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ch the ghost munchkin! RAW novel - Chapter 154
154화
총산 내 신터.
진향이 차가운 얼굴로 염 의원 사모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이번에 우리 의원님이 공천을 못 받게 생겼어. 공천을 받을 수 있다며? 어떻게 책임질 거냐고!!”
덕팔이 가림막이 쳐진 공간에 앉아 휴대폰으로 염 의원, 그러니까 염성구 의원을 검색해 보았다.
‘이런! 이런 일을 했으니 당에서 공천을 줄 리가 없지.’
본인이 속한 위원회 산하 기관의 비용으로 해외 외유를 다녀온 것이 발단이었다. 문제는 출장으로 잡아 놓았던 외유에 부인을 대동, 영사관 직원의 안내로 거하게 쇼핑을 한 것이었다.
자기 돈으로 쇼핑을 한 것이 뭐가 문제냐고 묻는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대답을 해줘야겠지만, 이 두 부부는 쇼핑한 물건에 부과될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고가의 물품이 담긴 캐리어에 대한 검사를 거부하였다가 이 사실이 나중에 밝혀지면서 최근 세인의 입방아에 오르고 있었다.
“제가 늘 말씀드리지만, 운명은 바뀌기 마련입니다. 전에 제게 오셨을 때는 두 분의 미래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두 분의 경솔한 행동으로 운명이 바뀌고 말았군요. 매사가 가시밭길이니 향후 2년간은 집 밖 출입을 삼가셔야 될 듯싶네요.”
진향의 말에 덕팔이 튀어나오려는 웃음을 억지로 참아내었다. 이 이슈가 잠잠해질 때까진 쥐 죽은 듯이 살라는 말이었다. 그런데 진향의 처방이 너무 과했다. 정치인에게 2년간 활동을 하지 말라는 말은 정계를 은퇴하라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는 말이었다.
“무슨 말 같지도 않는 소리야. 2년 동안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그럼 정치를 때려치라는 거야!!”
“폐가망신보다는 나을 듯 싶군요.”
진향은 인정사정 봐주는 이가 아니었다.
“그보다… 염 의원님께 새로운 인연이 생기셨는데….”
진향이 점괘를 보며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염 의원의 바람기를 건들고 나왔다.
“또..또?”
염 의원 사모님의 목소리가 하이소프라노 톤이 되었다.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뛰쳐나가는 것이 머릿속으로 연상이 될 정도였다.
“복비는 수납 직원에게 내고 가십시오.”
진향이 그녀의 폐부를 찌르는 마지막 염장 질로 오늘의 간단한 상담을 마무리하였다.
염 의원 사모님이 사라지자 덕팔이 모습을 보였다. 덕팔이 웃으며 진향 옆에 앉아 물었다.
“그가 바람을 피고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습니까?”
“아침에 찌라시가 돌았죠. 호호호”
“….. 아! 하하하”
덕팔이 크게 웃었다.
“그는 평생 바람을 필 운명이에요. 그와 그녀는 상극이거든요. 서로 상극인 사람들끼리 이해관계에 맞춰 결혼하였으니 남자는 다른 꽃을 찾는 벌이 되었고, 여자는 벌을 잡아먹는 식충화가 된 것이지요.”
덕팔이 고개를 주억였다. 그러자 진향이 웃으며 뒷말을 이었다.
“덕팔씨와 은혜씨는 사주가 아주 좋아요. 덕팔씨도, 은혜씨도 초,중반에 어려움이 많은 운세지만 두 사람이 함께 있으면 서로의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좋은 동반자가 될 사주예요. 그러니 더 망설이지 말고 그녀를 잡으세요.”
“어이쿠, 저도 나갈 때 수납직원에게 복비를 내야 하는 겁니까?”
“덕팔씨는 특별히 무료로 해드리죠.”
“하하하, 황예리 여사님께 복비를 두둑이 받으신 모양입니다?”
덕팔이 슬쩍 넘겨 집자 진향이 숨길 생각이 없었는지 작게 미소를 지었다.
“사주에는 거짓이 없어요. 단지 복비를 받을 때 이 사주를 덕팔씨에게 전달하는 비용까지 같이 받은 것뿐이지요.”
“아, 그렇습니까? 그런데 은혜씨 어머니가 개신교 집사님이라고 알고 있는데…”
“급하면 집사 아니라 권사님도 오실 수밖에 없지요. 호호호 결국 의지의 문제니까요.”
“하긴…”
덕팔이 웃었다. 황예리가 이곳에 온 이유! 뻔했다. 두 사람의 사주가 어떤지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진향을 통해 은혜와 덕팔의 결혼에 대해 푸시를 하기 위함이었다. 덕팔은 조만간 김 변호사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
풀벌레 소리가 가득한 산속.
두 남자가 등에 짐을 가득 짊어진 채 산을 오르고 있었다.
“헉헉.. 헉헉.. 사장님, 좀 쉬었다 가시죠.”
언제 세수를 하였는지 얼굴에 때 국물이 줄줄 흐르는 남자가 앞서 걷고 있는 남자를 불러세웠다. 앞서 걷던 남자가 뒤를 돌아 환하게 웃었다.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얼굴.
평범하다 못해, 고개를 돌리면 금방 잊혀질 것 같은 얼굴을 가진 남자가 걸음을 멈추었다. 남자가 품에서 낡은 붓을 하나 꺼내더니 조용히 눈을 감았다.
“잠시만 쉬시죠. 2시간 정도만 더 올라가면 텐트를 칠만한 장소가 있을 겁니다.”
뒤따르던 남자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더니 숨을 몰아쉬었다.
“하아하아.. 사장님, 언제까지 이 짓을 하고 다니실 생각이십니까?”
“준민씨는 신력을 모아서 좋고! 저는 검술 수련을 할 수 있어서 좋고! 우리 몽달 친구는 유람을 할 수 있어서 좋고! 좋지 않을 것이 없지 않습니까? 하하하”
웃고 있는 남자 곁에 호피무니 띠를 이마에 두른 남자가 빙그레 웃었다.
[친구, 친구의 검술 실력이 날이 갈수록 늘어가니 가르치는 나로서도 무척 보람된다네. 덤으로 이렇게 멋진 풍광을 볼 수 있으니 평생토록 이렇게 유람하며 살면 좋을 것 같군.]“아이고.. 산음교회는 어쩌시려구요.”
바닥에 쓰러진 남자, 차준민이 앓는 소리를 하자 빙그레 웃고 있는 남자, 덕팔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 이연성 옹께서 풀어 놓으신 악귀들이 전국 팔도에 흩어져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어요. 사령탐정사무소에 정식 의뢰를 해 오셨으니 해결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의뢰비는 모두 인신재단으로 들어간다면서요? 월급이라고 쥐꼬리만큼 주시면서.. 어휴, 김 변호사님의 꾐에 빠져서 완전히 피바가지 썼습니다.”
“하하하.. 그러게 근로계약을 체결하실 때는 눈을 부릅! 뜨고 계약서를 꼼꼼히 잘 작성하셨어야죠. 하하하”
이들은 상거지 꼴로 왜 이곳에 있는 것일까? 시간을 3개월 전으로 돌려보자.
**
3개월 전.
인신법률사무소.
향숙이 덕팔과 준민을 호출하였다. 변호사실에서 덕팔과 준민을 맞이한 향숙이 환한 얼굴로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이게 뭔가요?”
“정식 의뢰가 들어왔어.”
덕팔이 [의뢰서]라는 타이틀을 가진 종이를 읽어보더니 인상을 구겼다.
“의뢰인이 이연성, 김상필씨네요?”
“호호호. 맞아. 어제 두 고객님들이 사무소로 찾아와 의뢰를 맡겼어. 의뢰비로 무려 100억을 기부하기로 하셨지. 호호호호”
향숙의 기분이 무척 좋은 모양이었다. 총산에서 주기적으로 의뢰를 하기는 하였지만, 의뢰비는 1천만 원 미만. 탐정사무소 개소 이래 가장 큰 의뢰가 들어왔으니 기분이 좋을 만도 하였을 것이다.
“의뢰 내용이 굉장히 추상적이네요.”
[내가 풀어 놓은 악귀들을 해결해 달라]단 한 줄이었다. 아마도 이연성이 풀어 놓았다고 하는 바로 그 악귀들을 말하는 것이리라.
“호호호, 이연성 옹께서 그의 지시로 몇몇 악귀들을 풀어놓으신 모양이야. 그나마 이연성 옹께서 악귀를 풀어놓으면서도 일부 제약을 가해서 신력이 강한 소수의 악귀를 제외한 이들은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막아 놓으셨대.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제약이 점점 약해져 그들이 풀려날 거라는 거야. 해서 우리는 제약이 풀린 그 악귀들을 제거해야 하는 거고.”
“흐음..”
이해가 되었다. 그의 지시로 어쩔 수 없이 악귀들을 풀어놓았다는 것은 이연성에 변명에 불과했지만, 그가 악귀들에게 제약을 가했다는 말은 틀림없는 사실일 것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 세상은 진즉 악귀들로 인해 많은 피해를 보고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정작 덕팔이 궁금해하는 건 악귀들의 숫자였다. 덕팔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으니 말이다.
“몇몇요?”
“응, 몇몇!”
“흐음…”
덕팔이 향숙의 표정을 살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몇몇의 범위가 매우 모호하였다.
“구체적으로 얼마나 된다고 합니까?”
“그게 뭐가 중요하겠어? 호호호 의뢰비가 백억이라는 게 중요하지. 호호호”
“평생 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는 않을 거야. 리스트를 작성해서 보내준다고 했으니까.”
“아….”
“리스트가 있을 정도면 많아 봐야 수십이지 않겠어?”
덕팔이 고개를 주억였다. 덕팔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했는지 향숙이 다음 먹이감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건 근로계약서에요.”
향숙이 서류 한 뭉치를 준민에게 내밀었다. 준민이 향숙이 내민 근로계약서를 살펴보곤 기겁을 하였다. 족히 100장은 되는 듯싶었다.
“무슨 근로계약서가 이렇게 두껍습니까?”
“아무래도 특수한 일을 하는 것이니 꼼꼼히 작성해야 하지 않을까요?”
준민이 근로계약서 첫 장을 살펴보았다. 근로시간, 급여 등등 중요한 내용은 모두 첫 장에 기재되어 있었다. 두 번째 장부터는 근로시 유의사항, 근로시 의무사항 등과 같은 부속 합의서 형식을 띠는 별지였다.
첫 장을 살펴본 준민이 만족스러운 얼굴이 되었다. 급여는 매월 500만 원, 4대 보험 및 특별 위험수당과 의뢰 해결 시 건당 인센티브도 있었다. 무려 건당 100만 원! 의무적으로 매달 5건 이상의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어 6건째부터 인센티브가 지급되겠지만, 사령탐정사무소가 매달 처리하는 사건이 20건 남짓이니 그중 10건만 해결해도 인센티브만 오백만 원이었다.
“월급이 너무 후한 것이 아닌지…”
“특별한 일을 하시니 특별한 대접을 받으시는 게 맞겠죠?”
준민이 고민 없이 근로계약서에 서명하였다. 향숙이 준민이 서명한 근로계약서를 가지고 밖으로 나가더니 잠시 후, 사본을 가지고 왔다.
.
“돌아가셔서 천천히 읽어보세요.”
“그럴 필요가 있겠습니까? 저는 사장님을 믿습니다.”
“호호호.. 근로계약은 저희 인신재단과 한 것이니 덕팔씨와는 무관하죠. 그러니 꼭! 읽어 보도록 하세요.”
향숙의 웃음에 준민은 불연 듯 불안해졌다. 준민이 계약서 사본을 잘 챙겨 들고 3층으로 올라와 계약서를 꼼꼼히 읽어보기 시작했다. 계약서를 완독한 준민은 자신이 향숙의 올가미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안…..돼!!!!”
준민의 비명성이 온 건물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어.. 이거 3층에서 나는 소리 아닙니까?”
결제를 받으러 변호사방에 들어온 사무장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향숙이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그러게 꼼꼼히 읽어보고 사인을 하라니까…”
**
“무횹니다. 무효!”
“정당한 근로계약이에요.”
“종신은 말이 안 됩니다. 전 60살이 되면 은퇴를 할 거란 말입니다.”
“그럼 이 세상에 널려 있는 악귀는 누가 잡죠?”
“하아…”
종신제 근로계약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총산에서 들어오는 의뢰를 모두 1건으로 묶으시는 건 말이 되지 않습니다. 한 달에 최소 20건이란 말입니다.”
“어차피 같은 의뢰인으로부터 들어오는 고정 의뢰에요. 의뢰내용도 거의 차이가 없죠. 1건이 맞아요.”
“하아…”
“월 5건을 해결하지 못하면 기본급여에서 1건당 100만 원씩 삭감하는 것은 부당합니다. 기본급여가 뭡니까? 일이 있든 없든 기본적으로 받는 급여 아닙니까?”
준민이 우는 소리를 하자 향숙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설마? 일도 하지 않고 날로 먹을 생각을 하고 있는 건가요? 무노동 무임금은 노동시장의 기본 원칙이에요.”
“하아…”
“사건 의뢰에 필요한 경비를 제 급여에서 공제하는 것도 부당합니다. 차비도 문제지만 어떤 장비가 어떻게 필요할지 모르는데…”
“악귀들을 잡는데 장비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어요. 그러니 기각!”
“하아…”
준민이 고개를 떨군 채 변호사 방을 나가려고 하자 향숙이 달콤한 제안을 하였다.
“덕팔씨가 이연성씨 의뢰를 승낙하면 앞선 모든 조건은 없는 것으로 해줄 수도 있는데…”
준민의 귀가 쫑긋 세워졌다.
“그 악귀들을 잡아 오면 차감 없이 기본급으로 500만 원을 주시겠다는 겁니까?”
“그래요. 업무 중 필요한 모든 경비도 재단에서 부담할 것이고, 연 400% 보너스도 지급해드리죠. 그리고 기타 근로자에게 불리한 모든 독소 조항을 삭제해 드릴게요.”
“참말이시죠?”
“당연하죠. 저는 변호사! 각서를 써드릴 수도 있어요.”
준민이 향숙 책상에서 빈 종이를 하나 가지고 와 향숙에게 내밀었다.
“써 주십시오. 그럼 제가 책임지고 사장님을 설득하겠습니다.”
향숙이 각서를 쓰고 서명까지 하자 준민이 희희낙락한 얼굴이 되어 방문을 열고 나가려고 하였다.
“잠시만요.”
준민이 고개를 돌려보니 향숙이 책상 위에 놓인 서류 뭉치를 준민에게 내밀고 있었다.
“이게 뭡니까?”
“이연성 옹이 보낸 악귀 리스트가 도착했어요. 덕팔씨에게 전해주세요. 오늘 약속! 꼭 지키시구요.”
언 듯 보아도 100장은 넉넉히 넘어 보였다. 언 듯 보니 한 장에 적힌 악귀들의 수가 100은 족히 넘어 보였다.
[ 100*100= 10000 ]악귀 1만을 잡아야 하는 초대형 미션이었다.
“….. 허얼”
향숙의 큰 그림이 결실을 맺어가고 있었다.
***
다시 산속.
“그래도 준민씨는 매달 500만 원씩 기본급을 받는 성과를 얻으셨잖습니까?”
“다.. 사기에요. 사기란 말이에요. 이래 봬도 저는 전 국정원 직원이었는데… 퇴직 후 첫 직장에서 사기를 당하다니…”
준민이 다시 생각해보아도 억울하였는지 이를 부득 갈았다.
“그 500만 원 때문에 절 꼬신 건 준민씹니다. 이 거대한 사기 사건의 최종 피해자는 저죠.”
덕팔이 웃으며 준민의 폐부를 찔렀다.
“…죽을 죄를 졌습니다. 돈 못 버는 남자는 매력이 없다는 혜원씨의 말에 어쩔 수 없이..”
“그것도 김 변호사님의 큰 그림 중에 하나였죠. 하하하, 역시 우리 변호사님은 철저하시다니까!!”
덕팔이 시원하게 웃곤 다시 짐을 둘러메고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의 곁에서 함께 걷고 있는 몽달의 등에 처음 보는 검 한 자루가 채워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