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94
제 94화
35장. 악마 유희 – 2화
“제발…….”
“뭐?”
“제발 죽여 줘……. 내가 잘못했으니까. 정말 잘못했으니까. 제발 부질없는 숨 붙이기는 이제 그만…….”
30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 동안.
나는 한 번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클루제에게 지옥을 선물했다.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게 치유를 반복했고.
몸이 원기를 되찾으면 흘러나온 창자를 움켜쥐고 고통을 주었다.
고문에 가까운 고통 앞에서는 역시 장사가 없었다.
결국 클루제는 술술 자신의 죄를 자백하기 시작했다.
모든 내용은 준비한 영상 장치에 고스란히 담겼다.
잔인한 영상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놈은 사악함으로 똘똘 뭉친 흉악범(凶惡犯)이었으니까.
그의 단죄는 물론이거니와, 그를 단죄하는 현장을 많은 사람이 목격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터업!
“끄윽!”
나는 클루제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들어 올린 뒤, 멸살의 단검을 목젖 앞에 갖다 댔다.
“마지막으로 할 말은?”
“내가 죽더라도 움브라 교단에서는 반드시 네놈에게 복수를 할 것이다.”
“나야 좋지. 암흑 교단은 뼈에 사무칠 정도로 증오하거든.”
“크큭, 저승에서 곧 도착할 네놈을 기다리지.”
“글쎄, 나는 네가 있는 지옥까지 찾아갈 생각은 없는 걸?”
“반드시 네놈을 저주……!”
쇄애애액!
나는 클루제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목의 정중앙을 그어 버렸다.
순식간에 레벨이 5가 올랐다.
드디어 레벨 100이 된 것이다.
[레벨 100을 돌파하여 심안의 업그레이드가 이루어졌습니다. 확인하시겠습니까?]역시나 칼같이 메시지가 떴다.
심안은 50레벨 단위로 성장한다. 다만 업그레이드로 얻게 되는 보너스 효과는 랜덤이다.
나는 바로 확인에 들어갔다.
업그레이드는 이유 불문하고, 늘 기분 좋은 일이니까.
[심안 : 트리플(Triple)] [시각 방해 보정 : (상세 보기)] [약점 분석 : (상세 보기)] [투시 : 상대의 의복, 무장, 가림 따위를 꿰뚫어 보는 절대 시야를 가집니다.상대가 몸에 숨긴 무기나 암기를 찾아낼 수 있으며, 아울러 신체 특징을 감별할 수 있습니다.
단, 투시는 마력이 100 소모됩니다.]
‘투시인가!’
나는 쾌재를 불렀다.
절대! 사적인 호기심을 채울 용도로도 쓸 수 있는 능력을 얻어서 기뻐한 것은 아니었다.
아니, 솔직한 게 좋을까?
사실 조금! 약간! 그 영향이 있기는 하다. 아주 적게 말이다. 정말 아주 적다.
하지만 무의식중에 나도 모르게 시선이 엘라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투시를 발동시켰다.
그러자.
“아앗.”
절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과연 엘라는 우월했다.
‘적당히 하자. 이런 거에 얼굴 붉어질 나이는 지났잖아?’
나는 헛기침을 하며, 잠시 머릿속을 가득 메웠던 음란마귀를 털어 냈다.
고르자스의 목걸이를 끼고 있어도, 억제를 뚫고 가끔 폭발하는 욕구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나는 진지하게 심안의 투시 효과를 제대로 활용해 보았다.
그러자 엘라의 갑주 왼편에 숨겨져 있는 2개의 단도가 보였다.
이것들은 그녀가 비상용으로 늘 장착하고 있는 무기들이었다.
투시(透視).
사실 이 능력은 에서는 반쪽짜리 능력이었다.
시스템상으로는 모든 능력이 구현됐으나, 게임에서는 100% 적용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유는 바로 투시라는 능력 자체가 필연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문제들 때문이었다.
비록 게임의 커스터마이징을 통해 만들어진 가상의 육체라고 해도, 다른 유저의 알몸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분명 논란이 됐다.
당연히 게임 외적으로 사회적인 이슈가 됐고, 그래서 투시 능력은 ‘무기 감지 능력’으로 한정됐다.
하지만 현생에는 그 제한이 적용되지 않고, 태초의 설정 그대로 고스란히 넘어왔다.
‘하긴 여긴 처럼 필터링이나 억제를 할 수 있는 운영진이 없으니까.’
이유는 충분히 이해가 갔다.
또 한 번, 내가 이번 삶에서 누리고 있는 특전을 되새기게 되는 순간이었다.
비록 나는 여전히 엑스트라이긴 하지만…… 내게만 적용되는 특별한 것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특히 심안이나 트랜센던스 마법 같은 것은 내게 정말 많은 도움이 되고 있었다.
‘어디 보자.’
나는 잠시 전장을 살폈다.
마음 같아서는 클루제에게서 빼앗은 멸살의 단검의 옵션을 확인하고, 그가 죽으면서 얻게 된 새 칭호도 확인하고 싶었다.
언뜻 칭호의 이름만 확인해 보니, ‘첫 번째 위기를 극복한 자’라는 타이틀이 걸려 있었다.
보통 이 칭호는 정말 죽을 고비를 넘겼거나, 플레이어의 스토리 진행에서 중요한 위기를 넘겼을 때 주어진다.
그 말인즉슨 시스템이 클루제를 내 ‘첫 번째 위기’로 인식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좋아. 최종 확인은 나중에 하고 우선 악마 유희까지 마저 얻으러 가자. 상황 정리도 할 겸.’
투욱.
나는 아공간을 열어 안으로 클루제의 시체를 대충 밀어 넣었다.
죽일 때도 딱히 예를 갖추지 않은 만큼, 죽은 놈의 체면을 생각해 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후!”
짧고 굵게 심호흡을 한 뒤.
파아앗!
나는 신발 아티팩트인 가파지스의 날개에 내장된 헤이스트 능력으로, 힘차게 전장으로 향했다.
[천인 베기 : 0782 / 1000]아직 제물이 될 218명이 더 필요했다. 그리고 전장에 남아 있는 단원들의 수는 이를 충족시킬 만큼 충분했다!
* * *
얼마 후.
전장을 혼자 휘젓고 다니는 자레드를 보며, 엘라는 크게 놀라고 있었다.
홀로 싸운 것도 놀랍지만, 그가 지나간 자리마다 속절없이 쓰러지는 단원들의 상태 때문이었다.
“상처가 깊어. 언뜻 보기에는 그저 헤이스트를 이용해 접근하면서, 단검으로 쓱 베고 지나간 것처럼 보였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도, 자레드는 마법과 단검을 연계하는 이원화된 공격을 하고 있었다.
문제는 죽은 단원들의 몸에 만들어진 상처가 엘라의 예상보다 훨씬 깊었다는 것이다.
다들 적절하게 갑주를 챙겨 입거나, 보호 마법 따위를 두르고 있는 상태였는데.
그것이 무색하게 자레드는 간결한 동작만으로도 그들에게 깊은 상처를 냈다.
그 때문에 과다 출혈로 죽은 단원의 수가 매우 많았다. 지혈 수준으로는 출혈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설마?”
엘라는 자레드가 상대의 방어력을 크게 낮추는 흑마법 따위를 쓴 것은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자레드는 백마법사.
흑마법사나 주술사가 쓸 수 있는 디버프 마법을 쓸 수 있을 가능성은 없었다.
“…….”
어느 순간부터 엘라와 아그레시오 친위대는 자레드의 일당백 활약을 지켜보는 구경꾼이 됐다.
따로 화력 지원이 필요해 보이지도 않았다.
자레드가 지나간 자리에는 움브라 교단의 단원들이 추풍낙엽처럼 픽픽 쓰러져 갔다.
“정말 영주님은 대단하십니다!”
“전투 마법사, 그중에서도 고위 마법사단급! 그 이상입니다!”
“설마 클루제도 영주님의 손에 죽은 걸까요? 정말로 죽은 걸까요? 그렇다면 이건 정말 엄청난 일이 될 겁니다!”
아그레시오 친위대원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자레드의 엄청난 실력을 칭송했다.
그중에는 제법 예리하게 클루제의 죽음을 알아차린 친위대원도 있었다.
하지만 엘라는 설마 자레드가 클루제까지 죽였을까 싶었다.
그는 움브라 교단의 2인자.
절대로 쉽게 죽일 수 있는 상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너희 대장은 죽었다!”
아공간에서 무언가를 꺼낸 자레드가 단원들이 뭉쳐 있는 한가운데로 그것을 휙 던졌다.
모든 이의 관심이 집중됐다.
엘라, 아그레시오 친위대, 움브라 교단의 단원의 시선이 한데 뭉쳤다.
그리고.
“아아아……!”
단원들은 절규했다.
자신들의 발밑에 볼썽사납게 구르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클루제의 머리였기 때문이다.
그것도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입을 벌린 채로 절명해 버린 클루제의 수급(首級)이었다.
“미친, 진짜 클루제를 죽였어?”
그 광경에 놀란 것은 지켜보던 엘라도 마찬가지였다.
라디우스 교단에서 괜히 클루제에게 현상금을 건 것이 아니었다.
그간 그를 죽이고 싶어 한 사람은 많았지만, 제거 시도가 모조리 실패했기 때문이다.
클루제가 가진 반지와 단검의 아티팩트 힘에 유린당한 희생자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렇게 고생을 하면서도 죽이지 못한 클루제를 자레드는 단번에 끝내 버린 것이다.
“항복할 생각은 하지 마라! 어차피 살려 줄 생각도 없으니까. 너희들이 죄 없는 백성들을 상대로 벌인 악행은 죽음 이외에는 절대 치를 수 없는 죗값이다.”
자레드의 사형 선고에 잠시나마 기대를 품었던 단원들의 표정은 싸늘하게 식어 버렸다.
“간다!”
본격적인 쇼 타임이 시작됐다.
감히 범접조차 할 수 없을 자레드의 움직임과 마법, 그리고 단검의 현란한 춤사위 속에서.
“끄윽!”
“커헉!”
“으악!”
생명의 불씨는 그렇게 사방팔방에서 빠르게 꺼져 갔다.
그것은 도망칠 출구도, 살아날 구멍도 전혀 없는 지옥행 특급 열차였다.
* * *
[천인 베기를 달성하였습니다! 칭호 ‘천인 베기 – 어둠 사냥꾼’을 얻었습니다!] [칭호와 함께 아티팩트 ‘악마 유희’를 획득하였습니다!]전투의 끝자락에 다다랐을 무렵, 나는 자연스럽게 칭호의 조건을 달성할 수 있었다.
천인 베기를 달성하자마자 내 손에 자연스럽게 악마 유희가 손에 쥐어졌다.
안팎으로 모두 흑색으로 세공이 된 반지로, 무광택이라 더 싸늘하고 차갑게 보이는 반지였다.
[악마 유희의 봉인을 풀기 위해서는 식지 않은 악인의 피가 필요합니다.]‘그거야 문제없지.’
나는 아공간에서 클루제의 시신을 반쯤 꺼낸 뒤, 옷에 잔뜩 묻어 있는 핏물에 반지를 적셨다.
[봉인이 해제되었습니다.]그러자 봉인이 순식간에 풀렸다.
클루제가 꽤 실력 있던 악인이었던 만큼, 봉인 해제도 신속하게 이루어진 모양이었다.
봉인이 풀린 악마 유희 반지를 왼손가락에 끼웠다.
옵션이 너무 궁금했다.
[악마 유희] [분류 등급 : 7성] [옵션 1 : 마력 500 증가] [옵션 2 : 근력 100 증가] [옵션 3 : 체력 100 증가] [옵션 4 : 물방 50 증가] [옵션 5 : 마방 50 증가] [옵션 6 : 특수 해독법 – 치명적인 독초로 말미암아 생긴 중독 현상을 즉시 해제할 수 있습니다. 쿨타임 12시간] [옵션 7 : 악마 유희 – 추가 퀘스트를 달성할 때마다 아티팩트 등급이 1성씩 올라가며, 1번부터 5번 옵션까지의 스탯 상승폭이 2배 증가합니다.]‘만인 베기 8성, 십만인 베기 9성, 백만인 베기 10성, 천만인 베기 초월. 이런 식이지.’
옵션을 확실하게 이해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크고 작은 전쟁을 꾸준히 치러야 하고, 또한 전쟁이 필수 요소인 내게는 어쨌든 좋은 아티팩트다.
물론 천만인 베기 같은 ‘인류 대학살’에 가까운 옵션은 달성하기 어렵겠지만 말이다.
“공작님!”
그때.
엘라가 얼굴에 잔뜩 화색을 머금은 채로 내게 달려왔다.
과정이야 어찌 되었건 간에 교단의 오랜 숙원이던 클루제를 제거해서 그런지 그녀는 나보다 훨씬 더 기뻐하는 모습이었다.
“정말 믿기지 않아요. 어떻게 클루제를 죽일 수 있었던 거죠?”
“그것 또한 실력일 뿐.”
나는 그녀의 질문을 짧고, 굵게 답해 주었다.
대답 그대로다.
나와 클루제 사이에 넘을 수 없는 힘의 격차가 있었으니까.
‘미래에 큰 변화가 될 수 있는 첫 번째 변곡점이 만들어졌어.’
나는 내 손끝에 묻어 있는 클루제의 핏물을 보며,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에서는 성마 대전 발발 이후, 상대하기 까다로운 네임드로서 집요하게 플레이어를 괴롭혔던 그였다.
오죽하면 클루제라는 이름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킬 정도였을까.
그만큼 메인 스토리 진행에 있어서 수시로 치고 빠지기를 반복하며, 플레이어를 수시로 골탕 먹였던 것이 클루제였다.
하지만 클루제가 사라졌다.
미래의 위험 요소 하나가 확실하게 사라진 것이다.
“라디우스 교단에서 자레드 공작님의 공을 크게 치하할 겁니다! 정말 골칫거리였던 녀석을 보란 듯이 죽여 버렸으니!”
엘라의 말은 사실이었다.
라디우스 교단의 오랜 숙적.
클루제를 죽인 처단자로서의 영광은 모두 내가 갖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