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ch the ghost munchkin! RAW novel - Chapter 372
372화
“관우 공이 당황한 모양입니다.”
“하긴, 삼국 시대에 저런 견고한 검술이 있었을 리 없으니…”
시간이 지난다고 하여 모든 것이 발전할 수는 없다. 하지만 대를 이어, 수백 년, 수천 년간 발전시킨 검술이 이천 년 전 전장을 누비던 무장들이 쓰는 검술보다 기술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전장에서 쓰는 검과 대인전을 목적으로 발전시킨 검은 그 출발점부터 달랐기에….
한 시간 넘는 결투를 벌였지만 승부를 내지 못하고 말았다. 최정문이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포권을 취한 후 뒤로 물러났다.
“고생하셨습니다.”
“부족한 검을 보여드려 송구합니다.”
언제나 말이 없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던 이라 특별히 두각을 나타내진 못했지만 오늘 이 한방으로 헌터들 사이에 최강자로 인식될 것이 틀림없었다.
“관 장군. 처음 뵙겠습니다.”
“그대는 나의 의제의 호리병을 훔친 양상군자로군.”
“그리 억울하다 항변을 하였거늘 아직도 절 도둑놈 취급하시는 겁니까?”
“잘 알고 있네. 의제와 진등 공이 자네를 엮기 위해 계략을 세운 것이지.”
“진등 공의 계략은 저를 아주 난감하게 만들었습니다. 진등 공께 꼭 전해주십시오.”
“애석하게도 그는 더이상 그 말을 듣지 못할 것이네.”
“전투 중에 죽었습니까?”
“내 손에 죽었네. 나의 의형과 그의 가족들을 곤란케 하였으니 응당 죽어 마땅하지 않나?”
“오래 참아주신 걸 보고 다른 속사정이 있는 듯하였는데 딱히 그런 것도 아닌 모양입니다?”
“속사정? 하하하, 자네는 영리한 자로군.”
관우가 긴 수염을 쓰다듬으며 밝게 웃었다.
“있네, 자네가 원하는 대답을 해주고 싶지만 애석하게도 그럴 수 없는 입장임을 이해해 주게.”
“공께서는 무슨 한이 그리 많이 남으셔서 영면을 깨신 겁니까?”
“나를 위한 것이 아니었네.”
관우가 씁쓸한 얼굴이 되었다. 그때, 성벽 위에서 요동이 쳐지더니 성벽 한 귀퉁이가 무너져 내렸다. 헌터들이 신속히 대피를 하고 보니 무너진 성벽 위에 붉은 얼굴의 악귀 한 마리가 눈에 익은 장창을 들고 있었다.
“내 의제의 어리석음을 용서해 주게.”
관우가 몸을 돌려 악귀가 되어버린 장비에게로 다가갔다.
“이런… 그래서…”
피를 나눈 형제는 아니었지만 장비로 인해 끌려 나온 관우의 의리에 탄복하였다.
“자리를 비켜주겠나?”
진우가 고개를 끄덕이곤 헌터들을 퇴각시켰다. 진우도 성문을 빠져나오며 슬쩍 관우와 관우의 청룡언월도에 버프를 걸어주었다. 관우도 그걸 느꼈는지 슬쩍 진우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자네의 호의는 다음 생에 갚겠네.”
“공 같은 분을 그냥 잃고 싶진 않습니다. 승천하실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십시오.”
“나는 그럴 자격이 없네. 형도, 동생도 모두 욕심의 노예가 되지 않았나? 나는 저들과 함께 할 것일세.”
저들? 이곳에는 장비만 있었다. 그런데 관우는 단수형이 아닌 복수형으로 장비를 칭했다. 진우가 오랜만에 손바닥의 피를 내 눈 주위에 발랐다.
“이런, 이런…”
진우가 진심으로 안타까운지 혀를 찼다.
“부러진 장팔사모가 멀쩡하다 했더니.. 쯧”
**
장비가 죽고, 장팔사모가 부러진 후 관우의 음성이 들리는 듯했다.
[그들을 조심하게.]그러더니 세상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진우와 헌터들이 나타난 곳은 가까이 자금성이 보이는 이름 모를 사당이었다. 가꾸지 않은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진우야, 여기 좀 와봐.”
길동이 진우를 불렀다. 진우가 길동에게 다가가 보니 사당 안쪽에 목각으로 만든 커다란 인형이 눈을 부라리며 서 있었다. 빨간 얼굴에 긴 수염, 부리부리한 눈, 독특한 모양의 언월도.
진우가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곤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당신의 우애가 좋은 결과로 돌아오길 기원 드리겠습니다.”
**
묵기로 하였던 여관으로 돌아갔지만 그곳은 더이상 여관이 아니었다. 아니, 북적이던 북경의 거리가 통째로 사라지고 폐허만 가득한 곳이 되어있었다. 진우는 관우를 모시는 사당(관제묘) 앞마당에 텐트를 치고 헌터들의 상처를 치료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제 저 자금성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건가?”
“글쎄? 저 자금성에서는 무슨 일을 당할지 상상도 안 되는 걸?”
몽달의 물음에 진우가 농으로 받았다. 몽달이 피식 웃더니 진우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목적지가 코앞일세. 돌아가면 열낮 열밤을 자도록 하지. 그렇게 푸욱 자고 나면 지나온 일이 꿈결과 같은 것이네.”
“열흘을 자고 나면 배고파 죽지 않을까?”
“하하하, 친구는 그럴 수 있겠군. 그럼 삼일 낮, 삼일 밤을 자고 난 후에 식사를 하고 다시 삼일 낮밤을 자도록 하세. 하하하.”
“그럴까?”
끝이 보인다고 생각하니 어깨가 조금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착각은 자유지. 암, 그렇고말고.”
오늘도 진우가 해주는 밥을 맛있게 처 드시고 초를 치는 치우였지만 이제는 얄밉지도 않았다. 치우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그저 허투루 들을 수 없다는 걸 요 며칠의 경험을 충분히 체득하였기에 말을 조금 더 섞어보았다.
“왜요? 자금성 안에 드래곤이라도 살고 있습니까?”
“드래곤? 드래곤이 뭐지?”
“용 있잖습니까? 용!”
“아.. 용!”
“용이라면 네놈이 가지고 있지. 각성을 못해 이무기도 못되는 놈이지만. 아무튼 헛꿈 꾸지말고 단도리를 잘하거라.”
“눼에눼에..”
진우가 능글거리며 웃었다. 치우가 텐트 속 침낭이 너무 얇아 허리가 아프다면서도 가장 좋고 큰 텐트를 차지해 버렸다. 그 사이 헌터들의 치료가 대충 끝났는지 은수와 길동이 진우에게로 다가왔다.
“고생들 했어.”
“내가 고생할 게 뭐가 있나? 그저 상처에 약을 바르는 것이 전부인걸.”
“그래도 고생이지. 너도 오늘 힘껏 싸웠는데..”
“오늘… 미안했다.”
“잊어. 그건 네가 아니었잖아?”
“그래.. 내가 아니었어. 하지만.. 내 진심일지도 모르겠다.”
“어느 부분이? 죽어버려? 아님, 개자식?”
은수의 얼굴이 붉어졌다. 평소 같으면 그냥 물러났겠지만 은수는 할 말이 남았는지 얼굴을 붉히면서도 입을 열었다.
“발은 어디 있지?”
“발? 발은 왜?”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흐음… 좀 곤란한데?”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그건 아닌데.. 좀처럼 호리병에서 나오려고 하질 않아.”
“그럼 그 구미호를 불러다오.”
“그놈은, 발 옆에서 꼼짝도 안 해. 자기가 있어야 한다면서…”
은수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고개를 주억였다.
“나중에 발이… 아니,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
은수가 자신의 텐트로 들어가 버렸다.
“뭐야? 무게를 잡아서 살짝 쫄았네.”
진우도 피곤하였는지 치우가 점유해 버린 텐트의 한 귀퉁이라도 차지해볼 생각으로 텐트를 열었다가 경계를 서고 있던 한 헌터에 의해 원대한 계획이 불발로 끝나고 말았다.
“부총리 각하, 밖에 우리 헌터들이 있습니다.”
“우리 헌터?”
**
진우가 관제묘 밖으로 나가보니 십여 명의 헌터가 거지꼴로 모여 있었다.
“부총리 각하!”
죽은 아버지를 만났어도 이보다 반가워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으며 그들의 면모를 살폈다.
“진짜 거지꼴이네..”
진우가 그들을 관제묘 안으로 들였다. 이 포탈에 들어와 워낙 많이 속다보니 이들도 거짓이 아닌가 싶어 그들의 몸을 훑어 보았지만 그들은 생기를 가지고 있는 인간이 맞았다.
“어떻게 된 거지?”
“그게…”
게이트를 잃었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 구조를 받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던 박민국 일행중 일부가 자신들의 오른 팔에 끼워진 팔찌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팔찌에 신력을 불어 넣어보기도 하고 뽑아 흔들어도 보았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자 흥분한 헌터 하나가 팔찌를 바닥에 내팽개쳤다고 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팔찌가 돌에 맞아 부러지면서 못쓰게 되자 박민국은 그 헌터를 팀에서 배제하고자 했다. 그러자 다시 반발이 일어나 모든 헌터의 팔에 끼워진 팔찌가 수거되어 폐기되는 과정을 겪었다고 하였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쯧”
“도착해보니 이곳이었습니다. 저희는 바로 자금성으로 들어갔습니다. 너무 배가 고팠고 주위가 모두 폐허로 변해버린 상태라 자금성으로 들어가는 것 외에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자금성에 들어가 보니 그저 텅빈 궁전이었습니다. 저희는 이제 이 대회를 끝낼 수 있다고 생각하고 황제가 머문 대전으로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대전이 폐쇄가 되었고 안에서 비명성이 들려왔습니다. 저희는 사람이 많은 관계로 대전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인원들이었는데…”
“그래서 도망쳐 나왔다?”
“그렇습니다. 제발 저희 헌터들을 구해주십시오. 제발..”
“너희는 나를 저버렸다. 나를 수장으로 인정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행동하길 원했다. 그런데 내가 왜 너희를 도와야 하지?”
“같은 대한 제국 헌터 아닙니까?”
“나는 보조자다.”
“그래도.. 부총리 각하이지 않으십니까?”
“전! 부총리다.”
“제발.. 제발.. 도와주십시오. 그곳에는 제 형도 있습니다.”
헌터들이 머리를 조아렸다. 저들이 저런 행동을 할 정도로 동료애가 강했었나? 잠시 의심이 들었다. 그리고 관우가 했던 마지막 말.
[그들을 조심하라]그 말이 자꾸 뇌리에 걸렸다.
‘그들이 저들인가? 아니면 저들의 동료를 잡고 있는 또 다른 누구인가?’
알 수가 없었다. 진우가 혼란스러워 하고 있는 동안 헌터들이 진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진우의 팀원들도 진우에게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다.
“회의를 열지.”
진우가 공을 헌터들에게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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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인 의견이었다. 하여 진우도 인정하였다. 채 두 시간도 잠들지 못했건만 다시 일어나 짐을 꾸려야 했다.
“5팀은 이곳에 남아 부상당한 헌터들을 돌보며 본진을 경비한다. 낙오한 헌터들도 이곳에 남아 휴식을 취한다. 이상.”
장춘기가 가장 먼저 반발했다. 그러나 진우는 장춘기에게 특별 임무를 내리며 장춘기의 반발을 억눌렀다. 다른 팀원들이 역시 오진우라고 엄지척을 해보였다. 미친개 장춘기를 통제할 수 있는 이는 오직 오진우뿐이란 것을 다시 보여주었다.
진우가 쓴웃음을 머금으며 장춘기에게 눈치를 주었다. 장춘기도 고개를 끄덕이며 손에 힘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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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한가?”
“충분할 것이다.”
“내 예상이 틀리길 바라지만, 세상일이라는 게 내 뜻대로 되는 경우가 별로 없어서..”
자금성 성문을 열고 들어가는 진우가 쓰게 웃자 은수도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너처럼 재수 없는 인간은 살면서 처음이다. 그러니… 그럴 수 있다고 본다.”
“써글…”
자금성은 겁나게 넓었다. 미리 위치를 확인받지 않았다면 길을 잃을 뻔 했다.
“이곳이 드라마에서 자주 보던 그 곳인가?”
하얀 벽돌이 엄청난 넓이에 광범위하게 깔려 있었다.
“저 위에서 이곳을 내려다보면 무슨 느낌일까?”
“세상을 다 가진 느낌이겠지.”
“너도 그랬냐? 왕 질 해먹을 때!”
“왕 질이 뭐냐!”
“삐지셨어요. 국왕 폐하?”
“써글놈.”
길동이 피식 웃으며 아련한 눈이 되었다.
“우리 왕국은 돈이 없어서 이런 돈지랄은 한 번도 못해봤다. 그나마 오키나와가 기후가 따뜻한 지역이었기 망정이기 굶어 죽기 딱 좋은 곳이었다. 일본은 살기 참 힘든 동네였어. 내가 왕 노릇 때려치고 몇 번이나 조선으로 돌아갈 생각을 한 줄 아냐?”
“그렇게 힘들었어?”
“해풍 때문에 농사도 잘 안되지. 겨우 농사를 지어놓으면 태풍이 와서 싹 쓸어가지. 그나마 몇 개 살려서 수확을 해 놓으면 북쪽 애들이 노략질하지. 아주 미칠 노릇이었다. 하긴 뭐, 북쪽 애들도 먹고 살기 힘들어서 노략질 하는 거겠지만 아무튼 살기 좋은 땅은 아니었다.”
“조선보다 더?”
“조선은 양반놈들이 미친 짓을 해서 그렇지 살기는 좋잖아. 사계절 뚜렷하고 농사 잘되고…”
“친구, 미친 짓을 한 양반을 대표해서 사과하지.”
간만에 몽달이 농을 하며 대전 문고리를 잡았다. 진우가 고개를 돌려 은수를 바라보았다.
“잘 부탁한다.”
은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은수 곁에 서있던 오진철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아버지만 믿습니다.”
오진철이 그저 웃기만 했다.
문고리가 열리고 엄청난 규모의 대전이 눈에 들어왔다.
“와우, 축구를 해도 되겠네.”
이것이 진우, 몽달, 길동, 소룡의 마지막 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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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놔, 빡쳐서 못살겠네.”
“알고 당한 것이니 너무 흥분하지 말게.”
“그래도 그렇지. 이게 말이 돼?”
네 사람이 서 있는 이곳은 대전이었다. 하지만 텅빈 대전이었다. 낙오한 헌터들이 말하는 그들은 없었다. 그들이 있었다는 흔적도 없었다. 저 멀리 옥좌가 보였다. 길동과 소룡이 옥좌 근처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몽달이 대전 문을 흔들어 보았지만 철문처럼 견고하게 닫혀있었다.
“뭐지? 악귀들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어디로 이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텅빈 공간이잖아?”
네 사람이 대전 곳곳을 샅샅이 뒤졌지만 특별한 것을 찾을 수가 없었다. 굳이 특별한 것을 찾으라고 한다면 천문도룡도로도 나무문 하나를 부수지 못해 감금을 당했다는 것 정도랄까?
가장 먼저 길동이 자리를 펴고 앉았다. 바닥을 두드려 보더니 허탈한 웃음을 터트렸다.
“우와, 이 바닥 봐. 콘크리트보다 더 단단해.”
길동이 신력을 담아 주먹으로 내려쳐 보았지만 생채기도 나지 않았다. 길동 옆에 쭈그리고 앉던 진우가 문득 생각이 났는지 몽달에게 물었다.
“참, 본진에 음식이 얼마나 남았지?”
“열흘은 족히 버틸 양은 될 것일세.”
“내가 춘기형에게 열흘치를 더 남겨주고 왔으니까 이십 일은 버티겠군.”
“마지막에 무슨 이야기를 나눴길래 그 자가 잠잠해진 건가?”
“뻔하지 뭐, 저들을 믿을 수 없다. 5팀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 형이니까 잘 통솔해서 저들을 감시해라. 조금이라도 이상한 짓을 하면 무조건 포박! 고문도 OK! 죽이지만 말라고 했지.”
“그자의 성격상 기뻐 날뛰었겠군.”
“그 기쁨을 표현하지 못해서 죽으려고 하던데?”
“장춘기의 손에 걸린 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길동이 의미를 알 수 없는 명제를 던져 놓고는 대전 바닥에 벌러덩 누워버렸다.
“근데.. 얘들아! 배고프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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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네. 헌데…”
“대전은 텅 비어 있었어요. 적어도 그들의 이야기를 다시 들어야 할 필요가 있어요.”
“잡아 족칠까?”
오진철, 장춘기, 은수가 한자리에 모였다. 대전 문이 닫힌 지 벌써 3일이 지났지만 대전 문은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형님, 그런데 말이우. 그놈들의 말이 맞다면 그놈들의 동료들은 몇시간 전에 대전에 갇혔다는 거 아니우?”
“그렇지.”
“그런데 진우가 대전 문을 열었을 때는 열렸다면서요?”
“그랬지.”
“근데 지금은 왜 안 열려?”
장춘기가 장춘기답지 않은 멋진 추리를 해내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배신자 쉐끼들에게는 고문이 최고지. 진우가 거기까지 OK한 거니까 두 말 없기우.”
오진철도 장춘기를 잡지 못했다. 장춘기가 오랜만에 제 몫을 하기도 했거니와 장춘기가 내린 결론 외에는 다른 이견을 제시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눈에 은은한 열기를 담고 있는 은수를 달래야 할 필요가 생겼다.
“은수씨, 냉정해져야 합니다. 알고 있죠? 그들에게는 충분한 식량이 있어요. 우리도 마찬가지고! 다시 말하면 우리 모두에게는 시간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 사이에 방법을 찾으면 되요. 그러니까…”
“냉정해질게요.”
오진철이 만족하는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은수가 몰래 비흔을 장춘기 뒤에 붙이는 것을 보진 못했다.
**
구타로 최면을 풀어버리는 기염을 토한 장춘기가 씩씩거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니네들은 팔찌를 부수거나 잃어버려서 박민국이한테 쫓겨난 애들이다 이거지?”
“그렇습니다.”
“자금성은?”
“배가 너무 고파 자금성에 들어간 기억은 있습니다.”
“그리고?”
“조금 전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헌터님께서 저희를 마구 때리고…”
잔뜩 기가 죽은 헌터들이 장춘기의 눈치를 보았다. 장춘기도 이미 최면에 대한 경험이 있었다. 진우에게 가볍게 처맞고 의식을 잃었지만 최면이 걸렸을 당시의 기억을 모두 가진 채 깨어났었다.
그런데 이 쉐리들은 자신의 한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좀처럼 이놈들에 대한 의심이 풀리지 않았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자빠졌어. 니들이 쳐먹은 밥이 몇낀데 그걸 기억 못한다고? 그럼 도로 뱉어내 이 쉐리들아!”
다시 구타가 시작되었다. 장춘기의 구타를 지켜보고 있던 오진철이 신음성을 흘렸다.
“흐음.. 확실히 건강해지기는 하겠군.”
“처음에는 발바닥만 때렸는데 지금은 발가락 끝을 노려 때리는 엄청난 기술을 개발했어요. 역시 사람은 뭐든 하면 느나봐요.”
은수가 서슬퍼런 얼굴로 농담을 하자 오진철이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얼굴이 되었다.
“팀장님.”
1팀 팀원이 오진철을 찾아왔다.
“무슨 일인가?”
“문제가 좀 생겼습니다.”
**
“즉석 짜장면은 남은 거 없어?”
“그러게. 충분히 산다고 샀는데 벌써 다 먹었네?”
“이거 참, 다 좋은데 불을 못 피우니까 좀 그렇다. 그치?”
“저 옥좌를 뜯어볼까? 저것도 나무잖아?”
길동이 벌떡 일어나더니 옥좌로 성큼성큼 다가가며 자신의 주무기인 봉을 소환하였다.
쾅! 빠직! 쾅! 빠직!
길동의 예측이 맞았는지 멋스럽게 빛나던 옥좌가 땔감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아싸!”
한때는 옥좌의 어느 부분에 해당하였을 것으로 추측되는 땔감들이 수북히 쌓였다.
“자, 이제 고기 먹자. 삼 일간 인스턴트만 먹었더니 속이 안 좋아.”
“나도 그렇긴 한데 그래도 남의 나라 황궁에서 불을 피워도 될지 모르겠네? 역사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고 그랬는데?”
“진우야, 옥좌 좀 때려부신 게 무슨 역사 간섭이 되겠어? 다시 만들면 그만이지.”
“그러겠지?”
그러면서도 진우의 손에는 이미 불의 기운이 가득 담겨 있었다. 비싼 옥좌라 그런지 땔감으로서의 성능도 탁월했다. 활활 타오르는 나무 위에 철판을 올리고 그 위에 한우 등심을 깔았다.
“나는 삼겹살이 좋은데..”
“대충 먹어. 한우가 얼마나 비싼데!”
고기 편식을 하던 길동이 진우에게 한 소리를 듣곤 비로소 등심을 기름장에 살짝 찍어 입에 넣었다.
“흐미, 맛있는 거.”
기분 좋을 때 튀어나오는 전라도 사투리와 함께 네 사람의 즐거운 식사가 시작되었다. 설거지는 아무도 하지 않는다. 그냥 호리병에 담아두고 다른 새로운 식기를 꺼내 쓰기로 했다. 종종 술을 마시기도 했다. 뭐가 언제 튀어나올지 몰랐기에 한두 잔에 불과했지만 분위기를 살리는데 더없이 좋았다.
오로지 네 사람만이 존재하는 공간에서 오로지 네 사람만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야 하다 보니 그간 하지 못했던 속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그건 생각도 못해 봤네. 미안하다. 친구야.”
진우가 길동에게 사과하였다.
“아이구, 그런 문제가 있었네. 미안해. 조카.”
길동이 소룡에게 사과하였다.
때론, 두 부자가 저 구석에서 서로를 끌어안고 울기도 했다.
“두 사람이 가장 많이 쌓였을 거야.”
“그랬겠지. 아비에 대한 서운함이 없을 리 없잖아?”
진우가 동의하는지 고개를 주억였다.
“너는 어때?”
“내가 뭘?”
“그가 너의 친부라며? 서운하지 않아?”
“훗.. 서운함이라… 죽이고 싶다는 감정이 더 들지 않을까?”
“넌 그러지 않을 거야. 아마도 그가 진심으로 용서를 빈다면.. 넌 그를 용서할지도 모르지.”
“과연 그럴까?”
“내기 할까? 나이트 열 번 쏘기?”
“콜!”
진우가 활짝 웃었다. 길동이 진우의 어깨를 토닥이며 같이 웃어주었다. 그렇게 네 사람이 좀더 가까워지는 시간을 보내다 보니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다.
“이제 슬슬 나가 봐야지?”
“아무렴.”
“준비는 다 되었고?”
“준비 끝났습니다. 이제 가시죠.”
네 사람이 주변을 대충 치우더니 몸을 일으켜 한때 옥좌가 있었던 상단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