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 Academy 1st Hit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15
신하연은 고개를 들어 500cm가 넘어서는 매끈한 육체를 가진 드워프 비스무리한 무언가를 올려다봤다.
오똑한 콧매와 날카로운 눈. 거기에 어울리지 않게 심하게 북슬북슬한 수염까지.
자신과 전혀 닮은 데가 없는 자신의 복제품을 바라보며 풀무불꽃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시험을 대리로 치르게 만든다는 건 꽤 괜찮은 발상이었어. 아카식 레코드의 ‘자동사냥으로 무한렙업!’을 참고한 보람이 있구만!]“그게 무슨···.”
“쓸모없는 것에 집중할 시간에 집중이나 해!”
남연철이 소리질렀다. 옳은 말이다. 목숨이 걸린 상황에서 눈 앞의 쓰잘데기없는 것에 집중하고 있을 시간이 없는 탓이다.
[미학은 쓸데없는 게 아니라 인생의 전부인 법이거늘. 쯧쯧. 인간종이란.]“헛소리 하지 마. 살아남아야 다른 무언가가 있는 법이라고.”
남연철의 말을 들은 풀무불꽃은 혀를 쯧쯧 찼다. 금속 속성의 아이이기에 도움을 줄까 했는데 자신의 말을 들을 것 같지가 않다.
[강하면 부러지기 마련이니라. 강철을 제련할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강함이 아니라 유연함과 미학이니. 아름다움을 모르는 효율은···.]“드로우!”
남연철은 개소리를 지껄이는 유령의 말을 무시한 채 카드를 뽑아들었다.
파티에서 최초의 턴을 받도록 정해져 있던 것은 남연철이었다. 이 듀얼의 목표점은 체력이 100에서 80으로 하향된 용광로의 파괴.
남연철이 맡은 것은 필드 전개를 통한 용광로의 타게팅 분산.
“가제트I을 소환하고 턴 엔드!”
+
【가제트 I】
【1 mana】
【소환 : 가제트 II를 덱에서 가져옵니다.】
【2/1】
+
탑주 공략에서 중요한 것은 언제나 팀플레이다. 각각의 덱은 완벽할 수 없는 반면, 탑주는 혼자서는 절대로 공략이 불가능하게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듀얼에 미친 괴물이라도 용광로의 총 체력이 500 가까이 되는 데다가 본 체력도 500. 총 1000의 체력을 가진 괴물을 혼자서는 잡아 낼 수 없는 법이니까.
그렇기에 탑주 공략에서는 파티의 효율을 분배하고 제대로 플레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두 명의 플레이어가 필드를 불려서 용광로의 데미지를 막아놓는 동안, 나머지 두 플레이어는 차후에 데미지 딜링을 넣을 수 있도록 콤보 카드들을 모은다.
여기까지가 기본적인 역할군. 탱커와 딜러다. 필드 전개에 강점이 있는 신하연은 탱커 역할을, 핸드를 모았을때의 한 방이 있는 새벽녘은 딜러 역할을 맡는 식이다.
[정석적이기 그지없는 공략법이구만.]“본래는 몇 번 실패한 공략법이지만, 용광로의 체력이 줄어든 만큼 이제는 시도할 수 있는 공략법이기도 하죠.”
신하연은 드로우 후에 바로 엔드를 하며 대답했다. 신하연은 불안정해진 용광로에서 튀어나오는 몬스터들과 기계 풀무불꽃이 소환하는 소환수들을 처리하고, 다른 사람의 패가 말렸을 때에 백업을 유동적으로 맡는 역할이다.
일종의 중간다리 역할을 맡은 서포터라고 할 수 있다. 특히나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발견」테마의 특이성을 가지고 있는 그녀에게는 안성맞춤인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물 속성, 그 중에서도 발견 테마는 탑에서 한계가 도드라진다. 카드들을 발견하면 할수록 덱은 두꺼워지고, 원하는 카드를 찾을 확률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메인이 될 수는 없다.
‘···메인이 되지는 못 하지만. 서포터라도 괜찮아.’
신하연의 플레이에 시레나가 불만스러운 듯 찰방거렸다.
“왜 그래. 더워?”
?d! 시레나는 대답하는 대신 물을 신하연의 얼굴에 뿌렸다. 주인 닮아서 성질 더러운 물고기가 아닐 수 없다.
[용광로 체력을 원래대로 만들어 놓으려 했는데, 안 되더라고. 한 번 너무 제대로 부서져 놔서. 에잉. 쯧쯧.]풀무불꽃이 중얼거렸지만 아무도 듣지 않았다. 듀얼에 온 신경을 집중해도 모자랄 판이었기에.
불만이 가득한 한 마리의 생선과 한 마리의 유령을 제외하면 듀얼은 순조롭기 그지없었다.
가제트 시리즈들은 카드가 재활용되는 리사이클 룰에서는 필드가 허락하는 한까지 전개해낼 수 있다.
그리고 플레이가 이어지지 않을 타이밍에 신하연이 빠르게 발견을 통해 상황에 필요한 카드들을 구축해냈다.
쾅!
첫 번째 용광로가 부서져 내렸다. 하나의 용광로가 부서져 내리자 연이어 다음, 그 다음의 용광로를 부서뜨릴 수 있었다.
용광로가 무너져 내리자 파티원들의 표정이 조금씩 풀렸다. 풀무불꽃의 본체는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이 정설이었으니까.
“거의 끝났군.”
[생각보다 더 쉽게 끝나 버렸는데. 쯧. 난이도를 조금 올려야 되나.]투덜거리기는 했지만 파티원들의 실력은 시련을 통과할 만큼 높았다.
그래도 전익현의 눈이 아예 틀리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풀무불꽃은 곧 있으면 부서져 내릴 기계화 풀무불꽃-Mk.1을 아련히 올려다보았다.
푸쉭! 푸쉬식! 기계화 풀무불꽃의 몸에서 위협적인 스팀이 터져오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폭주할 것 같은 모양새다.
저런 기능을 넣은 적이 없는데. 아니, 정확히 말하면 폭주 기능을 만들어놓긴 했지만 비활성화를 해 놨었는데···.
‘아니. 내가 비활성화를 했던가?’
며칠 전에 전익현이 책을 가져다준 탓에 읽을거리가 워낙 많았다. 그리고 ‘물마새’를 열여섯 번째 재독도 해야 했다. 웹소설에 푹 빠져 있다 보면 해야 하는 일들을 한두 개쯤 빼먹는 일도 가끔은 있는 것이다.
푸화아아아!
엄청난 스팀 증기가 주변을 쓸어올렸다.
‘안 했나 보네.’
끝
“나는 「치명적인 귀염둥이」로 직접 공격!”
파아악! 귀여운 동물 친구의 꼬리가 불로 만들어진 정령의 몸을 후려갈긴다.
정령의 몸이 퍽 하고 터져 사라진다. 홀로그램이지만 굉장히 사실감이 넘친다.
[승리하셨습니다.]“크아! 좋은 듀얼이었다!”
[다음 상대 몬스터를 선택하십시오.] [네 마리 상어 가족(난이도 : ★)] [변신 합체 사우르스(난이도 : ★★★)]···
“다음에는 변신 합체 사우르스랑 붙어 볼까?”
나는 지금 홀로그램으로 만들어진 몬스터들과 듀얼을 해 나가고 있었다.
목숨 걸 필요도 없고, 덱도 마음껏 바꿀 수 있고, 바로바로 다음 상대와 듀얼할 수 있다. 다른 귀찮은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완벽한 시뮬레이션. 이게 올바로 된 카드 게임이지.
카드만은 실제 카드들을 사용하고 있지만 이 정도쯤은 웃어넘길 수 있는 수준이다.
“데이터는 추가됐나요?”
“데이터 수집은 이미 충분한데요.”
“아. 괜찮아요. 데이터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잖아요?”
“그거야 그렇지만···.”
김태양이 말꼬리를 흐린다.
“듀얼하는 걸 참 좋아하시네요.”
“좋아하죠.”
이곳에 오기 직전의 내 유일한 취미가 바로 듀얼이었으니까. 카드게임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하루종일 카드게임을 하고 있을 수 있을 리 없다.
물론 반강제적으로 듀얼밖에 못하는 상황이 있기는 했지만 그게 없었다고 해도 내 생활은 크게 다르지는 않았을 거다.
“쓰는 덱도 엄청나게 다양하고요. 지금 본 것만 해도 스물 세 종. 실제로는 그보다 더 다양하겠죠.”
김태양은 그다지 나를 경멸하지는 않는 모습이다. 내가 대칠성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고나면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학생들도 좀 있었는데.
과학자라서 그런지 편견이 없네. 꽤 마음에 드는 태도다.
“그리고 카드들과의 유대감도 굉장히 높습니다.”
그건 아닐 텐데. 나는 선택의 카드를 뒤집어 카드와의 유대를 확인했다. 여전히 바닥인 수치였다.
“그건 아닐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툭하면 덱을 바꾸는 인간이라서.”
“그게 좀 이상하기는 합니다. 덱과 카드 튜닝을 자주 하면 할수록 카드와의 유대는 떨어지기 마련입니다만··· 드로우할때마다 나오는 파장 자체는 엄청나게 높습니다. 마치···.”
“마치?”
“수십, 수백만 번의 듀얼을 하기라도 한 것처럼요.”
나는 머릿속으로 내가 해 온 듀얼의 횟수를 헤아려보려고 했다. 얼마나 했지. 내가 먹은 빵의 갯수를 헤아리는 것처럼 희미하다.
뭐, 아무튼 많이 하기는 했을 거다. 소울 커맨더스 프로들 가운데서도 연습량으로는 압도적이었으니까.
되돌아보면 브리즈 청의 분신도 「소커아」밖에서 메인으로 쓰던 「매지션」덱을 썼었지.
원래 세계에서의 듀얼 패턴이 이 세계에서의 특이성과 연관이 된다는 거군.
“···사기덱이나 맨날 굴릴 걸 그랬나.”
“네?”
“아닙니다.”
최상급 티어 덱만 주구장창 굴려서 그에 관한 특이성을 받았으면 몬스터 사냥도, 탑 오르는 것도 조금 편했을 것 같은데.
나는 한 덱의 플레이를 극한까지 다듬는 대신 다양한 종류의 덱을 모조리 사용하고, 그때 그때 메타에 맞게 덱을 구성해서 가져나가는 플레이어였다.
메타 덱도 쓰고, 메타 덱을 카운터하는 메타 비트(meta beat)덱도 쓰고, 황금 밸런스일 때에는 전반적인 승률이 가장 높은 덱을 쓰기도 하고.
이런 식의 듀얼을 하기 위해서는 카드들을 모두 써 봐야 한다. 소울 커맨더스의 카드들 가운데 내 손이 거쳐가지 않은 카드들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다.
“카드들을 꽤 많이 쓰기는 했었죠.”
“평범한 듀얼리스트였다면 이도저도 아닌 능력을 가진 상태라 어떤 특이성도 받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대체 얼마나 많은 듀얼을 해 오셨던 것인지 짐작이 가지 않는군요.”
김태양의 눈에는 약간의 존경심이 깃들어 있었다. 생각보다 김태양이라는 사람은 괜찮은 인간일지도 모른다.
“다만. 듀얼 웨이브는 인간의 심리 상태를 매우 크게 반영합니다. 여러 가지 속성을 모두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굉장히 불안정한 심리 상태를···.”
좋은 평가를 하자마자 덱이랑 성격이 크게 연관이 있다느니 하는 혈액형 성격설과 같은 말을 지껄이기 시작한다.
섬세한 처녀자리인 내 입장에서는 쓰는 덱이 성격이나 인간의 내면과 관계있다는 저런 개소리를 믿을 리 없다.
“어쩌면 삶에 있었던 고난이나 고통이 지금의 이클립스님의 덱 운용 방식과 연관이···.”
“그렇군요.”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라면 언젠가는 붕괴가···.”
“그렇군요.”
대충 이야기가 마무리 될 때까지 머릿속으로 덱 튜닝을 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김태양의 장광설이 마무리될 때까지 나는 덱 튜닝을 세 개 완료했다. 만족스러운 결과구만.
“그래서 특이성을 여러개 쓰려면 어떻게 해야 된다는 겁니까?”
“일단 애드온 프로그래밍은 완료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엄청난 속도다. 프로그램이라는 거. 잘은 모르지만 뚝딱하면 만들어지는 거였군.
“다만 기술적인 문제 때문에 지금 허용되는 특이성은 두 개까지입니다.”
특이성이 늘어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메리트다. 특이성이 제약되는 것과 소울의 종류가 정해져 있는 것은 밸런스를 파괴하는 여러 가지 플레이들을 막기 위해서 있는 것.
특이성이 하나인 것과 두 개인 것은 두 배가 아니라 덱 파워를 세네 배는 늘리는 일이다.
나는 머릿속으로 내가 쓸 수 있는 특이성들을 떠올렸다. 쓸 수 있는 특이성은 네 개. 단순 조합만으로도 여섯 개다. 시험해 볼 덱은 수십 개고. 덱 파워는 굳이 시험해 보지 않아도 압도적일 것이다. 짜릿한 전율이 몸을 타고올랐다.
“뭔가 문제 있으십니까?”
“아뇨. 왜요?”
“몸이 이상한 약이라도 하신 것처럼 떨리시길래요.”
“아무 일 없습니다.”
“얼버무리시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몬스터들을 상대하는 일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이니까요.”
“진짜 아무 일 없었는데요.”
“마약성 진통제는 남용하시면 안 됩니다. 하시는 일이 있으시니 아예 쓰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저는 당신을 오래 보고 싶으니까요.”
이 인간. 내 말을 하나도 안 듣네. 남의 말을 한 귀로 흘리는 게 얼마나 무례한 일인지 모르는 건가.
나를 걱정해 주는 말이니 화를 낼 수도 없고. 설명을 마친 김태양은 다시 내 외골격의 수리에 들어갔다.
나는 얌전히 앉아 있었다. 은행 업무 종료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크게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머릿속으로 무슨 덱을 짤 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
“제기랄! 폭주가 도대체 뭔데?!”
남연철의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시련을 거의 돌파했다고 생각하자마자 폭주라니.
[「기계화 풀무불꽃」의 체력이 증가합니다!] [「기계화 풀무불꽃」의 특이성이 갱신됩니다.]+
【폭주 증기 펀치】
【2 mana】
【랜덤한 적에게 40데미지를 줍니다. 남은 데미지만큼 적을 공격합니다.】
+
“풀무불꽃님! 저게 뭐에요! 폭주 상태라니! 저런 거 없었잖아요!”
[미안하지만 시련에 관해서는 알려줄 수 없는 게 원칙이라네.]“전 턴까지는 매 턴마다 로봇에 딸린 기능 이야기 하셨잖아요!”
[그 때는 그 때고. 지금은 지금이지.]필사적으로 자신의 눈을 피하는 풀무불꽃을 노려보던 신하연은 이를 악물었다. 상황이 이렇게 됐다고 되물러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인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