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ch the ghost munchkin! RAW novel - Chapter 276
276화
덕팔의 입원 소식이 밖으로 세어져 나갔다. 아마도 간호사 중 누군가가 입을 잘못 놀린 모양이었다. 기자들보다 한수민이 먼저 달려왔다.
“덕팔씨! 괜찮아요?”
“당연히 괜찮죠.”
“골수 이식했다면서요?”
“어허.. 환자의 의료 기록을 이렇게 함부로 발설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네? 모교 병원이라서 진정도 못 하겠고 말이야.”
“쳇, 전화를 해주면 누가 뭐라고 해요?”
한수민이 입을 비쭉이자 덕팔이 크게 웃었다.
“왜요? 그 일처럼 기자들한테 찌라시 뿌릴려구요?”
“나참, 그거 제가 한 거 아니라니까요?”
덕팔과 한수민이 말하는 그 일이란 덕팔이 촬영 중에 다친 사건을 말하고 있었다. 분명 방송국에서 공식적으로 짤을 돌린 것인데 덕팔은 왜 한수민을 오해하고 있는 걸까?
“짤이야 방송국에서 뿌렸겠죠. 하지만 제 팬들이 어떻게 알고 항의 방문을 했을 까요? 방송국 게시판이 폭파되기 직전까지 여론 몰이를 한 사람이 누굴까요?”
“흠…. 글쎄? 그럼 깜찍한 짓을 한 게 과연 그게 누굴까?”
한수민이 시치미를 떼면서도 덕팔과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풋… 원망하는 거 아니니까 그렇게 시치미 뗄 필요 없어요. 하지만 오늘 일은 절대 안 됩니다. 제 사생활이에요. 보호받고 싶어요.”
“그럼 이건 어때요? 백혈병 투병을 하는 환아를 위해 골수이식! 사적인 관계 쪼옥 빼고 덕팔씨 중심으로 찌라시?”
“다미 누나, 누나네 후배니까 알아서 좀 잘해봐.”
다미가 웃기만 했다. 다미로서도 한수민은 부담스러운 후배인 듯싶었다.
“언니, 제 말이 틀려요? 남들은 미담이 없어서 억지로 만들어 소문을 내는데.. 미담을 숨길 필요가 없잖아요. 자아~ 그러지 마시고.. 웃어보세요. 하나둘 셋!”
한수민이 침대에 누워있는 덕팔을 휴대폰으로 찍곤 얼른 도망쳤다.
“내일 기자들하고 함께 올게요. 안녕~”
한수민이 사라지자 병실에 안정이 생겼다.
“어휴, 정신없어.”
“그래도 착한 애잖아. 널 많이 좋아하는 것 같던데 넌 마음이 없어?”
“어, 없어. 부자집 딸래미하고 엮기는 건 최은혜 하나로도 차고 넘칠 정도로 충분한 경험이었어.”
“그 애 잘못이 아니잖아.”
“그래서 그 애를 원망하진 않아. 단지, 서로 모르고 지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뿐이지.”
덕팔이 쓰게 웃는 것을 보고 있던 다미가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더니 TV를 켰다.
“왜?”
“네 드라마 하잖아. 요즘 이거 보는 재미로 산다니까? 호호호”
시청률 20%를 넘긴 덕팔의 드라마가 시청률 30%를 향해 열심히 달려가고 있었다.
**
서울 모처의 커피숍
“오빠, 내가 돈을 달라고 한 게 아니야. 진우가 원한 거야. 윤철이가..”
“그랬겠지. 고생하는 동생을 보고 싶지 않았을 테니까.. 덕팔이는 그런 아이야.”
진철이 숨을 작게 내쉬었다. 그리곤 황린을 바라보았다.
“너와 덕팔이의 인연은 20년 전에 끝이 났어. 그러니.. 그만 미련을 버려”
“난 진우의 용서를 받고 싶어. 어떻게 하면 될까? 내가 죽어야 용서가 될까?”
“그날, 그럴 마음으로 진우를 품에 안고 도망가지 그랬니?”
“너무… 무서웠어. 그걸 감당하기에 나는 너무 어렸다고..”
“그래도 넌 엄마였다. 그러니 그 무게를 감당했어야 했어. 더 이상 그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 윤철이 잘 키우고.. 이번에는 좋은 엄마가 되길 바라마.”
진철이 몸을 일으켜 커피숍을 나갔다. 황린인 그런 진철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진우에게도 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 오빠.”
**
다시 3년 후,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수 5부.
덕팔이 하는 일 없이 놀고 있었다.
“선배님, 4부 선임검사님하고 친하시다면서요?”
“근데, 그게 왜?”
“사건이라도 하나 훔쳐 오세요. 이게 뭐예요. 일주일째 놀고 있잖아요.”
덕팔이 입을 비쭉이자 박주홍이 웃었다.
“놀 수 있을 때, 열심히 놀아라. 나중에 집에 보내달라고 울지 말고.”
“제가 시보인 줄 아십니까? 저는 아무리 바빠도 칼퇴 할 겁니다.”
“누구 맘대로?”
“제 맘이죠.”
박주홍이 눈을 부라리자 덕팔이 종종걸음으로 의자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으아.. 날씨 좋다. 이렇게 날씨가 좋을 때는 산책도 하고 그래야 하는데…”
덕팔이 멍한 눈으로 밖을 바라보았다. 한동안 그렇게 망중한을 즐기고 있을 때 책상이 두드려지는 소리가 들렸다.
똑똑..
덕팔이 종종걸음으로 다시 의자를 돌려 책상 앞에 서 인물을 바라보았다.
“최… 은혜?”
**
“검나 오랜만이지?”
“응.”
“완전 달라졌는데? 머리도 짧아지고.. 뭐랄까? 성숙해졌다고나 할까?”
“응”
검찰청 앞 커피숍. 덕팔의 목이 조여 오고 있었다. 삼십 분 째 덕팔이 떠들었지만, 은혜의 대답은 오직 ‘응’이었다.
“유학 갔다는 말은 들었는데 완전히 돌아온 거야?”
“응”
“그럼 복학은 안 하는 건가?”
“미술은 그만뒀어.”
“아.. 그렇구나. 나는 아직 학교를 더 다녀야 해. 예과 마치고 본과 올라가기 전에 휴학한 거라.”
“알아, 얘기 들었어.”
“그랬구나.”
은혜의 말문이 조금씩 트이니 자신 목을 죄는 무형의 족쇄도 조금씩 풀리는 것 같았다.
“그런데 여기는 웬일이야? 너하곤 안 어울리는 곳인데..”
“선전포고하러 왔어.”
“…응?”
“그날 날 그렇게 비참하게 만든 너에게 복수를 하겠다는 선전포고!”
“은혜야.”
“그렇게 다정히 부르지 마. 내 이름을 그렇게 부를 거였으면 그때 그렇게 불러줬어야 했어.”
“후우… 미안하다. 내가 철이 없어서 너한테 상처를 줬는데 사과할게.”
“사과? 그걸론 안 되지. 너도 내가 당한 고통을 똑같이 당해봐야지.”
덕팔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날, 자신이 너무 심했다는 건 알고 있다. 은혜가 받았을 상처를 생각하지 못하고 한 말들은 아니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은혜는 여전히 자신에게 미련을 가졌을 것이고 그 미련이 은혜와 자신 모두를 파멸로 몰고 갈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당할게. 너의 복수!”
“그렇게 쉽게 대답하면 안 될 거야. 나는 네 인생을 망가뜨릴 거니까”
은혜의 눈이 차가워졌다. 은혜를 잘 알지 못 했지만, 그녀의 한이 고스란히 느껴지고 있었다. 은혜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덕팔도 은혜를 따라 일어나 그녀의 뒤를 따랐다. 은혜가 커피숍 문을 열다 말고 물었다.
“왜? 변명을 안 하는 거지?”
“무슨 변명? 내가 잘못한 건데?”
“아빠한테 얘기 들었어.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다는 거.”
“굳이 그런 말씀은…”
“하지만, 고맙게 생각하지 않아. 네가 너의 안전을 위해 날 짓밟았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으니까..”
“맞아. 틀림없는 사실이야.”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해도 너는 파멸하게 될 거야. 그러니 최선을 다해 발버둥 쳐 봐.”
“그렇게 해서 복수에 성공한다고 치고.. 너에게 뭐가 남는 거냐?”
“나의 자존심! 그리고…”
일순 은혜의 말문이 막혔다. 뭐가 남는 걸까? 덕팔을 곁에 둘 수 있는 것인가? 자신의 복수 목적은 무엇일까?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도 나는 그날 너에게 똑같은 짓을 했을 거야. 그래서 너에게 미안해. 그것이 너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그걸 알면서도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하지만, 너에게 미안해하면서도 또 똑같은 짓을 할 수밖에 없어 미안해.”
“변명이 너무 구차하군. 나를 조금만 믿었다면 너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됐어.”
“은혜야. 나는 널 사랑하지 않아. 그건 너의 일방적인 감정이었어.”
은혜의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자신은 지금 복수를 핑계로 덕팔에게 사랑을 구걸하고 있는 것일까?
“나도 널 사랑하지 않아. 그저 어린 마음에 든 첫 호기심이었어. 지금에 와서 그때 감정은 중요하지 않겠지. 중요한 것은 내가 너에게 갖는 증오심이야.”
덕팔이 고개를 주억였다.
“알았다. 네 감정이 그렇게 밖에 풀리지 않는다면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거지..”
은혜와 덕팔이 각자의 길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
경찰청 광역수사대.
“차 경위, 인사명령 내려왔다.”
과장이 준민에게 인사명령서를 내밀었다.
“오호.. 드디어..”
“알고 있었냐?”
“네, 과장님. 검사님께 연락을 받았습니다.”
“신입 검사하고 아는 사이라고 했지?”
“네, 친한 동생입니다.”
“들리는 소문에…”
과장이 준민을 데리고 아예 과장실로 들어갔다. 쇼파에 앉은 과장이 준민에게 자신이 아는 대로 설명을 시작했다.
“들리는 소문에 말이다. 그 특수부가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졌다고 하더라.”
“특별한 목적요?”
“수사를 하다 보면 그런 사건 있잖냐.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사건들.. 그런 사건들만 전담한다는 거야.”
“아.. 난 또 뭐라고.. 알고 있습니다.”
“알아? 아는데 간다고?”
과장이 무릎을 탁 쳤다.
“너, 그 검사하고 아무리 친해도 네 경력에 스크레치 날 수 있어. 그러니까 적당히 봐서 안 되겠다 싶으면 전화해. 내가 어떻게 해서든 다시 빼올 테니까! 알았지?”
“감사합니다. 과장님.”
“그래, 그래. 짐 챙겨서 중앙지검으로 가봐. 내일부터 출근이라니까 오늘은 인사나 해두고..”
“네, 과장님”
준민이 과장에게 꾸벅 인사를 하곤 과장실을 나섰다.
“쟤도 그 과네. 틀림없어! 무당과야. 쯧쯧”
**
서울 남부지방검찰청 214호 검사실.
“이은정 실무관!”
“……네”
“또 자나? 밤에 뭐하고 낮에 그렇게 자나?”
“귀신들이 자꾸 못살게 굴잖아요.”
남부지검 최고의 또라이! 검사장도 어찌할 수 없다는 막강 또라이 이은정 실무관이 오늘도 잠을 자고 있었다.
“…. 크음. 인사명령 내려왔어.”
“저요? 설마? 잔다고 짤리는 거예요? 안 돼요. 저에게는 늙으신 고양이 초롱이와 이제 젖을 땐 고양이 백구가 오매불망 저만 바라보고…”
“중앙지검 특수부에서 자넬 보내달라고 했나 봐.”
“중앙지검 특수부요? 일개 실무관인 저를 요?”
“그래, 자네를.. 콕 찝어서.. 보내달라고 했다네. 대충 정리해서 내일부터 중앙지검으로 출근해.”
부장검사가 인사명령서를 이은정의 책상에 던져 놓고는 휑하니 나가버렸다.
“나를? 왜? 설마 또 귀신들이 장난을 친 건가?”
이은정이 다시 책상에 엎드렸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30분은 더 자야 움직일 수 있을 것 같기에…
**
중앙지검 특수 5부.
딜딜딜딜…
사무실 분위기가 이상해서 그런지 전화벨 소리조차 심상치 않았다.
“네, 특수 5부 오덕팔입니다.”
[검사님, 로비에 김윤철씨라는 분이 검사님을 찾아왔는데요. 약속을 하셨는지..]“아.. 네. 제가 내려간다고 해 주십시오.”
전화를 끊은 덕팔이 뭉그적거리며 1층 로비로 내려갔다.
“혀엉.. 여기요.”
윤철이 해맑게 웃고 있다. 지난 3년간 윤철은 덕팔을 친형처럼 따랐다. 덕팔이 의식적으로 윤철을 밀어내었지만, 윤철은 막무가내였다.
“엄마가 형 먹으라고 음식을 싸주셨어요.”
윤철과 자리를 옮긴 덕팔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윤철은 한 달에 한 번씩 밑반찬을 싸 들고 덕팔을 찾아온다. 덕팔은 윤철이 가져온 밑반찬을 식탁에 내놓았다. 그런데..
“덕팔아.. 사법고시를 합격했다고 네가 우리 집 식모가 아닌 것은 아니겠지?”
“반찬가게에서 파는 반찬도 나름 맛이…”
“덕팔아, 요즘 많이 피곤해? 그럼 말을 하지. 내가 요리를 해도 되는데..”
반응들이 신통치 않았다. 상대적으로 입맛이 덜 까다로운 김상필에게 음식을 보내 주었다.
[덕팔아, 신령수는 잘 크고 있느냐?]“네, 어르신”
[그래, 그렇구나. 나는 혹시라도 신령수가 죽어서 네가 반찬을 이따위로.. 커음]음식 맛이 좋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덕팔이 한 음식과 질적으로 차이가 났다. 결과적으로 윤철이 가져온 음식이 냉장고에 한가득이었다. 가져오지 말라고 말을 했지만, 덕팔이 부담스러워 거절을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잠시 과거의 일로 생각에 잠겨 있던 덕팔이 윤철의 부름에 현실로 돌아왔다.
“형?”
“으응..”
“어디 아파?”
“아니다. 건강은 어떠니?”
“완치된 것 같다고 해요. 형이 보내 준 한약을 먹어서 그런지 힘도 쑥쑥나고.. 헤헤”
윤철이 귀엽게 웃었다. 벌써 18살이 되었다. 다른 아이들 같으면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어야 할 나이였지만 윤철은 학교에 다니지 않고 있다.
“검정고시 준비는?”
“뭐, 그럭저럭 하고 있어요.”
“대학도 가야 하니까 놀지 말고 열심히 해.”
“저는 아무래도 공부으로는 적성이 맞지 않나 봐요. 그냥 엄마 식당 일이나 도와줄까 싶어요.”
“식당…”
그건 안 될 말이었다. 그런 음식으로는 틀림없이 망할 것이기에…
“다른 거.. 식당 말고 다른 거 해봐.”
덕팔이 다급하게 말을 꺼내 놓자 윤철이 웃었다. 다 알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엄마 음식이 별로죠? 헤헤, 손님들이 점점 줄어들어요.”
“…크음.”
“엄마가 언제 한 번 밥 먹으러 식당으로 오래요. 맨날 한가하니까 아무 때나 와도 된대요.”
“….커음..크음..”
윤철이 해맑게 웃으며 자신의 어머니를 깔끔하게 디스하곤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저 가야 할 것 같아요.”
“어디 가게?”
덕팔이 시계를 힐끔 보았다. 퇴근시간이 되었다.
“엄마 저녁 장사를 도와 드려야죠. 손님 없어서 직원이 없거든요. 헤헤”
덕팔이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윤철이 가지고 온 음식 보따리를 다시 윤철에게 내밀었다.
“왜요? 맛이 없어도 그냥 먹어 주면 안 돼요?”
“같이 가자. 이 상태로는 안 될 것 같으니..”
덕팔이 박주홍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배, 저요. 퇴근할게요. 아.. 직원들이 인사를 하러 온다고 했다구요? 내일 보면 되죠. 뭐!”
전화를 끊은 덕팔이 윤철의 어깨를 잡고 조금 이른 퇴근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