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mpion from Sapa RAW novel - chapter 200
요한나와 아우레오의 표정이 복잡했다. 두 사람은 신의 지침을 받았음에도, 이 괴짜 마녀를 동료로 받아들인 게 옳은 선택인지 의심이 들었다.
“은하, 아무리 그래도 언데드까지 사용하는 건…….”
“저도 찝찝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어요. 분초를 다투는 상황이니 아도나이께서 우리에게 이런 일탈을 허락하셨겠지요.”
“끄응…….”
요한나의 단호한 말에 아우레오도 불만을 멈췄다.
용사를 구하기 위해 성녀와 마녀, 성자와 언데드가 힘을 합쳤다.
그리고 그들이 동료로서 첫발을 내딛는 순간, 허공에 새로운 이동 관문이 열렸다.
“저거 언니가 만든 거예요? 삼각주까지 공간이동으로 가려고요?”
“……저건 내가 만든 게 아닌데.”
대답하는 이자벨라의 목소리가 떨렸다.
허공에 불쑥 열린 관문. 그것은 혼령 수확자의 낫이 만들어 낸 이동 관문이었다.
그리고, 그 시커먼 구멍 안에서 익숙한 실루엣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파에서 온 용사
타락한 용사
“각하?!”
“테온?!”
이자벨라와 아우레오가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허공에 뚫린 공간이동 관문에서 익숙한 형체가 튀어나왔다. 백색 찰갑에 용 모양 투구, 은백색 망토와 묵빛 검으로 무장한 기사. 테온이었다.
“피해요!”
가장 빨리 위험을 감지한 건 요한나였다. 독심술을 지닌 그녀는 눈앞의 사내가 얼마나 위험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파팟!
테온의 참격이 허공을 갈랐다. 그의 검극에서 발사된 반원형 검기가 금빛 용을 가둬 둔 새장을 노렸다.
“안 돼!”
“빛이여!”
이자벨라의 보호막에 아우레오의 보호막이 더해졌다. 용마력과 신성력으로 촘촘히 짜여진 그물이 테온의 검기를 받아 냈다.
‘누가 내 남자 아니랄까 봐, 굉장한 위력이네.’
‘테온의 검은 이 정도구나. 직접 겪어 보니 그가 얼마나 뼈를 깎는 수행을 쌓아 왔는지 알 것 같아.’
이자벨라와 아우레오는 테온의 검을 받아 내고 비슷한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들이 모르는 사실이 한 가지 있었으니, 지금의 테온은 정신지배의 영향으로 오색륜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였다.
현경은 육체의 단련보다 정신적인 깨달음이 중요한 경지였기에, 자아가 두 개로 갈라진 테온은 화경의 무위만 발휘할 수 있었다.
만약 테온이 현경의 오색검강을 사용했다면, 아무리 두 사람이 힘을 합쳤어도 채 일 검조차 막아 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각하! 왜 이래요?! 정말 아스칸다르의 정신지배에 당한 거예요?!”
“테온, 정신 차려요! 접니다! 아우레오라고요! 당신은 지금 악독한 검은 용의 술수에 놀아나고 있어요!”
“닥쳐라! 감히 내 앞에서 아스칸다르 님을 모욕하다니, 죽고 싶은 게로구나!”
테온이 노호성을 터뜨리며 종횡으로 검을 휘둘렀다.
이자벨라는 점멸을 연달아 펼쳐 테온의 참격을 피하고, 그 와중에 동작이 굼뜬 아우레오까지 챙겨서 거리를 벌렸다.
“고, 고맙소……!”
“고맙소? 웬 늙은이 말투 흉내야? ‘고마워요, 누나.’라고 해.”
“…….”
아우레오가 어색한 말투를 쓰자, 이자벨라가 핀잔을 줬다.
긴장으로 몸이 굳어 버린 아우레오를 풀어 주려 한 말이지만, 정작 이자벨라 본인도 마른침을 삼키고 있었다.
지상에서 가장 빠른 점멸을 보유한 이자벨라에게도 테온의 검격은 매번 위협적이었다.
“긴장 풀고 싸움에 집중해. 상대는 각하야. 무슨 말인지 알지?”
“알아요. 조금만 늦게 반응해도, 테온의 검이 우리의 목을 베고 있겠죠.”
이자벨라와 아우레오가 결의를 다지는 동안, 테온도 장내를 둘러보며 대강 상황을 파악했다.
순수한 신성력으로 만들어진 새장에 금빛 용의 영혼이 갇혀 있고, 그 주변을 성녀와 사제, 마녀 그리고 웬 괴상한 언데드가 지키고 있었다.
“이자벨라, 요정숲에 남아서 괴수 군단을 막겠다더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게냐?”
“쳇, 날 기억하긴 해요? 이러면 더 서운해지는데.”
테온이 그녀를 기억하는 건 당연했다. 정신지배는 말 그대로 정신을 지배하는 마법이지, 사람을 백치 검귀로 만드는 마법이 아니니까.
지금 테온은 현경의 무공을 쓸 수 없다는 점과 아스칸다르에게 충성한다는 점만 다를 뿐, 이전의 테온과 똑같았다.
“내가 여기에 온 이유는…… 에휴, 설명하자면 길어요. 지금의 각하한테 말하고 싶지도 않고요. 각하가 제정신으로 돌아오면 그때 이야기할래요.”
“제정신? 큭큭, 말 잘했다. 나는 이제야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검은 용의 축복이 내게 깨달음을 준 것이지.”
테온이 스산하게 웃으며 헛소리를 지껄였다.
그 모습을 보는 일행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자, 이자벨라, 너에게도 기회를 주마. 금빛 용의 영혼을 가지고 이쪽으로 와라. 검은 용의 축복 속에서, 영원히 나와 함께하는 거다.”
“영원히 함께하자는 말을 왜 이딴 식으로 해요! 진짜 멋없어!”
이자벨라가 소리를 빽 지르며 마력탄을 발사했다. 열기와 냉기를 품은 마력탄이 쌍곡선을 그리며 테온을 향해 날아갔다.
“굳이 벌주를 마시겠다면…….”
테온은 이자벨라의 마력탄을 굳이 피하지 않았다. 그저 하단전에 넘쳐흐르는 공력을 체외로 방출할 뿐이었다.
꽝! 콰쾅!
두 발의 마력탄은 테온의 호신강기를 뚫지 못하고 허무하게 흩어졌다. 테온의 시선이 이자벨라를 떠나 아우레오를 향했다.
“아우레오, 넌 용이라면 질색하는 바보 같은 녀석이지. 그러니 내가 설득해도 소용없겠지?”
“잘 알고 있군요, 테온. 타락한 당신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니, 부디 더 이상 추악한 말을 입에 담지 마세요.”
아우레오는 단호하게 말하며 성경을 영창했다. 그의 이마에 은은한 성령이 떠오르더니, 한 줄기 섬광이 되어 테온의 머리를 노렸다.
“안타깝구나, 아우레오. 알량한 고집에 갇혀 ‘진짜 신’의 은총을 거절하다니.”
“이 세계의 신은 오직 아도나이뿐입니다. 검은 용이 아니고요.”
아우레오는 테온의 말에 반박했지만, 속으로는 놀란 상태였다. 테온이 검을 들어 그의 성령을 막아 냈기 때문이다.
‘검은 용에게 홀린 상태에서도 저런 광휘를 뽑아내다니…….’
테온의 검에는 어느새 검강이 짙게 서려 있었다. 접촉하는 모든 것을 베어 버리는 절대 파괴의 힘은 물리적으로 방어할 수 없는 아우레오의 신성력도 거뜬히 가로막았다.
테온의 시선은 아우레오를 떠나 요한나를 향했다.
“요한나, 너는 아도나이에 관한 모든 진실을 알고 있지? 동방회교로 개종해라. 인간이 인간을 신으로 모셔서야 되겠느냐? 우리는 우리보다 격이 높은 용을 섬기며 살아야 한다. 그게 자연의 순리야.”
“개가 풀 뜯어 먹는 소리는 연회장에서 술 처먹고 하세요, 각하. 그리고 말 좀 아껴요. 제정신 찾고 나면 지금 했던 말들이 얼마나 창피하겠어요?”
“개, 개가 풀 뜯어 먹는 소리……?”
요한나는 철부지 어린애지만, 입심은 테온에게 뒤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철부지 어린애라서 상대를 열 받게 하는 말재주는 더 뛰어났다.
테온은 잔뜩 화가 나서 시선을 옮겼다. 그의 눈길이 장내의 마지막 인물, 드라고한에게 닿았다.
“……저건 뭐야?”
오비데우스의 사체인 건 알겠는데, 상태가 이상했다. 목이 잘린 채 움직이는 것도 그렇고, 내부에 들어 있는 망령도 어딘가 익숙했다.
“뚱보잖아?”
테온이 드라고한의 본질을 알아보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는 오비데우스의 육체에 뚱보의 영혼이 들어 있는 걸 보고 앞뒤 상황을 금방 유추했다.
“뚱보를 초강력 언데드로 개조했다더니, 용의 사체로 듀라한을 만든 거냐, 이자벨라……?”
테온의 얼굴 가죽이 푸들푸들 떨렸다.
지금 그는 철저한 용의 신봉자. 감히 용의 사체로 추잡한 언데드를 만들었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있었다.
“맞아요. 그게 왜요? 무슨 불만 있어요? 각하가 나를 지켜 주지 않고 맨날 밖으로 나돌아다니니까 내가 저런 것까지 만든 거잖아요!”
이자벨라는 그저 남는 사체를 활용해 뚱보를 부활시킨 것뿐이었지만, 마치 바람피운 남편을 타박하는 것처럼 테온을 쏘아붙였다. 정실 행세에 재미를 붙인 그녀였다.
“옛정을 생각해 개종의 기회를 주려 했건만…… 내가 어리석었군. 너희에게는 갱생의 여지가 없다! 이 자리에서 전부 지옥으로 보내 주마!”
테온이 이자벨라를 향해 쇄도하고,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됐다.
아우레오와 이자벨라는 일단 수세를 유지하며 드라고한으로 테온의 뒤를 노렸다.
“오합지졸이 힘을 합친다고 나를 막을 수 있겠느냐!”
테온의 무공은 실로 대단했다.
아우레오와 이자벨라의 보호막은 그의 검강에 닿기만 해도 죽죽 갈라졌고, 둘의 공격은 테온의 호신강기를 뚫지 못했다.
드라고한 쪽은 상황이 더 안 좋아서, 테온에게 접근하는 족족 장력을 얻어맞고 날아갔다.
“이 바보들! 왜 정면 대결을 하는 거예요?! 우린 지금 각하를 제압하러 온 게 아니라고요!”
전투의 양상이 바뀐 건 요한나가 끼어들면서부터였다.
성녀는 본질을 보는 존재. 요한나는 갑작스러운 전투에도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했다.
“이 싸움은 새장을 지키면서 아스칸다르의 정신지배만 깨뜨리면 우리가 이기는 거예요! 드라고한은 새장을 지키고, 이자벨라 언니는 마법으로 각하를 밀어 내요! 아우레오 사제는 그 틈에 빛을 모아요! 용의 정신지배를 깨뜨릴 수 있을 만큼!”
요한나의 외침에 아우레오와 이자벨라도 정신을 차렸다. 생각해 보니 굳이 테온과 드잡이질을 벌일 이유가 없었다.
“드라고한, 새장과 요한나를 지켜!”
이자벨라는 드라고한에게 명령하는 것과 동시에 화염 마법을 시전했다.
테온의 호신강기를 뚫기 위해서는 마법의 위력을 한 점에 집중해야 하지만, 이자벨라는 오히려 범위가 넓은 폭발을 일으켰다.
퍼엉-!
이자벨라의 화염 마법을 받아 낸 테온이 반대 방향으로 날아갔다.
테온은 천근추와 운룡대팔식을 조합해 빠르게 균형을 잡았지만, 이자벨라의 폭발 마법이 연달아 날아들었다.
펑, 퍼퍼펑!
테온이 속절없이 밀려 났다. 체내로 스며드는 충격은 호신강기로 막아 낸다지만, 허공에서 몸이 뒤로 밀리는 건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어느새 테온의 몸은 새장으로부터 백 보가 넘게 멀어졌고, 도통 접근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성가시게 하는구나, 이자벨라! 그 마법도 내 덕에 얻은 주제에!”
“뭐가 각하 덕이에요! 엄밀히 말하면 나후타야 덕이지!”
“아크리치가 된 너를 구원한 게 바로 나다!”
“그딴 걸 왜 본인 입으로 떠들어요! 예전엔 안 그러더니!”
이자벨라는 변해 버린 테온의 모습에 속이 상했다. 무심한 듯 챙겨 주던 사나이 테온은 어디로 가고, 경박하고 수다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빨리 정신지배를 깨 버려야지. 매력 다 떨어지겠네!’
이자벨라는 마력탄 난사로 테온의 접근을 차단하며 아우레오 쪽을 슬쩍 흘겨봤다.
그녀가 벌어 준 천금 같은 시간에 아우레오는 신성력을 닥치는 대로 끌어모으고 있었다.
“나에게 용기를 주시는 분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나니……!”
막대한 신성력이 한 점에 모였다.
신을 향한 믿음과 테온을 구하고 싶다는 갈망이 합쳐져 아우레오에게 전례 없는 신성력을 부여했다.
‘테온은 지상 최고의 전사야. 한번 실패하면 두 번 다시 기회를 주지 않겠지.’
아우레오는 테온의 실력을 잘 알고 있었다. 단 한 번의 신성력 폭발로 아스칸다르의 정신지배를 파훼하지 못하면, 테온을 구원할 기회는 영영 사라질 것이다.
“환희의 아도나이, 영원히 빛나는 별이시여……! 저에게 시련을 이겨 낼 용기와 힘을 주시옵소서! 저의 심장을 꺼내어 바치는 마음으로 간청하나이다……!”
아우레오의 간절함은 한 방울의 눈물이 되어 뺨을 따라 흘렀다.
그리고 그런 어린 소년의 등 뒤를 성녀 요한나가 지켜보고 있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이 어린 사제에게 무한한 빛과 은총을 주십시오! 그의 육신은 순결하고, 정신을 올곧고, 의지는 정의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