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culus of Joseon RAW novel - Chapter 208
208화 천강홍의장군(天降紅衣將軍)
“왜놈들이 낙동강을 넘었습니다.”
척후장 양업손의 보고에 이희춘과 최윤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일본군이 접근해온다는 사실을 그들이 낙동강을 넘기 전부터 정기룡에게 보고한 뒤였고, 정기룡은 예상대로의 명령을 내렸다.
워낙 많은 병력이 출진했다. 이 많은 병력을 수직적이고 일률적으로 통솔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렇기에 도원수 정기룡과 육군 총사령관 신립이 큰 지침을 하달하면, 각 군의 장(長)이 현장에서 개별적인 판단을 하기로 사전에 약속했다.
“아군에게 피해가는 일 없도록 해라. 왜놈들 녹인다고 우리들까지 걸레 만들지 말고.”
“형님은 바람이나 잘 체크하쇼.”
이희춘이 최윤에게 주의를 주자, 최윤은 되레 이희춘에게 핀잔을 준다. 최윤은 일본군이 최대한 접근할 때를 기다려 화학탄을 쏠 예정이었다.
낙동강을 넘어 서쪽 고령으로 이어지는 길은 좌우로 길게 산이 뻗어 있었다. 그 길로 일본군 5천 명이 조심스레 진격하는 중이었다.
먼저 이희춘이 기병 100기를 이끌고 그들을 향해 달려갔다. 일본군은 조선의 기병을 의식했는지 일제히 일사분란하게 산개했다. 그를 확인한 이희춘은 곧바로 말머리를 돌려 본진으로 돌아왔다.
이희춘, 한명련, 김덕령이 이끄는 선봉대의 병력은 각각 천 명이었다. 그 중 기병은 선봉대 병력의 1할 수준인 100기뿐이었다. 전통적인 방식의 기병을 축소하고 기갑부대를 구성한다고 기마를 전부 그쪽으로 보냈기 때문이었다. 대신 선봉대의 반 이상은 지리산에서 제조한 총포로 무장했다.
“바람아, 불어라!”
“진짜 제갈공명 흉내라도 내십니까?”
이희춘이 양팔을 들고 허공을 바라보며 주문을 외우자 최윤이 피식 비웃었다.
그들은 사전에 오랫동안 낙동강 주변의 습도와 풍향, 풍속 등을 측정해왔다. 습도는 한지의 축축한 정도로, 풍향은 풍향계를 제작하여, 풍속은 소가죽 몇 장을 겹쳐 펄럭이는 정도로. 이런저런 자원과 물품이 부족한 조선시대에서 이들은 나름대로 기지를 발휘해 할 수 있는 만큼 전공을 살렸다. 그리고 그를 토대로 통계 자료를 만들어 열심히 분석하고 있었다.
그런데.
“강 주변의 바람은 조석(朝夕)으로 그 방향이 바뀝니다. 아마…… 잠시 뒤면 바람의 방향이 바뀌게 될 겁니다.”
며칠 전에 곽재우가 소개한, 평생을 낙동강에서 사공 일만 했다던 허 노인은 그렇게 말했다.
“그것을 어찌 아십니까?”
“몸이 알고 가슴이 알고 있습니다.”
“…….”
허 노인은 지식이 경험을 따를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리하여 이희춘과 최윤은 하던 측정을 때려 치고 허 노인의 말을 따르기로 했었다.
동쪽을 바라보았을 때 좌측 산 너머에는 한명련의 선봉대 2군이, 우측 산 너머에는 김덕령의 선봉대 3군이 대기하고 있었다. 한명련과 김덕령은 적군과 가벼운 접전을 벌여가며 더는 적군이 흩어지지 않도록 잡아나가는 중이었다. 간혹 그들이 일본군을 몰이해가며 쏘아대는 소총 소리가 천지에 울려 퍼졌다.
“언제쯤입니까?”
“아직 조금 더 기다리셔야 됩니다.”
일본군의 기세는 제법 흉흉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신중했다. 그들은 철저하게 수색과 전진을 반복했고, 어느덧 서쪽 깊숙한 곳까지 파고 들어왔다. 이희춘과 최윤은 이대로라면 본인들이 세운 계획과 어긋나게 될까봐 괜히 조바심이 일었다.
해가 지고 조금 어수룩해질 무렵.
“지금입니다! 이제부터 바람의 방향은 강 쪽을 향할 겁니다.”
허 노인의 말에 이희춘과 최윤의 얼굴이 밝아졌다.
뿌우우웅―!
이희춘은 나팔수에게 나팔을 불게 했고 기수에게 깃발을 흔들게 했다. 그러자 한명련과 김덕령의 선봉 2군과 선봉 3군은 일제히 하던 동작을 멈추고 서쪽 산 아래로 내달렸다.
“쏴라!”
이어 최윤은 산과 평지 여기저기에 백린탄과 비몽포, 찬혈비사신무통을 마구 쏴댔다. 그 바람에 진격하던 일본군 5천 명 중 반수 이상이 곤죽이 되어 녹아버렸고, 비명소리마저 제대로 내지 못한 채 쓰러져만 갔다.
고바야카와 히데카게와 다치바나 무네시게, 다치바나 나오쓰는 군사를 수습해 달아나려 했다.
하지만.
드르륵, 쿠쿠쿵―!
“으아아악―!”
일본군이 화학탄을 피해 산자락 아래로 도망쳤지만, 그곳엔 조선군이 미리 설치한 함정이 일본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함정이란 요란한 굉음을 뿌리며 땅속에서부터 솟아올라온 죽창이었다. 지난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수없이 많은 작전 회의를 했고, 그 결과 일본군의 진출 경로를 예상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도르래와 추(錘)를 이용해, 밟으면 땅 속에서부터 솟아올라오는 함정을 만들어놨던 것이었다.
“함정에 먼저 걸려 죽은 자들의 시체를 밟고 빠져나가라!”
고바야카와 히데카게가 다급한 목소리로 그렇게 외쳤다. 그러면서 그는 제일 낮은 계급의 병졸들을 앞세워 길을 트게 했다.
“우리 모두를 희생양으로 삼을 셈이요?”
여기저기에서 병졸들이 불만에 가득 찬 목소리를 냈다. 병졸들의 말마따나 고바야카와 히데카게는 병졸들을 함정의 희생양으로 삼아 이곳을 빠져나가려는 속셈이었기 때문이다.
병졸 중에 탈영하려는 자들이 속출하면서 고바야카와 히데카게가 이끄는 일본군은 단숨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군법을 어기는 자는 참수하겠다.”
고바야카와 히데카게는 통제가 불가능한 병졸들에게 강경하게 대응했다. 그 바람에 병졸 중 누군가가 고바야카와 히데카게의 목을 베었고, 그 목을 들고 그대로 조선군에 투항했다.
“이자가 장수라고?”
고바야카와 히데카게의 수급을 받아든 김덕령은 연신 실소를 내뱉었다. 지금 이 상황이 너무도 어이없었기 때문이다. 김덕령은 곧바로 고바야카와 히데카게의 수급을 정기룡에게 보내고 다음 지시를 기다렸다.
반대편 산자락 아래에서는 다치바나 무네시게와 다치바나 나오쓰가 군사 천 명을 이끌고 요리조리 함정을 잘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들 앞에는 무시무시한 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너희 왜놈들 모두는 정 교위님의 원수다. 단 한 명도 남김없이 모조리 쓸어버려주마.”
그곳에는 온 몸이 벌겋게 달아오른 한명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소총 부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그들을 활용하지 않았다. 한명련은 적군을 창칼로 베어야 속이 후련해진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렇기에 직접 보졸들을 이끌고 달려 들어가 일본군을 모조리 도륙을 냈다.
***
“거참 신기한 물건일세.”
곽재우는 덜 힘을 들이고도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를 보며 연신 감탄해마지 않았다.
노함은 증기기관을 축소한 형태를 개발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노함의 연구는 성공했고, 낙동강을 오르내리는 나룻배에 개발한 증기기관을 탑재했다.
물론 기존의 나룻배에 증기기관이 들어갈리 없어 나룻배보다 더 큰 배를 제작해야 했다. 배의 후미에는 나무로 제작한 모터까지 달았고, 선수에는 포(砲)까지 장착했다.
“소전선(小戰船)이라 불릴 만하겠구나!”
다들 이 배를 ‘작은 전투용 배’라는 뜻의 소전선이라 불렀다.
소전선이 완성되고 낙동강에서 뭍으로 상륙하는 작전을 구상할 적에 정기룡은 내심 걱정스러워했다.
“아무리 배의 규모가 커졌다고는 하나 어차피 나룻배일 뿐이오. 배 위에서 포를 발사할 경우 그 반동충격이 어지간히 크리라 봅니다. 자칫 사상자가 발생할 수도 있소. 현재의 기술로는 반동을 잡을 방법이 없어 문제요.”
이에 이희춘이 이런 배들끼리 연환(連環)으로 서로 묶어 반동을 줄이면 어떠냐는 제안을 했다. 하지만 정기룡은 그마저도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강폭의 제한도 있고, 포를 쏜 충격으로 배끼리 마찰을 일으켜 부서지거나 손상을 입을 수 있어 오히려 더 불안정함을 지적했던 것이다.
“제가 데리고 있는 병졸들 중에 자맥질에 능한 자들이 많습니다. 그자들을 데리고 전투를 수행하겠으니 너무 염려치 마십시오.”
곽재우는 그저 웃으며 그리 말했다. 작전 회의에 모인 지휘관과 참모들이 곽재우의 발언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정기룡과 이희춘만은 그를 믿어보겠다고 말했다. 정기룡과 이희춘은 곽재우가 승산이 확실한 싸움만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곽재우는 소전선을 보며 새삼 정기룡과 이희춘, 노함, 최윤의 기술에 놀랄 따름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이제껏 조선이 실질적인 분야를 상당히 경시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다 주둥이로만 일하는 놈들 때문이야, 그놈의 주둥아리들.”
곽재우는 그 이유를 기존의 정치인들 탓으로 생각했다.
안 그래도 곽재우는 임금인 선조를 제외한 조정 대신들의 죽음을 내심 고소해하고 있던 참이었다.
“적이 강 주변에 숨어 대기하고 있다고 합니다.”
척후장 박필이 먼저 낙동강 연안을 살펴보고 온 뒤에 곽재우에게 보고했다.
“기다리라.”
정기룡이 말하길, 먼저 화학탄 공격으로 일본군의 선봉을 꺾어놓을 테니, 어느 정도 잠잠해지면 그때야 비로소 상륙해 적과 교전하라고 했다. 아직 서쪽에서 하얀 연기가 올라오지 않았기에 곽재우는 군사들에게 내내 대기할 것을 명했다.
그러다 저녁 즈음이 되자, 서쪽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며 여기저기에서 총성이 울렸다.
“가자.”
그에 따라 곽재우는 적절한 시간차를 두고 낙동강을 따라 북쪽으로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곽재우의 수하인 심대승과 권란, 장문장이 연안을 따라 고령으로 이동했다.
곽재우는 그의 붉은 철릭과 비슷한 옷을 만들어 여러 사람에게 입게 했다. 그리고 그렇게 붉은 옷을 입은 자들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선수에 서게 하였다. 붉은 석양이 강 위에 드리워지면서 배를 출발시켰고, 달빛이 수면 위에 반사될 적에 적군이 숨어있는 강변에 도달했다.
일본군 입장에서 붉은 색의 옷은 깃발처럼 보이기도 했고, 혹은 저 멀리 강 위에 떠 있는 꽃처럼 보이기도 했다. 고바야카와 다카카게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눈을 크게 뜨고 그것이 무엇인지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하늘에 화희가 수를 놓았고, 붉은색 옷이 나부끼는 곳에서 포가 한가득 쏘아졌다.
“전군 철수하라!”
고바야카와 다카카게는 사방을 둘러보며 달구벌로 후퇴하라고 명을 내렸다. 그렇지만 은폐와 엄폐를 하며 사방에 쫙 깔아두었던 군사가 단번에 퇴각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병졸들은 우왕좌왕하며 날뛰었다. 고바야카와 다카카게는 그들을 다독여가며 꾸역꾸역 동쪽으로 퇴각하려 했다.
그때.
탕, 탕, 타앙―!
동쪽 산기슭에서 총성이 울려 퍼지며 수많은 인마가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최강이 이끄는 특공2대였다. 그들은 소총을 쏘아가며 일본군 전열을 마구 휘저었다.
“북, 북쪽 산으로 올라가라!”
당황한 고바야카와 다카카게는 병졸들에게 그리 명을 내렸다. 그렇지만 조선군은 어느새 강을 올라와 일본군을 따라잡았다. 그리고 사나운 기세로 일본군을 몰아쳤다. 이제 고바야카와 다카카게의 일본 6군은 앞뒤로 조선군에 둘러싸인 형국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두두두두두―!
푸욱―!
붉은 철릭을 입은 한 사람이 말을 몰고 달려와 고바야카와 다카카게의 목을 사정없이 베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