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97
제 97화
36장. 원하신다면, 있어 드리죠 – 2화
어이가 없다기보다, 너무 티가 나는 밀당을 하는 것 같아서 웃음이 나왔다.
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지만, 클로이는 영문을 모르겠는지 차갑게 눈빛만 밝힐 뿐이었다.
이참에 클로이의 스탯을 확인해 보기로 했다.
가신 혹은 동료들의 성장은 곧 나와 내 영지 전력이 상승하는 것을 뜻하기 때문에, 이들의 스탯을 파악해 두는 것은 매우 중요했다.
[클로이 – Lv. 119] [근력 : 203][체력 : 122] [마력 : 25][지혜 : 34] [민첩 : 701][매력 : 31] [물방 : 41][마방 : 21] [특수 성향 : 절대 은신 SS / 위장술 S / 약점 분석 A / 비도술 B] [일반 성향 : 호감, 혼란] [아티팩트 ‘트란퀼루스의 군화’를 보유 중입니다.] [아티팩트 ‘암살의 스텔라드 단검’을 보유 중입니다.]‘지난번에 가파지스를 공략하고 얻은 스텔라드 단검이 확실히 스탯을 많이 올려 줬네.’
암살의 스텔라드 단검에 대한 옵션을 살펴보니 민첩 200, 근력 100, 체력 25의 옵션이 붙어 있었다.
여기에 비도술에 대한 깨달음이 붙어 있고, 마력 5를 이용해 날린 단검을 회수할 수 있는 기술도 탑재되어 있었다.
아마 클로이는 단검을 장착하는 순간,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이 기술에 대한 지식이 주입됐을 것이다.
다만 내게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는 것으로 봐서는 매사에 조심하는 그녀의 성격답게,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던 듯했다.
‘약점 분석도 B에서 A로 올랐고. 이 정도면 A급 무장이라고 해도 돼. 3클래스 마법사 정도는 기척을 들키기도 전에 쥐도 새도 모르게 암살할 수 있는 실력이야.’
압도적으로 높아진 민첩 수치가 눈에 띈다.
처음의 클로이를 생각하면 정말 상상도 못 할 정도의 성장이다.
그녀가 내 곁에 있으면 던전 공략의 필수 전력으로 도움이 된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녀가 호응해 준다면 적국의 요인(要人)을 암살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용 가치가 매우 높다는 얘기다.
‘그래, 그녀가 필요해. 자존심이 뭐가 중요해? 이럴 때는 시원하게 고개 숙이고 들어가는 거지! 진심을 담아서 말이야.’
유능한 가신을 갈망하는!
삼고초려의 일화에 내 정신과 육체를 모두 빙의시킨 뒤, 나는 진심을 담아 클로이에게 말했다.
“클로이, 네가 정말 필요해. 허락되는 시간까지 내 곁에 있어 줘. 나와 내 영지에 보탬이 되어 줬으면 해.”
“제가 정말 필요한가…… 요?”
되묻는 클로이의 말끝이 살짝 떨렸다.
입가도 파르르 떨렸고, 어찌 된 영문인지 나와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치려 하지도 않았다.
부끄러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뭔가 나와 마주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그녀의 속내를 모두 들여다볼 수 없으니 미루어 짐작할 뿐이지만…… 분명한 것은 뭔가 고민을 하는 것 같다는 사실이었다.
“응, 정말 필요해. 너처럼 은신이나 암살, 위장에 특화된 사람이 내 곁에는 아무도 없어. 그리고 한 가지.”
“한 가지?”
“내 조언뿐만 아니라, 네게 더 좋은 스승이 될 수 있는 사람을 꼭 찾아줄게. 1년 안에, 반드시!”
“정말입니까?”
“난 거짓말 안 해. 엘라보다 네게 더 많은 노하우를 가르쳐 줄 수 있는 스승일 거야.”
나는 확실한 승부수를 던졌다.
포르미도(Formido).
현재 70세의 노인이지만, 평생을 어쌔신의 길을 걸어 극의에 도달한 인물이다.
애석하게도 성마 대전이 발발하는 1424년에는 없다. 그 해에 79세의 나이로 병사해서다.
의 메인 퀘스트 도중에 한 줄의 언급으로 나오는 인물이지만, 나는 그에 관련된 비하인드 스토리를 유심히 살폈었다.
나도 를 무척 사랑하는 다른 유저들만큼, ‘스토리 덕후’라고 불릴 정도로 이야기를 정말 좋아했기 때문이다.
다만 포르미도를 꾀어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내기를 해야 하는데, 내기의 베팅 수단이 목숨이다.
목숨을 걸고 내기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지면 죽고, 이기면 그가 소원을 들어주는 식이다.
스토리에서는 나와 비슷한 생각으로 그를 회유하러 찾아갔다가 비명횡사한 사람이 족히 300명은 넘는다고 했다.
그리고 그중에서 포르미도에게서 10보 이상 도망친 사람이 없었다고 했으니! 그의 실력을 미루어 짐작해 볼 만했다.
“음, 음…….”
“속는 셈 치고 내 곁에 있어 봐. 정말 많은 경험을 하게 해 줄 테니까. 여왕님 수업이라고 생각하고. 어때?”
“여왕님? 제게는 오라버니가 둘 있습니다. 그분이 왕위를 훗날 이으시겠죠.”
아냐, 그 사람들.
결국엔 죽어.
이 말을 차마 클로이에게는 할 수 없었다. 나는 그녀의 말을 부정하지 않고 흘려버렸다.
“일단 1년, 어때? 1년만 있어 봐. 그 뒤에는 네 선택에 맡길게.”
“정 그렇게 원하신다면…… 있어 드리죠.”
“좋았어!”
드디어 클로이가 승낙했다.
소중하지 않은 동료와 가신이 어디 있겠냐마는!
스토리상 정말 중요한 인물인 클로이가 내 곁에 있게 됐다는 사실은 정말 기뻤다!
훗날 성마 대전에서 주인공의 든든한 조력자가 되기 때문이다. 그녀뿐 아니라, 그레이 엘프와의 우호 관계는 그래서 매우 중요했다.
“잘해 보자, 클로이.”
“저야말로.”
들뜬 마음으로 악수를 청하는 내 손을 클로이가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잡았다.
그때, 나는 생각 이상으로 얼음장처럼 차가운 클로이의 손길에 깜짝 놀란 소리를 냈다.
“앗.”
“손이 좀 찰 겁니다.”
“클로이, 평소에 손이 많이 차?”
“네.”
“얼마 전에 아티팩트 세공하면서 남은 마정석과 부재료로 만든 목걸이가 있는데, 줘야겠네!”
“그게 무슨?”
“이거야. 받아 둬. 아기자기한 목걸이인데 약한 치유 효과에 온열 효과도 함께 있는 목걸이야.”
나는 목걸이를 건넸다.
등급으로 따지면 1성급밖에 안 되는 녀석으로 별도의 스탯 옵션 없이, 약한 치유력과 따스함을 머금은 목걸이다.
전투용으로 쓰기는 힘들고, 평상시에 체력 및 체온 관리용으로 차면 딱 어울릴 수준이다.
“이런 건, 딱히 필요 없는데요.”
“알아. 그래도 가지고 있어 봐. 나중에 없다고 아쉬워하지 말고.”
“…….”
“내 곁에 있어 주기로 한 네게 건네는 작은 선물이야. 내 손이 민망하지 않게 해 줘.”
“정 그렇다면.”
클로이가 마지못해 받는 듯한 표정으로 목걸이를 주머니 속에 쓱 밀어 넣었다.
내심 목에 걸어 보기를 바랐는데, 그럴 생각은 들지 않는 모양이다.
역시 침묵의 여왕, 냉정의 여왕답다니까.
바꿔 말하면 멋대가리도 없고, 눈치도 더럽게 없다는 뜻이다!
“내일도 예정대로 훈련은 진행하는 거다. 알았지? 오늘만 휴일인 거, 명심해!”
“네.”
“내일 보자고!”
클로이답게 마지막 대답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신하고, 은발의 머리칼을 흩날리며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찰나의 순간, 고개를 돌리면서 나와 마주친 호박색의 눈동자가 또렷하게 박혔다.
잠깐이지만, 볼 수 있었다.
드러내진 않아도, 속으로는 좋아하는 그녀의 따뜻한 눈빛을.
이렇게 나는 한 명의 가신을 공식적으로 더 늘릴 수 있게 되었다.
그레이 엘프 종족에게 갑작스런 변고가 생기지 않는다면, 그녀는 당분간 무조건 내 곁에 있을 것이다.
* * *
그로부터 5분 후.
“어?”
땀이 비 오듯 흐르는 고된 신성력 수련을 마친 뒤.
헤이즈는 데리를 데리고 휴식과 산책을 겸해서 잠시 나와 있었다. 시원한 밤바람을 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집무실을 나와 밖으로 향하는 클로이를 우연히 볼 수 있었다.
아는 체를 할까 싶었지만, 고된 수련에 몸이 녹초가 된 터라 인사는 하지 않고 쳐다보기만 했는데.
“음음, 랄랄라. 음음음.”
‘오잉?’
옆에서 헤이즈가 노래 한 소절만 흥얼거려도 차가운 눈빛을 날리던 클로이가 웬일인지 콧노래를 부르며 걷고 있었다.
반짝. 반짝.
그런데 집무실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던 목걸이가 하나 보였다.
클로이는 그것을 손으로 꼭 감쌌다가, 입술에 맞추기도 했다가, 열심히 만지작거리기도 하면서 무척이나 즐거워하고 있었다.
‘뭐야, 쟤……. 꼭 무슨 사랑에 빠진 소녀 같은 모습이잖아?’
헤이즈는 적잖이 놀랐다.
저렇게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녀의 표정 대부분은 무표정, 무뚝뚝 이었고, 그녀는 그야말로 냉정의 대명사였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헤이즈는 당장에라도 달려가서 무슨 일인가 물어보고 싶었지만, 참기로 했다.
남녀 가릴 것 없이, 누구든 자신만 알고 있는 행복이 소중하고 특별하게 느껴질 때가 있기 마련이니까.
헤이즈가 사나레 지구에서 자레드와 함께 전염병 환자들의 치료를 돕다가, 그에게서 짜릿한 키스를 받았듯이 말이다.
다만 클로이가 기뻐하는 저 선물은 100% 자레드에게 받은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뒷맛이 씁쓸했다.
‘왜 이리 영주님께는 예쁘장한 애들이 꼬이냔 말이야!’
헤이즈가 입술을 삐죽였다.
푹! 푹!
헤이즈가 애먼 잔디 위에 성난 발길질을 하며, 소심하게 분풀이를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냐, 나는 늘 하던 대로 하면 돼. 영주님을 위해서 더 열심히 수련하고, 강해지면 되는 거야!’
이내 생각을 간결하게 정리한 헤이즈가 다시 수련실로 향했다.
오늘은 밤샘 확정이었다.
수련실 창밖으로 집무실의 자레드를 내려다보며, 집중하는 신성력 수련은 언제나 즐거우니까.
귀여운 고양이 데리와 함께 지새우는 밤 또한 심심하지 않다.
헤이즈는 시간을 쪼개어 가며 노력하고, 또 노력하고 있었다.
다른 동료들에 비해, 실력에서 절대 뒤처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디바인 포(Divine Four).’
헤이즈의 다음 목표였다.
이를 달성하기 전까지는, 하루 4시간 이상은 절대 자지 않을 생각이었다.
정말 독기를 가득 품고, 악착같이 수련하고 있는 헤이즈였다!
* * *
클로이가 떠난 후, 4시간 동안.
나는 파견한 첩보원들로부터 입수한 보누스 왕국과 말루스 왕국의 정보 서류를 꼼꼼하게 훑었다.
‘이젠 켈디아를 본격적으로 채굴할 때가 된 것 같다.’
철보다 강한 금속.
켈디아의 채굴이 필요해졌다.
우리 영지의 미래를 그린 청사진을 바탕으로 한 계산이 어느 정도 섰기 때문이다.
나는 다양한 정보 중에서 두 왕국의 국정 운영 상태, 그리고 해안가와 그 일대의 도시에 배치된 병력의 규모가 어떤지를 집중적으로 살펴봤다.
‘앞으로 영지 규모를 확장하려면 부동항(不凍港)은 필수야. 마그눔 해협과 연결된 메이트 항구의 앞바다는 한겨울에는 얼어 버리니까.’
나는 두 왕국이 보유하고 있는 얼지 않는 항구인 부동항과 그 해안 도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은밀히 켈디아를 채굴해서 기습적으로 무기를 대량생산한 뒤 그들이 대비하기 전에 신속하게 해안 도시와 항구를 전부 장악하는 거야.’
그럴듯한 계획도 세워 놨다.
그것은 바로 이 세계에서 아직 나를 제외한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특수한 지식!
철보다 강한 금속인 ‘켈디아’에 대한 독점 지식을 이용, 두 나라와의 전투에서 압도적 우위를 가져가기 위한 노림수 장전이었다.
‘버그와 꼼수뿐만이 아니라 독점 지식으로도 꿀을 빨아야 진정한 꿀이지! 현생에서 다시 새 삶을 사는 보람이 있도록, 나는 늘 전진하고 또 전진해야 해.’
나는 다시금 의지를 다졌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각자 어딘가에서.
저마다의 화려한 미래를 만들어 가기 위해.
아무도 모르게 신의 가호와 후원을 받으며 성장하고 있을 주인공들을 떠올리며 말이다.
‘나보다 더 마왕과 그의 군대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없으니까!’
이것이 바로 내 자신감의 근원이자, 앞만 보고 미친 듯이 질주하는 도전의 이유였다.
나만이 이 세계의 모든 것을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