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80)
점원이 노인을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찾으시는 약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노인은 점원의 말을 아예 무시하고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점원이 당황해서 노인을 불렀다.
“어르신, 그쪽으로 가시면 안 됩니다!”
노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걸어갔다. 그렇게 반쯤 들어가고 나서야 걸음을 멈췄다.
“허어, 이것 참······.”
노인은 연신 고개를 저었다.
“이거 어디 무서워서, 원.”
안에서 흘러나오는 날카로운 살기 때문에 더 이상 들어갈 수가 없었다.
사실 웬만하면 살기고 뭐고 안으로 들어가서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지금 쏟아지는 살기의 수준이 너무 높았다.
“안 들어갈 테니 그쪽에서 나오는 게 어떤가?”
노인은 그렇게 말하며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아까 노인을 상대하던 점원은 어느새 멀찍이 떨어진 벽에 바짝 붙어서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검귀가 천천히 밖으로 나왔다.
노인과 검귀가 서로를 노려봤다.
먼저 입을 연 것은 노인이었다.
“이거 전혀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난 기분이로군. 이러면 수지타산이 안 맞는데?”
검귀는 대꾸하지 않고 가만히 집중했다.
언제든 공격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둬야만 한다. 저 노인은 정말 보통이 아니었다.
최선의 한 수를 두지 않으면 뒤를 기대할 수 없으리라.
노인이 갑자기 뒤로 한 걸음 크게 물러났다.
그걸 본 검귀의 눈이 번득였다.
방금 저 노인은 검귀의 간격에서 벗어났다.
“정말 이상하군. 분명히 간격에서 벗어났는데 왜 이리 꺼림칙하지?”
노인은 그렇게 말하며 한 걸음 더 뒤로 물러났다.
“지금 당장 뭘 어떻게 할 생각 없으니 좀 진정하는 게 어떻겠나?”
검귀가 눈살을 찌푸렸다.
노인이 계속 한 발씩 뒤로 물러나니 간격을 제대로 잡을 수가 없었다.
“뭘 그리 열을 내나. 어차피 천약방에서 나온 건 다 알고 있는데.”
“천약방?”
검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직 천약방이 벽태산 휘하에 있다는 건 모르고 있었으니까.
검귀가 아는 건 현재 각월객잔에 함께 있는 자들이 전부였다. 거기에 비천단 몇 군데가 합류해서 일을 돕고 있다는 정도만 짐작할 뿐이었다.
이번엔 노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보아하니 정말로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다.
애초에 잘못 짚었거나, 저놈만 모르고 있거나.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저놈 혼자 모른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뭐, 상관없지.”
머리는 다른 놈들보고 쓰라고 하면 된다. 자신은 그저 칼을 휘두르고 죽이기만 하면 끝이다.
“거 참, 신경 쓰이네.”
노인은 또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이번엔 검귀도 노인을 향해 성큼 다가갔다.
노인이 또 뒤로 물러났고, 검귀가 또 따라갔다.
그러자, 노인의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설마 무림인들이 북적댄다고 해서 내가 그냥 돌아갈 거라 여기는 건 아니지?”
노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뒤쪽에서 뭔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꽈과광! 꽈드드득!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점포가 흔들렸다.
검귀가 깜짝 놀라 원래 있던 곳, 그러니까 소소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려 했다.
하지만 정확히 그 순간 노인이 달려들었다.
쉬이익!
쩡!
검귀는 노인이 휘두른 검을 올려 막았다.
엄청난 충격이 온몸을 두드렸다. 마치 땅에 박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저리 꺼져!”
검귀가 온 힘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
쩌어어어엉!
검을 막은 노인이 뒤로 쭉 밀려났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노인을 벗어날 수 없었다.
노인은 뒤로 밀려난다 싶더니 어느새 검귀 앞으로 다가와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쩌저저저저저정!
검귀와 노인의 검이 어지럽게 얽혔다.
검귀는 점점 더 마음이 급해졌다.
안쪽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뻐버버버버버벅!
그래도 소소가 무공을 익히긴 했으니 어느 정도 버티는 모양이었다.
검귀는 소소 쪽이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할 겨를도 없었다.
노인의 검이 비처럼 쏟아졌다.
쩌저저저정!
노인의 목적은 검귀를 최대한 붙잡아 놓는 것이었다.
그 사이에 저 안에 있는 사람을 납치하면 끝난다.
“여기 주인이 대단한 미인이라지? 원하는 사람이 많긴 하지만, 봐서 마음에 들면 내가 차지할 생각이라네. 어떤가? 이쯤에서 포기하는 것이? 자네에게 나눠줄 수도 있는데 말이야.”
노인은 그런 식의 말로 검귀를 흔들었다. 그렇게 말을 던져서 조금이라도 빈틈을 만들어내면 성공하는 것 아닌가.
검귀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넌 반드시 내 손에 죽는다.”
“지금 오히려 내가 이기고 있는 것 같은데? 이러다가 내 손에 자네가 죽겠어.”
검귀는 대꾸하지 않고 검에 집중했다.
이렇게 요란하게 싸우는 와중에 과연 그걸 쓸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시도해야만 한다.
검귀의 생각에 그것이 유일한 돌파구였다.
쩌저저저정!
검귀는 노인이 쏟아내는 검격을 차분히 막아내면서도 의념을 검 끝에 집중했다.
아직 의식하면서 원하는 대로 쓸 수 있는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다.
그저 하다보면 무아의 상태에서 휙 나가는 정도가 전부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지금처럼 말이다.
서걱!
노인이 눈을 부릅떴다.
“뭐, 뭐야······!”
난데없이 팔이 떨어졌다.
갑자기 잘렸기에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그리고 그건 이런 치열한 싸움에서는 너무나도 큰 빈틈이었다.
“뭐긴 뭐야 심검이지.”
검귀의 검이 그 빈틈을 정확히 찔렀다.
꽈득!
노인은 옆구리가 뻥 뚫린 채로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그의 눈이 찢어질 듯 커다래졌다.
“시, 심검이라고?”
검귀의 검이 횡으로 슥 움직였다.
서걱!
노인의 목이 뚝 떨어졌다.
검귀는 그대로 돌아서서 소소가 있는 곳으로 몸을 날렸다.
“소소야!”
검귀는 안쪽에 펼쳐진 광경에 그대로 얼어붙었다.
소소가 한가운데 서 있고, 그녀의 주변으로 쓰러진 사내들이 잔뜩 있었다.
검귀를 본 소소가 배시시 웃었다.
“제가 이겼어요. 잘했죠?”
검귀가 피식 웃었다.
“그래, 아주 잘 했다.”
검귀는 그렇게 말하며 소소의 모습을 찬찬히 살폈다.
혹시 어디 다친 곳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좀······ 다쳤구나.”
멍이 여러 개 보였다. 그리고 허벅지와 옆구리 쪽에는 얕은 검상까지 있었다.
소소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여기 약 많아요. 이 정도는 약 바르면 금방 나을 거예요.”
검귀는 헛웃음을 흘렸다. 자신이 정말 잘못 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소소는 이미 훌륭한 한 명의 무인이었다.
* * *
약재상의 영업은 중지하기로 했다.
난입한 놈들 때문에 워낙 많이 부서져서 어쩔 수가 없었다.
게다가 검귀와 노인의 싸움은 그 여파가 대단해서 약재상 내부가 모조리 망가졌다.
거의 새로 집을 지어야 하는 수준이었다.
자향의 약재상은 좋은 약을 팔기에 장사에서 제법 유명했다.
그런 약재상이 싸움에 휘말려서 문을 닫게 되었으니 사람들의 관심이 모일 수밖에 없었다.
매일 누군가가 찾아와 싸움의 흔적을 살펴보고 갔다.
특히 무림맹이나 흑련, 오대세가의 무사들은 싸움의 흔적을 확인하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흔적만으로도 얼마나 대단한 고수들이 싸웠는지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일부 흔적은 그들의 수준으로는 도저히 알아볼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다.
그걸 알아내기 위해 매일 출근하듯 약재상에 들러 싸움 흔적을 살펴봤다.
그렇게 무림맹과 흑련, 오대세가가 관심을 갖고 나서니, 이번 일의 중심인 옥천상단도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들은 일단 납작 엎드려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 * *
옥천상단의 주인 평대언은 거무죽죽해진 얼굴을 손으로 연신 쓸었다.
“금월상단에서는 아직 아무 얘기도 없나?”
총관이 난감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예. 지속적으로 연락을 보내고 있습니다만······ 계속 기다리라는 답만 받았습니다.”
“우리한테 가져간 돈이 얼마인데, 이제 와서 입을 싹 씻는단 말인가!”
금월상단은 이번에 모자란 돈을 벌충하기 위해 휘하 상단들을 쥐어짰다.
옥천상단도 막대한 돈을 뜯겼다.
하지만 평대언은 그것을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한 대가라 여겼다.
한데 아무런 반응이 없으니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쓴 돈이 아깝기도 했고.
평대언이 분통을 터트리자, 총관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제가 따로 좀 알아봤는데, 요즘 금월상단에 손님이 와 있다고 합니다.”
“손님? 거기 손님이 없을 때도 있나?”
“이번 손님은 좀 특별합니다. 상단주님이 쩔쩔 맨다고 하더군요.”
그 말에 평대언이 눈을 반짝였다.
“그래? 하면, 그래서 우리에게 신경을 못 써준다 그건가?”
“아무래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조금만 더 기다려 보시지요.”
“뭐······ 총관이 그렇게 말한다면야.”
평대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데 그놈들 전부 각월객잔에 모여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냥 거길 치면 안 되나? 밤에 말이야.”
“거기 굉장한 고수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금월상단에서 지난번 어르신 같은 분을 여럿 섭외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겠지? 그럼 우린 그저 기다려야겠군.”
“맞습니다.”
두 사람이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갑자기 그림자에서 시커먼 옷을 입은 사내가 불쑥 솟아났다.
두 사람은 깜짝 놀라 뒤로 후다닥 물러났다.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는데, 그건 꾹 참아냈다.
“누, 누, 누구요!”
흑의사내가 정중히 포권을 취했다.
“제 주군께서 두 분을 모셔오라 하셨습니다.”
“그, 그게 누군지 알고 우리가 거길 간단 말이오.”
흑의사내가 담담히 말했다.
“아까 두 분이 말씀하셨던 금월상단의 손님입니다. 이제 주군께서 거래처를 이쪽으로 바꾸실까 하셔서 부르신 겁니다.”
평대언과 총관의 머릿속이 팽팽 돌아갔다.
두 사람은 즉시 대답했다.
“어서 안내하시오.”
이런 기회를 놓치는 건 바보였다. 적어도 두 사람은 그렇게 생각했다.
* * *
“미안해요, 언니.”
소소의 사과에 자향이 빙긋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게 왜 미안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잖아. 안 그래도 슬슬 약재상은 정리하려고 했어.”
“그래도······.”
“그보다 이렇게 다쳐서 어떡해. 공자님 아시면 난리 나겠다.”
“에이, 괜찮아요. 약도 잘 발랐고, 공자님은 이런 거, 신경 안 쓰실 거예요.”
“글쎄, 어쩌시려나?”
자향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소소를 바라봤다.
그녀가 보기에 소소는 다른 시비들과는 좀 달랐다. 벽태산도 더 특별하게 여기는 것이 분명했다.
어찌 안 그러겠는가. 함께 해온 세월이 얼마인데.
그래도 좀 궁금하긴 했다. 과연 벽태산이 소소의 저 상처들을 보면 어떤 반응일지 말이다.
안 그래도 이제 슬슬 그 반응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두 사람은 벽태산의 아침 식사를 가져가는 중이었으니까.
벽태산의 방 앞에 도착한 두 사람은 조용히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 음식을 탁자 위에 잘 차렸다.
벽태산이 그런 두 사람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문득 말했다.
“다쳤구나.”
소소가 흠칫 놀라 벽태산을 바라봤다.
그리고는 그 담담한 표정에 그럼 그렇지 하고는 다시 하던 일을 마저 했다.
음식을 다 차리고 나니, 벽태산이 보이지 않았다.
“어? 공자님 어디 가셨지?”
“그러게요. 나가신 줄도 몰랐네.”
두 사람은 벽태산이 올 때까지 그곳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기다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