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ch the ghost munchkin! RAW novel - Chapter 2
2화
푸욱!
칼끝으로 가슴이 찔리는 듯한 느낌이 왔다.
그런데.. 이후에 함께 찾아와야 할 고통이 없었다. 아영이 슬며시 눈을 떠 보았다. 아영의 눈앞엔 반짝이는 은빛 도신 위에 불길한 핏빛이 선명한 소도가 이리저리 춤을 추고 있었다.
덕팔이 허공에 대고 소도를 휘두르는 것이었다.
전형적인 미친놈의 행태였지만 아영은 덕팔의 얼굴에 서려진 긴장감 때문에 몸이 굳은 채 미동도 하지 못하고 덕팔의 쌩쇼가 끝나길 기다렸다.
10여 분간 계속된 덕팔의 발광은 덕팔의 긴 한숨과 함께 끝이 났다. 안색이 창백해진 것만 보아도 그가 얼마나 힘들게 쌩쇼를 했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휴…우! 손각시(처녀 귀신)들이 얼마나 팀워크를 잘 맞춰왔는지 시간차 공격을 다 하네?”
“손각시? 그게 뭔데요?”
아영이 놀랐는지 자신도 모르게 존댓말이 튀어나왔다.
“처녀 귀신! 손말명이라고도 하지.”
“처녀 귀신이라면 시집 못가고 죽은 그..그 귀신..요?”
“그냥 처녀는 아니고, 혼기가 찬 처녀가 시집을 가지 못하고 죽은 것이 한이 되어 주로 자기 또래의 혼기 찬 처녀를 괴롭히는 악귀를 말하는 거야. 너, 소개팅이나 선 같은 거 보면 한 번도 제대로 된 적 없지?”
“어떻게 알았? 아니 아니, 나는 오빠가 있는데 그런 소개팅이나 선 따위를 볼 리가..”
덕팔이 웃자 아영의 얼굴이 붉어졌다.
“괜찮아. 네 나이도.. 가만히 있어 보자. 어이구.. 나보다 두 살 어리니까 벌써 28살이나 되었네?”
“누구랑 다르게 아직 20대거든?”
“훗.. 이젠 괜찮을 거다. 내가 부적 한 장 써줄 테니까 지갑이나 핸드백 안에 잘 넣어가지고 다녀. 그럼, 괜찮을 거야.”
“오빠.. 한 가지만 물어봐. 혹시 우리 아빠, 엄마 돌아가신 게.. 그 귀신들 때문이었어?”
아영의 물음에 덕팔이 쉽게 입을 열지 못하자 아영이 고개를 푸욱 숙였다.
“아영아, 부모님들께서 돌아가신 게 너에게 붙어있던 손각시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어. 특히 너희 부모님의 경우에는 선관도사… 아니 아니다. 아무튼 네게 붙어있던 손각시 때문은 아닐 거야.”
“…. 그렇게 위로하려고 하지 마. 솔직히 말해서.. 방금 오빠의 그 쌩쇼가 끝나고 난 후에 내 몸에서 변화가 느껴졌어.”
“그렇겠지. 악귀 둘이 짓누르는 무게감이었다면 너도 느낄 수 있을 정도였을 테니까! 하지만 네 부모님께서 돌아가신 것은 이것과 다른 문제야. 손각시들이 네게 달라붙었던 시기가 네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 일수도 있어.
게다가 손각시들의 성향상 숙주가 아닌 숙주의 가족들까지 피해를 끼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그 누구도 단정 지어 ‘그렇다’ 말을 할 수 없는 거야.”
“… 정말?”
“그래, 아무것도 단정할 수 없는 것이니까 그렇게 풀 죽어있지 말고 얼른 내려가. 이렇게 꾸물거리다가 진짜로 해가 질지도 몰라.”
10년 만에 해후하였음에도 덕팔이 자꾸 가라고만 하니 아영은 내심 서운하기도 하고 오기가 생기기도 하였다.
“정말 서운하네, 아무리 내가 싫어도 그렇지. 방금 온 사람한테 가라니! 부담되는 거야? 10년 만에 나타나서 결혼하자고 하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휴우…”
덕팔이 하늘을 잠시 올려다보더니 아영을 안내하여 오두막 안으로 들어갔다.
“우와.. 밖에서 보기에는 허름하더니 안은 꽤 그럴듯하네?”
아영이 이리저리 내부를 살피더니 한 켠에 놓인 나무 침대 위에 앉았다.
“폭신거리고 좋은데? 오늘은 여기서 자야겠다.”
아영이 두툼한 솜이불이 깔려 있는 나무 침대가 마음에 들었는지 두툼한 요를 만지작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른 침대는 보이지 않았다.
“침대가 하나뿐이니 어.쩔.수. 없이 오빠랑 한 침대에서 같이 자야 하나?”
아영이 혼자서 설레발을 치고 있는 사이 덕팔은 이리저리 분주히 몸을 움직였다. 쌀과 몇 가지 음식 재료를 꺼내 놓는 것이 저녁 식사를 준비하기 위함인 듯 보였다.
“잠시 쉬고 있어라.”
덕팔이 휑하니 밖으로 나가 버리자 아영이 아픈 종아리를 주무르며 운동화 끈을 풀기 시작했다. 꽉 조여진 운동화가 느슨해지는 것만으로도 피로가 조금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신발을 벗어낸 아영은 내친김에 양말까지 벗어버렸다. 땀에 불은 발에서 묘한 향기가 피어오르자 얼른 덕팔의 것으로 보이는 하얀 고무신을 신고 오두막 밖으로 나갔다.
수돗가가 따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물을 받아 놓은 커다란 항아리가 보였다. 마침 덕팔이 그 아래에서 무청과 시래기를 씻어 물에 불리고 있었다. 아영이 슬며시 그의 곁으로 가자 덕팔이 아영의 발을 힐끔거리더니 거무튀튀한 고무 대야에 물을 받아 평상 아래에 놓아 주었다.
“발을 담구고 있으면 피로가 조금 풀릴 거다.”
“고마워, 오빠”
아영은 덕팔의 말대로 평상에 앉아 고무 대야에 발을 담갔다. 차가운 물의 기운이 종아리를 타고 허벅지를 지나 전신을 휘감았다. 시원한 감촉이 온몸을 휘감고 나니 한결 더위도 가시는 듯했고 청량감까지 느껴지는 듯했다.
그 사이 덕팔이 불을 지피고 솥을 걸었다. 깨끗이 씻어진 쌀과 적당한 물이 부어졌다. 뚜껑이 닫히고 장작이 타오르면서 무쇠솥은 금세 김을 피웠다. 쌀이 익어가며 내뱉는 특유의 향이 아영의 뱃속을 자극했다.
생각해보니 휴게소에서 먹은 핫도그 하나와 커피 한잔이 오늘 먹은 음식의 전부였다. 장이 한번 요동을 치기 시작하니 뱃속에서 천둥번개가 일었다.
꼬로록..
“금방 되니까 조금만 기다려.”
덕팔이 그 천둥소리를 들었는지 슬쩍 웃으며 오두막 안으로 들어가더니 무언가가 담긴 표주박을 들고나왔다.
“말린 누룽진데 밥이 될 때까지 이거라도 먹고 있어라.”
얇게 긁힌 누룽지는 꽤 맛이 좋았다. 이가 부러질 것처럼 딱딱하게 보였던 누룽지는 입 안에서 쉽게 부서져 잘게 가루가 되어 고소함을 가득 풍겨내었다. 하나, 둘.. 표주박에 담긴 누룽지가 반쯤 줄었을 때, 가마솥 뚜껑이 열리고 하얀 김이 하늘을 덮었다.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밥이 커다란 바가지에 담기자 가마솥은 새로운 임무를 위해 물 두 바가지를 받아들였다.
물에 불린 표고버섯과 손가락만 한 마른 멸치 몇 개가 물 위에 띄워졌다. 잠시 후, 물이 끓자 된장이 풀렸고 무청과 불린 시래기, 고춧가루가 마지막으로 투입되었다. 그냥 흔한 시래기 국이었다. 솥뚜껑이 닫히고 장작이 화력을 더하여 마지막 피치를 올렸다.
“다 됐다.”
어느새, 밥상이 차려졌다. 큼지막한 바가지에 담긴 밥은 각자의 그릇에 조금씩 담겼고 가마솥에서 푸욱 익혀진 시래기와 무청이 가득 담긴 된장국이 밥상 중앙에 놓여 있었다. 그 외에도 장아찌 몇 가지가 밑반찬으로 추가되었다.
그럴듯한 시골 밥상이 완성되었다. 아영은 10년 만에 만난 오빠고 뭐고, 일단 먹어야 했다. 하루 종일 굶은 상태에서 오랜만에 바닥까지 떨어진 체력 때문에 온몸에서 밥을 달라 아우성을 치고 있었던 것이었다.
덕팔이가 소박하게 담아 놓았던 밥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바가지에 담긴 밥이 순차적으로 아영의 밥그릇에 담겼다. 한 번, 두 번, 세 번… 덕팔은 아영의 먹성에 밥이 부족하지 않을지 걱정이 되었다.
덕팔이 숟가락을 내려놓고 평상에서 몸을 빼 오두막 안으로 들어가 표주박 하나를 들고 와 가마솥에 부었다. 나무국자로 잘 저은 후, 평상으로 돌아와 보니 바가지에 담긴 밥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덕팔이 자신의 밥그릇에 담긴 밥을 덜어주자 아영이 미안한 기색을 하면서도 숟가락을 놀리는 걸 멈추지 않았다.
“근데 오빠, 내가 원래 밥을 이렇게 많이 먹지 않거든? 혹시 귀신들이 나가서 그런 거야?”
“맞아, 귀신들이 너의 놈을 짓누르면서 생긴 부작용이야. 네 몸은 지금껏 영적으로 영양실조 상태였던 거야. 그러니 네 몸은 그것을 채우기 위해 많이 먹으라고 요구를 하는 거지.”
“… 응, 근데 살찌는 건 아니지?”
“글쎄, 그것까진 생각을…”
아영의 숟가락이 딱 하는 소리와 함께 밥상 위에 내려졌다.
“그래도 먹어야…”
“다 먹었어. 나 살 안 찌는 체질이라 괜찮아.”
쓸데없는 걱정이었던 모양이다.
“된장 누룽지를 끓이고 있는데 먹을래?”
“역시..”
아영이 엄지손가락을 힘껏 쳐들더니 직접 바가지를 들고 가마솥으로 가 된장국에 잘 풀린 누룽지를 잔뜩 퍼 담아 왔다.
아영은 국자로 누룽지를 떠 덕팔의 밥그릇에 덜어주었다. 그리고…
바가지 채로 누룽지를 퍼먹기 시작했다.
**
아영만 만족한 저녁 식사가 끝나자 간단히 설거지를 마친 덕팔이 산 너머로 자취를 감추는 해를 바라보곤 아영과 함께 오두막으로 들어왔다. 다시 어색한 분위기가 되었다. 밖에서야 주위에 누가 있든, 그렇지 않든 탁 트인 공간이었기에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지만, 실내에, 그것도 밀폐된 둘만의 공간에 놓이게 되니 자연히 말수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아영이었다.
“오빠, 여기 이것들은 뭐야?”
“아.. 이거! 약재. 스승님께서 한의사셨거든. 스승님은 돌아가셨지만, 철마다 약재를 캐고 말리는 게 습관이 돼서 말이지.”
덕팔이 뒷머리를 긁으며 잘 마른 약재를 천주머니에 담기 시작했다. 아영이 도우려 하자 덕팔이 이를 말리며 침대에서 쉬라고 하였다.
“그럼 오빠도 침 같은 거 놓고 그러는 거야?”
“배우긴 했는데 써먹진 못하지. 우리나라는 한의사 자격이 없이 시술을 못 하게 되어 있으니까”
“오랫동안 배웠을 텐데 아쉽겠네.”
“별로…”
약재를 대충 정리한 덕팔이 의자를 가져다가 화목난로 앞에 놓더니 그 위에 앉아 난로에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오빠, 지금 7월 달이야. 한 여름이라구.”
“알아. 하지만 오늘은 불을 피워야 해. 아니면 꽤 추운 밤을 보내게 될 거야.”
아영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덕팔이 하는 행동을 그냥 두고 보기만 하였다. 덕팔의 말이 사실인지는 금방 알 수 있는 일이니 일단 지켜보기로 한 것이었다.
“그럼 오빠는 여기에서 한의학을 배우며 지낸 거야?”
“아니, 다른 걸 배웠어.”
“뭘 배웠는데?”
“흐음.. 들으면 미친놈이라고 할 텐데?”
“오늘 내가 겪은 일도 충분히 비정상적이야.”
“하긴 그렇구나. 생각해보니 너! 오늘 일을 너무 쉽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호호호..”
덕팔의 의구심 가득한 물음에 아영은 웃기만 하였다.
“대충 알고 있었던 모양이지?”
“정확히는 몰랐어. 흠흠.. 아니야. 넘어가자.”
아영은 미팅, 소개팅, 선을 볼 때마다 상대방이 다치거나 안 좋은 일이 생기곤 하였다. 심지어 어떤 이는 소개팅 장소인 커피숍에 들어오면서 미끄러져 턱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하기도 하였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아영은 그저 이 모든 것을 우연으로 치부할 수 없었다. 하여 용하다는 무속인들을 찾아가 보기도 하였고 영발이 좋다는 스님, 퇴마를 하는 신부님 등등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일들에 대해 설명을 해줄 이를 찾아다녔다.
그중 몇몇은 오늘 덕팔이 한 이야기와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덕분에 몇백만 원을 들여 굿도 해보았다. 하지만 효과는 없었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더 쌘 놈’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사실 덕팔을 찾아볼 생각을 했던 것도 그 무속인들의 조언에 ‘더 쌘 놈’을 찾다가 오래전 자신에게 ‘무당’이 되라는 조언을 했던 덕팔이 떠올랐기 때문이었으므로 그런 속내를 덕팔 앞에서 차마 꺼내 놓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네가 알아야 할 게 있다.”
“뭔데?”
“이 세상에는 신이라는 존재가 있어. 신에는 선신과 악신이 있지. 선신은 말 그대로 신이야. 사람을 이롭게 하고 돌보는 존재들이지. 문제는 악신인데… 우리는 이런 악신들을 귀신이라고 불러.”
덕팔의 설명에 아영이 눈을 빛내며 집중을 하자 덕팔이 부담을 덜어내고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원래, 신과 인간은 사는 세상이 달라. 그게 원칙이지. 그런데 일부 신들은 인간 곁에 머물러. 특히 악신들은 더더욱 인간에게 밀착하여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어내려고 하지. 네게 붙어있던 손각시들 역시 너를 통해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얻으려고 한 것이야.
뭐, 귀신들이 무슨 짓을 하든 사실 대부분의 인간은 그들에게 영향을 잘 받지 않아. 아주 특별한 악신들은 영향을 주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악신은 그런 힘이 없어. 그런데 문제는 인간 중에도 특별한 인간이 태어난다는 거야.”
“특별한 인간?”
“그래.. 신과 접점을 만들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인간들이 간혹 태어나지.”
“무속인들처럼?”
“그들도 그중 하나야. 하지만 더 중요하고 무서운 비밀이 있어.”
덕팔의 말이 계속될수록 아영의 입이 말라갔다. 왠지 그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인간 부류에 자신도 포함이 될 것 같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발동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