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ch the ghost munchkin! RAW novel - Chapter 222
222화
민수가 눈을 떴다.
“누구?”
“형이다. 덕팔이형!”
“절 아세요?”
“아니, 이제부터 알아가려고.”
덕팔이 민수의 머리를 헝클어 주었다. 민수가 몸을 일으키려고 하자 덕팔이 민수를 부축해 주었다. 방 꼴이 엉망이었다.
“네 방인데 네가 치워야겠지? 원한다면 내가 도와주마.”
민수가 힘들게 몸을 일으키더니 주섬주섬 방을 치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내 기운이 떨어졌는지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기대려봐라. 죽 끓여 놨으니까…”
덕팔이 방 밖으로 나가더니 잠시 후 허연 쌀 죽으로 가지고 왔다.
“집에 쌀 밖에 없더라..”
덕팔이 죽을 내미니 민수가 게눈 감추듯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더 주랴?”
민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덕팔이 죽 한 그릇을 더 퍼왔다.
죽을 가져오는 속도가 먹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자 아예 솥 째로 들고 왔다. 적당히 식은 죽은 소금 간밖에 하지 않았지만 꿀 맛이었다. 죽 한 솥을 다 비운 민수가 입맛을 다시며 수저를 내려놓았다.
“당분간 많이 먹을 거야. 하지만 먹는 족족 살이 되지, 그럼 돼지가 되지. 라임 죽이지?”
민수가 멍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이자 덕팔이 씨익 웃었다.
“형처럼 멋진 남자가 되렴. 내일 다시 올게. 네 어머니 깨어나시면 전화해.”
덕팔이 연락처를 남겨 놓고 집을 떠났다. 민수가 한동안 멍한 눈으로 덕팔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다가 몸을 일으켜 거실로 나가 보았다. 살림세간이 다 박살 나서 멀쩡한 것이 하나도 없는 집구석 끄트머리에 놓인 쇼파에 향숙이 기절하듯 잠이 들어 있었다.
퀭한 눈, 푸석한 얼굴, 살이 빠져 뼈밖에 보이지 않는 이 여자가 내 엄마다. 내가 아프기 전까지는 늘씬하고 빛이 나는 여성이었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다시 그가 사라진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 남자라면 날 치료할 수 있을까? 이렇게 멀쩡한 상태로 날 살 수 있게 만들어 줄까?
부서진 살림세간을 발로 밀어 놓고 전화를 찾았다.
띠띠띠띠띠띠.. 그가 남겨준 전화번호를 꾹꾹 눌렀다.
신호가 가고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형…. 살려주세요.”
민수의 다급한 진심이 전화 너머로 흘러들어갔다.
***
인신의 집.
“자네가 자네의 상태를 알고 있다고 하니 말을 하기 편하겠군.”
인신의 설명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진철의 눈이 심하게 떨렸으나 이내 침작해졌다. 긴 이야기가 끝이 나자 진철의 입에서 작음 숨이 내뱉어졌다.
“덕팔이에게 그런 일이 있었군요. 덕팔의 이름을 바꾸신 것도 덕팔이의 운명을 비켜보려고 하신 아버님의 노력이시고…”
“허음.. 노력이라기보다는.. 뭐, 그런 셈이지.”
“감사합니다. 아버님. 이 은혜는 다음 생에서라도 꼭 갚겠습니다.”
진철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인신이 진철을 일으켜 세워주며 헛기침을 하였다.
“생색을 내려고 한 일은 아니야. 나야 뭐, 기억이 없지만 내가 덕팔이를 받아 준 것은 다 그럴 이유가 있었을 것이야. 그러니 너무 감동할 필요는 없어.”
“감사합니다. 아버님, 그래도 덕팔이와 제가 이렇게 살아서 얼굴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아버님이 덕팔이를 받아주시고 보호해 주셨기 때문이지 않습니까? 어찌 이 큰 은혜를 모르겠습니까?”
“커음.. 자꾸 그러면 내 얼굴이 남아나질 않겠어. 그러니 다음 이야기를 하지.”
“…네, 아버님.”
“덕팔이는 덕팔이만 할 수 있는 일이 있네. 그것은 숙명과 같은 것이고.. 덕팔이를 노리는 이도 있어. 누군지 짐작이 가지?”
진철이 고개를 주억이자 인신이 다음 말을 이었다.
“우리는 덕팔이에게 힘이 되어야 하네. 그리고.. 나는 그 아이가 살지 못했던 10년의 삶을 보상해 주고 싶네.”
“그러시면…”
“덕팔이는 전과는 달라. 보호가 필요 없지. 단지 그들과 싸울 힘이 필요할 뿐.”
“제가 무얼 하면 되겠습니까?”
“자네와 나는 그 아이가 정상적은 생활을 하는 동안 그들과 싸울 준비를 해야 해. 나를 도와줄 수 있겠나?”
“당연히 그래야지요.”
“좋네. 나는 자네의 신기능력을 봉인하지 않을 생각이야.”
진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덕팔이가 이번 일본 여행에서 아주 독특한 물건을 하나 얻었네. 그 물건 안에는 강력한 힘을 가진 영혼이 있을 것이야.”
진철이 인신의 말을 완전히 이해하였는지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그를 받아 들이게.”
“제 몸을 내주면 되는 것입니까?”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가? 신내림을 받아 그의 힘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도록 하란 말일세.”
“… 아, 신내림!”
“자네가 신내림을 피한 이유는 잘 모르겠네, 하지만 이젠 피할 수 없어. 자네의 신기 능력은 신속의 능력에 버금갈 정도로 큰 힘이 있네. 봉인도 어렵지만, 언제고 악귀들의 좋은 먹잇감이 될 것이야.”
“제 아들을 위한 일인데 뭘 마다하겠습니까? 그렇게 하겠습니다.”
“좋아.. 그럼 날을 잡아 나와 함께 그를 만나러 가세.”
“그가 누굽니까?”
“그런 이가 있네. 나에게 이를 갈고 있는 철없는 놈!”
인신이 덕팔을 닮은 미소를 지었다.
**
벌써 달이 바뀌어 2월이 되었다.
세상 사람들은 설날을 맞이하여 가족들을 찾아 귀향을 준비하고 있을 때, 덕팔은 운전면허시험장에서 필기와 실기시험을 보고 있었다.
“아싸, 96점!”
삐~
“탈락!!”
필기는 완벽했으니 실기는 그저 그랬다.
“아쒸.. 내가 5년 무사고 베스트 드라이버였는데…”
덕팔이 아쉬운지 뒤를 돌아 실기 시험장을 힐끗 거리며 중얼거렸다.
“역시 코스는 어려워. 다음 주에 재도전!!”
덕팔이 그러고 노는 사이 민수의 상태가 좋아졌다. 좋아지다 못해 살이 오르기 시작했다. 향숙도 지옥에서 막 기어 올라온 얼굴에서 인간의 모습을 되찾아 가고 있었다. 운전면혀시험에서 장렬히 떨어진 덕팔이 민수의 집을 찾았다.
“시험은 어떻게 됐어요?”
“크크크.. 떨어졌다.”
“우와, 한국대 의대 가는 형도 못 하는 게 있구나.”
“코스가 복병이었스…”
덕팔이 양파를 썰며 눈물을 흘렸다.
“다음 주에는 꼭 붙고야 말 거야.. 흑흑”
“형, 무슨 요리를 하려고 양파를…”
“양파절임, 그리고 널 위한 특식! 수제비 짬!뽕!”
“짬뽕은 배달로..”
“어허, 이놈! 이 형이 특별히 만들어 주겠다는데…”
“형이 맨날 고생을 하니까.. 집에서도 밥 한다면서요?”
“괜찮아. 괜찮아. 내가 너에게 요리를 해주는 이유가 있으니까 얌전히 맛있게 받아 먹도록 해.”
“네, 형. 근데요. 저 이제 다 나은 거죠?”
민수의 희망 섞인 물음에 덕팔이 고개를 저였다.
“미안하지만, 아직은 아니야. 지금은 붙어있던 귀신들을 떼어 눟은 거에 불과하고 다시는 귀신들이 달라붙지 못하게 해야 치료가 끝나는 거야.”
“방법은.. 있는 거죠?”
“당연하지! 쑥과 마늘을 많이 먹으면…”
“에이, 그게 뭐예요.”
“인간이 되면 된다는 말이지. 하하하”
덕팔이 시원하게 웃으며 웍을 돌리고 있었다. 맛있는 중국음식 냄새가 났다. 파, 마늘, 양파가 순서대로 기름에 볶아지더니 고기가 투입되었다. 고기가 얼추 익자 갖은 해물이 투하된 후, 물이 부어졌다. 물이 보글보글 끓어오르자 고추가루와 치킨스톡, 굴소스,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가루 조금이 투여된 수제비가 떼어졌다.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손놀림으로 수제비를 떼어내자 민수가 박수를 쳤다.
“와. 요리사야. 완전 요리사!”
“크크크, 경배하라. 이 형을!”
덕팔이 농을 하며 소금으로 간을 한 후 짬뽕 요리를 마무리하여 그릇에 옮겨 담았다.
“자, 먹어봐.”
“우와, 맛있어요.”
민수가 짬뽕 수제비 그릇에 얼굴을 파묻는 사이 향숙이 퇴근을 하였다.
“덕팔씨, 왔어?”
“네, 변호사님. 사무실은 어때요?”
“엉망이지. 뭐. 그래도 덕팔씨가 민수를 돌봐줘서 지금이라도 정상화가 될 것 같아.”
“다행이네요.”
“덕팔씨, 시간 되면 나랑 얘기 좀 할 수 있을까?”
다 먹은 그릇은 꼭 설거지를 하라며 민수에게 잔소리를 한 덕팔이 향숙과 아파트 가까운 커피숍을 자리를 옮겼다.
“궁금한게 있어.”
“말씀하시죠.”
“혹시… 날 알고 있어?”
“네.”
“혹시… 날 기다린 거야?”
“흐음… 대답을 잘못하면 오해가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덕팔이 대답을 미루자 향숙의 눈이 반짝였다. 향숙은 아들 앞에서는 한없이 약한 엄마였지만 그녀는 변호사다. 그것도 서초동에서 난다 긴다하는 변호사들을 밀어내고 수년간 톱자리를 놓치지 않은 변호사였다. 덕팔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못 알아 들을리 없었다.
“민수의 상태에 대해서 알았지만, 의도한 것은 아니다는 말이지?”
“네. 정리하면 그렇게 되겠네요.”
“어떻게.. 안거지? 누구한테 들은 거야?”
“후우.. 저는 변호사님이 꼭 필요해요. 사실은 오래전부터 변호사님의 도움을 받아왔어요.”
“나는 덕팔씨를 몰라.”
“네, 저도 이곳에서는 변호사님을 처음 뵈었어요.”
“이곳에서는? 그럼 다른 곳에서 날 봤다는?”
“미친놈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변호사님을 속이면서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까.. 있는 그대로 말씀드릴께요.”
덕팔의 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가급적 향숙과 민수, 그리 인신재단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흐음.. 믿고 안 믿고의 문제를 떠나 덕팔씨의 말에는 뭔가 오류가 있어.”
“오류요?”
“응, 뭔가가 빠져있어. 특히 대한그룹과 재단과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뭔가 큰 구멍이 있어. 왜 그런 거지?”
덕팔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향숙이 덕팔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한동안 덕팔의 눈을 응시하던 향숙이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해 볼게. 그 말을 믿을지, 말지는…”
향숙과 덕팔이 커피숍을 나와 헤어졌다. 향숙은 아파트 출입구까지 천천히 걸으며 생각에 잠겼다.
“믿을만한 가치가 있는 이야기야. 빙의가 되고, 악귀가 나오는 판에 회귀를 했다는 말을 믿지 않을 이유가 없어. 그런데.. 덕팔씨의 말을 그대로 믿는다고 해도 그의 말에는 인과관계를 거스르는 뭔가 큰 구멍이 있어. 덕팔씨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 거라면 덕팔씨의 기억은 완전하지 않은 거야. 어쩌면 그것이 미래에 변수가 될 소지가 있어. 그걸 알아야 해. 그걸..”
향숙이 입술을 질근거렸다. 그녀가 흥미를 가지는 일이 생기면 늘 나오는 버릇이었다.
**
인신의 집.
“할아버지, 우리 설날에는 어떻게 하죠?”
덕팔이 끓여 낸 냉이 된장국에 밥을 말아 먹고 있던 인신이 고개를 들었다.
“차례나 뭐.. 이런거!”
인신이 고개를 돌려 달력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주억였다.
“차례상보다 급한 게 있다.”
앞으로 3일만 더 지나면 민족의 대명절 설이다. 덕팔은 인신의 아들과 그의 손자를 위한 차례상을 차릴 것인지 물었다. 지난 삶에서 스승을 모시는 동안 한 번도 차례상을 차려본 적이 없었다. 그때는 인신에게 그런 아픈 과거 있었다는 걸 몰랐기에 전혀 신경을 쓰지 못했다.
사실 알았다고 해도 그에게 쫓겨 하루하루 불안한 삶을 살아가는 덕팔에게는 그러한 점까지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알았고 여력이 생겼으니 당연히 챙겨야 하는 것이다. 덤으로.. 엄마의 차례상도 차려주고 싶었다. 이번 삶에서 왜 그녀의 영혼이 보이지 않는지는 알 수 없지만, 천도가 되었길 바랬다. 그러한 마음을 담아 차례상을 차리려 하는 것이었다.
“오두막에 가야겠다.”
“…. 아!”
설은 음력 1월 1일이다. 그런데 그보다 하루 전날인 음력 12월30일은 1년 중 악귀들이 가장 강해지는 날이다. 오두막 뒤편에는 먼 훗날, 신령수가 될 괴목이 있다. 그녀를 지켜야 몽달을 구할 수 있고, 소룡을 만날 수 있다. 덕팔이 자신의 우둔한 머리를 응징했다.
“아이고야..”
스스로 알밤을 먹이고 앓는 소리를 하자 인신이 웃었다.
“그렇게 때려서 죽겠느냐? 이 할애비가 시범을 보이마.”
“살려주십쇼. 스승님.”
급하거나 아쉬울 때마다 나오는 단골 멘트 ‘스승님’, 오늘도 덕팔은 그렇게 비굴하게 생명을 연장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