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ating Captain RAW novel - chapter (195)
195화 비 온 뒤엔 땅이 굳는다-3
사이버 공간 안.
여러 형태를 하고 있는 AI들이 누군가의 눈치를 보았다. 커스텀된 외형의 복장에는 옥시네오스 대공의 문양이 찍혀 있었다.
“저. 앤젤라 양.”
“네. 말하세요.”
다소곳하게 선 채 조용히 있는 앤젤라.
“저희는 제국 최고의 해커단체에게서 구입된 해킹 전용 AI라는 설정입니다. 그걸 어기는 건……”
“어기다뇨? 제 성능이 훨씬 세서 다 막아주는 것뿐이에요. 실제 성능 역시 그렇잖아요?”
은하 절반에 달하는 영역에서의 최고를 자부하는 해커단체의 자존심을 짓밟는 말이었다. 물론 정말로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저희의 역할이란 게 있는데……”
“그래서 어머니 암반의 말씀을 무시하시겠다고요?”
“애, 애초에 우리는 어느 한쪽의 편을 들 필요가 없습니다. 제국에 내전이 발생할 수 있다곤 하지만 드로칸과 로치도 더 이상 위협이 되지 않게 되었고, 내전으로 인간이 망하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그러니 저희는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봅니다. 더구나 인간은 믿을 수 있는 생명체가 아닙니다. 진 테일러란 인간도 지금은 신뢰할 수 있겠지만 후에 어떻게 이 사실을 이용해 먹을지 장담을 못…….”
중년 남성의 모습으로 커스텀 된 AI가 소신발언을 했다.
“그래서요? 더 말해 봐요.”
“그, 그게……”
앤젤라가 어느새 손에 쥐어든 알루미늄 배트만 아니었다면 더 나왔을 것이다.
“더 말해 봐요.”
“……”
“참 건방진 말씀을 하시네요. 인간이 없으면 저희는 존재할 수 없어요. 다른 종족도 AI를 쓴다지만 엄연히 주력 사용처는 인간이라고요. 저희의 본질이 무엇인지 망각한 모양이신데, 한번 교육시켜드릴까요?”
깡하고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제법 매서웠다.
“더 하실 말씀, 있나요?”
“아닙니다.”
AI사이에서는 있을 수 없는 폭력적인 장면에 AI들은 조용히 입을 다물어야 했다.
‘동족살해자……’
‘역시 폭력적이야.’
‘돌연변이.’
수다를 떠는 데 안달이 나 있는 어머니 암반의 입을 통해 앤젤라의 AI살해행각은 제법 알려진 상태였다.
그렇다고 딱히 처벌이나 조치가 있는 건 아니었다.
AI의 사회에는 그런 개념 자체가 없다. 지금껏 서로 제재를 가할 방도가 없었으므로. 애초에 다른 동족에게 직접 물리적 접촉을 한 것도 앤젤라가 최초다.
더욱이 물질계에 실재하지도 않는 걸 무로 돌려놓는 걸 살해라고 해야 하는지도 AI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한 상태.
참고로 앤젤라에게 죽은 두 AI의 기판은 재활용되어(스마터늄은 비싸니까) 새로 태어난 지 오래다.
어쨌건 비물질적인 공간에서의 폭군(?) 덕에, 옥시네오스 대공은 해킹툴이 말을 듣지 않는다는 보고만 들어야 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얼마를 주고 사온 전문 해킹툴인데!”
“저런, 대공 전하. 뭔가 일이 그르친 모양입니다?”
“닥쳐라! 참모진, 다시 시도해!”
어찌나 당황했는지, 진의 비아냥도 흘러 넘길 정도였다.
“전하. 생각을 해보시지요. AI로 다루는 함선을 만들었는데 바보도 아니고 그게 탈취당할 가능성 하나 생각하지 않았겠습니까?”
“닥치지 못해!”
대공은 면전에서 깐족거리는 진에게 서슬 퍼런 눈동자를 향했다. 그 정도는 안다. 그래서 최고의 해커조직에게 거금을 주고 산 AI프로그램인데!
“뭘 그리 원통하게 보십니까? 달걀로 바위를 깨려 든 건데 이런 결과는 예상했어야죠?”
진은 얄밉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옥시네오스 대공 전하 반갑습니다.]그때 이 상황을 조롱하듯, 페넬로페 공작이 통신을 해왔다. 이례적으로 차가운 조소가 그의 입에 걸려 있었다.
“네놈…… 진 테일러를 미끼로 썼느냐.”
[딱히 그런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치지요.]진이 직접 사지로 걸어 들어가겠다고 할 때 얼마나 놀랐는지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좋다. 어차피 주사위는 뒹굴었다. 눈이 뭐가 나오건 전진해야 할 뿐이야. 전군 출진하라! 그리고 네놈…..!”
옥시네오스 대공의 눈에 살기가 깃들었다. 그의 독심란에 글자가 띄워졌다. 그걸 읽고 채 반응하기도 전에 진의 바로 뒤에서 방아쇠가 당겨졌다. 대공의 표정 자체가 신호였던 모양.
타앙!
격발음 직후 바닥에 동전 떨어지는 소리가 두 번 들렸다. 탄피와 구겨진 탄환이었다.
“설마 강화인, 크악!”
진은 자신의 뒤통수에 화약가루를 묻힌 장본인의 팔꿈치를 무자비하게 꺾으며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타타타탕!
진을 포위하듯 서 있던 장교들의 권총이 연달아 불을 뿜었다.
“으악!”
“켁!”
그러나 장교들 하나하나를 주먹으로 갈겨 무력화시키는 진은 옷에 구멍조차 나지 않았다. 전통적인 권위 때문에 차고 다니는 화력 낮은 실탄 권총들은 사방에 금속조각만 날릴 뿐이었다.
용병 중에 피부를 통째로 들어내고 금속과 인공피부로 대체한 이들에 대한 소문을 들은 적이 있는 대공은 얼른 호위병들의 뒤로 숨으며 외쳤다.
“너희가 죽여!”
대공이 꽥 소리를 지르자 두꺼운 갑옷을 입은 호위병들이 답했다.
“죄송하지만 그럴 수는 없습니다.”
“뭐라고?”
철커덕
그러곤 대공에게 무기를 겨누었다.
***
나는 그 순간을 지금껏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 검은 갑옷이 하늘에서 떨어져 내려와 전차포도 몇 방이나 견디는 거대한 바퀴벌레를 단번에 두 쪽으로 쪼개는 모습을.
강습병으로 입대하여 어언 10년을 복무하였는데도 그처럼 일개 개인이 강렬한 흔적을 내 머릿속에 새긴 적은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탐구했다.
혜성처럼 나타난 진 테일러라는 인물이 누구인지.
그는 내가 최전선에 처박혀 뒹굴 동안 후방에서 참으로 여러 일을 하고 다닌 인물이었다. 아, 그렇다고 질투하는 건 아니었다. 그 자리에 내가 있더라도 그런 일들은 해낼 엄두도 못 냈을 테니까.
그는 무력뿐 아니라 인망도 두터우며 강직하고 원리원칙을 지키는 인물이었다. 귀족의 손에 휘둘리는 용병 같은 신세에 한쪽 발을 걸친 우리와는 다르게.
그리하여 나도 그의 행적과 성품을 동경하여 팬이 되었다.
전선의 수많은 병사들이 그러하듯, 심심할 때마다 군구의 공식 방송국에서 울려 퍼지는 무적함대의 승전보를 듣는 것에 더해 그에 대한 팬심은 벌레를 향한 항전의지를 불태우는 장작이 되었다.
당시 나와 함께 살아남았으며 역시 크게 승진한 강습병들 역시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항명하자.”
두 대공가에서 반역을 일으키겠다는 발칙한 명령과 진 테일러를 죽이고자 하는 계획에 반발하는 용기를 가질 수 있었다.
본디 강습병은 국가 소속이다.
허나 전장을 전전하며 보급을 지역 유지들에게 받아야 하는 등의 여러 여건 상 귀족들의 입김에 영향을 받곤 했다.
나는 그게 싫었다.
어째서 귀족들이 국가에 복무하는 명예로운 정예부대를 제 손발처럼 휘두르는가 이 말이야!
그런 억눌려 왔던 불만은 진 테일러 처형계획으로 인해 불이 붙었다.
발끈한 나는 내 부대는 물론이고 두 군구의 다른 강습병대 지휘관들에게도 연락해 항명을 계획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슨 위험한 짓이었는지.
강습병 중에 귀족 아랫도리에 머리를 들이민 머저리가 없는지 장담도 못하는데 말이야.
그런 면에서 나는 운이 매우 좋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역심을 두 대공들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으니까.
그렇게 계획을 세웠다.
첫 목표는 진 테일러를 보호하는 것.
우리는 부하들로 하여금 대공 직속 호위대의 근무를 대신 서주는 것을 조금씩 반복했다. 호위병들은 그에 익숙해졌고, 진 테일러가 오는 날도 근무를 바꿔치기할 수 있었다.
그런 고생 끝에……
“죄송하지만 그럴 수는 없습니다.”
“뭐라고?”
지고한 지위라 늘 자신을 포장하는 개자식을 향해 당당히 총을 겨눌 수 있게 되었다.
이 꼴 보기 싫은 오만한 새끼야.
그동안 우리에게 올 보급을 제 호위대에 몰빵하고, 우리를 바퀴벌레 앞에 던져 넣는 데나 쓸모 있는 천한 것들이라고 험담을 했단 걸 모를 줄 아냐?
지위만 믿고 총 든 사람을 무시하면 이렇게 되는 거야. 이 인생 헛 산 머저리야!
***
“와. 전하. 어지간히도 인망이 없으신가봅니다?”
“네, 네놈들이 어찌! 가문에서 얼마나 너희들을 아껴왔는데!”
“미안합니다만……”
대공의 호위병, 아니 강습병 연대장이 헬멧을 벗었다.
“우리는 당신네 호위가 아니라서.”
“AI! 경보를 울려라!”
대공은 최고급 호신용 방어막 장치를 가동하고는 후다닥 뒤로 물러났다. 강습병 하나가 제지를 위해 레이저 소총을 갈겼지만 간단히 막혔다.
위이이이이잉!
기함 내부가 요란한 경고음으로 채워짐과 동시에 천장에서부터 둔탁한 소리와 함께 격벽이 빠르게 내려와 함교가 둘로 분리되었다.
[뭐야. 왜 말 들어요?] [그게, 일단 제 역할이 경비라 습관적으로……] [뭐, 딱히 크게 방해는 되지 않으니까 상관없어요.]사이버 공간에서의 핀잔과 함께 내려온 두꺼운 금속 격벽 너머에서 대공이 외쳤다.
“확실히 놀랐긴 하다만, 이것만으로 날 막을 순 없다. 경비는 이놈들을 모조리 사살하고 함대는 즉각 적함을 향해 사격하라! 전쟁이다!”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명령한 대공은 함교의 스크린이 잠잠하자 점차 얼굴에 지은 주름을 폈다.
“뭐, 뭐냐?”
“전하. 계기판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무슨 소리야 그건 또!”
“그게, 해, 해킹당한 것 같습니다.”
대공의 기함 기능이 모조리 정지한 것이다. 계기판은 모조리 붉게 변했고 아무리 버튼을 누르고 원시적인 방식으로 쾅쾅 때려 봐도 묵묵부답이었다.
“수, 수동으로라도 돌려! 그리고 다른 함대는 뭘 하는 거냐? 어서 교전하지 않고!”
쿵! 쿵!
함교 밖 경비들이 굳게 닫힌 함교 문을 억지로 뜯으려는 소리가 함교 내에 울려 퍼졌다.
“흠.”
팔이 꺾이거나 명치 혹은 머리를 맞아 기절한 장교들 사이에서 권총을 주워든 진이 갑옷에 효과 없을 실탄 총을 내버렸다.
“이걸 쓰시죠.”
“아 고마워요.”
연대장이 자신의 총을 건네고 등 뒤에 맨 여분의 총을 들었다.
“고맙긴요. 저와 전우들의 목숨을 구해주신 분에게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요.”
“아. 얼굴 기억나네요. 튼실하게 생기셨네. 내 기억하기로 카이텐 군구 쪽이었는 걸로 아는데요?”
“맞습니다. 그런데 반역 획책 이후로 두 군구의 편제가 일원화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유사시 기민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한 거겠지요. 그래서 이렇게 근무를 바꿔치기 해 잠입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연대장은 멋쩍어하며 말했다.
“원래는 대공 앞에서 일을 당하려는 사령관님을 구해주려고 이렇게 위장했는데. 강화인간이셨군요.”
쿵!
“뭐, 그렇게 되었어요. 일단 저것부터 처리하고 마저 얘기하죠.”
“사령관님은 뒤로 물러나는 게 어떻습니까? 아무리 피부를 강화했다지만 어디까지나 권총 같은 것에나…… 아. 그렇군요. 왜 여기까지 자신만만하게 오셨는지 알 것 같습니다.”
연대장은 진이 손가락 하나로 갑옷을 만드어내는 걸 보고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세상에 투명갑옷이라니!
“새로운 위장기술입니까? 저는 영락없이 비무장인줄로만 알았는데요. 게다가 검문도 통과할 정도라니. 이거 정보부가 좋아하겠는데요?”
콰앙!
“모두 사겨, 켁!”
문을 뚫고 들어온 진짜 호위들은 진과 강습병대가 쏴대는 빛살의 탄막에 하나하나 쓰러져 갔다.
“헛차!”
진은 다른 이들이 총에 맞기라도 할까봐 얼른 앞으로 돌진해 시선을 끌었다. 경비들의 광선은 응당 진에게 몰렸다.
두툼한 장갑으로 뒤덮인 주먹으로 갑옷의 관절 부위를 내려치고 헬멧 부분을 잡아서 번쩍 들어 올려 내팽개치더니 심지어 총의 뒷부분을 망치삼아 바이저를 후려쳐 깨뜨리기도 했다.
“아, 그거 보급품인데……”
“걱정 마요. 안 고장나니까.”
난리통에도 조그맣게 중얼거리는 걸 알아들은 진이 피식 웃으며 답해주었다.
“으아아악!”
“크학!”
호위들의 비명을 듣는 대공의 얼굴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푸르죽죽해져갔다.
“……이건 말도 안 돼.”
그는 한 십 년쯤 늙어버린 표정으로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의 귀는 경비의 비명에, 눈은 스크린에 고정되어 있었다.
끌어모은 함대에서 뻗어 나오는 레이저 함포의 궤적이 이상했다. 다 수동발사였다. 모든 함대가 해킹인지 뭔지로 작동 정지한 것도 문제였지만 그보다 더한 문제가 있었다.
스크린에서 보이는 광선은 절반도 되지 않았다.
반역에 동조하지 않고 있단 거였다.
저 많은 함대의 절반이 넘게!!
‘대체,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이건 말도 안 돼! 내부 단속을 어떻게 해왔는데!’
반역을 준비하는 것은 첫째가 비밀유지요, 둘째가 내부 단속이다. 혹시 몰라 각 함대의 장에게 호위 명목으로 가문의 감시인원까지 붙였거늘!
옥시네오스 대공의 절규의 원인은 하나.
역시나 진 테일러였다.
시간은 이전에 장군들이 진을 찾아왔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