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ch the ghost munchkin! RAW novel - Chapter 153
153화
김상필의 집.
덕팔이 두 노인과 마주 앉아 인상을 쓰고 있었다.
“그러니까, 어르신의 말씀을 요약하면 그가 육신을 가진 채로 민태환의 몸속으로 들어갔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네.”
이연성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을 하였다.
“인간이 육신을 가진 채로 다른 이의 육신에 들어갔다는 게 믿겨지지 않습니다.”
“나도 그랬네. 하지만 지금까지 수집한 모든 정황을 종합해보면 그렇게밖에 결론이 나질 않네.”
“흐음…”
덕팔이 습관적으로 턱을 비비며 숨을 깊게 내쉬었다. 이연성과 덕팔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김상필이 물었다.
“그가 할 수 있다면 자네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두 사람은 같은 능력을 가진 능력자들이니…”
“…. 그게…”
덕팔이 자신의 스승 신력과 김혁성의 신력을 모두 방출하였다는 말을 하자 두 노인이 모두 놀란 눈이 되었다.
“어찌 그런 경솔한 짓을 하였나?”
“그러게요. 이런 상황이 올 줄 알았으면 좀 더 신중하게 판단을 하였을 것인데..”
덕팔도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그러면서도 덕팔의 표정에는 한 가닥 여유가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이연성이 물었다.
“자네! 뭔가 다른 수가 있는 모양이군.”
“모든 걸 비워내니 저만의 것이 생기더군요. 조금씩이지만 죽은 자들의 기운이 아닌 살아있는 것들로부터 기운을 받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것들로부터? 생기를 얻고 있다는 건가?”
“생기라.. 좋은 말이네요. 맞습니다. 생기를 얻고 있습니다.”
이연성의 굳었던 얼굴이 조금 풀린 반면 김상필의 얼굴은 여전히 굳어져 있었다.
“그럼 이제 신력을 축적할 수 없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생기는 저의 원천이 되는 힘이고, 신력은 저의 능력을 배가시키는 힘이 되는 것이지요.”
“애초에 그 쓰임이 다르다고 생각하면 되는 것인가?”
“저도 정확히 설명드릴 순 없지만, 그 말씀이 거의 맞을 겁니다.”
이제야 김상필의 얼굴에도 조금씩 그늘이 지워지고 있었다.
“다행이군, 다행이야.. 우선 급한 대로 우리의 신투 장갑에 축척된 신력이라도 가져가게나.”
“그건 두 분의 힘입니다. 제가 마음대로 가져갈 것이 아니지요.”
덕팔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사양을 하자 이연성이 발끈하였다.
“지금 그런 걸 따질 땐가? 그에게 대적하기 위해서는 자네에게 힘이 필요하네. 당장에라도 그가 자네를 찾아오면 어쩔 셈인가?”
그러나 덕팔은 여유 있는 얼굴로 이연성의 불안을 잠재워 주었다.
“신안은 신속과 다른 능력이 있습니다. 능력의 고하의 차이가 아니라 전혀 다른 능력입니다. 다시 말하면 신안의 힘을 발휘하기 위해선 신력은 필요 없다는 겁니다.”
“뭐?”
두 노인이 모두 놀랐는지 눈이 동그래졌다.
“그가 저에게 보여준 능력은 모두 신속의 힘입니다. 두 분 모두 신속의 능력자들이시니 두 분도 쓰실 수 있는 능력이지요. 그것이 제가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해가 되지 않는군.”
“저도 신속의 힘을 쓰기 위해서는 신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신안의 본래의 힘, 그러니까.. 예를 들면 이런 거..”
덕팔이 손을 뻗자 거실 구석에 걸려 있던 액자가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액자 속 그림은 먼 산 위에서 마을을 바라본 전경이 그려진 풍경화였다. 멀리서 마을 남자들이 밭을 갈고, 여인들이 빨래를 하는 모습이 작게 그려져 있었다.
그런데 그 중 낫을 들고 곡식을 베던 남자가 그림 속에서 끌려 나왔다. 추레한 한복을 입고 상투를 쓴 남자가 한 손에 피가 머금어진 낫을 든 채 거실에 나타나자 두 노인이 일 순 긴장하여 신력을 풀었다.
그러나 덕팔은 남은 한 손으로 두 노인을 제지하더니 남자에게 물었다.
“소멸되시겠습니까?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겠습니까?”
“… 살려 주십시오. 소멸되고 싶지 않습니다.”
남자가 털썩 무릎을 꿇고 덕팔에게 사정을 하자 덕팔이 손을 휘저었다.
“당신의 지난 삶에 대한 심판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남자가 스르륵 사라지자 두 쌍의 눈이 덕팔에게 고정되었다. 덕팔이 웃으며 김상필을 바라보았다.
“모르셨습니까?”
“…. 몰랐네. 그림 속에 잡귀가 들어있다니…”
신속의 능력자라면 응당 잡귀의 기운을 느꼈어야 하거늘 자신은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다. 덕팔이 이유를 알았는지 고개를 주억였다.
“이유가 뭔가?”
“그에게는 신력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어르신께서 저 그림을 산 이유는 저 그림 자체에서 신기를 느끼셨기 때문 아닙니까?”
“맞네.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지더군. 허나 아무것도 없었네. 그래서 명인이 기운을 실어낸 그림이라고만 생각했네.”
“조금 전 그 남자는 전생에 무언가 큰 죄를 지었을 겁니다. 그의 낫이 피에 물들어있더군요. 그는 죽어 심판을 두려워하였습니다. 하여 그림에 숨은 것이지요. 그는 그의 신력을 그림에 풀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자신을 감추었지요. 저 그림 속의 세상은 오직 그만의 세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제가 그를 그의 세상에서 끌어낸 것이지요.”
“놀랍군. 이것이 진정한 신안의 힘?”
“뭐, 그렇습니다. 같은 것을 보는 듯하나 전혀 다른 것을 보고, 같은 힘을 쓰는 듯하나 전혀 다른 힘을 쓰지요. 그것이 신안과 신속의 차이입니다.”
“그런가? 하아… 내 아버지께서는 신안의 능력자셨네. 하지만 자네와 같은 말을 하신 적이 없어.”
“어르신의 아버님께서는 신속의 힘만을 사용하는 신안 능력자셨을 겁니다. 저도 그가 제 인생을 뒤틀어 놓지 않았다면 깨닫지 못할 힘이었죠. 저에게는 앞서 걷고 있는 그가 있었고 가까이에는 신속의 힘을 뛰어넘는 엄청난 힘을 가진 분이 계셨습니다. 나름 행운이었죠. 덕분에 작은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겁니다.”
“그랬나? 그랬어. 그랬어.”
이연성이 연신 고개를 주억이며 탄성을 내질렀다. 그는 덕팔이 하고자 하는 말의 의미를 이해한 듯하였다. 신안의 능력은 신속의 원천인 신력이 필요 없는 것! 신안의 힘을 모두 개화할 수 있다면 하위 능력인 신속의 힘을 빌릴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덕팔은 모든 것을 비워냈기에 그 사실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그보다 덕팔이 진정한 신안의 힘에 한 발 더 가까이에 있는 것이 아닌가?
“뭔가? 뭐가 그랬다는 건가?”
김상필이 이유를 묻자 이연성이 빙그레 웃었다.
“신속의 눈으로 신안을 보려 하니 볼 수가 없었던 것일세. 허허허. 이보게, 김공! 나는 말일세, 인신선생께서 덕팔이에게 신속의 힘에 대해 가르침을 주지 않았다고 하여 이상하게 생각했네. 헌데 이제야 그 이유를 알겠군. 덕팔이는 애초에 신속의 힘이 필요 없었던 거야. 오히려 신속의 힘에 물들면 거기에 갇혀 진정한 신안의 힘을 깨우치지 못하게 될 것을 우려한 것이네.”
“…. 아!”
김혁성보다 상위 능력자였던 인신선생이 그의 제자인 덕팔에게 아무런 기술도 가르치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서 김혁성도 의구심를 가졌던 적이 있었다. 그가 죽기 전에 그 이유를 알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이연성은 오늘에서야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오래전 자신의 가문에서 신안의 능력자들이 대를 이어 배출되었음에도 아버지가 아들에게 그 능력을 자세히 가르치지 않았던 이유도 이제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신안의 힘은 결국 자신이 깨우치는 것! 가르침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던 것이었다.
“이봐, 덕팔이!”
“네, 어르신.”
“그럼 육신을 혼처럼 사용하는 것도 신안의 힘인가?”
“글쎄요. 그것까지는 알 수가 없네요. 악귀가 가진 특별한 능력을 배운 것인지 아니면 신안의 힘을 한 단계 더 개화한 것인지는 제가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알 수가 없는 일이죠.”
“그렇군, 자네 말이 맞아.”
이연성의 얼굴에서 완전히 그늘이 사라지자 뒤늦게 덕팔의 말을 이해한 김상필이 피식 웃고 말았다. 확실히 이쪽 일에 대해서는 자신은 이연성보다 자질이 떨어짐을 새삼 깨달았던 것이다.
“자네는 자네의 길을 가는 것이고, 그는 그의 길을 가는 것이군. 두 사람이 충돌하였을 때, 나올 결과는 아무도 알 수 없는 것! 확실히 이해하였네. 그럼 자네는 앞으로 어찌할 생각인가?”
“우선 명산을 돌며 여유를 가진 후에 종교를 가져볼까 합니다.”
“그를 찾아가겠다는 것인가?”
“네, 확실히 그를 엮을 준비를 마친 후에요.”
***
총산.
아침 일찍 일어난 덕팔이 명상에 들어 있었다. 진향이 잠시 덕팔의 방문을 열었다가 덕팔의 명상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조용히 방문을 닫고 나갔다.
한 시간, 두 시간 계속된 명상이 정오가 되었음에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덕팔을 기다리느라 아침을 굶게 된 혜원의 입이 튀어나왔다.
“오빠!! 밥 먹고 해요. 명상이 뭐가 좋다구 그렇게 오래 해요!”
혜원이 큰 소리를 내었음에도 덕팔이 반응이 없자 직접 몸을 흔들었다. 그런데 눈을 떠야 할 덕팔이 모로 쓰러지는 것이 아닌가! 혜원이 기겁을 하며 진향을 불렀다.
“고모, 큰일 났어! 덕팔 오빠가 기절했나 봐!!”
***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을 때, 덕팔이 진향, 혜원, 준민에게 사과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자의적인 유체이탈은 처음이라 생령으로 이곳저곳 구경을 하다 보니 시간이 그렇게 지났는지 몰랐습니다.”
덕팔이 뒷머리를 긁으며 숟가락을 들자 진향이 웃으며 반찬을 덕팔 앞으로 밀어주었다.
“괜찮아요. 덕팔씨의 능력이 한 단계 더 진척되었다고 하니 그보다 더 좋을 수가 없네요.”
“그가 육신을 가진 채 인간의 몸에 들어갔다고 해요. 그것은 아마도 그의 육신을 영혼화 시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육신을 영혼화 하는 것이 가능한가요?”
“잘 모르겠어요. 뭔가 실마리가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아 저도 좀 답답하네요.”
“그래도 오늘은 유체이탈이라는 성과를 얻었으니 너무 조급해하지 말아요.”
“네, 이모님.”
덕팔이 웃으며 진향이 끓여 놓은 된장찌개에 밥을 한 그릇 뚝딱 해치웠다. 진향이 밥상을 물리고 차를 내왔다. 덕팔이 진향과 함께 차를 마시며 여유를 즐기고 있을 때, 방 밖에서 진향을 찾는 목소리가 있었다.
“대모님, 손님이 오셨습니다.”
“오늘은 손님을 받지 않기로 하지 않았느냐?”
“그것은 알고 있는데 오신 분이….”
집에서 일을 봐주는 젊은 여자가 말꼬리를 늘였다.
“누구길래?”
“염 의원님 사모님께서…”
진향이 인상을 썼다. 고객은 딱 두 종류로 나뉜다. 호구와 진상! 그녀는 전형적인 후자였다.
“흐음…”
진향이 덕팔에게 양해를 구하고 나가려 입을 열고자 하였지만 덕팔의 입이 먼저 열렸다.
“같이 가시죠. 저도 이모님께서 점을 보시는 걸 참관하고 싶네요.”
“어머, 부끄럽게. 호호호”
진향이 몸을 일으키자 덕팔도 진향의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