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95
제 95화
35장. 악마 유희 – 3화
누가 봐도 골동품을 팔고 있는 상점처럼 보이는 건물.
아기자기한 크기로 3층을 쌓아 올린 골동품 상점에는 여주인과 그녀를 찾아온 한 남자가 있었다.
새로운 물건은 연례행사처럼 연초에나 한 번 들어오는 터라, 찾아오는 손님은 거의 없었다.
가끔 이곳을 처음 방문한 뜨내기들이 호기심에 잠깐 문을 열어 보기는 했다.
하지만 그랬다가 입구에 자욱한 먼지를 보고 바로 발길을 돌릴 정도로 상점의 관리 상태는 엉망이었다.
상점에서 유일하게 깨끗한 것은 여주인의 옷차림뿐이었다.
하지만 깨끗할 뿐, 딱히 특별할 것은 없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으로 통일한 원피스 복장이었으니까.
린.
사람들은 상점의 여주인인 그녀를 보통 그렇게 불렀다.
하지만 상점을 찾아온 남자가 부른 호칭은 조금 달랐다.
“교주님.”
“편하게 불러. 사석이잖아.”
“그래, 린크스나.”
“흑사마귀. 너는 매번 내 이름을 부르는데, 나는 네 이름을 부르지 못하네?”
“흑사마귀, 그게 내 이름이야.”
“어떻게 그게 이름이야? 별명이지. 이참에 그럴듯한 가명이라도 하나 짓는 건 어때?”
“네가 ‘명령’한다면 듣겠지만, ‘권유’한다면 사양하지.”
“호호호, 한결같네. 됐어, 나도 몇 년을 흑사마귀라고 불렀더니, 이제는 그게 익숙해.”
두 사람의 공식 관계는 움브라 교단의 교주와 교주 직속의 흑사단을 운영하는 흑사단장이었다.
하지만 서른의 동갑내기였기에 사석에서는 말을 편하게 놓는 사이였다. 어디까지나 사석에서만.
흑사마귀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무겁게 운을 뗐다.
“클루제가 죽었다.”
“알아. 소식 전해 들었어. 이번에도 자레드, 그놈이지?”
“응. 아티팩트를 빼앗긴 것도 모자라 머리는 효수되고, 시체는 저잣거리에서 조리돌림을 했더군.”
“자레드가 움직일 때는 사전 보고를 하라고 했거늘……. 멍청하게 섣불리 움직인 놈의 업보지.”
린크스나가 입술을 삐죽이며, 붉은빛 긴 머리를 쭉 쓸어내렸다.
교단의 부교주가 죽은, 움브라 교단으로서는 대사건이었지만.
그녀나 흑사마귀의 표정에는 이상하리만치 변화가 없었다.
“충성 맹세는?”
“받아 뒀어. 클루제 파벌은 백기 투항이야. 어차피 걔네들도 클루제를 처음부터 싫어했어. 어쩔 수 없이 따른 것뿐이지.”
“교단의 주축을 잃고 세를 결집하는 효과라. 아이러니하군.”
“원래 삶이 그래. 교단도 결국은 사람이 엮여 있는 곳이잖아? 그나저나 부교주 자리는…….”
“거절하지. 난 지금처럼 음지에서 활동하는 것이 좋다. 부교주의 직위는 4순위인 바이스에게 맡기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바이스 언니는 잔소리가 심해! 부교주에 앉히면, 옆에 항상 재잘거리는 앵무새를 달고 다니는 꼴이 될 텐데?”
“그래도 대외적으로 완벽히 위장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이잖아. 가장 좋다고 본다.”
“정말 부교주 자리는 생각이 없는 거야?”
“감투가 싫다. 흑사단을 통솔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한계치는 넘은 상태고.”
“좋아. 그럼 그렇게 하는 것으로 하고. 자레드에 대한 계획은?”
“일단 클루제처럼 정신 나간 헛짓거리는 안 할 거다. 모든 외부 활동을 중단하고, 자레드의 모든 것을 조사할 거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하나도 남김없이.”
아이라인이 짙게 그려진 흑사마귀의 두 눈이 차갑게 빛났다.
핏기 없는 하얀 얼굴.
대조적으로 선명한 흑발.
그리고 깊은 아이라인까지.
흑사마귀라는 별칭이 누구보다도 잘 어울리는 그의 모습이었다.
“라디우스 교단에서 사나레 성지를 공식으로 선포한 모양이야. 앞으로 많은 이의 관심이 그쪽으로 쏠릴 거야. 당분간은 자극을 자제하도록 해.”
“물론.”
“클루제는 처음부터 필요 없었어. 하지만 흑사마귀, 넌 잃고 싶지 않아. 그러니 무리하지 마.”
“까짓것 내 목숨이 뭐라고.”
“그냥, 아주 가끔 그런 생각이 들어. 신은 과연 존재하는 걸까 하고. 단지 암흑 교단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우리는 너무 많은 사람을 잃었어.”
“신? 글쎄, 그건 믿기 나름 아닐까. 남들이 믿는 신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믿는 신은 지금 내 눈앞에 있을 뿐이다.”
“어머, 뭐야! 작업 멘트야?”
흑사마귀의 돌직구에 가까운 단어 선택에 린크스나가 얼굴을 붉혔다.
“오래된 생각이야. 남 듣기 좋으라고 하는 빈말은 내 성격 아니다.”
꿀꺽. 꿀꺽.
흑사마귀가 앞에 놓인 찻잔 속에 담긴 차를 단숨에 비웠다.
“자레드에 대한 완벽한 조사가 끝날 때까지는 날 찾지 마. 바쁠 것 같으니까.”
“바쁜 척하기는. 어차피 나도 내일이면 던전 공략에 들어가.”
“거미 여왕 모르지나의 던전 말인가?”
“응, 거기서 레드 퀸을 만날 거야. 같이 공략을 하기로 했거든.”
“조심해라. 그 여자와 부하들도 숨기는 것이 많은 사람이다.”
“뭐, 한두 번 해 보는 간 보기도 아니고. 걱정 마.”
“넌 움브라 교단의 교주다. 기둥이라는 얘기지. 네 몸을 함부로 해선 안 된다.”
“이놈의 잔소리는 정말……! 됐어! 갈 길이나 가! 얼른!”
“그래, 간다.”
대화는 그렇게 일단락됐다.
흑사마귀가 순식간에 자리를 비우고, 이내 상점에는 린크스나 혼자만이 남았다.
“자레드, 자레드, 자레드…….”
그녀가 자레드의 이름을 연신 되뇌며, 펼쳐 놓은 종이 위에 그의 이름을 계속 적고 또 적었다.
신데르스 왕국에서 벌였던 공작이 성공만 했다면, 이를 기점으로 탄탄대로를 걸을 수도 있었던 교단의 행보였다.
하지만 자레드가 모든 것을 무너뜨려 버렸다. 심지어 부교주의 목숨까지 빼앗아 갔다.
“반드시 죽이겠어.”
그녀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얼마나 깊은 살기가 배어 있었는지, 이내 찢어진 입술을 따라 붉은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앞으로 자레드의 이름은 두고두고 그녀의 머릿속에 남아, 한참을 괴롭힐 듯했다.
* * *
[아그레시오 친위대원 카슨의 충성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충성도 50이 올랐습니다!충성도가 200이 되어, ‘1차 각성’ 상태에 돌입합니다!]
‘도대체 1차 각성 알림 메시지가 몇 개나 뜨는 거야?’
영주 저택으로 돌아온 나는 밀린 메시지를 읽느라 정신이 없었다.
보통 주요 가신에 대해서만 메시지가 표시되도록 했기에 친위대원의 충성도를 볼 일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암흑 교단의 수괴 중 하나인 클루제를 죽인 데다가 효수를 통해서 영주의 위엄을 크게 보였으니!
혹시 영지군이나 친위대원들에게 어떤 심경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을까 싶어, 아주 잠깐 메시지 공개 범위를 확대했던 것이다.
그 찰나의 순간에 사고가 터졌다!
폭탄 문자가 들이치듯 폭탄 알림이 쏟아졌다.
때문에 엘라와 함께 사나레 지구에 필요한 물자들을 모두 수송하고 난 뒤, 돌아오는 길에 줄곧 메시지 확인만 해야 했다.
고되기는 했지만, 사실 마음은 매우 뿌듯했다.
게다가 엘라도 이번의 일로 약간의 충성심이 올라서, 더더욱 기분이 좋았다.
다만 충성도 상승이 더딘 탓인지, 아직까지 엘라는 내 가신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마치 객장(客將) 같은 느낌이랄까? 그런 심리적 거리감이 있다.
그렇다고 또 나를 쉽게 떠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아그레시오 친위대의 훈련과 지휘를 맡았다는 것만으로도, 우리 영지에 어느 정도 뿌리를 내리겠다는 그녀의 속마음을 얼추 읽을 수 있었기에.
“휴, 이제 끝났네.”
드디어 길고도 길었던 친위대원들의 알림 메시지 확인이 끝났다.
친위대원 중에 2할 이상이 이번에 모두 1차 각성 상태에 들어갔다.
아마 각성이 완료되고 나면, 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훌쩍 성장해 있을 것이다.
직속 친위대가 강해진다는 것만큼 나를 기쁘고 행복하게 만들 소식은 없다. 큰 기대가 됐다.
“그나저나 클루제 놈, 참 좋은 아티팩트를 가지고 있었군. 아티팩트가 주인을 잘못 만난 케이스지만.”
나는 이제야 멸살의 단검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진즉에 확인했어야 했는데!
수송 마무리에 메시지 확인까지 줄줄이 하느라 9월 1일 새벽이 된 지금에야 처음 보게 됐다.
[멸살의 단검] [분류 등급 : 5성] [옵션 1 : 근력 100 증가] [옵션 2 : 민첩 75 증가] [옵션 3 : 체력 25 증가] [옵션 4 : 단검을 활용한 모든 공격을 100% 확정 크리티컬 히트(치명타)로 만듭니다.] [옵션 5 : 크리티컬 히트의 대미지는 최소 2.5배에서 최대 15배입니다.]‘암살 특화 아티팩트네. 클로이에게 주면, 여차하면 나도 목숨이 온전치 못하겠군.’
나는 자리에도 없는 클로이를 떠올리며, 괜히 목 근처를 쓸어내렸다.
클로이에게 적합한 아티팩트이기는 하지만, 내가 사용해도 효과는 좋은 아티팩트다.
무엇보다 중복 부위에 해당하는 아티팩트가 없어, 착용하면 스탯을 끌어올릴 수 있다.
아티팩트는 다다익선.
나는 바로 멸살의 단검을 허리춤에 찼다. 그러자 옵션에 맞게 스탯이 추가되어 올라갔다.
‘오늘로 나스 대륙력 1415년 9월 1일. 현생을 시작한 지 정확히 20개월째인가?’
부우우욱!
달력의 8월 부분을 찢어 냈다.
이렇게 또 일 년의 삼분의 이가 지나갔다.
나는 그간 꼼꼼하게 체크하지 못했던 스탯창을 살폈다.
레벨 100이 되는 과정에서 얻은 보너스 스탯 25는 바로 마력에 투자했고.
[자레드 – Lv. 100] [근력 : 310][체력 : 225] [마력 : 6,733][지혜 : 410] [민첩 : 165][매력 : 305] [물방 : 330][마방 : 996] [신성력 : 150] [잔여 스탯 : 0]‘이제 마법은 3클래스까지 사실상 면역이네. 전투 마법사단에 소속된 하급 마법사들로는 내게 상대도 안 되겠군.’
나는 곧 1,000의 달성을 눈앞에 둔 마법 방어력 수치를 흡족하게 바라보았다.
버그 수련법을 착실히 수행해 온 덕분에 마법 방어력은 꾸준히 상승하고, 또 상승하는 중이었다.
‘마력에 좀 더 욕심이 나네.’
꽤 높은 마력 수치임에도 불구하고, 마력에 대한 갈증은 전보다 더 강해졌다.
트랜센던스 마법 때문이다.
당장에 1클래스 마법 매직 미사일도 데큐플 트랜센던스를 적용하면 1만의 마력을 소모한다.
그래서 현재 7천에 육박하고 있는 마력 수치도 전혀 많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당분간 모든 아티팩트의 관심사와 목표 의식은 ‘마력’에 둘 생각이었다.
그래야 쌓이는 적수만큼, 그리고 성장하고 있는 다른 주인공들만큼이나 나도 강해질 수 있을 테니까.
‘첫 번째 위기를 극복한 자.’
이제 칭호 확인이 남았다.
플레이어에게 중요한 변곡점이 생길 때, 시스템이 자체적으로 판단해서 주는 것으로 알려진 칭호.
보상도, 내용도 항상 제각각이기 때문에 살짝 긴장이 됐다.
혹시라도 ‘암흑 교단과 전면전을 벌이시오.’처럼 뚱딴지같은 칭호 관련 연계 퀘스트가 나오면 어떡하나 싶어서였다.
절대 망상이 아니다!
에서는 실제로 이 칭호에 꼬여서, 성장이 막히거나 육성 노선을 바꾸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으니까.
[칭호 ‘첫 번째 위기를 극복한 자’를 획득하였습니다!] [칭호 획득에 따라 보상으로 ‘트리스티스 아일랜드’의 지도 일부를 얻었습니다!]“응, 뭐라고? 트리스티스 아일랜드?”
갑자기 툭 하고 튀어나온 지도의 등장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트리스티스 아일랜드.
나스 대륙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섬으로 ‘나스 대미궁’이라고 불리는 대륙 최대 규모의 던전이 있는 곳이었다.
미궁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내부의 복잡한 구조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었다.
한데.
지금 내게 주어진 것은 바로 이 미궁의 일부를 파훼할 수 있는 지도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