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ch the ghost munchkin! RAW novel - Chapter 1
귀신 잡고 먼치킨!
닥터로 현대판타지 소설
1화
1부. 그 남자, 덕팔의 이야기
“덕팔아”
“네, 스승님.”
“네가 이곳에 온 지 몇 해가 되었지?”
“9년이 되었습니다. 스승님.”
“그래, 벌써 그리되었구나.”
낡은 오두막 한 켠에 놓여 진 나무 침대 위에서 노인이 옅은 숨을 내쉬며 누워 있었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젊은 남자가 노인의 손을 꼬옥 쥔 채 무릎을 꿇고 있었다.
“이제 그만 이 산을 내려가려무나.”
“스승님.”
“그간 이 늙은 스승을 보살피느라 고생이 많았다.”
“스승님, 왜 그런 약한 말씀을 하십니까? 얼른 쾌차하셔서 세상 사는 법을 더 알려 주십시오. 이 제자가 우둔하여 스승님의 가르침을 다 깨우치지 못하였습니다.”
“허허허.. 나도 모르는 걸 내 어찌 너에게 가르칠 수 있겠느냐? 세상 사는 법은 세상에서 다른 이들과 어울리며 배워야 하느니라.”
“스승님”
노인의 손을 잡고 있던 남자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도 너와의 인연이 짧음이 무척 아쉽단다. 하지만 어쩌겠느냐? 그것이 인생인 것을.. 너에게 남길 것이라곤 낡은 붓 한 자루와 작은 칼뿐이라는 것이 미안할 뿐이구나.”
노인의 아쉬움 가득 섞인 말에도 남자는 쉬이 대답하지 못하였다. 스승의 손이 잘게 떨리며 얼굴에서 생기가 빠져나가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덕팔아… 그간 네가 있어 즐거웠단다. 다음 세상에서는 ….”
“…. 스..승..님!!”
남자의 입에서 끝내 오열이 터져 나왔다.
***
1년 후,
쿵! 쩌억!
쿵! 쩌억!
한 번의 도끼질에 잘 마른 통나무가 반으로, 다시 반으로 쪼개졌다. 힘주어 내려치는 것 같지도 않은데 묘한 리듬을 타는 도끼질에 통나무는 속수무책으로 쩍쩍 갈라지고 말았다.
이름도 없는 야산 끝자락.
그간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였는지 길의 흔적들이 수풀에 묻혀버린 산중의 심처를 향해 한 여인이 자꾸 풀리는 운동화 끈을 신경질적으로 고쳐 매며 열심히 오르고 있었다.
힘겨운 걸음, 걸음이었지만 조금씩 도끼질 소리가 커지는 것으로 보아 목적지가 얼마 남지 않은 모양이었다.
여인이 내딛던 걸음을 멈추고 크게 호흡을 하며 숨을 가다듬었다.
“더럽게 힘드네. 도대체 몇 시간인 거야! ‘쪼깨’ 올라가면 된다고 하더니 해가 지겠어.”
산 아래 마을 이장에게 그가 사는 곳을 물어 올라온 여인이 전라도 사투리 ‘쪼깨’에게 사기를 당하고 있었다.
여인은 이장이 내어준 생수병에 더 이상 물이 남아있지 않은 것을 확인하곤 마른 입맛을 다시며 다시 무성히 우거진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
“오빠!”
산 중에서, 아니 인근 마을에서도 좀처럼 들을 수 없는 젊은 여인의 목소리에 도끼질하던 남자의 고개가 절로 돌아갔다.
“누구요?”
“오빠! 나야, 나!”
여자가 이제는 걸음도 잘 떼어지지 않는 두 다리를 질질 끌며 남자에게 달려와 안겼다. 아니, 안기려 했지만, 남자가 몸을 슬쩍 틀어 이를 피하는 바람에 허공에서 파리를 잡는 신세가 되었다.
“뭐야! 설마 날 기억 못 하는 거야?”
“누구신지 말을 해야 알죠.”
남자가 뚱한 얼굴로 여인을 바라보자 여인이 기가 찬다는 얼굴로 화를 내었다.
“쌀집 아영이! 오빠랑 결혼 약속을 한 그 아영이!!”
“아영이? 아영이가 누구… 아, 그 아영이?”
남자가 아영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남자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아영이라는 인물과 남자 앞에 서 있는 여인의 모습이 많이 다른 모양이었다.
“쳇, 뭐야. 이뻐져도 문젠 건가?”
“흐음.. 당신이 내가 알고 있는 그 아영이라면 당신과 나만 알고 있는 비밀 100가지 중 가장 중요하고 은밀하며 애절한 비밀 하나만 얘기해 봐요.”
“나랑 오빠 사이에 무슨 비밀이 그렇게 많았다고? 오빠가 나한테 그랬잖아, 나는 귀신이 잘 달라붙는 체질이니까 무당이 되는 것을 생각해보라고!! 기억나?”
“흐음.. 내가 아는 아영이가 맞는 듯! 몰라보게 변했군, 역시 현대 의학의 힘이란!!”
“아니거든! 완전 원판이거든?”
“흐음.. 그럴 리가 내가 아는 아영이는 일단 얼굴에…”
이 산중에 누가 있을 리 없었지만, 황급히 남자의 입을 막으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영이 엉겁결에 남자의 입과 코를 함께 막으며 질식사를 시도했지만, 남자의 얼굴이 파랗게 질려가자 이내 범행을 멈추고 한발 뒤로 물러났다.
“쿨럭, 쿨럭! 10년 만에 보는 오빠를 죽이려 하다니.. 역시 너는 내가 아는 그 아영이가 맞구나!”
남자의 농담에 아영이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진…”
“덕팔이다.”
“어?”
“내가 모시는 스승님께서 이름을 내려주셨다. 덕팔! 오덕팔! 앞으로는 그렇게 불러줬으면 좋겠다.”
“오덕팔? 아무리 별명이래도 멀쩡한 이름 놔두고 덕팔이가 뭐야? 덕팔이가?”
아영의 입에서 웃음이 터져 나오려 하자 남자, 아니 덕팔이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신분증을 보여주었다.
“맙소사! 개명까지 한 거야? 미쳤어. 미쳤어!”
덕팔이 신분증을 지갑에 끼워 넣고 다시금 뒷주머니에 지갑을 구겨 넣자 아영이 오두막 앞에 놓인 작은 평상 위에 엉덩이를 붙이며 죽는 소리를 냈다. 10년이라는 시간은 순간순간 두 사람을 어색하게 하였다.
그 어색함을 참지 못하였는지 아영이 먼저 너스레를 떨었다.
“애구구구.. 죽을 것 같네. 적당히 높은 곳에 살지. 첩첩산중까지 들어올 게 뭐야.”
“그건 내 소관이니 네가 따질 일이 아니고, 너는 여기까지 무슨 일로 온 거니? 내가 여기 있다는 건 또 어떻게 알고?”
“그동안 오빠에게 방해가 될까 봐 오지 못한 거지, 오빠가 여기 있다는 건 진즉부터 알고 있었어. 하지만 이젠 때가 된 것 같아서 이렇게 직!접! 찾아온 거야.”
“때? 무슨 때?”
“어머? 오빠 뭐야? 오빠 나랑 결혼하기로 한 거 잊었어?”
“내가?”
덕팔이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그건 너의 일방적인 선언이었던 것 같은데? 나는 동의 한 적이 없고 말이야.”
“뭐야? 쓸데없이 기억력은 좋아서!”
아영의 얼굴이 살짝 붉어지는 듯했지만, 뚝심 있게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려 하였다.
“오빠, 나 검사됐어. 검사 생활 몇 년 하고 퇴직하면 전관 받는 변호사가 돼. 그럼 돈도 많이 벌지! 내가 오빠를 평생 책임질 수 있다는 말이야!! 오케이?”
“노 땡큐!”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거절을 한 덕팔이 다시 통나무를 세우고 도끼를 집어 들자 아영이 입을 쭈욱 내밀며 평상에서 벌떡 일어났다.
“봐봐. 얼굴 이쁘지, 늘씬하지. 능력 있지. 앞으로 돈도 잘 벌거지. 내가 뭐가 부족한데?”
“… 그런 훌륭한 신부감이 왜 이 산중까지 와서 인물도 별로고, 무일푼에 능력도 없는 나한테 청혼을 하는 걸까?”
덕팔의 입꼬리가 살짝 오르자 아영이 분한 얼굴이 되었다.
“우씨!! 약속했잖아. 내가 한번 약속하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지키는 의리 있는 여자라고!”
“별로 믿기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치고, 그 약속 안 지켜도 되니까 어서 돌아가. 여기는 산속이라 해가 금방 진다.”
“안 갈 거거든? 여기서 오빠랑 눌러살 거거든?”
아영이 다시금 평상에 주저앉으며 어깃장을 부리기 시작하자 덕팔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아영과의 옛 추억이 떠오른 것이었다.
아주 어린 시절, 기억이라는 것이 생겼을 때부터 한동네에서 살았던 쌀집 딸내미 아영이.
서울 변두리였지만 쌀집을 운영한다는 것은 금전적으로 꽤 여유가 있다는 의미였다. 반면 덕팔은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하루하루 노가다를 뛰며 근근이 입에 풀칠하는 쪽방집 아들내미.
옷차림만 보아도 극명한 차이가 있었지만 좁은 골목길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에겐 집에서 고기반찬에 쌀밥을 먹든, 김치 쪼가리에 잡곡밥을 먹든 골목 친구가 되지 못할 이유가 되진 못하였다. 지금이야 아파트 평수에 따라 친구가 되기도 하고 놀림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세상이 되었지만, 그때만 해도, 적어도 아이들만큼은 순수하였다는 의미였다.
“왜 웃어?”
“니가 우리 집에 쌀 포대 끌고 온 거 기억나냐?”
“… 훗, 부끄럽게!”
아영의 나이가 7살쯤 되었을 때였을까? 덕팔의 아버지가 현장에서 허리를 다쳐 한동안 일을 못 하게 되는 바람에 집에 쌀이 떨어지자 어린 아영이 자신의 집에 쌓여 있던 20kg짜리 쌀 포대를 질질 끌고 온 적이 있었다.
쌀 포대가 바닥에 끌리며 모서리가 터져 반쯤은 바닥에 흘려 먹지 못하게 되었지만 덕팔은 그때 그 아영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다. 물론 그 사실을 알고 아영의 뒤를 쫓아온 아영의 아버지에 의해 아영의 엉덩이가 불이 났음은 물론, 반쯤 버려진 쌀임에도 훗날 덕팔의 아버지가 쌀값을 모두 갚아야 했던 슬픈 반전이 있긴 하였지만 그래도 덕팔에게 아영은 은인과 같은 존재였다.
“아저씨는 건강하시고?”
“돌아가셨어.”
“언제?”
“오빠가 동네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고가 있었어. 오토바이 타고 배달을 가셨는데 트럭에 치이셨어.”
“응? 그럴 리가? 흐음…”
덕팔이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사과를 하였다.
“미안해,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해서…”
“아니야. 벌써 10년 전 얘긴데 뭘.”
아영이 손사래를 치자 덕팔이 잠시 망설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아주머니께서는?”
“엄마도.. 몇 년 전에 돌아가셨어. 위암이셨는데 초기에 발견하여 수술하였음에도 전이가 되는 바람에 얼마 살지 못하고 돌아가셨어.”
“흐음…”
덕팔이 도끼질을 멈추고 아영을 돌아보았다.
“아직도 귀신이 잘 꼬이는 체질이니?”
“…. 나? 내가 그랬나?”
덕팔이 오두막으로 들어가 과도보다도 작은 칼을 들고나와 자신의 손가락 끝을 살짝 찌르더니 흐르는 피를 낡은 붓에 묻혀 자신의 눈 아래에 발랐다.
“이런! 손각시(처녀 귀신)를 하나도 아니고 둘씩이나 어깨에 매달고 있으니…”
덕팔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손가락 끝에서 베어 나오고 있는 피를 소도 날에 묻히곤 소도를 들어 아영의 가슴을 찔러 들어갔다. 아영이 화들짝 놀라며 피하려고 하였지만 그런 결정은 마음속에만 있었을 뿐, 덕팔의 기습적이고 민첩한 공격에 무방비 상태로 심장을 내주어야 했다.
아영이 눈을 질끈 감았다. 이렇게 허무하게 칼에 찔려 죽으려고 4시간을 운전하고, 다시 4시간을 걸어서 이 험지까지 온 것이 아니었다. 10년이라는 시간이 덕팔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을지 생각하지 못한 자신의 실책이라 여기며 과거 덕팔이 보여주었던 푸근한 웃음을 떠올리며 서글픈 얼굴이 되었다.
푸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