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87)
벽태산의 물음에 화옥이 즉시 대답했다.
“예. 분석이 끝났습니다. 혁련휘라는 자의 근거지 열세 군데를 확인했고, 그자와 관계없이 무명이라는 조직에 속한 고수의 명단 일부를 확보했습니다.”
벽태산이 뽑아낸 정보를 통해 알아낸 고수의 수는 열다섯 명이나 됐다.
거기에 혁련휘가 보유한 근거지마다 상당수의 무인들이 있을 것이다.
생각보다 대단한 전력이었다.
“무명이라는 조직,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더욱 거대합니다. 그런 큰 조직이 어떻게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고 이렇게 숨어서 힘을 키웠는지 이해할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벽태산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규모가 크든 작든 무슨 상관인가. 어차피 전부 자신에게 박살 날 텐데.
“사흘 후에 출발한다. 그동안 급한 일은 대충 마무리 하도록.”
“예. 사흘이면 충분합니다.”
화옥이 직접 관리하고 조율할 부분은 그리 많지 않았다.
미리 할 일을 정해주면, 시기에 맞춰서 그저 진행하기만 하면 된다.
처음에야 약간의 조율이 필요하겠지만, 뒤로 갈수록 화옥이 손댈 부분이 없어질 것이다.
“한데 공자님.”
화옥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혁련휘라는 자의 소재지를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벽태산이 화옥을 빤히 쳐다보자, 화옥이 얼른 고개를 숙이며 말을 이었다.
“혁련휘는 한 곳에 머물지 않고 매일 거처를 바꾸는 것 같습니다.”
일단 벽태산이 준 정보를 통해 파악한 바로는 그랬다.
“금월상단을 좀 더 깊이 들여다봐야 할 듯합니다. 아무래도 연결이 되어 있으니 감시하다보면 꼬리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벽태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알아서 해라.”
화옥은 속으로 크게 안도하며 마지막 보고를 했다.
“그리고 공자님께서 찾으라고 하신 분의 흔적을 찾았습니다.”
벽태산이 눈을 번득였다.
“벌써?”
“운이 좋았습니다. 물론 아직 더 확인해야 할 부분이 있지만, 뺨에 난 흉터를 가리고자 더 큰 상처를 낸 사람을 찾았습니다.”
벽태산의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그놈부터 찾자.”
끝
장사에 위치한 금월상단의 본단.
오늘따라 상단 내를 오가는 사람도 많고 상단에 드나드는 사람도 많았다.
높은 전각 꼭대기 층에서 평자림이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막 정문을 통해 일단의 무리가 들어오고 있었다.
첫 번째 협상을 통해 수적들로부터 인계 받은 무사들이었다.
죽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걷는 모양새가 심상치 않을 걸 보니 부상이 심각한 모양이었다.
듣기로는 외상은 별로 없고 내상이 심하다고 했다.
수백 명이나 되는 인질이 금월상단으로 돌아왔기에 그들을 맞이하는 일만으로도 시끌벅적했다.
그렇게 내려다보고 있으니, 어느새 총관이 올라왔다.
숨이 가쁜지 잠시 멈춰서 숨을 고르고 있었는데, 평자림이 쳐다보자, 얼른 앞으로 다가가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다녀왔습니다.”
“오늘은 협상만 하고 인질은 나중에 받을 수 있을 거라 여겼는데, 잘 했군.”
“생각보다 까다롭지 않은 놈들이었습니다. 게다가 그놈들도 미리 인계할 생각이 있었는지 인질을 아예 데리고 나왔습니다.”
평자림의 눈이 이채가 맴돌았다.
“그래? 미리 데리고 왔다고? 저들만 딱?”
“예. 그렇습니다.”
“대가는 뭘 줬지?”
“준비해간 돈만 넘겼습니다.”
미리 준비한 돈은 한 명당 금 한 냥이었다.
그것만 해도 금 수백 냥이 소모되었지만, 저들의 가치에 비하면 별 거 아니었다.
게다가 일부는 전표로 지불했다.
“처음 부른 액수는 제법 높았는데, 어차피 다 데리고 나온 걸 빌미로 협상을 했더니 금방 수긍하더군요.”
협상장까지 데리고 온 이상, 그들을 다시 데려가는 건 결코 쉽지 않다.
협상 중간에 수틀려서 인질을 싹 죽여 버리는 것만 조심하면 얼마든지 이쪽에서 휘두를 수 있는 조건이었다.
“꼬리는 확실히 붙였지?”
“예. 제일 실력 있는 녀석들로 붙였습니다. 아마 조만간 소식을 들고 올 겁니다.”
“좋아. 아주 순조롭군.”
“다음 협상을 사흘 뒤에 하자고 했는데, 제가 일단 보류했습니다.”
평자림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맺혔다.
“잘했네.”
총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하면 남은 자들은 그냥 포기하시는 겁니까?”
“저들만 해도 치료하고 뭐하고 하려면 얼마나 골치 아플지 가늠이 안 되는데, 나머지까지 어찌 책임지겠나.”
총관은 예상한 답이었음에도 표정이 펴지지 않았다.
나머지의 수가 훨씬 더 많다. 아마 협상에 들어가는 돈은 훨씬 커질 것이다.
그리고 그들 역시 다쳤을 테니 치료에도 막대한 돈이 들어갈 것이고.
냉정하게 어떤 것이 이익인지만 생각하면 그들은 포기하는 게 맞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렇게 계산에 의해서만 돌아가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건 그렇고, 어떻게 당한 건지는 좀 알아봤나?”
평자림의 물음에 총관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예. 오는 도중에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따로 들어서 확인했습니다. 한데······ 좀 믿기지 않는 얘기입니다.”
“믿기지 않는다고?”
“배 한 척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배?”
“선단 후방에서 나타난 배가 그대로 돌진해 선단을 산산조각 냈다고 합니다.”
“고작 배 한 척이 나타나 선단을 박살 냈다고?”
평자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런 허무맹랑한 말을 어찌 믿을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제가 미리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믿기지 않는 얘기라고. 저도 믿을 수가 없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전부 같은 얘기를 하고?”
“예.”
“그 배는 무슨 통짜 쇳덩이로 만들었다던가? 어떻게 배로 부딪혀서 배를 박살 내? 한두 척 그런 것도 아니고 수십 척이나 되는 우리 상단의 배를!”
금월상단의 배는 특히 더 튼튼하다. 그런 배를 충돌로 부수려면 대체 어떤 배가 와야 하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아니, 그런 배가 과연 있기는 할까?
“그래서 그 배에 누군가 특별한 사람이 타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특별한 사람?”
“천하에서 손꼽히는 고수 말입니다. 십대고수 같은······.”
“십대고수라도 불가능할 것 같은데?”
총관은 더 대꾸를 하지 않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설명과 추측은 여기까지였다.
평자림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튼 이 일은 좀 더 알아보게. 다들 그 말을 했다면, 분명히 뭔가 있긴 있을 테니까.”
“예. 알겠습니다.”
총관이 대답을 하고 이만 물러가려 했다.
한데 그 순간 정문 쪽에서 큰 소란이 들려왔다.
평자림과 총관의 시선이 반사적으로 돌아갔다.
정문을 통해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는 중이었다.
“저놈들은 대체 뭐지?”
평자림의 의문은 금방 풀렸다.
무사 한 명이 아래에서 헐레벌떡 뛰어 올라와 외쳤다.
“인질로 잡혔던 무사와 일꾼, 표사들이 전부 돌아왔습니다!”
“뭐?”
평자림의 표정이 확 구겨졌다.
“누가 그들을 데려왔느냐!”
“무림맹과 흑련이 나서서 그들을 구했다고 합니다!”
무림맹과 흑련이라는 말에 평자림이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지독한 불안감이 심장을 꽉 움켜쥐었다.
* * *
평자림은 앞에 선 두 사람을 향해 정중히 포권을 취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무림맹과 흑련의 은혜, 평생 잊지 않고 마음으로 갚도록 하겠습니다.”
“하하,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솔직히 저희가 한 일도 별로 없습니다.”
“맞습니다. 우리가 온다는 사실을 알았는지 흉수들은 다 도망치고 없더군요. 그나마 해코지를 안 하고 도망쳐서 다행입니다.”
각각 무림맹과 흑련의 책임자가 하는 말이었다.
그 얘기를 들은 평자림은 하마터면 표정이 무너질 뻔했다.
누가 봐도 일부러 풀어준 것이다.
거기에 무림맹과 흑련을 끌어들인 것이고.
한데 저 멍청이들은 그것도 모르고 이렇게 생색을 내고 있으니 울화통이 터질 지경이었다.
‘아니, 알고서 저러는 건가?’
무림맹과 흑련의 책임자의 표정과 눈빛을 확인한 평자림은 갑자기 가슴이 싸늘히 식었다.
‘목적이 뭐지? 우리 상단과 접점을 제대로 만들어 보기 위함인가?’
안 그래도 천검단주 방두립 때문에 골치 아픈데, 이 상황에서 무림맹이나 흑련과 잘못 엮였다간 그냥 골치 아픈 걸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이건 정말 조심해야 한다.
“누가 봐도 무림맹과 흑련이 아니었으면 구하기 어려웠을 인질입니다. 모쪼록 제가 드리는 보답을 거절치 말아주십시오.”
평자림은 무림맹과 흑련의 무사들이 장사에서 머무는 동안 지낼 숙소와 식사를 책임지기로 했다.
또한 적절한 금액을 보상으로 전달했다.
무림맹과 흑련은 그것을 거절하지 않고 흔쾌히 받아들였다. 아니, 금월상단의 보답을 당연하게 여겼다.
솔직히 겉으로 보기에는 충분히 그 정도 보답을 받을 만한 일을 했다. 아니, 오히려 보답이 모자랐다.
하지만 평자림은 무림맹과 흑련이 개입한 것 때문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이렇게 된 이상, 나중에 구한 인질을 버릴 수 없게 되었으니까.
“마침 식사 시간이로군요. 두 분께서 별 다른 일정이 없으시다면 제가 대접하고 싶은데, 어떠십니까?”
당연히 두 사람도 나름의 목적이 있는지라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렇게 세 사람이 식사를 위해 자리를 떴다.
남은 자들은 서둘러 상황을 정리했다.
무림맹과 흑련에서 온 무사들은 따로 휴식과 식사를 위해 이동했고, 금월상단의 일꾼들이 인질들을 데려갔다.
그날의 상황은 그 정도로 정리되었다.
하지만 일이 모두 마무리 된 것은 아니었다.
그 이후, 수시로 무림맹과 흑련의 책임자가 금월상단에 찾아왔다.
평자림이 우려했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문제는 그걸 거절할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래도 그 문제는 충분히 대처할 수 있었다. 어찌 보면 별 거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수적들에게 구해낸 인질들이었다.
다들 부상이 정말로 심각했다. 그래서 어설픈 의원들은 아예 손도 못 댔다.
명의라고 알려진 정도는 되어야 간신히 진맥을 통해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었다.
그나마도 진짜 심한 무인들의 내상은 그들도 어떻게 하지 못했다.
이대로라면 다들 무공을 잃게 될 것이다.
금월상단의 대처는 옥석 가르기였다.
이번에 구한 자들에게 중요도를 매겨, 일정 순위까지만 잘라서 치료하기로 하고, 나머지는 방치하기로 한 것이다.
물론 그 결정을 알리지는 않았다. 그저 내부적으로 방침을 정하고 그렇게 행할 뿐이었다.
처음에는 괜찮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버려진 자들에게 불만이 쌓였다.
그들의 불만은 조금씩 주위로 번져 나갔다.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던 금월상단 소속 일꾼이나 무인들에게 불안감을 주었다.
자신들도 이렇게 버려질 수 있다는 사실을 눈으로 지켜보고 있는 셈이었으니까.
금월상단이 조금씩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 * *
벽태산은 가벼운 걸음으로 각월객잔을 나섰다.
원래는 화옥이 안내해야 하지만, 며칠간은 금월상단의 일을 조율해야 하기 때문에 미리 길과 상황을 안내 받은 하오문도가 벽태산을 모시기로 했다.
다른 사람들은 전부 수련에 집중하고 있기에 아무도 데려가지 않았다.
화옥이 벽태산에게 붙여준 하오문도는 당연히 제법 지위가 높은 자였다.
그는 하오문이 관여한 일의 전반적인 사항을 꿰고 있었다.
그렇기에 벽태산이 가끔 궁금한 걸 물어보면 얼마든지 대답할 수 있는 자이기도 했다.
실제로 그럴 경우를 대비해 화옥이 신경 써서 고른 사람이었다.
부문주까지는 아니지만, 공 몇 번 더 세우면 충분히 부문주 대우를 받을 수 있을 만한 인재였다.
그는 벽태산을 만나자마자 목적지가 어디인지부터 보고했다.
“황산 근처까지 가야 하니, 거리가 좀 됩니다.”
벽태산은 그를 가만히 쳐다봤다.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실력을 가늠했다.
지난 번 다른 사람의 기운에 간섭한 일 이후, 자신을 관조하면서 얻은 깨달음 덕분에 이렇게 가볍게 보는 것만으로도 제법 많은 정보를 뽑아낼 수 있었다.
“경공이 제법이구나. 체력이랑 근골만 좀 튼튼하게 하면 괜찮겠어.”
벽태산의 평가에 하오문도의 눈이 살짝 커졌다.
지금 자신의 상태를 너무나 정확하게 파악해서 놀란 것이다.
애초에 놀랄 만한 사람이라는 얘기는 귀에 딱지가 앉게 들었고, 일부는 직접 지켜보기도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벽태산이 그런 하오문도를 보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황산에 다녀오면 아마 그 약점이 깨끗이 사라질 거다.”
“예?”
하오문도는 의아한 표정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솔직히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
함께 황산에 다녀오면 벽태산이 뭔가 상을 내려서 그렇게 만들어주겠다는 건지, 아니면 황산이 제법 머니 거기에 다녀오는 것만으로 몸이 좋아질 거라는 뜻인지 말이다.
‘느낌은 후자인데······.’
솔직히 회의적이었다. 장사에서 황산까지는 천오백 리 정도 된다.
그 정도 거리는 사실 제법 여러 번 이동해 봤다. 순수하게 경공만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런 것만으로는 실력이 늘지 않는다.
처음에는 약간 도움이 되긴 했지만, 이젠 고작 그런 걸로 성장하기에는 자신의 실력이 너무 높았다.
“가자.”
벽태산의 말에 하오문도가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몇 걸음 걸으면서 경공을 펼치기 시작해 점점 속도를 높였다.
벽태산이 제대로 따라오는지 확인하지는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반 각쯤 이동했을 때, 뒤에서 벽태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무 느리다.”
하오문도가 속도를 좀 더 높이면서 말했다.
“처음부터 너무 빨리 달리면 체력 배분이 어려워집니다.”
“왜 그런 걸 신경 쓰느냐.”
“예?”
체력 배분을 신경 쓰지 않으면 대체 뭘 신경 쓴단 말인가. 체력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시간을 훨씬 더 많이 소요할 수도 있었다.
“느려지면 죽는다.”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