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ch the ghost munchkin! RAW novel - Chapter 202
202화
리조트. 덕팔의 방.
사이마루와 덕팔이 마주 앉아 진한 녹차 향을 음미하였다.
“오랜만이군. 인간과 함께 차를 마시는 것은..”
“현신이 가능한 요괴는 처음인데?”
“나의 힘이 아니다. 그대가 나의 존재를 믿고 있기에 내가 인간들의 눈에 보이게 된 것이다.”
덕팔이 고개를 주억였다. 사이마루는 자신의 말뜻을 금방 이해하는 덕팔을 신기한 듯 묘한 눈으로 덕팔을 바라보았다.
“내 말이 이해되나?”
“응”
“정말 신기한 인간이군. 음양사들도 나의 말뜻을 잘 이해하지 못하였는데 말이야.”
“대충 그러지 않을까 하는 짐작을 하고 있었는데 네가 확실하게 말을 해주니까 납득이 되더라고. 너희들이 진짜 모습은 정령체라는 것!”
“정령체? 그것이 무엇이지?”
“흐음.. 자연의 힘? 자연에서 자연적으로 생기는 힘의 원천? 아! 모르겠다. 정령의 사전적 의미는 만물의 근원을 이루는 신성스러운 기운을 말해. 동시에 죽은 이의 영혼을 뜻하기도 하고..”
“그렇군. 우리는 네가 말하는 정령체가 맞다. 만물의 근원을 이루는 신성스러운 기운을 얻은 존재들이면서 동시에 죽은 이들의 혼이기도 하니까..”
“그렇지. 내가 그럴 줄 알았다고!!”
“나도 그대에게 묻겠다. 그대는 어찌하여 선기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
“선기?”
“그대가 말을 하지 않았나? 만물을 이루는 신성스러운 기운! 우리는 그것을 선기라고 한다.”
“아하.. 나는 생기라고 하는데.. 뭐 용어는 다르지만, 뜻은 같은 모양이네. 생기.. 그러니까 선기는 우연히 얻은 힘이야. 아직 쓸모를 찾지 못해서 너희들의 기술을 훔쳐 쓰는 데 이용하고 있지만 말이야.”
사이마루의 눈이 크게 떠졌다. 진심으로 놀라는 얼굴이었다.
“우리의 기술을 훔쳐 쓴다고?”
덕팔이 슬쩍 웃으며 분신술을 펼쳤다.
“얼마 전 백귀야행에서 만난 가리스텐쿠로부터 훔친 기술이지.”
“흐음.. 그게 가능한 인간이 있단 말이지? 진심으로 놀랍군. 그 친구는 어떻게 되었나?”
“나에게 대부분의 힘을 빼앗기고 도망을 쳤어.”
“분신을 하나 남겨둔 모양이군.”
“맞아. 보지도 않았는데 잘 아네?”
“가리스텐구는 우직한 사무라이처럼 행동하지만 실상 그의 머릿속에는 까마귀의 본능이 남아 있다. 절대 모든 것을 한 번에 쏟아 붙는 요괴가 아니지.”
“하하하.. 맞아. 그는 그랬어. 그가 분신을 남겨두지 않았다면 어쩌면 그 대결에서 그가 이겼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그 한 수를 꺼내 놓지 않더군.”
덕팔이 웃으며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자 사이마루가 고개를 저었다.
“그래 보이지는 않는다. 가리스텐구는 어리석지 않다. 그가 너와 견주어 승산이 있었다면 모든 힘을 끌어냈을 것이다. 오늘 나 역시 너의 힘을 보고 승부 대신 차를 마시기로 하였으니.”
“그래? 잘 판단한 거지. 요괴들의 왕이 될 자를 죽이고 싶진 않았거든.”
“왕이 될 자?”
“그럴 생각이었던 거 아니었어? 초반에 나에게 던져준 요괴들 말이야. 사실은 악귀에 가까운 존재들이었어. 너는 그들이 나에게 죽어도 좋고 내가 그들에게 죽어도 좋았을 거야. 그런데 내가 그들을 모두 쓸어버리자 나의 능력을 가늠하기 위해 잠시 모습을 보인 거고.”
덕팔이 자신의 추측이 맞지 않았느냐는 듯 입꼬리를 올리자 사이마루도 입꼬리를 올렸다.
“맞다. 그대의 능력을 가늠하기 위해 그대 앞에 섰다. 그러나 나의 판단은 틀렸다. 그대는 나를 속였다. 맞지 않나?”
“후후.. 속은 놈이 병신이지.”
“전적으로 동의한다. 속은 놈이 병신이다. 나는 속았고 그래서 패장이 되어 이렇게 너와 차를 마시고 있는 것이다.”
사이마루가 다시금 찻잔을 입에 가져다 대며 눈꼬리를 휘었다.
“졌지만 손해나는 장사는 안 한다! 역시 여우야!”
사이마루는 오늘 덕팔과의 싸움으로 자신의 뜻에 반하여 반대파 무리를 만드는 권속들을 모두 제거하였다. 자신이 손을 쓰면 반발이 있었겠지만, 적인 덕팔이 그들을 제거해 주었으니 사이마루 입장에서는 손도 대지 않고 코를 푼 격이었다.
물론 덕팔도 나름의 성과가 있어 나쁘지 않은 싸움이었지만 사이마루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덕팔이 그 점을 지적한 것이다.
“나는 내 수하들을 잃었다. 마음이 무척 아프군.”
“헛소리! 어찌 되었든 패배를 자인했으니 전쟁 배상금을 내놓아야 하지 않을까?”
“흐음.. 결과가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휴전하게 되었으니 배상금 같은 것은 없어야 말이 될 듯싶은데.. 아니 그런가? 인간?”
“그럼 이 차를 다 마시고 마저 승부를 내도록 하지. 빠른 승부를 위해서 너희들이 좋아하는 대장전을 제안하는 바이다.”
덕팔이 입꼬리를 올리자 사이마루가 침착하게 대응하였다.
“성격이 너무 급한 인간이군. 협상에는 기술이라는 것이 있다. 상대에게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인내도 필요한 법!”
“훗..”
“무얼 원하나?”
사이마루가 덕팔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철저한 중립! 그리고 마음이 담긴 선물 하나!”
“중립이라… 나의 친구와 저 여자 인간을 말하는 것인가?”
덕팔이 고개를 주억이자 사이마루가 난처한 얼굴이 되었다.
“곤란하다면 중재! 내가 이 땅에 있는 동안 음양사와 유키 간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
“중재라면 가능할지도.. 자리를 만들어보지.”
사이마루가 몸을 일으켰다. 덕팔도 함께 몸을 일으켰다. 방안에서 거실 쪽으로 귀를 대고 있던 이들도 슬그머니 밖으로 나왔다.
“다시 보자. 여자 인간! 그리고 그대, 덕팔이라고 했던가?”
“그래.”
“그날 그대에게 줄 선물을 가져오겠다.”
사이마루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하지만 덕팔의 시선은 거실을 지나 베란다로 향했다. 은혜와 유키는 사이마루의 흔적을 놓쳤지만 덕팔만큼은 마지막까지 사이마루의 흔적을 뒤쫓고 있었던 것이다.
“여우는 여우네. 마지막까지 날 시험해.”
덕팔이 피식 웃으며 쇼파에 편히 몸을 뉘었다.
“아.. 오늘도 고된 하루였다!”
***
사이마루의 행동은 즉각적으로 이루어졌다.
다음 날 아침. 꼬리가 두 개 달린 고양이 한 마리가 서신을 물고 객실 안으로 들어왔다.
“네코마타! 오랜만에 현신을 한 것일 텐데 밥이나 먹고 가지?”
네코마타가 잠시 갈등하는 듯하더니 꼬리를 흔들었다. 덕팔이 우유와 참치 캔을 따 네코마타 앞에 놓아 주자 게 눈 감추듯 흡입을 하곤 유유히 객실을 빠져나갔다.
“평민! 요괴들까지 밥을 챙기는 건가?”
“옛말에 곡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이 있다. 사소한 거지만 상대는 크게 볼 수 있어. 비록 지금은 저 네코마타가 나나 너에게 별 의미가 없는 존재일 수 있지만, 어느 순간에 저 네코마타에 의해 네 목숨이 구해질지 아무도 몰라. 그러니 평소에 많은 존재들에게 베푸는 삶을 살아라. 이 오빠의 진심을 담은 충고다.”
“평민, 너는 너무 건방져. 하지만 네가 그리 간곡히 말을 하니 참고하도록 하마.”
덕팔이 피식 웃으며 네코마타가 놓고 간 서신을 펼쳐보았다.
[오늘 밤 자정. 어제 그곳에서.. 훌륭한 차를 기대하겠다.]“허어.. 끝까지 뭐라도 빨아먹을 생각인 모양이네. 흐음..”
덕팔이 방으로 들어가더니 여행 가방을 열고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기 시작했다.
“아까워서 지금까지 한 번도 안 먹었는데… 오늘은 이걸 좀 풀어볼까?”
오랜만에 등장하는 도돌이꽃잎이었다.
***
“얘들은 왜 잠을 안 자는 걸까?”
덕팔이 간이 테이블 앞에 앉아 손님들을 기다리며 입을 쭈욱 내밀고 있었다.
11시 52분.
웬만하면 10분 전에는 도착할 법도 한데 이 손님들은 시간을 딱 맞춰 올 모양이었다. 덕팔이 먼저 차를 우려 후루룩 한 모금 들이키고 있을 때, 말보다 큰 흰 여우를 탄 채로 여우 목도리를 두른 남자가 어슬렁거리며 나타났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노인과 그를 호위하는 젊은 남자들이 있었다.
덕팔이 일어나 사이마루와 노인을 테이블로 안내하였다.
“어서 오세요.”
[그 무녀는 오늘 이곳에 오지 않는 것인가?]“오지 않을 거다. 그녀는 더 이상 무녀가 아니니까!”
[그녀가 무녀가 아니라고?]사이마루의 의문에 덕팔이 친절히 대답해 주었다.
“그녀의 능력은 이미 무녀의 힘을 넘어섰다. 쪽수로 그녀를 겁박하지 않는 이상 이곳에 그 누구도 그녀를 헤할 수 없어.”
“허허.. 광오한 젊은이로군.”
인사도 없이 입을 다물고 있던 노인이 웃음을 터트렸다.
“오덕팔입니다. 어르신.”
“겐다이 이치마루네.”
“그냥 연락을 주셨으면 찾아뵈었을 것인데 멀리 돌아온 기분입니다. 덕분에 저는 이득을 보긴 했지만 말입니다.”
덕팔이 웃으며 빈 찻잔에 차를 따라 주었다. 노인이 찻잔을 들어 입술을 축이더니 눈이 번쩍 뜨였다.
“이게 무엇인가?”
“도돌이꽃잎차라고.. 매우 귀한 차죠. 제가 숨겨놓고 가끔 꺼내 먹는데 오늘은 귀한 두 분을 위해서 특별히 꺼내왔습니다.”
“신기한 차로군. 차에서 선기가 느껴지다니… 참으로 오묘해.”
사이마루도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눈꼬리를 휘었다.
“덕팔! 이 차를 우정의 선물로 나누어 줄 수는 없나?”
역시 여우인가? 덕팔이 이 차를 내놓았다는 것은 선물을 내줄 의사가 있다는 뜻! 한마디 말로 이 선물을 선점해 버렸다.
“많은 양은 아니지만 두 분께 공평히 나눠드리죠.”
사이마루가 슬며시 혀를 찼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여우인 자신보다 저 덕팔이라는 자가 더 여우 같았다.
“내게 원하는 게 있다고 들었네.”
“영원한 종전을 원합니다.”
“불가하네.”
“요괴들의 힘이 없어도 말입니까?”
덕팔이 사이마루를 바라보았다. 덕팔의 시선을 따라 노인도 사이마루를 바라보았다. 사이마루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친구, 나는 저 인간에게 졌어. 저자는 매우 강해. 그 여자 인간도 매우 강하고! 그의 말대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 사이마루!”
노인의 두 눈에 힘이 들어가자 사이마루가 여전히 난처한 기색으로 노인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 여자는 무녀가 아니야. 보통의 무녀였다면 요괴들을 상대할 수 없어. 하지만 그 여자는 매우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었어. 내가 부리는 요괴들의 절반이 저 덕팔과 그 여자의 손에 사라졌다니까?”
“사이마루, 나는 네가 나에게 거짓말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이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무녀와 그녀들의 가문을 없애려고 하는 이유를 알고 있지 않나?”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덕팔이 끼어들자 노인이 침중한 목소리로 긴 이야기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