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1)
하지만 그곳에 있던 건 천마였다.
고작 그놈들만으로 천마를 죽이는 건 불가능했다.
그때 덤볐던 놈들의 대부분이 죽었지만, 그 와중에도 살아 돌아간 놈들이 있었다.
패색이 짙어지자, 미리 발을 뺀 것이다.
그게 바로 종리세가 놈들이었다.
“그래서, 그놈들이 나한테 해코지라도 할까봐?”
“네. 종리세가는······.”
벽태산이 유서연의 말을 받았다.
“비열한 놈들이지.”
유서연이 깜짝 놀라 고개를 번쩍 들고 벽태산을 바라봤다. 그녀의 시선이 슬그머니 천경완에게 닿았다가 떨어졌다.
이런 말은 절대 함부로 해선 안 된다.
종리세가에서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바로 저 말이었으니까.
“그래서, 종리세가가 수작 부리면 그걸 막을 힘은 있고?”
유서연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온 힘을 다할 뿐입니다.”
“뭐······ 그러든가.”
허락이 떨어지자, 유서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처 문제는 소소에게 도움을 구하겠습니다.”
“그렇게 해.”
유서연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 밖으로 나가자, 벽태산이 천경완을 돌아봤다.
“일하면서 뻘짓하지 말고 하려면 따라가서 지금 해.”
그 말에 천경완이 기겁했다.
“아무 짓도 안 할 겁니다. 무엇보다······ 우린 아직 그런 사이가 아닙니다.”
벽태산이 피식 웃었다.
“쫄보새끼.”
천경완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유서연 앞에서 자신은 겁쟁이가 맞다.
* * *
“수련은 여기서 하면 됩니다.”
천경완의 말에 유서연이 주위를 슥 둘러봤다.
“좋은 곳이로군요.”
“금벽상단이니까요.”
이곳은 벽태산이 쓰는 전각에 딸린 연무장이었다.
애초에 벽태산이 쓸 일이 없으니 놀고 있던 연무장이었는데, 천경완이 거처를 이쪽으로 옮기면서 개인 연무장처럼 쓰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천경완 혼자 썼지만, 사실 혼자 쓰기엔 지나치게 넓은 연무장이었다.
핵심 무공을 수련할 때야 서로 자리를 비켜주겠지만, 그 외에 기본적인 수련을 할 때는 같이 해도 무방했다.
사실 열 명이 써도 충분한 규모였다.
유서연이 천경완을 가만히 바라봤다.
천경완은 그 시선을 느끼고 딴 곳을 쳐다보기만 했다.
“축하드려요.”
“예?”
난데없는 축하에 천경완이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제가 한 걸음 뒤졌네요. 금방 쫓아갈 거니까 방심하지 마시고요.”
두 사람은 비슷한 경지였다.
천경완이 벽태산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사실 천경완과 비슷한 경지인 유서연도 보통은 아니었다.
“정말 열심히 하셨나 봐요.”
유서연의 말에 천경완이 쓴웃음을 지었다.
“열심히 한다고 다 되면 세상에 절정고수가 넘쳐날 겁니다.”
유서연이 눈에 이채를 띠고 천경완을 바라봤다.
저 말은 그저 노력에 의한 성장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뭐지? 금벽상단에서 영약이라도 구해다 줬나?’
아무리 영약을 먹는다고 해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더구나 돈으로 구할 수 있는 영약은 더더욱 그렇다.
대부분의 무가나 문파는 비전의 영약을 절대 함부로 유출하지 않는다.
그러니 금벽상단에서 구할 수 있는 영약이라고 해봐야 고만고만한 수준일 것이다.
천경완이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 단단해진 눈빛으로 유서연을 바라봤다.
“유 무사님은 천재가 있다는 걸 믿습니까?”
“그럼요. 일단 각 무가마다 천재가 한두 명씩은 있잖아요?”
그리고 나름 자신도 천재 소리를 듣고 자랐다. 아마 천경완도 비슷하지 않을까?
하지만 천경완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평범한 천재 말고 진짜 천재 말입니다. 말 한 마디 건네는 것만으로 수 년 동안 뚫지 못한 단단한 벽을 부숴 버리는 그런 천재.”
유서연은 섣불리 대답하지 못했다. 믿기 힘들었다. 하지만 말하는 걸 보아하니 그런 천재를 겪은 모양이었다.
아니면 누군가를 그런 천재로 착각하고 있거나.
“믿기 힘든 말이긴 하네요. 말 한 마디로 벽을 부수다니······.”
유서연이 빙긋 웃으며 천경완을 바라봤다.
“그런 사람이 있으면 저도 한 마디쯤 듣고 싶네요.”
천경완은 유서연의 미소를 홀린 듯 멍하니 바라봤다. 그러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유서연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천경완을 바라보고 있었다.
천경완은 벽태산에게 잘 보이라는 말을 할까 말까 망설였다. 하지만 이내 그 말을 삼켜버렸다.
“시간이 얼마 없으니 전 수련을 시작하겠습니다.”
천경완의 말에 유서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수련할 거예요. 같이 해도 되죠?”
“물론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없다고 하신 건, 오늘도 기루에 간다는 뜻인가요?”
천경완은 예의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와 대답했다.
“아마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천경완은 유서연의 못마땅한 표정을 뒤로 하고 돌아섰다.
그리고 적당한 거리를 띄운 다음 검을 뽑았다.
유서연이 지켜보고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오늘 할 건 진기와 근력을 모조리 쏟아내 극한을 경험하는 수련이다.
이따 벽태산을 호위해야 하지만, 상관없었다. 훨씬 전에 쓰러질 테니까.
아마 모든 걸 쏟아낸 다음, 한잠 푹 자고 나면 해가 질 것이다.
* * *
벽태산은 앞에 선 천경완과 유서연을 번갈아 쳐다봤다.
“둘 다 가려고?”
그 물음에 천경완이 난감한 표정으로 유서연을 바라봤다.
“유 무사님은 굳이 안 가셔도 될 것 같습니다만······.”
“밖에 나가시는데 저보고 여기 있으라고요? 굳이 이 안에서는 벽 공자님을 지킬 필요도 없어 보이는데, 그럼 전 놀고먹는 사람이 되는 건가요?”
듣고 보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리고 벽태산은 주위에 여자가 있든 남자가 있든 별로 신경 안 쓰는 사람이었고.
“뭐, 그럼 그러든가.”
벽태산이 성큼성큼 앞장서서 걸어갔다.
천경완과 유서연이 벽태산 뒤에 바짝 따라붙었다.
그렇게 한동안 말없이 걷다가 유서연이 천경완에게 조용히 물었다.
“괜찮으세요?”
“물론입니다.”
유서연의 시선에 걱정이 묻어났다.
아까 천경완이 수련하던 모습을 보면 누구나 같은 반응을 보일 것이다.
천경완의 수련은 그 정도로 지독했다.
그렇게 모든 걸 쏟아냈는데, 몸이 멀쩡할 리 없지 않은가. 비록 두 시진 정도 잠을 자긴 했지만 말이다.
“정말 괜찮으세요?”
“네.”
이렇게 수련한 지 벌써 보름이 넘었다.
그리고 톡톡한 성과가 있었다.
그냥 모든 걸 쏟아낸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
천경완의 시선이 앞장서서 걸어가는 벽태산에게 닿았다.
처음 모든 걸 쏟아낸 날, 천경완은 벽태산에게 몇 마디 조언을 더 들었다.
그리고 그 조언이야말로 진짜였다.
그건 지친 몸을 회복하는 비법이었다.
그 이후로 매일 모든 걸 쏟아내는 수련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보름이 지난 지금, 천경완은 벽태산이 말했던 진짜 벽을 부수고 한 계단 위로 올라섰다.
“믿을 수가 없네요. 천 무사님이야말로 진짜 천재 아닌가요?”
“당치 않습니다.”
“아뇨. 제가 보기엔······.”
유서연은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벽태산이 갑자기 우뚝 멈췄기 때문이다.
벽태산은 천천히 돌아서서 두 사람을 슥 훑어봤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압박이 되었다.
두 사람은 입을 꾹 다물고 조용히 벽태산을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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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고문을 해
“오늘은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낙화루.”
“예? 거기에 또 가십니까?”
낙화루는 향화루 다음으로 벽태산이 싹 털었던 기루였다. 그 이후 몇 개의 기루를 더 정복했다.
벽태산이 씨익 웃었다.
“거기 도전할 만한 아이가 새로 왔더라고.”
도전이라는 말에 천경완이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벽태산이 저렇게 도전이라고 할 때마다 다음 날 기녀가 금벽장으로 찾아왔다.
그렇게 찾아온 사람이 벌써 셋인데, 여기에 또 하나가 추가될 모양이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유서연의 표정이 점점 굳었다.
그녀의 뇌리에, 연하린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신신당부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아가씨······ 이제 마음을 접으셔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유서연이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벽태산이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왜 그러십니까?”
유서연은 그렇게 묻고는 흠칫 놀라 천경완을 바라봤다.
천경완이 검을 슬며시 쥐고 있었는데, 그의 온몸에서 칼날 같은 기세가 삼엄하게 일어났다.
“대체······.”
유서연은 말을 잇지 못했다. 저 멀리 어둠 속에서 강렬한 기세가 느껴졌다.
투기와 살기가 적절히 버무려진 기운이 존재감을 흩뿌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유서연은 굳은 표정으로 허리춤에 매단 검을 꽉 쥐었다.
그녀의 표정은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아니야, 잘못 본 거야.’
방금 분명히 천경완보다 벽태산이 먼저 저 살기를 감지하고 멈춘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럴 리 없지 않은가.
어둠 속에서 누군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한 명이 아니라 네 명이었다.
‘셋은 별 볼일 없고, 한 명은 좀 위험하네.’
앞에 선 세 명은 흑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놈들이었다. 가진 기운도 내뿜는 기세도 딱 그 정도였다.
하지만 그 뒤에 서서 번들거리는 눈으로 이쪽을 보고 있는 저 사람은 달랐다.
그저 흔한 흑도 나부랭이가 절대 아니었다.
자신이 싸워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강자였다.
유서연이 그렇게 상대에 대한 정보를 나름대로 파악하고 있을 때, 세 명의 흑도 나부랭이들이 건들거리며 앞으로 몇 발 다가왔다.
겁이 나는지 가까이 오지도 못하고 두어 발 떼는 것이 전부였다.
“거기 세 명, 우리랑 좀 같이 가줘야겠는데?”
그 말에 벽태산이 피식 웃었다.
“뭐 저리 정중해?”
벽태산은 고개를 휙 돌려 천경완을 쳐다보며 말했다.
“야, 저기 쫄보 또 있다.”
천경완은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했다.
저 쫄보라는 말에 넘어가면 안 된다. 혼자서 바보 되기 싫으면 말이다.
“가늠해봐.”
벽태산의 난데없는 말에 천경완이 바로 대답했다.
“제가 최소 세 수는 위입니다.”
“뭐해?”
“예?”
“가늠했으면 확인을 해야지.”
천경완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고는 유서연을 바라봤다.
“공자님을 잘 부탁드립니다.”
천경완은 그 말을 남기고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자, 잠깐만요!”
유서연이 당황해서 천경완을 불렀지만, 천경완은 대꾸하지 않고 자기 할 일에 집중했다.
천경완이 다가오자, 앞에 섰던 세 흑도 사내들이 당황했다. 하지만 그들이 할 일은 딱 하나였다. 얼른 옆으로 비켜섰다.
그들 사이로 천경완이 슥 지나갔다. 하지만 누구도 천경완을 공격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내 천경완이 위험한 기세를 풍기는 사내 앞에 섰다.
검붉은 옷을 입은 사내였는데, 옷에서 은은한 피 냄새가 났다.
“괜한 허세 부리지 말고 그냥 따라오는 게 어때?”
사내는 그렇게 말함과 동시에 검을 휘둘렀다. 바람소리조차 나지 않는 은밀한 공격이었다.
스아악!
천경완은 상체를 뒤로 젖히며 목을 노리고 날아온 검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냈다.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방심했으면 아마 이 한 수에 당했을 것이다. 그 만큼 은밀하고 호흡과 호흡의 빈틈을 찌르는 기습적인 공격이었다.
하지만 일단 그걸 피해냈으니, 이제 승기는 천경완에게 있었다.
천경완의 검이 검집에서 나오며 난폭한 기세를 흩뿌렸다.
쩌엉!
검과 검이 충돌하며 거친 기파가 사방을 휩쓸었다.
사내의 실력도, 천경완의 실력도 상당했다.
쩡! 쩡! 쩡! 쩡!
연이어 검격이 이어졌다.
처음에는 비등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금세 우위가 드러났다.
천경완의 검을 다섯 번 막아낸 사내가 인상을 쓰며 뒤로 물러난 것이다.
물론 천경완은 그가 순순히 물러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촤악!
사내의 팔이 피를 뿌리며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