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81)
“어? 공자님?”
검귀는 갑자기 나타난 벽태산을 발견하고는 눈을 크게 떴다.
그는 별채 후원에서 얼마 전에 깨달은 심검을 숙달하기 위해 반복하던 중이었다.
얼마 전 약재상에서 노인과 싸울 때, 아마 심검을 쓰지 못했다면 크게 당했을 것이다.
노인과 검귀의 실력은 거의 호각이었지만, 미세하게 노인 쪽이 위였다.
게다가 심리적으로도 검귀가 밀리고 있었다.
그러니 결국 나중에는 당했으리라.
그 모든 상황을 반전시켜준 것이 바로 심검이었다.
수련을 하면 할수록 자신이 아직 심검을 다룰 역량이 안 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리고 이 깨달음 역시 온전히 자신의 힘만으로 이뤄낸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벽태산 덕분이었다.
벽태산이 자신에게 다가오라고 했던 바로 그날, 분명히 벽태산이 뭔가를 했고, 자신이 변했다.
그리고 심검을 얻었다.
아무튼 분에 넘치는 것을 얻었으니, 이제 죽을 만큼 노력해서 그것이 분에 넘치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검귀의 방식이었고, 지금의 검귀를 만들어준 원동력이기도 했다.
검귀는 호의와 존경이 가득한 표정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벽태산은 그런 검귀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물었다.
“다쳤더구나.”
벽태산의 말에 검귀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그리고 소소가 떠올랐다.
“죄송합니다. 그놈들이 그딴 식으로 나올 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습니다. 다음부터는 몇 사람을 더 데리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이제 약재상 문을 닫았으니 더 이상 그곳에 갈 필요가 없게 되긴 했지만.
벽태산이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사람을 더 데려가서 대비를 하겠다고? 그런 건 벽태산이 원하는 답이 아니었다.
실제로는 사람을 더 데려가서 안전을 추구하는 게 맞지만, 대답을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이 대답에는 검귀의 각오가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당분간 내가 수련을 도와줘야겠구나.”
검귀가 눈을 번득였다. 이런 기연 같은 기회가 찾아올 줄이야.
주변에서 수련하던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검귀에게 꽂혔다.
검귀는 다들 부러워서 그러는 줄 알았다.
그가 조금만 덜 기뻤더라면, 그들의 눈빛에 담긴 안쓰러움을 분명히 발견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리고 아직 때를 덜 벗겼으니 오늘밤······ 아니다. 내일 밤부터 매일 찾아와라. 내가 됐다고 할 때까지.”
“예. 공자님.”
오늘은 천경완과 유서연 차례다.
이제 그 둘의 혼백만 씻어주면 주변 사람들은 다 끝난다.
‘아, 나헌탁도 있었군.’
벽태산은 검귀에게 손을 휘휘 내저었다. 얼른 가서 수련이나 하라는 뜻이었다.
어차피 이놈에게는 더 들을 말도 없었다.
이런 얘기는 역시 화옥이랑 해야 한다.
벽태산의 마음속에 들어갔다 나오기라도 한 듯, 어느새 화옥이 벽태산 옆에 서 있었다.
그녀는 벽태산이 딱 원하는 내용을 보고했다.
“원래 시작은 옥천상단인데, 거기에 금월상단이 끼어들었습니다. 금월상단 측에서 무한으로 사람을 보내 천약방에 대한 조사도 시작했습니다.”
다른 곳도 아니고 무한에서 화옥의 눈을 피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금월상단은 굉장히 은밀하게 움직였지만, 그들이 무한에 들어선 순간부터 일거수일투족을 모조리 파악 당했다.
그리고 벽태산이 원하는 순간, 그들을 싹 사로잡을 수도 있었다.
금월상단이 보낸 자들은 제법 강했지만, 그래도 비천단과 비교할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무한에는 점점 성장 중인 흑도 무리와 낭인들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 소소를 다치게 한 놈은?”
“전부 가둬뒀습니다. 심문을 진행 중입니다. 아, 방두립은 이제 어찌 할까요?”
방두립은 하오문과 비천단에서 심문할 만큼 심문했다.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토해냈다.
그는 무명과 달리 하오문의 심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내 방에 데려다 놔라.”
하오문의 심문이 다 끝났다면 이제 벽태산이 한 번 구워줘야 하지 않겠는가.
벽태산이 화옥을 가만히 쳐다봤다. 아직 원하는 답이 전부 나오지 않았다.
“검귀 어르신에게 죽은 자는 무명 소속으로 추측됩니다. 소소와 싸웠던 자들은 금월상단 소속입니다.”
이번에 무한에 파견한 자들과 같은 조직인 듯했다.
금월상단이 정보를 모으거나, 조작할 때, 그리고 가끔은 납치나 암살에 써먹기도 하는 놈들이었다.
만일 그놈들도 무명에서 보낸 놈들이었다면 소소가 혼자서 그들을 상대하기가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금월상단이라 이거지?”
벽태산이 몸을 휙 돌려 성큼성큼 걸어갔다.
화옥이 얼른 그 뒤를 따라가며 물었다.
“공자님, 설마 지금 금월상단으로 가시려는 건가요?”
그 말에 벽태산이 걸음을 우뚝 멈췄다.
장사에 있는 금월상단의 본단을 지워버리는 건 너무나 간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금월상단이 망하지는 않는다.
금월상단은 천하제일상단에 가장 가까운 상단이었다.
천하 각지에 지부가 있었고, 어떤 지부는 본단보다 더 큰 규모를 자랑하기도 한다.
“어디를 치면 제일 아프겠느냐?”
벽태산이 화옥을 보며 물었다.
화옥은 차분히 머릿속을 정리하며 대답했다.
“금월상단은 어디 한 군데 편중되지 않고 다양한 분야를 다루고 있습니다.”
벽태산이 고개를 끄덕이자, 화옥이 말을 이었다.
“사업의 비중은 다 비슷하지만, 그 중에서도 타격이 더 큰 것들을 골라보자면, 표국이 있습니다. 표물에 따라서 피해가 상상 이상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특히 금월상단이 보유한 표국들은 다들 상천문, 청무방, 구룡문의 정예 무사들이 일을 돕고 있다.
당연히 신뢰도가 높았고, 값비싸고 중요한 표물도 많이 맡고 있었다.
화옥은 벽태산의 표정을 살피며 보고를 이어갔다.
“금월상단의 표국은 수로를 이용한 유통과 이어집니다. 보유한 배의 수도 굉장히 많고, 경험 많고 실력 좋은 선원과 일꾼도 많이 보유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상단의 물건도 수로를 통해 유통한다. 거대한 물류를 틀어쥐고 있는 셈이었다.
그것이, 금월상단이 가진 막대한 힘의 근간임은 분명했다.
“배를 부숴버리면 일석이조겠구나.”
“그렇습니다.”
특히 표물을 싣고 이동하는 배를 부숴서 가라앉혀 버린다면 그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막심할 것이다.
벽태산이 화옥을 가만히 쳐다보자, 화옥이 얼른 고개를 숙였다.
“바로 조사를 시작하겠습니다.”
벽태산은 그제야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슬슬 배가 고프구나.”
생각해보니 밥도 안 먹고 나왔다.
방으로 돌아가니 안절부절못하고 서성이던 자향과 소소의 모습이 보였다.
벽태산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자향과 소소 역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편안하게 벽태산의 식사 시중을 들었다.
* * *
천경완과 유서연은 긴장한 표정으로 벽태산의 방 앞에 서 있었다.
두 사람은 잠시 마음을 가라앉힌 다음, 방문을 천천히 열었다.
방 한가운데 의자를 갖다 놓고 앉아 있는 벽태산이 보였다.
“공자님, 부르셨습니까.”
천경완과 유서연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두 사람은 대체 벽태산이 왜 자신들을 함께 불렀는지 몰라 한껏 긴장한 상태였다. 그것도 이 야심한 시각에 말이다.
안 그래도 최근 관계가 점점 더 깊어져서 이제 슬슬 혼례를 올려도 되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던 차였다.
혹시 그 문제 때문에 자신들을 부른 건 아닐까 하는 기대와 걱정도 있었다.
만일 벽태산이 두 사람의 혼례를 반대하기라도 하면 정말 곤란해지니 말이다.
천경완과 유서연은 각각 벽태산과 연하린의 호위무사일 뿐이다. 사실 벽태산이나 연하린이 두 사람의 혼례 문제에 왈가왈부할 자격은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두 사람은 혹시라도 벽태산이 반대한다면 당분간 시간을 가질 생각이었다.
벽태산이 반대를 한다면 충분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테니까.
벽태산은 두 사람이 방으로 들어오자 턱짓으로 침상을 가리켰다.
천경완과 유서연이 당황했다.
하지만 벽태산이 시킨 일이니 일단 침상으로 향했다. 그리고 엉거주춤하게 나란히 앉았다.
“저······ 공자님, 왜 그러시는지······.”
벽태산이 자리에서 일어나 두 사람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리고 두 사람의 정수리에 손을 턱턱 올렸다.
뭐라 반응하거나 말할 틈도 없이 벽태산이 두 사람의 혼백을 쑥 뽑아 버렸다.
* * *
다음날 아침, 천경완과 유서연은 함께 침상에서 눈을 떴다. 그리고 동시에 벌떡 일어났다.
지금 이곳은 벽태산의 방이었고, 이 침상은 벽태산의 것이었다.
“대체 무슨······!”
유서연이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천경완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어젯밤의 일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느낌과 감각만 남아 있었다.
굉장히 아팠고, 그리고 좋았고, 부끄러웠다.
문제는 방에 벽태산도 함께 있었다는 점이었다.
“으아아아!”
천경완이 생각하기도 싫다는 듯 괴성을 지르며 고개를 휘휘 저었다.
두 사람은 주변을 둘러보고 눈치를 살핀 다음, 조용히 방에서 나갔다.
그렇게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마자 그대로 얼어붙었다.
방문 앞에 천추신의와 일침괴가 서 있었다.
두 사람의 표정이 어찌나 음흉한지 천경완과 유서연은 제대로 된 반응을 할 수가 없었다.
“표정 보니까 아주 좋아 죽겠는 모양이네. 안 그렇소, 형님?”
천추신의의 말에 일침괴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 한창 그럴 나이 아니냐. 우리가 이해를 해야지.”
천경완이 손사래를 쳤다.
“그, 그, 그런 거 아,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뭐야, 너 설마 책임지기 싫어서 도망치는 거야?”
“아닙니다! 도망 안 칩니다!”
천경완이 버럭 소리치자, 천추신의가 히죽 웃었다.
“누가 뭐래? 아니면 아니지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꼭 찔리는 거라도 있는 사람처럼.”
“아니라니까요!”
“알았다니까? 야, 아니란다. 참고해라.”
천추신의가 이번에는 유서연을 보며 말했다.
유서연은 차마 뭐라고 대꾸하지도 못하고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야야, 그만 놀려라. 애들 울겠다.”
“울긴 누가 웁니까! 저 그런 놈 아닙니다!”
“알았다니까, 아까부터 계속 버럭버럭 하고 그래.”
천추신의가 또 그렇게 한 번 핀잔을 준 다음, 말을 이었다.
“공자님께서 너희들이 좀 특별했다고 하시더라. 그래서 이렇게 준비를 해왔지. 하여튼 너희들 챙기는 건 이 천추신의님밖에 없다는 거 머릿속에 잘 새겨두도록 해라.”
천추신의는 그렇게 말하며 품에서 삼 두 뿌리를 꺼내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백 년쯤 된 산삼이다. 이거 구하느라고 내가 이 근방 산을 이 잡듯이 뒤졌어.”
“네놈이 뒤지긴 뭘 뒤져? 공자님이 가라는 곳에 가서 뿌리만 뽑아왔으면서.”
“아, 진짜! 아무튼 산을 탄 것도 나고 이걸 뽑은 것도 나 아니오!”
천경완과 유서연은 조심스럽게 산삼을 한 뿌리씩 받았다.
“지금 여기서 잘 씹어 삼켜라. 우리가 지켜봐주마.”
“그럼 부탁드립니다.”
천경완과 유서연은 산삼을 남김없이 꼭꼭 씹어 삼켰다.
그러자 뱃속에서 뜨거운 기운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그 기운은 빙글빙글 회전하면서 크기를 키우기 시작했다.
몸 곳곳에 흩어져 있던 기운들을 남김없이 빨아먹더니 이내 거대하고 뜨거운 기운이 되어 휘몰아쳤다.
천경완과 유서연은 그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그 기운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시켰다.
두 사람의 몸에서 뜨거운 열기가 이글이글 뿜어져 나왔다. 열기 때문에 주위에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천추신의와 일침괴는 그 광경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대체 공자님은 얘들을 데리고 또 뭘 하신 거야?”
대체 뭘 했기에 이 정도로 대단한 기운이 소용돌이친단 말인가.
“내가 준 산삼이 그렇게 대단한 건가?”
“백 년이 살짝 넘고, 보통 산삼이랑 크게 다른 것도 없었어. 그냥 산삼이야.”
“그 산삼을 먹고 저러는 게 가능하오?”
“불가능하지.”
“궁금하네. 그걸 알면 내 천추신단이 몇 배는 더 대단해질 텐데.”
“내가 보기에 천추신단은 이제 한계야. 거기서 더 발전시키려면 근본적으로 다 뜯어 고치는 수밖에 없어.”
“아주 그냥 악담을 하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천추신의도 어느 정도는 인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일침괴도 그 부분을 굉장히 안타까워했고.
두 사람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열기를 피워 올리는 천경완와 유서연을 끝까지 지켜봤다.
* * *
천경완과 유서연이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뭐야, 이 무지막지한 내공은!”
유서연이 기겁해서 외쳤다.
천경완도 마찬가지로 놀랐다. 지금 단전이 터질 것처럼 내공이 꽉 찼다.
자신들이 먹은 고작 백 년짜리 산삼 하나로는 결코 이 정도 내공을 모을 수 없었다.
‘공자님이 뭔가를 했어.’
두 사람이 방에 함께 있을 때, 벽태산이 뭔가를 한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늘어난 내공에 당황하고 있을 때, 벽태산이 다가왔다.
“고, 공자님, 오셨습니까.”
천경완과 유서연이 정중히 인사를 했다.
그때까지 계속 두 사람을 지키고 있던 천추신의와 일침괴가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왠지 벽태산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와라.”
벽태산의 말에 네 사람이 반사적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별채를 벗어나자, 화옥이 나타나 벽태산 옆에 붙었다.
그들은 객잔을 벗어나 어딘가로 향했다.
가장 호기심과 궁금증을 못 참는 천추신의가 벽태산에게 물었다.
“저······ 공자님, 어디 가십니까?”
“기분이 나빠졌다.”
천추신의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어디 가냐고 묻는데 왜 기분 나쁘다는 대답을 한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