난 열기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 여실히 느껴졌다.
직접 눈으로 보지는 못하였지만, 마치 그 안에다가 엄청난 양의 용암을 쏟아부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기가노스가 정확한 명칭을 알지 못하는 열기의 정체는 바로 ‘데큐플 트랜센던스 헬 파이어’였다.
지옥의 불.
9클래스의 마법을 소환한 것도 모자라, 거기에 초월 마법을 더했으니…….
제아무리 기가노스라고 한들 속이 완전히 뒤집어지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쿠쿵! 콰쾅! 쿠아아앙!
“……!”
생각을 깊게 할 여유가 없었다.
잠깐 고민을 하는 와중에도 벌써 몸 안에서 세 차례나 대폭발이 일어났다.
터져 나오려던 비명을 간신히 참지 못했다면, 정말 행성이 떠나가라 큰 소리를 질렀을 듯했다.
기가노스는 혼란에 빠졌다.
혼란……. 이 행성의 주인이면서 균형의 수호자였던 자신에게 절대 용납될 수 없는 단어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란에서 벗어날 길이 없어 보였고, 상황은 빠른 선택을 요구했다.
굴욕적이었다.
하찮은 미물에게 상당한 신경을 쓰는 것도 모자라 일방적으로 휘둘리기까지 해야 하다니!
하지만 체면 하나 지키겠답시고 눈뜨고 당해 주는 것만큼 X신 같은 일도 없을 터.
기가노스는 결단을 내렸다.
‘분리한다.’
거대 몸체를 반으로 나누는 계획을 세웠다.
이미 불청객에게 복부 아래까지 내주고 말았으니, 그 부분을 확실하게 떼어 낼 생각이었다.
‘어차피 머리만 살아 있으면 돼.’
그렇게 생각했다.
모든 행동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는 머리만 살아 있으면 무엇이든 다시 할 수 있다.
잃어버린 몸은 행성의 다른 자연 경관과 ‘일체화’를 꾀하면서 다시 흡수하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과거에 비해 반 토막이 난 몸을 가졌다고 해도, 자신은 여전히 강력하고 큰 것은 사실이었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
기가노스는 그렇게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시켰고, 미련 없이 자신의 몸 절반을 버리기로 했다.
분명.
그것은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현명하게 내린 최고의 판단이라고 생각했다.
판단을 행동으로 실행한 다음, 몇 초 정도가 지났을 무렵까지는 분명히 그랬다.
그랬는데…….
“……!”
이변이 벌어졌다.
돌발적으로 발생한 변수에 기가노스의 전신이 경직됐다.
당황과 두려움, 그리고 공포가 한데 어우러져서 만들어 낸 감정의 결과물이었다.
최악의 상황이 펼쳐졌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은 이 ‘불청객’과 벌이는 가위바위보 싸움에서 단 한 번도 이긴 적이 없었다.
연전연패.
기가노스는 이 행성의 왕이 된 이후 처음으로 자신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단순한 걱정 따위가 아니라 온몸으로, 멀쩡한 정신으로 여실히 느끼는 ‘현실’이었다.
X 됐다.
이 말 한 마디로 기가노스의 모든 감정을 설명할 수 있었다.
* * *
‘역시 놈은 허점투성이였어.’
나는 기가노스가 자신의 신체를 분리하는 방법을 선택하는 순간, 쾌재를 불렀다.
미리 세워 둔 설계가 딱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다만 기가노스 자신은 이 방법이 얼마나 큰 문제를 지니고 있는지 전혀 모를 것이다.
그것은 기가노스의 태생과도 연관된 문제였다.
‘차원계를 여행하다가 바카지에나 행성에 불시착한 모이라트에게 새 기회가 열렸다.
그것은 아무리 봐도 허술한 정신계를 가진 이 행성의 제왕인 기가노스의 정신과 육체를 탈취하는 것이었다.
정신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이를 견뎌 낼 필요가 없었던 기가노스의 정신계는 한없이 가벼웠다.
모이라트는 생각했다. 돌아가 하찮은 인민으로 사느니 차라리 한 행성계의 왕이 되겠다고.
그리고 그 꿈은 이루어졌다.’
소설 속 내용처럼 지금의 기가노스는 모이라트라는 외계인에게 조종되는 구조였다.
뇌부에서 모이라트가 기가노스의 몸을 조종하고 있다고 보면 얘기가 간단해진다.
물론 기존의 몸을 통제하고 있던 ‘원래의 주인’은 소멸되어 사라졌다. 모이라트가 없애 버렸으니.
어쨌든 그런 이유로 기가노스는 분명 예전과 달리 지성을 갖게 됐고, 그것이 차원계 연합에 참여하는 계기가 됐다.
초거대 지성체.
이는 매우 매력적인 존재였고, 또한 적에게는 엄청난 재앙이 될 것이 자명한 존재였으니까.
하지만 큰 문제는 바로 지금처럼 모이라트, 즉 현재 기가노스는 위험에 취약하다는 점이었다.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기가노스가 알 수 없을 변수만을 골라 노렸고,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푸슈슈슈!
기가노스는 나를 떼어 낼 생각으로 몸을 분리했지만, 그것은 오히려 악수가 되었다.
거대한 몸을 끊어 내는 작업이기 때문에 내부 혈관이나 생체 통로가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물론 놀라운 회복력으로 이것을 빠르게 메울 수 있다는 기가노스의 자신감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녀석의 상대는 나였다.
나는 기가노스의 회복력이 빈틈을 메우기 전에 여유롭게 그 약점을 파고들었다.
우우웅! 우웅!
한편 아래를 내려다보니 무너져 내리는 기가노스의 몸체에서 탈출하는 동료들의 모습이 보였다.
타넥스의 기동력은 매우 우수하다. 또한 인공지능의 보정 능력도 탁월하다.
동력을 잃는 일만 없다면, 갑자기 추락사를 하거나 변수에 휘말려 죽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아낌없이 주는 기가노스구먼.’
나도 모르는 새에 들어온 수많은 성장 포인트를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기가노스의 몸체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보상 덩어리였다.
무슨 말인가 하면, 어딘가에 유의미한 타격을 주어 상처를 입히고 무력화시켰을 때.
그만큼 성장 포인트가 들어온다는 얘기다. 그것은 아래서 분전 중인 동료들도 마찬가지겠지.
‘만약 우리가 여덟 번째 행성까지 무사히 마무리 짓는다면, 얼마나 큰 힘을 갖게 될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성장도 충분히 눈부신데 그 이상을 훌쩍 뛰어넘게 된다면 사람의 한계를 넘어서지 않을까?
조력자 박도혁이 떠올랐다.
차원을 마음대로 넘나들면서 도움이 필요한 다른 존재에게 개입하던 그의 모습.
혹시 나 또는 내 곁의 동료들에게도 그런 힘이 주어지지는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아냐. 그래도 사양하고 싶어.’
이내 고개를 저었다.
평범한 회사원 신태풍에서 거대 제국의 초대 황제가 되기까지……. 난 충분히 노력했고, 활약했으며, 쉼 없이 달렸다.
사실 황제라는 그 이름에도 종종 무한한 책임감이 느껴져서 마음이 편치 않을 때가 있었다.
그런데 그 이상이라?
상상도 되지 않고, 설령 현실이 되더라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신태풍 혹은 자레드.
그 이상의 역할을 더 이상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이번의 차원 원정이 내게 전쟁의 마지막이 되길 간절히 바랐다.
“자, 기가노스. 이제 어떻게 할 거냐? 몸체를 더 잘라낼 수는 없을 거고, 본격적으로 나는 네가 가진 모든 걸 박살 낼 거다.”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몸집이 크고 빵빵한 적은 ‘패는 맛’이 좋다. 타격감이 일품이라는 뜻이다.
승기는 확실히 잡았다.
다만 여기서 바로 끝을 내기보다는 ‘모이라트’를 압박해서, 녀석이 본체를 드러내도록 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이 차원 원정에 안정을 더하고 속도를 끌어올릴 수 있는 노림수.
‘대리전’ 활성화를 위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