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ch the ghost munchkin! RAW novel - Chapter 275
275화
인신의 집.
“그래서 복학은 언제 하는 것이냐?”
인신이 물었다.
“3년 후에요.”
“네 나이가 23살, 3년 후면 26살, 아직 4년을 더 다녀야 하니 딱 30살이구나. 허허.”
“저는 인턴, 레지던트 생활을 하지 않을 거니까! 바로 개원이죠. 이젠 전관 예우를 받을 수도 있는 변호사 자격증을 가진 한의사가 되는 거예요. 좋으시죠? 할아버지?”
“퍽이나 좋겠구나.”
신력 파리채가 덕팔의 뒷통수를 후려갈기고 갔다.
“아야야.. 이젠 그만 때리시면 안 돼요? 이러다가 저 바보 되겠어요.”
“너는 좀 그럴 필요가 있지. 암, 있고말고..”
“훗, 질투하시는 거구나.”
덕팔이 잽싸게 도망을 쳤다. 2층으로 오르는 덕팔을 인신이 불러세웠다.
“생기는 어떠하냐?”
덕팔이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 인신은 이걸 좋아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지금 상태로는 덕팔이 천문을 열지 못한다. 그럼 자신이 죽을 때까지 덕팔은 자신의 곁에 있게 된다.
그놈도 자신이 있는 동안에는 함부로 움직이지 못할 것이니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자신의 삶은 얼마 남지 않았다. 길어봐야 30년, 짧게 살면 29년 정도 더 살 수 있을 것이다. 그 뒤에는 어떻게 한단 말인가?
“크음.. 너무 먼 미래를 걱정하고 있었군. 일단.. 잊어야겠어.”
인신이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
서울 모처의 커피숍.
“오빠, 진우가 내 연락을 받지 않아요.”
“철윤이에게 골수를 기증해 주었다고 하여 너에 대한 감정이 풀렸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야.”
“하지만.. 오빠!”
“너, 덕팔이에게 돈도 받았지?”
황린의 고개를 떨구어졌다. 3년 전, 그날…
**
“진우야.. 엄마야.”
황린이 덕팔을 잡고 매달렸다. 덕팔이 주위를 돌아보며 황린의 팔을 뿌리쳤다.
“사람을 잘못 아신 듯싶네요. 제 어머니는 돌아가셨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덕팔이 황린을 지나치려 하자 황린이 덕팔의 팔을 잡고 매달렸다.
“네 동생이.. 아파.. 제발… 살려줘.”
덕팔이 그 자리에 우뚝 섰다.
“제게 동생이 있었군요. 어머니도 생겼고.. 갑자기 말이죠.”
덕팔이 몸을 돌렸다. 그리곤 황린의 눈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부인할래야 부인할 수도 없을 듯싶었다. 지독히 닮은 얼굴.
“연락처를 주세요. 그럼 전화드릴게요.”
황린이 떨리는 손으로 덕팔의 휴대폰에 자신의 전화번호를 남겼다. 황린이 떠나자 다미가 덕팔의 손을 꼬옥 잡아 주었다.
“괜찮아?”
“안 괜찮아.. 누나.”
카트를 잡고 있는 덕팔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일단. 집으로 가자.”
**
인신의 집.
“널 찾아갔다고?”
평생 화를 내지 않을 것 같은 진철이 버럭 화를 내며 밖으로 나가려 하였다. 덕팔이 급히 진철을 안았다.
“아빠… 그러지 마요.”
“… 미안해. 아들. 아빠가 널 보호해주지 못해 또 상처를 입는구나.”
덕팔이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 원망하겠나? 친부는 미쳐 날뛰었고, 친모는 자신을 버리고 도망을 갔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을 거둬준 이가 아니던가? 자신을 위해 신분을 바꾸고 모든 걸 버리고 은둔하다시피 힘든 삶은 산 이가 오진철이었다. 그런 그를 어찌 원망하겠는가?
“아빠, 제가 알고 있는 게 사실이 아닌가요?”
“…. 미안해. 아들.”
그날 그녀의 손에 이끌려 그 집에 간 것은 사실이었다. 방문을 열어보니 태어난 지 100일도 안 된 덕팔이 그의 한 팔에 안겨 울고 있었다. 그의 왼손에는 소주병이, 그의 오른 손에는 작은 과도가 들려 있었다. 진철은 급히 덕팔을 안아 들었다. 그런데.. 덕팔과 함께 그의 손에 들린 칼도 진철에게 안겨들었다.
아랫배에서 통증이 밀려왔지만 덕팔을 그녀에게 안겨주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방을 나왔다. 그런데 그녀가 없었다. 당연히 무서웠을 것이다. 붉어진 눈인 되는 그의 눈동자는 탁했고 이성을 잃은 듯했다. 그녀가 그 두려움을 피해 잠시 어딘가로 숨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집을 나와 근처를 다 찾아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없었다.
아랫배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덕팔의 옷을 반쯤 적셨을 때, 그녀를 찾는 걸 포기했다. 병원에 들려 응급처치를 받은 후 집으로 돌아갔다. 어쩌면 자신의 집에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에..
하지만 집에 있었던 이는 자신의 피가 굳어있는 과도를 들고 있는 그뿐이었다. 진철은 그대로 도망을 쳤다. 그와 싸울 기력도 없었지만, 자신의 품에 안겨 잠이든 덕팔 때문에 도망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숨었다. 노란 장판이 쩍쩍 달라붙는 여관방에 숨어 덕팔을 돌보며 그의 집과 자신의 집을 살폈다. 그녀가 돌아왔다면 분명 어딘가에 흔적을 남겼을 것이라 믿고 그녀를 기다렸다. 그러나 다시 그를 만났다. 그는 집요하게 진철을 쫓았다. 밤새 숨바꼭질을 하고서야 그를 따돌리고 여관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가 무서웠다. 그런 눈은 살면서 처음 보았다. 어쩌면 자신이 그의 손에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품에 덕팔이 안겨 있었다면 상관이 없지만 이대로라면 자신의 죽음은 곧 덕팔의 죽음. 결국 도망을 치기로 했다.
일본에서 돌아온 후, 진철은 그녀를 찾았다. 그녀의 집, 그녀의 시골 마을, 가보지 않은 곳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를 만날 수 없었고 결국 덕팔의 진철의 아들이 되어야 했다.
“하아.. 결국 버러진 거네요.”
“이유가 있었다고 하더라.”
“그랬겠죠. 이유도 없이 버려졌다면 전.. 존재의 의미가 없잖아요.”
“만나봐. 이야기를 들어봐. 그러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어.”
덕팔이 고개를 주억였다. 하지만 덕팔의 눈은 늘 자신에게 보여주는 그런 눈이 아니었다.
**
대한병원. 908호실.
“김윤철 환자분?”
“누나!”
“주사 맞을 시간이에요.”
“안 아프게 살살…”
이제 겨우 중학교 3학년이라고 했다. 아프기 시작한 것은 4년 전, 아비는 일찍 죽었고, 어미 손에서 자랐다고 했다. 그녀의 인생도 참 박복한 것은 자신과 다름이 없다. 덕팔이 병실로 들어가자 엉덩이를 비비던 윤철이 덕팔에게 물었다.
“누구세요?”
“넌 누구냐?”
“김윤철인데요?”
“오덕팔이다.”
“오덕팔? 어디서 들어봤는데.. 어디서 들어봤더라?”
김윤철이 골똘히 생각을 하더니 박수를 짝 쳤다.
“연예인이다. 맞죠?”
“그래, 연예인이다.”
“와.. 내가 연예인을 다 보고!! 친구들한테 자랑해야지.”
김윤철은 덕팔에게 관심이 없는 듯했다. 그저 친구들에게 자랑할 거리가 생긴 것이 좋은 모양이었다.
“네 어머니는 어디가셨냐?”
“일하러 갔어요.”
“언제 오시냐?”
“저녁 늦게 오실 건데… 왜요?”
“아니야..”
덕팔이 병실 침대에 써 있는 환자 이름표를 슬쩍 보더니, 윤철의 머리를 헝클어주곤 병실을 나섰다.
***
“상태가 어떻습니까?”
“항암치료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단계까지 왔습니다.”
“얼마나 버틸 수 있습니까?”
“글쎄요.. 사실 지금으로서는 장담하기 어렵군요. 보통 백혈병은 그 자체 질환으로 사망하기보다는 그로 인해 발생하는 기타의 질환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많아서요.”
“골수 이식을 받으면 생존 가능합니까?”
“적합도에 따라 달라지지만, 부작용이 없으면 생존률은 70%가 넘습니다.”
“그럼.. 그 적합도 검사부터 하시죠.”
“그런데.. 누구신지?”
“형입니다.”
덕팔이 쓰게 웃었다.
**
주치의를 만나고 골수를 뽑았다. 더럽게 아팠다. 검사 결과는 1주일 후에 나온다고 하니 그때 다시 병원에 들리면 될 것 같았다. 병원을 나서는데 그녀를 만났다. 덕팔이 그녀를 먼저 보고 슬쩍 피했지만, 그녀도 덕팔을 보았는지 덕팔을 따라왔다.
“저어…”
“못 본 것으로 하시죠. 검사는 의뢰해 놨으니 1주일 후에 결과가 나온다고 하네요.”
덕팔이 그녀를 지나쳐 가자 그녀가 울었다.
“미안해….”
“괜찮습니다.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해 보죠.”
“강간이었어.”
덕팔의 팔을 잡은 그녀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아이가 생겼어. 그래서 그와 결혼을 한 거야. 진철 오빠를 사랑했지만 말을 할 수 없었어. 그래서 그랬어. 그가 변해갈 때 더 이상 감당할 수가 없었어. 그래서 그랬어. 너무 어렸고 너무 무서웠어.”
“이해.. 하겠습니다.”
“미안해. 미안해, 진우야.”
“네.. 알겠습니다.”
덕팔이 그녀의 팔을 천천히 풀곤 병원을 떠났다. 그녀는 울었다. 울고 또 울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아마도 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 더 미안해서 울었다.
**
“적합도가 90%로 나왔습니다.”
“그럼 수술은 가능한 겁니까?”
“네, 당연하죠. 이렇게 높은 적합도는 드뭅니다. 부작용도 거의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좋아해야 했다. 그러나 덕팔은 쓰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오늘 검사 결과는 그녀도 함께 듣고 있었다. 그녀가 덕팔의 뒤에서 조용히 울고 있었다.
“언제 이식하게 됩니까?”
“환자분과 증여자의 컨디션을 조절해야 하니 일주일 정도 입원을 하신 후에 시술을 하도록 하죠.”
덕팔이 한숨을 내쉬었다.
***
인신의 집.
“저 일이 생겨서 당분간 집에 못 들어올 것 같아요. 할아버지.”
“이식을 해주기로 했느냐?”
“들으셨어요?”
“언제까지 숨길 생각이었느냐?”
“가급적 모르시는 게…”
“바보 같은 놈!”
오랜만에 다시 맞아보는 알밤에 덕팔의 정신이 혼미해졌다. 이건 진짜 화가 나서 때리는 알밤이었다.
“화내지 마세요. 저도 좋아서 그러는 건 아니니까..”
“이식을 해주기로 했으면 화는 내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니냐.”
“그러게요. 그래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돼요. 아직 배움이 부족한가 봐요.”
“어리석은 놈, 용서가 된다면 너는 이미 신선이 되었을 게야. 그러니 마음 가는 대로 화도 내고, 땡강도 부려. 그 좁아터진 마음에 꾹꾹 눌러 담아놓지 말고.”
인신이 무심히 말을 던지곤 안방으로 들어갔다. 덕팔이 인신을 따라 안방문 앞에까지 갔다가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끅끅…”
덕팔이 소리죽여 울었다. 다미가 2층 계단에서 그런 덕팔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위로를 해주고 싶었지만 뭐라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다미가 조용히 내려가 덕팔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자 덕팔이 다미의 품에 안겨 목놓아 울었다.
다미는 덕팔의 얼마나 아픈지 가늠할 수 없었다. 그러나 오늘 자신에게 진짜 동생이 생겼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
다행히 골수 이식은 성공하였다. 통증이 상당했다. 꽤 시간이 지났는데 등골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많이 아파?”
“어.. 죽을 것처럼 아파. 근데 그놈은 신음 한 번 안 내더라고. 썩을 놈 같으니라고..”
“왜? 그래?”
“챙피하잖아. 나는 형인데. 그놈은 동생이고..”
다미가 웃었다.
“멜론 줄까?”
“어.. 먹어줘… 아앙!”
다미가 피식 웃었다. 때로는 한없이 나이 든 오빠 같았지만, 지금은 한없이 어린 동생 같았다.
“할아버지는?”
덕팔이 멜론을 우물거리며 묻자 다미가 고개를 흔들었다.
“약을 만들고 계셔.”
“무슨 약?”
“너하고 윤철이에게 먹일 약!”
덕팔이 고개를 갸웃 거렸다. 자신이 알기로 스승은 백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을 만들지 못했다.
“내가 모르는 게 있었나?”
“그냥 보약이래. 네가 집에 빨리 와야 한다고.. 요즘 반찬이 영 입맛에 안 맞으시나 봐.”
“내가 반찬은 다 해놓고 왔는데 왜?”
“미정이가 집에 있잖아.”
“아.. 우리 먹깨비 누님께서 반찬을 흡입하고 계시는 모양이구나.”
“할아버지는 미정이가 반찬을 빼돌린다고 생각하셔. 인간이 그렇게 많은 양을 한꺼번에 먹을 수 없다시면서..”
“하하하.. 하긴 미정누나의 식탐은 범 우주적이지.”
덕팔과 다미가 즐겁게 웃고 있을 때 병실문이 열렸다. 그녀가 들어왔다. 다미가 일어나 공손히 인사를 하곤 눈치를 보며 슬며시 병실을 빠져나갔다.
“… 고마워.”
“적합도가 맞아서 한 거 뿐이에요.”
“…그래도 고마워.”
“남이라도 해줄 수 있는 거니까 고마워 말아요.”
“…응”
“계좌번호 문자로 보내요.”
그녀가 놀란 눈이 되었다.
“타이밍 좋게 출연료가 들어왔네요. 누가 운이 좋은 건지.. 쯧”
“아니야, 그럴 순 없어.”
“그럼 윤철이를 데리고 곰팡이 피는 반지하에 계속 살 거예요? 그러다 재발되면요? 그때 또 와서 골수 빼달라고 하실 거냐구요?”
덕팔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그녀가 고개를 떨궜다.
“보내세요. 절 낳아주신 값이라고 생각하시고.. 우리 인연은 여기서 끝내죠.”
“…진우야. 미안해. 엄마가…”
“제 엄마는 제가 세 살 때 돌아가셨어요. 그러니까.. 분에 맞지 않는 호칭은 삼가해 주세요.”
“미…미안해.”
그녀가 몸을 돌리자 덕팔이 그녀를 불러세웠다.
“저기요. 거기 멜론 가져가세요.”
“아..아니야.”
“그쪽 분 드시라고 드리는 거 아니니까.. 가져가서 윤철이 먹이시라구요.”
덕팔의 언성이 다시 높아지자 그녀가 멜론이 담긴 나무바구니를 들고 병실을 나갔다. 덕팔이 길게 한숨을 내쉬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다미가 들어왔다. 병실 밖을 잠시 힐끗 거리더니 덕팔을 달랬다.
“어머니를 만났잖아. 잘해드리면 안 돼?”
“안 돼! 그럼 내 어머니께 정말 큰 죄를 짓는 거야.”
“네 어머니?”
“응, 천도도 하지 못하시고 20년간 날 돌봐주신 어머니.. 난 그분을 배신할 수 없어. 아니, 배신하고 싶지 않아.”
다미는 덕팔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덕팔이 그리워하는 어머니가 덕팔에게 얼마나 많은 애정을 쏟았는지 알 것 같았다.
“어떤 분이셨어?”
“흐음.. 늘 내 곁에서 책을 읽어 주셨어. 옛날 얘기도 많이 해주셨고.. 내가 잠이 들 때까지 나를 품에 안아주셨어. 요리도 알려주셨지. 하지만 한 번도 내게 요리를 해주신 적은 없었어. 그분은 늘 그걸 미안해하셨어. 그런 분이셨어..”
덕팔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저 눈물은 닦아 줄 수 있는 눈물이 아니다. 그저 저렇게 흘러 덕팔의 마음에 스며야 하는 눈물이다. 다미가 웃으며 덕팔의 손을 잡아 주었다.
“덕팔이는 좋은 어머니를 두었구나.”
“응. 좋은 어머니셨어. 세상 그 누구보다도…”
덕팔이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