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ch the ghost munchkin! RAW novel - Chapter 3
3화
“능력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너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은 능력은 신기라는 능력이야.”
“신기?”
“그래. 신기(神器), 원래 제사를 지낼 때 쓰는 그릇을 의미하지만, 인간의 몸 자체가 그릇이 되는 경우를 말하기도 해.”
“자..자..잠깐만, 그게 혹시..”
“맞아, 귀신이 잘 붙는 사람들!”
“나네?”
“너는 타고난 능력이 매우 낮아. 조심만 한다면 그 능력을 드러내지 않고 평범하게 살수도 있어. 문제는 그 능력이 높은 사람들이야.”
“그들이 무속인이 되는 거야?”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
덕팔이 화목난로 위에 고구마를 올려놓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신기 외에도 또 다른 능력이 있어.”
“뭔데?”
“신안!”
“신안? 귀신을 보는 거?”
“맞아. 귀신을 볼 수 있는 능력! 이것도 능력치가 다 달라. 어떤 이는 희뿌연 안개처럼 보이는 이도 있고 어떤 이는 총천연색으로 보이는 이도 있지.”
“무..무섭겠다.”
“내가 그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어.”
“정말?”
“나는 어릴 적에 어머니를 잃었어.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내 어머니는 나를 낳고 많이 아프셨데. 가난한 집에서 병원 한번 가기 힘들었으니 시름시름 앓다가 제대로 치료 한번 받아보지 못하고 허무하게 돌아가신 거지. 하지만 나는 내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왔어. 왜냐면…”
“오빠 어머니께서 오빠 곁에 머물고 계셨던 거야?”
“그래, 어릴 적에 어머니는 늘 내 곁에서 말도 걸어주시고, 글도 가르쳐 주셨어. 나이를 먹으면서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지. 나만 볼 수 있었고 나만 만질 수 있었던 거야. 어머니는 나 때문에 본인이 계셔야 할 세상으로 가지 못하신 거야.”
“세상에나”
“덕분에 나는 신안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괴롭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되었어. 어머니께서 보호를 해주셨으니까.. 내 어머니 같은 분을 선녀부인이라고 해”
“다행이다. 오빠”
“내가 너에게 무당이 되는 게 낫겠다고 이야기를 했던 것도 사실은 어머니께서 말씀해주신 것이었어. 네가 악귀에게 몸을 빼앗기면 네 인생이 망가지니까 좋은 신을 몸에 받아들여 보호를 하라는 의미셨지.”
“그렇구나.”
아영은 이제야 비로소 이해되었다는 듯 고개를 크게 주억였다.
“아까 네게 붙어있던 손각시가 네 부모님의 사망과 관련이 없을 거라고 말했던 거 기억하지?”
“응”
“사실 너희 집에는 조상신이 머물러 계셨어. 이런 조상신을 선관도사라고 하는데 자손들에게 복을 주고 집안을 흥하게 하는 데 큰 힘을 쓰시지. 너희 집이 잘살았던 것도 너희 조상신 덕분이었어.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부모님들이 돌아가셨다면 조상신께서 어떤 이유로 너희 집안을 떠났거나 아니면 조상신으로서도 그 죽음을 막을 수 없는, ‘운명!’이었던 거야.”
“아!!”
“잘 믿기지 않지?”
“반신반의하고 있어. 특히 우리 집안 이야기는 더욱더 잘 믿어지지가 않아.”
“그럴 거야.”
“오빠는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된 거야?”
“어머니께서 날 이곳으로 보내셨어. 더 이상 내 곁에 머물 수 없게 되었다며 스승님께 날 보내신 거지.”
“정말 다행이야.”
아영이 활짝 웃다가 갑자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오빠, 아까 내 몸에 붙어있던 처녀 귀신을 못 보지 않았어?”
“응”
“능력이 사라진 거야?”
“스승님께서 내 능력을 봉인해 놓으셨어.”
“왜? 아! 평범하게 살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신 거구나?”
“맞아. 하지만 평생토록 지속되는 봉인이 아니야. 그래서 신안을 되찾았을 때를 대비하여 힘을 키우는 방법을 배웠지.”
“뭘 배웠는데?”
“오늘 밤, 나는 그것을 해야 해.”
덕팔이 집게를 들어 익어가는 고구마를 이리저리 뒤집었다.
“뭘.. 해야 하는데?”
덕팔은 말없이 품에서 얇은 가죽장갑을 꺼냈다. 덕팔의 장갑은 특이하게도 팔꿈치까지 올라오는, 마치 장갑과 손목보호대를 합쳐놓은 듯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신투를 얻어야 해.”
“신투? 그게 뭔데?”
“악신과 전투를 할 수 있는 능력!”
“귀신과 싸운다고? 막 때리고 발로 차고?”
“이 장갑이 있으면 가능해.”
“그 장갑만 끼고 있으면 막 때려져?”
“아니, 이 장갑을 신기(神器)로 하여 신의 능력을 채워야 해.”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어.”
“악신을 잡아서 이 안에 신력을 봉인해 놓으면 그들의 힘 중 일부를 꺼내 쓸 수 있어. 그것이 이 장갑의 능력이지.”
“아하…. 그럼 그 장갑만 있으면 누구나 귀신과 싸우는 거야?”
아영이 호기심을 보이자 덕팔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 장갑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 그것이 ‘신투’야”
아영은 태어나 처음 듣는 이야기를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그런 아영의 고민을 눈치챘는지 덕팔이 빙그레 웃었다.
“오늘 밤을 잘 넘기고 내일 아침에 일어나 보면 내 말을 믿지 않을래야 믿지 않을 수 없을 거야.”
아영이 고개를 끄덕이다 말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늘 밤을 잘 넘기고??”
아영의 물음이 끝나기도 전에 오두막 문틈으로 한줄기 바람이 들어왔다. 스산하면서도 차가운 기운이 담긴 한줄기 바람. 아영이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덕팔의 말대로 오두막 내부의 온도가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벌써 해가 진 모양이네.”
덕팔이 잘 구워진 고구마를 바가지에 담아 아영에게 내밀곤 양손에 신투장갑을 꼈다. 덕팔이 신투장갑을 끼고 옷소매로 장갑을 가리니 장갑은 덕팔의 손이 된 것인 마냥 전혀 어색하게 보이지 않았다.
“장갑이 오빠 손 같아.”
“힘이 커지면 커질수록 더 그렇게 되겠지. 하지만 아직은 부족해”
덕팔이 몸을 일으키자 아영이 움찔하며 따라 일어났다.
“이곳은 안전해. 스승님께서 나를 위해서 해 놓으신 안전장치가 곳곳에 있거든. 밖으로만 나오지 않으면 아무 일 없을 테니까 여기에 얌전히 있어.”
덕팔이 아영의 어깨를 잡아 앉게 하더니 방긋 웃어주곤 오두막 문고리를 잡았다.
“오빠!”
“응”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다치지 않을 거지?”
“그럼. 늘 해온 일인데”
덕팔이 문고리를 힘껏 밀어내고 밖으로 나갔다. 그 사이 찬바람이 문틈을 타고 아영의 전신을 휘감았다.
부르르
아영의 몸이 떨려왔다. 분명히 7월이었다. 아직 장마가 시작되지 않아 매일 같이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렸고 열대야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나날들이었다. 아무리 이곳이 첩첩산중이라고 하더라도 한겨울에나 불어 닥칠 법한 한풍은 말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오늘 밤만 지나면 알 수 있다고?”
아영은 밖의 상황이 몹시 궁금했지만 모든 게 이상하고 어색한 이곳에서 밖을 내다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덕팔이 돌아오기만을 초조히 기다리고 있던 아영이 따뜻한 고구마가 담긴 바가지의 온기 때문이었는지, 오늘 육체적으로 힘이 들었기 때문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자신도 모르게 스르륵 잠이 들고 말았다.
**
아영은 평소에 8시간 이상 잠을 잤다. 그렇게 자야만이 찌뿌둥한 몸이나마 겨우 몸을 가눌 수 있었다. 사법고시를 준비하면서 아영을 가장 괴롭혔던 것이 바로 만성피로였다.
오늘도 여느 때와 같이 눈을 떴다. 어제의 고단함 때문이었는지 덕팔을 기다리지 못하고 잠이 들고 말았다. 아영은 시선에 들어온 풍경에 깜짝 놀라 화들짝 몸을 일으켰다.
“아.. 집이 아니었지.”
아영은 고개를 돌려 덕팔을 찾았다. 덕팔은 약재를 말리던 탁자 위에서 몸을 웅크린 채 잠이 들어있었다. 이불도 없이 잠이 들어 있는 덕팔에게 이불을 덮어준 아영이 덕팔이 잠에서 깨지 않도록 조용히 오두막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해가 완전히 떠올랐다. 휴대폰으로 시간을 살펴보니 벌써 9시가 넘어 있었다.
“으….아! 개운하다.”
아영이 기지개를 켜며 몸을 쭈욱 이완시켰다.
“아.. 시골이라 그런가? 몸이 완전 가벼운데? 머리도 맑은 것 같고..”
아영이 이런저런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더니 잠시 평상에 앉아 있다가 본격적인 오두막 인근 산책을 시작했다.
오두막은 산 중턱에 있었다. 작은 산과 산이 동행하여 큰 산을 이루고 그 산이 다시 다른 산을 만나는 그곳에 오래된 소나무 한그루가 있었다. 오두막은 그 소나무를 병풍 삼아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아영이 오두막을 돌아보다 뒷마당에 심어져 있는 소나무 한그루를 발견하고 그 자리에 멍한 얼굴이 되어 서 있었다.
군데군데 껍질이 벗겨지고, 무슨 이유에선지 바르게 자라지 못하여 굽고 또 굽고 다시 굽어 노인의 휘어진 허리가 연상되는 노회한 나무였건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압도되는 느낌이 있었다.
“아! 되게.. 뭐랄까? 되게..”
“무섭지?”
“…응”
아영의 뒤에서 덕팔이 모습을 보였다.
“800살이 된 할아버지 소나무야.”
“되게 오래됐구나.”
“나무가 나이를 많이 먹으면 자연의 힘이 모여 신력이 생기고 그럼 그 주위로 신들이 모인데.. 시골 마을에 하나쯤 있는 당산목이 바로 그런 나무들이지.”
덕팔이 아영을 지나 소나무 앞에 서서 부드럽게 소나무를 쓰다듬었다.
“좋은 기운을 품은 나무들에게는 좋은 신들이 모이고, 이 할아버지 나무처럼 풍파를 겪어온 나무에게는 애석하게도 잡귀들이 모이지. 어젯밤처럼 달이 뜨지 않는 그믐에는 더더욱 많은 잡귀가 이 나무를 근거지 삼아 모여들어.”
“…아! 그래서 어제 나보고 이 산을 내려가라고 재촉을 한 거구나. 어제 그 바람도..”
“맞아, 대부분의 잡귀는 큰 힘이 없어. 개별적인 힘만으로는 인간을 어쩌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야. 하지만 그들도 하나의 구심점으로 모여들면 악귀들처럼 힘을 내기도 해. 어제 그 한기는 잡귀들이 지닌 원한의 깊이라고 보면 되지.”
“으스스하다. 나 돌아갈래.”
아영이 뒤를 돌아 얼른 오두막 앞 평상으로 달려갔다. 덕팔은 그런 아영의 뒷모습을 바라보더니 이내 시선을 소나무에 고정했다.
“어젠 나도 정말 힘들었어. 하지만 이젠 신령이 되었으니 내 도움은 필요 없겠지? 잡귀들이 다시 찾아오면 잘 품어주고 그들이 딴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이곳에 묶어 줘.”
덕팔의 부탁에 대답이라도 하듯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렸다. 덕팔이 소나무를 몇 번 두드려 주더니, 아영의 뒤를 따랐다.
***
오늘 아침 식사는 꿩 매운탕이었다.
꿩은 야생에서 생활하기에 육질이 단단하고 질겨 제대로 요리를 해내지 못하면 웬만큼 튼튼한 이로는 가슴살 한 점 뜯어내기 어려운 고기였다.
하지만 덕팔은 꿩고기 특유의 쫄깃함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먹기에 알맞은 부드러움을 더하고 거기에 감자와 갖은 채소들을 매콤한 양념과 함께 버물려 훌륭한 매운탕으로 거듭 내었다.
“우와, 이 닭볶음탕 끝내준다. 오빠, 식당 해도 완전 대박이겠어.”
“닭고기가 아니라 꿩고기야.”
“꿩? 그렇구나. 그래서 더 맛있나?”
늦은 아침이었고 아영의 식사량을 감안하여 어제보다 많은 밥을 해 놓았지만 벌써 바가지에 담긴 밥이 반쯤 줄어있었다. 오늘도 잘 못 하면 누룽지를 끓여야 할 상황이었다. 한참 꿩고기를 뜯어 먹던 아영이 불쑥 입을 열었다.
“오빠, 내려가자.”
“…. 나는 아직..”
“사람은 사람하고 살아야지.”
“나는 이곳에서 할 일이 아직 남아 있어.”
“그럼 나는 어떻게 하고?”
“너? 너는 이제…”
“언제고 다시 악귀들이 내 몸에 붙을 수 있는 거잖아.”
“그렇기는 하지만 네가 조심하면…”
“그냥 오빠가 옆에 있어 주면 안 돼?”
아영이 숟가락을 밥상 위에 내려놓곤 덕팔을 지긋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덕팔이 슬쩍 아영의 시선을 피했지만 흔들리는 눈동자를 아영에게 들키고 말았다.
“가자. 나 돈 많아. 집도 크고.. 나랑 결혼하기 싫으면 그냥 내 집에 살면서 오빠처럼 날 돌봐줘. 원래 남녀 사이는 오빠 동생 하다가 여보 당신 하는 거니까. 호호호”
아영이 자신의 용건을 다 마치곤 다시 숟가락을 집어 들고 배를 채우기 시작했다. 덕팔이 그런 아영을 바라보다가 피식 웃어버렸다.
스승이 죽고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스승은 그만 내려가라 하였지만 3년 상을 치루고 싶었다. 스승의 것이었지만 덕팔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던 신투 장갑의 힘도 되찾고 싶었다.
‘스승님께서는 왜 이 장갑을 태우라고 하셨을까?’
천문도룡도라 이름 붙여진 소도만으로는 손각시 같은 하위 악귀 정도가 한계였다. 소도의 힘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신투장갑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스승은 덕팔에게 신투장갑을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덕팔이 자신의 손에 끼워진 장갑을 바라보며 얼굴에 그늘이 졌다. 할아버지처럼 따르고 모셨던 스승의 유지를 저버리는 것이 늘 마음을 아프게 하였기에 이쯤에서 포기를 하는 것도 좋을 듯싶었다.
“그래, 내려가자. 당분간만 신세를 질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