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mpion from Sapa RAW novel - chapter 65
“이 멍청아! 그건 비밀이잖아!”
덩치 큰 중년 드워프가 젊은 드워프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식탁 위로 맥주가 쏟아지며 음식이 엉망이 되었지만, 드워프들을 껄껄 웃어 댈 뿐이었다.
“에이, 뭐 어때요. 설마 드워프의 친구인 테온이 다른 곳에서 이런 내용을 떠들고 다니진 않겠죠!”
“그래도 고용주와의 약속인데, 그걸 어기면 쓰나! 신용도 신용이지만, 들키면 우리 모두 목이 잘릴 거라고!”
그렇게 말하면서 드워프들은 일제히 나를 쳐다봤다.
“알겠으니까 눈치 주지 마.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을게. 맹세하지.”
“크하핫! 좋아. 맹세의 증거로 이 술을 단번에 마셔!”
중년의 드워프가 커다란 잔에 가득 담긴 맥주를 내밀었다.
그의 이름은 힘릿 에쉬락. 윈스크에서 일하는 광부 드워프들의 대장이었다.
그가 권하는 술을 단숨에 들이켜고 나서, 궁금한 점을 몇 가지 더 물었다.
“한데, 영구동토를 파헤칠 정도면 꽤 대규모 광산 개발 아닌가? 어차피 그런 큰 사업을 비밀로 할 수는 없을 텐데.”
“흐흐, 그런 큰 사업도 비밀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있지.”
“그런 사람이 있어? 너희 고용주가 보론초바 주교공이라도 되나?”
내 농담에 잿바위 드워프들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였다.
“그에 버금가는, 아니 어찌 보면 더 귀한 사람이지. 지금 우리는 겔라구스의 젊은 왕, 파블로 겔라구예비치 전하 밑에서 일하고 있거든.”
“……!”
유적을 발견했다는 말보다 더 놀라운 정보였다.
단순히 옛 유적을 발견하는 것 정도는 광부들에게 종종 있는 일이지만, 북부의 왕이 직접 입단속을 시킬 정도라면 보통 유적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무언가 있다.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린 국왕이 위험부담을 무릅쓰면서까지 몰래 개발하려고 한다면, 그만큼 얻어 낼 이득이 있다는 뜻이겠지.’
어쩌면 보론초바 주교공의 위세를 꺾어 놓을 만큼 대단한 무언가가 유적에 잠들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예를 들면 대량의 마정석 같은…….
마음 같아서는 잿바위 드워프들에게 자세히 물어보고 싶었지만, 비밀이라는데 굳이 캐묻는 것도 부적절했다.
결국 그날은 더 이상의 정보를 얻지 못하고 술만 진탕 퍼마셨다.
성과가 있다면, 잿바위 드워프들과 많이 친해진 것 정도였다.
역시 드워프들은 나와 죽이 척척 맞았고, 나는 그들과 어깨동무까지 한 채 음주를 즐기다 교회로 돌아갔다.
* * *
다음 날, 나는 즉시 영구동토로 떠날 채비를 했다.
영구동토는 북부에서도 가장 추운 지역 중 하나로, 북부에서 그나마 사람이 살 수 있는 도시 지역과 달리 얼음과 눈으로 뒤덮여 짐승도 거의 살지 못하는 땅이었다.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실제로 겪어 보면 더 춥겠지? 중원의 천산보다 더 추울지도…….’
나는 타고난 기질 자체가 추위에 약했다. 태생이 거지새끼라 그런지, 춥고 배고픈 건 질색인 사람이었다.
그래서 왕년에 강호가 좁다고 누비던 시절에도 북해빙궁은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그나마 내가 겪어 본 가장 추운 지역은 마교가 위치한 신장의 천산산맥이었는데, 거기서도 추위 때문에 볼일을 마치지 못하고 금방 돌아왔던 기억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버틸 만하겠지. 만반의 준비를 해서 가니까.’
온갖 방한용품을 미리 준비하기도 했지만, 내가 믿는 구석은 따로 있었다.
등에 두른 은백색 망토가 그것이었다.
우웅-.
오르샤바의 주교, 미켈레 옐란치노의 축복이 담긴 망토. 고급스러운 겉감 위로 은은하게 흐르는 신성력이 느껴졌다.
데스나이트의 암흑기류를 막아 내는 것도 대단했지만, 이 망토의 원래 효능은 추위를 막아 주는 것이었다.
애초에 옐란치노 주교가 이걸 선물한 이유도 내가 북부로 향하기 때문이었으니까.
짐을 챙기는데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영구동토의 유적에 관한 정보는 드워프들을 제외하면 나 혼자만 알고 있으니, 이번에는 아무런 방해 없이 유적의 유물을 독식할 수 있을 터였다.
그리고 국왕이 숨길 만큼 중요한 유적이라면 강력한 마법사나 마도구, 마정석이 있을 확률이 높았다.
‘흐흐, 비밀로 해 달라고? 당연히 비밀로 해야지. 이런 꿀단지를 누구랑 나누겠어?’
싱글벙글 채비를 마치고 밖으로 나가려는데, 아우레오가 나를 찾아왔다. 그는 내 모습을 보고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이내 영문 모를 소리를 지껄였다.
“테온도 주교공 예하를 따라가려고요?”
“무슨 소리야?”
“주교공 예하께서 도시 밖 영구동토의 유적을 정화하겠다면서 기사단을 불러 모으셨거든요. 곧 출발하실 겁니다.”
“뭐?!”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분명 영구동토의 유적은 국왕이 비밀리에 개척 중인데, 벌써 보론초바 주교공이 나서다니…….
‘주교공이 왕실에 세작을 심어 두었나? 과연 철두철미한 사람이군.’
그게 아니면 설명이 안 됐다. 또한 달리 생각해 보면 보론초바 주교공이라면 그 정도 정보력은 충분히 갖고 있을 만했다.
사파에서 온 용사
동토의 유적 (1)
“주교공이 뭐라고 하면서 기사들을 소집했는데?”
“아, 저도 전해 들은 건데요…….”
아우레오가 짐짓 은밀하게 속삭였다.
“파블로 왕이 영구동토에서 강력한 유적을 발견했나 봐요. 한데, 왕은 그 유적을 정화하지 않고 몰래 개척하려고 했다더군요. 더 놀라운 건, 유적의 마법 결계를 해제하기 위해 북부정교회와 손을 잡았다는 거예요. 끔찍한 일이지요.”
“그래, 정말 끔찍한 일이다.”
나 혼자 꿀꺽해야 할 유적을 나눠 먹게 생겼으니 실로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지요? 삿된 것을 물리쳐야 할 성직자가 세속 권력의 하수인이 되어 오염된 옛 유적을 탐색하려 하다니……. 비록 북부정교회가 우리와 종파는 다르지만, 같은 신을 섬기는 신앙의 형제라 생각했는데……. 그들을 믿었던 제가 바보같이 느껴지네요.”
“그래, 그들은 믿은 내가 바보같이 느껴지는구나.”
가만히 들어 보니 정보가 샌 것은 왕실이 아니라 북부정교회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영구동토의 유적 개발은 국왕이 드워프들에게 지시해서 벌인 일이고, 상식적으로 드워프들 사이에 세작을 심는 건 아무리 주교공이라도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북부정교회에서 정보를 빼내는 건 주교공에게 어렵지 않은 일이었으리라.
‘멍청한 놈들. 그런 중요한 정보를 흘리면 어쩌자는 거야.’
“한데, 테온은 왜 따라가려고요? 테온이 굳이 나설 이유가 없는데요.”
“이유가 없다니? 유적에는 북부정교회의 성전사와 신관 들이 이미 도착해 있을지도 모르잖아? 거기에 주교공이 이끄는 기사단이 들이닥치면 필시 싸움이 벌어질 것이다. 나도 도와야지.”
혹여 마정석을 몇 개 줍게 될까 싶어 간다고 말할 수는 없으니, 입에서 나오는 대로 둘러댔다.
“테온……!”
아우레오는 감동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주교공에게 푸대접받는 상황인데, 이렇게 서슴없이 도우려 나설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었다.
“저는 주교공 예하에게 내심 서운해서 이번 일에 나서지 않았는데……. 제 자신이 부끄러워집니다. 저도 함께 가겠어요.”
“아냐, 넌 그냥 여기에 있어. 나 혼자 다녀올게.”
“아닙니다, 테온. 저도 가겠어요. 금방 준비할 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기다리긴 뭘 기다려. 지금도 늦었는데!’
주교공이 기사단을 전원 소집했다면 이번 기회에 결판을 낼 각오라는 뜻이다.
두 종파가 마주치는 순간 큰 싸움이 벌어질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고, 싸움은 아마도 주교공의 승리로 끝날 것이다.
‘싸움이 끝나면 주교공은 그 자리에서 유적을 파괴할 거야. 애초에 싸움의 명분이 그거였으니까.’
그렇게 되면 내가 마정석을 찾아볼 기회도 사라지는 셈이다. 어떻게든 그들을 앞질러 한발 먼저 유적에 진입해야 했다.
“일단 나가자. 주교공과 기사들은 어디에 모여 있지?”
아우레오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교회 정원에는 이미 기사단이 집결한 상태였다.
‘저자가 바로…….’
빛나는 갑옷을 걸친 세속 기사들 사이로 한눈에 들어오는 사내가 있었다.
거대한 전마에 올라탄 냉막한 인상의 중년인. 피처럼 붉은 머리칼을 풀어 헤치고, 은빛 갑옷에 붉은 망토를 두른 사나이.
‘스칼렛은 아버지를 하나도 안 닮았군.’
그는 바로 윈스크의 대영주, 블라토프 보론초바 주교공이었다.
그에게서 풍기는 분위기는 남달랐다. 당신이 보론초바 주교공이냐고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기백이었다.
저런 사내의 슬하에서 어떻게 스칼렛 같은 허당이 나왔는지 의아할 지경이었다.
그리고 주교공 역시 한눈에 나를 알아본 듯했다.
“……늑대 도살자인가.”
“그렇다.”
보론초바 주교공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누군가에게는 대단한 영광이겠지만, 지금 내게는 그런 걸 따질 겨를이 없었다.
“아우레오에게 듣자 하니, 예하는 지금 당장 영구동토로 간다고?”
“……?”
내 말에 보론초바 주교공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생전 이런 놈은 처음 본다는 반응이었다.
“예, 예하! 수호자 테온은 마법사의 저주로 기억을 잃은 탓에 경어가 익숙치 않으니 너그러운 이해를……!”
“알고 있다.”
아우레오가 급히 끼어들어 설명하는데, 보론초바 주교공이 묵직하게 그의 말을 끊었다.
“스칼렛에게 들었다. 내 딸이 지난번 가……출에서 기묘한 사내를 만났다고 하더군. 그대가 스칼렛의 목숨을 한 번 구해 주었다지?”
“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지.”
“하지만 그 위험은 너로부터 초래한 것이니, 따로 사례는 하지 않겠다.”
“바라지도 않는다. 내 용건은 다른 거거든.”
내 태도 때문인지, 보론초바 주교공 주변으로 흉흉한 기세가 일어났다.
주교공은 여전히 무표정했지만, 그를 둘러싼 기사들은 그렇지 않았다.
‘아주 잡아먹을 기세로군.’
그나마 성직자들은 좀 나았지만, 공작 가문을 섬기는 세속 기사들의 표정은 거의 흉신악살의 그것이었다.
웬 젊은 이방인이 나타나 자기 주군에게 반말을 지껄여 대니 그럴 만도 했다.
“영구동토에 가서 무얼 할 셈이지?”
“……허락되지 않은 힘을 탐내는 자들을 벌할 생각이다.”
내 물음에 의외로 주교공은 순순히 대답해 주었다. 물론 대답한 내용은 내가 우려하던 그대로였다.
‘북부정교회와 왕실을 손봐 주겠다는 뜻이군. 하긴, 저런 사내가 명분을 얻었으니 행동하지 않을 리 없지.’
마력이 흐르는 옛 유적을 탐내는 건 교회로부터 징벌받아 마땅한 죄였다. 주교공이 북부정교회를 넘어 왕실까지 제압할 수 있는 명분을 놓칠 리 없었다.
“그들을 무찌르고 나면 유적은 어쩔 생각이지?”
“오염된 옛 유적은 불과 빛으로 정화한다! 그러니 수호자 테온은 더 이상의 무례를 삼가고 물러서라!”
참다못한 기사 한 명이 대화에 끼어들어 외쳤다.
주교공은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고 그저 지켜보고 있었다.
“나도 함께 가겠다.”
“하하.”
주교공은 가볍게 웃더니 고개를 내저었다.
“가소로운 말이구나, 늑대 도살자 테온. 너의 명성은 익히 들었지만, 이건 네가 나설 일이 아니다.”
명백한 거절이었다.
주교공은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듯 천천히 말을 몰아 교회를 빠져나갔다.
주교공과 첫 대면은 허무하게 끝났고, 나와 아우레오는 황망한 표정으로 길을 비켜 줄 수밖에 없었다.
“테온, 너무 낙심하지 말아요.”
“그래.”
아우레오가 위로를 건넸지만, 나는 조금도 낙심하지 않았다. 당연히 거절할 줄 알았으니까.
나는 방으로 돌아와 문을 잠갔다. 그리고 즉시 창문으로 빠져나왔다. 운잠홍으로 기척을 숨긴 것은 당연했다.
‘한시가 급하다. 녀석들을 앞질러서 유적에 먼저 도착해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