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391
제 390화
122장. 작은 고추의 매운맛 – 3화
‘살균. 기가노스에게는 이런 방식만큼 좋은 방법이 없겠지.’
전력을 다해서 기가노스의 몸을 타고 오르는 동안, 나는 생각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인간들의 세계에서는 제법 크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거인들의 세계에서는 매우 하찮은 것이 된다.
지금의 우리와 기가노스의 관계가 딱 그러했다.
공중을 유영하는 거대 도시와도 같은 기가노스에게 우리들은 한낱 미물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니 지금처럼 말살(抹殺)을 위한 체액을 흘려보내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하여간 박도혁 이 녀석, 쓸데없이 디테일하게 소설을 잘 써 놨단 말이야.’
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동시에 소설가 박도혁이 아니라 동방 대륙에서 만났었던 ‘조력자’ 박도혁이 떠올랐다.
평행우주가 어떤 식으로 흘러가는지 이제야 새삼 실감했기 때문이다.
하긴 조력자 박도혁이 살던 지구에서는 내가 재무 설계사로 물심양면으로 그를 보조한다고 했던가?
전한무역의 영업사원으로 열심히 활동하기는 했어도 재무 설계에는 영 젬병이었던 나.
그런 것을 생각하면 평행세계의 또 다른 나는 나를 닮진 않은 모양이다.
어쨌든 박도혁이 짜 놓은 기가노스에 대한 세세한 설정은 공략에 큰 도움이 됐다.
아마 아무것도 모르고 기가노스와 마주쳤다면, 우리는 진즉에 죽어 없어졌을 것이다.
당장에 저 위에서 쏟아지려 하고 있는 희뿌연 체액만 봐도 답이 나온다.
언뜻 보기에는 우유 혹은 막걸리처럼 보이는 색깔의 저 액체.
저기에 닿게 되면 기가노스 본인의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이 녹아 버린다. 마치 아이스크림처럼.
이미 앞서 기가노스에게 도전했던 이 행성의 수많은 생체들이 그렇게 죽어 없어졌다고 했다.
거대한 녀석들도 그러한 최후를 맞이할진대 우리라고 다를 것 같지는 않다.
샤아아!
나는 저 밑에서 타트라 넥스를 기동하며 올라오고 있을 동료에게 ‘라이트’ 마법으로 신호를 보냈다.
사전에 약속된 신호였다.
그리고 나는 위에서 쏟아지는 체액을 향해, 평소보다 훨씬 두꺼운 방어막을 만들어 냈다.
‘데큐플 트랜센던스 퍼펙트 실드.’
최대치의 초월 마법으로 펼쳐 낸 퍼펙트 실드는 묵직한 역장을 만들어 내며 기가노스의 체액을 받아 냈다.
그와 동시에.
위이이이잉!
즉시 타트라 넥스에 장착된 ‘파멸의 창’을 가동시켰다.
사비오가 동방 대륙의 군함들로부터 분리해 낸 후, 우리의 기체에 탑재한 필살 병기였다.
파멸의 창은 금속뿐만 아니라, 특히 생체에 대해서는 더욱 확실한 분해 효과를 갖고 있었다.
그래서 다크 엘프들 사이에서는 파멸의 창을 ‘생물 분해 광선’이라는 별칭으로도 부른다고 했다.
그만큼 살아 숨 쉬는 유기체의 분해에 탁월해서다. 그리고 기가노스는 거대한 유기체였다.
푸슛! 푸슛! 파샤샤샷!
어둡기 그지없었던 기가노스의 내부로 빛줄기가 여기저기서 스며들어 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 옆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퍼펙트 실드로 기가노스의 체액을 막아 낸 뒤, 파멸의 창으로 옆에 구멍을 뚫었다.
그러자 속절없이 무너진 피부를 따라 흘러나간 체액이 기가노스의 내, 외피를 가릴 것 없이 녹였다.
평소에는 위장의 내벽을 녹이지 않는 소화액이 천공(穿孔)이 생기거나 방어기제가 약해지면 자기 자신의 장기에 염증을 일으키듯.
기가노스도 마찬가지였다.
매끈한 점막으로 둘러싸여 있던 곳에 파멸의 창으로 상처를 내니, 스스로를 공격하는 수단이 됐다.
그오오오……!
비명인지 아니면 몸이 뒤틀려서 나는 소리인지 알 수 없는 괴성이 저 멀리 어딘가에서 들려왔다.
찌익! 찌이이익! 쫘악!
아래에서 기가노스의 살점을 무참히 찢어 내고 있는 소리가 가감 없이 들렸다.
파멸의 창이 만들어 냈을 상처는 기가노스에게 매우 치명적일 것이다.
기가노스는 전적으로 외부 방어에 특화되어 있는 거대 생체이기 때문이다.
벨푸리스 나무뿐만 아니라 수많은 거암 괴석들, 그리고 살아 움직이는 지형지물이 기가노스를 지키는 수호신이 되어 주었지만.
내부는 기껏해야 얇은 점막들과 살균을 위한 체액 정도가 방어 시스템의 전부였다.
그나마 몸의 중심부로 가야 한두 단계 더 향상된 형태의 방어 시스템이 작동하는 상황.
아직 몸에서 한참 외곽인 이곳을 스스로 지킬 수단은 매우 한정적이었다.
꾸드득. 꾸득.
그래도 기가노스가 일방적으로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거대한 몸뚱이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필수 요소.
‘급속 재생’, ‘광역 재생’을 활성화하려는 안간힘이 느껴졌다.
상처 회복의 메커니즘을 발동시킨 것이다. 그것은 지금껏 잘 작동됐을 시스템이기도 했다.
하지만.
슈르르륵.
회복하려는 시도는 금세 수포로 돌아갔다.
파멸의 창 공격이 가지고 있는 ‘고통스러운 상처’ 효과가 계속 발동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상처 난 부위를 지혈하는 것이 아니라 되레 물에 담그는 것과 같았다.
나쁜 의미로 시너지가 나서 역효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후둑. 후두둑.
상처들을 덧나고 번지게 만드는 효과에 재생의 레퍼토리가 더해지자, 오히려 상처는 더 커졌다.
쩌억! 쩌어억!
그래서인지 수많은 벨푸리스 나무들이 연결을 지탱할 힘을 잃고 추락하는 것이 보였다.
‘좋아. 순조로워.’
나는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동료들은 절대 무리하지 않고, 지금처럼 차근차근 몸의 외곽에서부터 기가노스를 잠식해 나갈 것이다.
승부는 내 몫이다.
그리고 포문을 매우 만족스럽게 열었다. 100점 만점에 110점.
이제부터는 속도전이었다.
* * *
같은 시각.
‘이럴 수는…… 없다.’
기가노스는 매우 크게 당황하고 있었다. 지금껏 한 번도 평정심을 잃어 본 적이 없던 그에게 벌어진 대사건이었다.
처음 몸속으로 파고들어 온 외부의 존재를 느꼈을 때도 이렇게 당황하지는 않았다.
이 세계의 왕인 자신에게 최근에는 흔하지 않지만, 과거에는 종종 있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앞서 존재들이 밟았던 ‘전철’을 따라 무난히 죽음으로 그 대가를 치르리라고 믿었다.
하지만 진행 양상이 달라졌다.
특히 자레드 일행이 사용한 ‘파멸의 창’은 기가노스가 예상한 범주를 훌쩍 뛰어넘는 공격이었다.
자가 재생, 회복의 고리를 완벽하게 끊는 그야말로 치명적인 ‘카운터펀치’였던 것이다.
게다가 총 아홉 명으로 느껴지는 불청객의 기척 중에 유독 움직임이 빠른 존재가 있었다.
기가노스는 누군지 알지 못했지만, 그 존재는 바로 자레드였다.
인체로 따지면 자레드는 발바닥을 뚫고 들어와 무릎을 지난 뒤, 어느새 허벅지에 해당하는 부위를 지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상하다.’
정말 이상했다.
자신의 몸은 매우 거대하다.
인간의 몸처럼 구조가 정직하지가 않기에 미로처럼 꼬인 곳도 많고, 위장을 위한 공간도 많았다.
심지어 기가노스 자신도 스스로의 몸 전체를 100% 이해하고 있다고 확신할 수 없을 정도.
하지만 자레드는 정확하게 몸의 중심부가 어딘지 안다는 듯 최단거리로 접근하고 있었다.
어디가 이 몸의 주요 동력원이며 위험한 아킬레스건인지를 훤히 꿰뚫고 있는 듯했다.
‘위험하다.’
기가노스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처음에는 하찮은 미물이라고 생각하며 무시했지만.
지금은 그 미물에게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도 있음을 직감한 것이다.
꾸웅! 꾸우웅!
겉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이미 몸속 여기저기에서 폭발이 일어나며 점차 만신창이가 되어 가는 중이었다.
자레드의 ‘마법’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기가노스는 그저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만 체감할 뿐이었다.
‘이 방법은 쓰지 않으려고 했지만…….’
기가노스가 인상을 찌푸렸다.
외부의 침입에 대해서 기가노스는 총 세 단계의 대응책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99%가 첫 번째의 대응에서 박멸(撲滅)이 되지만, 이번 녀석들은 1%의 확률에 걸렸다.
하지만 두 번째 대응책은 그 1%마저도 확실하게 걸러 줄 수 있는 필살의 수단이었다.
‘회복에 시간이 다소 걸리긴 하겠지만, 차원 침공 전까지 회복하기에는 무리가 없다.’
기가노스가 냉정하게 판단했다.
이번 방법을 쓰면 몸에 제법 무리와 피해가 오겠지만, 그래도 1년 남짓한 시간에 충분히 회복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물론 이를 위해 바카지에나 행성에 있는 많은 생명체를 ‘포식’해야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회복 수단이 있으니, 기가노스는 망설일 것 없이 두 번째 해결책을 발동시켰다.
고고고고!
몸체의 중심부가 굉음을 내면서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고통스럽군.’
사람으로 따지면 장기에 해당하는 부위를 쥐어짜는 듯한 극심한 고통이 느껴졌지만.
정화를 위한 과정이라고 여겼기에 기가노스는 고통을 꾹 참고 견뎠다.
과아아아아!
아까보다 더 강력한 내부의 면역 체계가 발동하고 있었다.
수많은 혈관과 오장육부가 부풀어 오르며, 저마다 각양각색의 기운을 뿜어내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 곧 소란은 끝날 것이다.
* * *
‘역시.’
한편 나는 예상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은 채 흘러가는 양상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것이 모든 것을 꿰뚫고 있는 사람의 여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기가노스가 이런 방법을 선택했고, 대응하려 하는지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왕이라고 다 똑똑한 건 아니지. 하긴, 진정한 왕은 이미 이 자리에 없기 때문일지도.’
바카지에나 행성에서 살고 있는 다른 존재들이 들었더라면 고개를 갸웃거렸을 생각을 했다.
그것은 바로 기가노스의 지금과 관련된 매우 중요한 사실이자, 공개되지 않은 내용이었다.
일단 나는 준비한 대로 흘러가는 상황에 맞춰 확실한 반격의 수단을 준비했다.
그것은 바로.
구우웅- 구웅- 구우웅-!
캐스팅 단계에서부터 격렬한 진동을 일으키며, 언제든 폭주할 준비에 들어가 있는 마법.
바로 쇼크 웨이브였다.
충격파 마법이라고도 불리는 쇼크 웨이브는 영향이 미치는 모든 범위 안의 파장을 요동치게 만든다.
쇼크 웨이브는 생물과 무생물에 대해서 아주 극명한 대미지 기댓값을 가진다.
무생물, 이를테면 돌 같은 경우에는 초월 마법급으로 시전을 해도 멀쩡하다.
아주 작은 돌 부스러기 정도만 흩날리고 끝날 뿐이다. 아무리 데큐플 트랜센던스여도 말이다.
하지만 생물에게는 얘기가 달라진다.
체내에 있는 모든 세포를 뒤흔들어 요동치게 만들기 때문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킨다.
호수나 강, 바다에 사용하면 그 즉시 해일과 같은 격랑을 순식간에 만들어 낼 수 있을 정도다.
하물며 그것이 생체라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정확하게 타격할 수만 있다면!
그야말로 생지옥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바로 쇼크 웨이브였다.
쏴아아아!
아까와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의 대량의 체액이 다시금 쏟아져 내렸다.
이번에는 강산성의 액체였다.
여기에 정면으로 노출된다면 살점은 말할 것도 없고, 1초 만에 뼈도 모조리 녹아 없어질 것이다.
분명 절체절명의 상황으로도 이어질 수 있는 지금이었지만.
“훗.”
나는 웃고 있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기가노스는 너무나 정직하게 내 생각대로 움직여 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