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mpion from Sapa RAW novel - chapter 168
‘용무선회각(龍舞旋回脚)이군.’
이자벨라가 사용하는 모든 기술이 눈에 익었다.
채찍으로 펼치는 편법(鞭法)은 영사삽십육편, 독특한 보법은 신행미종보, 방금 사용한 각법은 용무선회각.
하나같이 내가 이자벨라에게 보여 준 적이 있는 기술이었다.
“눈대중으로 익힌 무공으로 나와 겨루려 하다니, 공자 앞에서 문자를 쓰는구나!”
나는 운철묵검을 집어넣고, 똑같이 용무선회각을 펼쳐 이자벨라의 발 차기를 막았다.
그리고 그녀에게 바짝 달라붙어 선운비뢰장을 펼쳤다. 마법을 시전할 틈을 주지 않고 체술로 몰아붙일 셈이었다.
이자벨라도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선운비뢰장으로 맞섰다.
쩍! 쩌쩌쩍! 쩌쩌쩌쩍!
서로의 쌍장이 쉴 새 없이 부딪쳤다. 이자벨라와 나는 코끝이 닿을 정도로 가깝게 서서 공방을 주고받았다. 그녀의 콧김에서 달큰한 냄새가 났다.
‘역시 살아 있어. 이자벨라는 평범한 언데드와 다르다.’
이자벨라는 호흡하고 있었다. 데스나이트나 듀라한 따위와 달리, 살아 있는 육신을 갖고 있었다.
어쩐지 신이 났다. 흥에 겨워 가진 무공을 마구 풀어냈다.
삼음수(三陰手)부터 천강수(天剛手), 육양수(六陽手), 패연유우(沛然有雨)에 이어 태청산수(太淸散手)까지 곤륜의 절학이 물 흐르듯 이어졌다.
이자벨라는 처음 보는 초식에 당황했는지 점점 손발이 어지러워졌다.
그녀가 생전에 견식한 권각술은 내 진신무공 중 채 삼 할도 되지 않았다.
핏!
이자벨라는 체술에 한계를 느꼈는지 점멸로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양팔에 다시 한번 지옥마력을 모았다.
‘점멸은 정말 말도 안 되게 빠르군. 차단이 불가능한 수준이다.’
이자벨라의 마법은 하나같이 시전이 빨랐지만, 점멸은 특히 더 빨랐다.
이번 전투에서 몇 번이나 펼쳤는데 단 한 번도 차단하지 못할 정도였다.
이자벨라의 양팔에 모인 지옥마력이 소용돌이쳤다. 검은 회오리는 강한 인력(引力)으로 주변의 모든 생명을 빨아들였다.
성기사들이 탄 군마가 질질 끌려가고, 체중이 가벼운 사제들은 공중에 뜨기도 했다. 곁에 있던 다른 성직자들이 매달리다시피 하며 끌려가는 걸 막고 있었다.
콰자작!
주인 잃은 군마 한 마리가 검은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과자 씹는 소리와 함께 군마는 그 형체를 잃고 한 줌 핏물로 변해 버렸다.
“버텨라! 서로 팔짱을 끼고 버텨!”
“땅을 단단히 디뎌라! 성기사들은 바닥에 검을 꽂아라!”
“성녀 은하를 지켜라! 은하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성직자들은 나름 침착하게 대응했다. 하지만 인력에 저항하느라 발이 묶이고 말았다.
특히, 요한나를 둘러싼 성기사들은 위치를 옮길 수 없는 상태였다.
“…….”
이자벨라는 그 모습을 빤히 쳐다보더니, 소리 없이 기술을 바꿨다.
피피피피핏!
이자벨라의 손에서 검은 섬광 다섯 줄기가 뻗어 나갔다.
섬광. 그것은 섬광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속도였다.
검은 섬광은 일지태허강처럼 가로막는 모든 것을 관통했다.
성기사들의 갑옷도, 사제들의 보호막도, 그들의 두개골과 심장도 솜사탕처럼 구멍이 뚫렸다.
“어엇……?”
요한나의 가슴에도 섬광이 스쳤다. 왜소한 그녀의 몸에 구멍이 두 개나 뚫렸다.
“성녀 은하!”
“치, 치유 사제! 치유 사제는 빨리 이쪽으로……!”
쓰러지는 요한나를 성기사들이 안았다. 그들은 악을 쓰며 사제들을 불렀다.
“이야압!”
그동안 나는 태허도룡검강을 뽑아 올리고, 이자벨라를 따라잡았다.
한데 이게 웬걸? 이자벨라는 머리 위로 떨어지는 검강을 피하지 않고, 멀뚱히 쳐다보고 있었다.
“이런!”
단순한 태산압정의 초식 정도는 쉽게 피할 것이라 생각하고 연계 초식을 준비했는데, 이자벨라는 검강을 그냥 받아 낼 생각인 듯했다.
‘이대로 검을 내리그으면 이자벨라는 두 쪽이 난다!’
아크리치의 마법이 아무리 대단해도 검강을 막을 순 없다. 이대로 이자벨라를 베면 그녀의 영혼은 지옥의 밑바닥에 처박힌다.
“이익!”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해 검로를 비틀었다.
핏!
초식이 꼬이며 옆구리가 훤히 드러났고, 이자벨라의 검은 섬광이 그 빈틈을 파고들었다.
왼쪽 옆구리로 들어온 섬광이 오른쪽 허리로 빠져나갔다.
단전을 꿰뚫는 치명타였다.
“카학……!”
신음에 피가 섞였다. 이자벨라는 그 와중에도 무표정한 얼굴로 후속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내가 검로를 바꿀 걸 알았구나……!’
놀랍게도 이자벨라는 이 상황을 예견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와 싸우며 은연중에 살초를 자제했고, 아크리치가 된 이자벨라는 그걸 약점으로 판단해 덫을 놓은 것이다.
기이잉-!
이자벨라의 손에서 검은 섬광이 씨앗처럼 자라는 게 보였다. 무려 열 가닥의 섬광이다.
저걸 전부 몸으로 받아 내면 나는 저승을 거닐고 있을 터다.
‘흐흐, 무림에서도 백종인의 월광십지풍을 맞고 뒈졌는데, 이번에도 열 가닥의 지풍을 맞고 죽는 것인가?’
문득 실없는 생각과 함께 웃음이 나왔다.
그때는 살기 위해 온갖 발악을 해도 힘이 부족했던 것이고,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나는 이자벨라를 죽일 수 있었지만, 차마 그녀를 베지 못해 스스로 검로를 비틀고 말았다.
내가 자초한 죽음이고, 이자벨라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이자벨라!”
분노가 용솟음쳤다.
이자벨라를 향한 분노일까? 아니면 이자벨라를 이런 꼴로 만든 이오안과 나후타야를 향한 분노일까?
어쩌면, 이런 상황을 막지 못한 나 스스로에 대한 분노인지도 모른다.
단숨에 폭발시킨 잠력이 철벽같은 호신강기로 변해 피부를 감쌌다.
‘네가 용의 하수인으로 사는 꼴은 못 본다! 차라리 나랑 같이 죽자!’
충동적인 결정이지만, 몸은 물 흐르듯 움직였다.
뜻이 일면 기는 저절로 나온다. 골수에 숨겨진 근원진기를 아낌없이 퍼 올렸다.
“이야압!”
강기를 짙게 머금은 손이 번개같이 움직였다.
연환 섬전수로 이자벨라의 흑섬광을 모조리 튕겨 내고, 빠르게 접근해 이자벨라의 이마를 들이받았다.
빠악!
비룡축전까지 펼쳐 시전한 박치기. 그 강력한 충격에 이자벨라의 몸이 뒤로 날아갔다.
나는 다시 한번 비룡축전을 펼쳐 쫓아갔다.
‘추명도!’
오비데우스의 심장을 절반이나 날려 버렸던 극단의 살초가 다시 펼쳐졌다.
이미 단전이 날아가고 근원진기까지 끌어다 쓰는 마당이다. 다른 기술을 써도 나는 어차피 죽는다. 그러니 방어를 도외시한 동귀어진의 수를 쓰는 데 거침이 없었다.
쌔앵- 퍼억!
화살처럼 쏘아진 운철묵검이 이자벨라의 가슴을 관통했다.
그녀의 상체에 어린아이 머리통만 한 구멍이 뚫렸다.
상처에서는 피 대신 지옥마력이 돌풍처럼 쏟아져 나왔다.
“……!”
지금껏 아무런 표정도 없었던 이자벨라. 그녀의 얼굴이 처음으로 일그러졌다.
이자벨라는 괴로운 듯 입을 쩍 벌리고 도리질을 쳤다. 그녀의 육체가 조금씩 붕괴하고 있었다.
‘이렇게 끝나는구나, 이자벨라.’
목숨이 경각에 달한 건 이자벨라뿐만이 아니었다.
나 역시 근원진기까지 동원해 추명도를 펼친 탓에 기경팔맥이 뒤엉키고 찢긴 상태였다.
이자벨라의 육체가 겉에서부터 붕괴하고 있다면, 내 몸은 내부에서부터 허물어지고 있었다.
‘주화입마가 온다. 죽음의 그림자가 나와 이자벨라를 감싸는구나…….’
그때, 아도나이의 신탁이 뇌리를 스쳤다.
이계의 신격이 전해 준 중원의 고사. 아랫돌을 빼 윗돌에 괸다는 속담이 기발한 생각으로 변했다.
왼손을 뻗어 이자벨라의 머리를 잡았다. 오른손은 그녀의 아랫배에 붙였다.
‘흡성대법!’
왼손으로 흡성대법을 극성으로 펼쳤다. 지옥마력이 왼손의 노궁혈을 통해 노도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여기에 우리 둘의 생사가 달렸다! 역(逆)흡성대법!’
아랫배에 붙인 오른손은 흡성대법을 반대로 운용했다.
빨아들이는 성질의 흡성대법을 반대로 운용하자, 노궁혈에서 강력한 발경이 일어났다.
무림에서 흔히 사용하는 격체전력(隔體傳力)과 비슷하지만, 출력은 차원이 달랐다.
‘아랫돌과 윗돌을 바꾸자. 이자벨라, 너의 지옥마력을 나에게 다오. 나는 너에게 용의 마력을 주마.’
내 몸 안에 있던 용마주와 이자벨라의 지옥마력이 자리를 바꾸기 시작했다.
사파에서 온 용사
다섯 천사가 오리라
한편, 치명상을 입고 쓰러졌던 요한나는 가까스로 의식을 회복했다.
암흑섬광을 두 발이나 맞아 상체는 이미 피범벅이었고, 입과 코에서 흐른 피가 턱을 적시고 있었다.
“은하께서 눈을 뜨셨다!”
“여, 여기는, 콜록!”
“은하, 말씀을 아끼십시오. 아직 치료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다수의 사제들이 요한나에게 달라붙어 치유 기도문을 외우고 있었다. 농밀한 신성력이 요한나의 상처를 가득 채웠다.
천만다행으로 아크리치는 후속 공격을 퍼붓지 못했다. 앞길을 막아선 테온과 백중세의 싸움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크, 크로우 백작은요……?”
“각하는 아크리치와 일대일로 싸우고 있습니다. 둘의 움직임이 워낙 빨라 다른 성기사들이 끼어들 수가 없습니다.”
요한나가 힘겹게 상체를 세웠다. 그녀는 고개를 길게 빼고, 테온과 이자벨라의 싸움을 보았다.
백룡갑을 입은 기사와 검은 로브를 입은 마녀가 대치하고 있었다.
“앗!”
바로 그때, 테온의 참격이 빗나가고 이자벨라의 마법이 테온의 하복부를 관통했다.
모두가 테온의 죽음을 예상할 때, 그는 놀랍게도 맨손으로 아크리치의 마법을 모조리 쳐 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추명도를 펼쳐 아크리치에게 치명상을 입혔다.
“크로우 백작 각하의 검이 아크리치를 꿰뚫었다!”
“화산 지대에서 오비데우스에게 사용했던 그 기술이군!”
몇몇 성직자들이 추명도를 알아보고 소리쳤다. 그들은 테온이 아크리치를 끝장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 그런데 저 상태로 뭘 하는 거지? 움직이지도 않고……!”
하지만 테온은 그들의 예상과 다른 선택을 했다. 양손으로 아크리치를 단단히 붙잡더니, 움직임을 멈췄다.
그와 동시에 둘을 중심으로 강력한 기파가 사방으로 쏟아져 나왔다.
“테온이 그녀를 포기하지 않았군요……. 그는 살리는 선택을 한 겁니다. 자기 목숨을 걸고……!”
요한나가 뜻 모를 소리를 중얼거리며 피를 토했다. 치유 사제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그녀의 상처를 수습했다.
“누가, 누가 크로우 각하에게 말해 주세요. 빈자리에 채워야 한다고. 깨진 그릇은 버리고, 새 그릇에 담아야 한다고……!”
요한나는 필사적으로 외쳤지만, 그 내용은 딱히 전투에 도움이 되는 말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녀는 출혈이 심해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모습이었다.
성직자들은 요한나의 말을 전하기보다는, 그녀의 상처를 치유하고 경호하는 데 집중했다.
하지만 단 한 사람, 이 와중에도 신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사제가 있었다.
“성녀 은하, 그것은 아도나이의 말씀입니까?”
“아닙니다. 이건 ‘다른 분’의 조언입니다. 하지만 반드시 전해야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