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06)
벽태산이 서늘한 시선으로 홍여익을 쳐다봤다.
홍여익은 흠칫 놀라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보아하니 아직 쓸 만한 것 같은데, 무명에서는 왜 나왔느냐?”
그 말에 홍여익의 표정이 확 굳었다.
“너······ 그걸 어떻게 알았지?”
“그게 중요한가?”
“그럼 안 중요해? 난 주군 직속이었어. 나에 관한 정보를 아는 건 무명 내에서도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한데 그걸······ 아! 너 혹시 우리 소속이었나?”
벽태산은 그 말을 들으며 무명이라는 조직이 하나로 똘똘 뭉친 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저 위에 있는 놈들은 뭐지?”
홍여익은 입을 꾹 다물었다. 생각해보니 자신이 굳이 이렇게 열심히 얘기해줄 필요가 없었다.
자신은 어떤 고문이나 약물에도 입을 열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무명에서 주군의 직속 수하가 되려면 그 정도는 기본이었다.
벽태산이 고개를 들어 산채를 올려다봤다.
다들 무서웠는지 안쪽 깊숙한 곳에 틀어박혀서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다섯을 빼고는 고만고만한 놈들이었다.
벽태산은 산채를 향해 손을 뻗었다.
꽈르릉!
절벽이 흔들리더니 산채가 우르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걸 지켜보는 홍여익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꽈과과광!
산채 안쪽에서 뭔가가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온몸을 기운으로 두른 채 쏟아지는 돌덩이를 부수며 다섯 사내가 불쑥 튀어나왔다.
그들은 허공에서 한 바퀴 빙글 돌더니 균형을 잡고 바닥에 가볍게 내려섰다.
벽태산은 그들이 착지하는 순간을 정확히 맞춰 손을 살짝 들었다가 아래로 가볍게 내리 눌렀다.
꽈드드득!
다섯 사내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들은 얼굴을 바닥에 처박은 채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보아하니 제자들이구나.”
벽태산은 그렇게 말했다가 눈에 이채를 띠었다.
“호오. 이것 봐라?”
벽태산의 시선이 다섯 사내와 홍여익을 두어 차례 번갈아 오갔다.
“하여간 무명 놈들은 정말 한결같구나.”
벽태산은 피식 웃고는 휙 손짓을 했다.
그의 손짓에 따라 다섯 사내가 허공을 훅 날아 홍여익 앞에 후두둑 쏟아졌다.
“너······ 은퇴한 게 아니었구나?”
홍여익의 표정이 확 굳었다.
그런 홍여익을 보며 벽태산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네놈 앞에 그놈들 제자가 아니고. 그렇지?”
끝
“이만 가자.”
벽태산의 말에 하오문도가 후다닥 달려왔다.
그리고 난감한 표정으로 한쪽에 쌓여 있는 다섯 사내와 홍여익을 바라봤다.
자기 혼자서 저들을 전부 들고 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된 것이다.
벽태산은 그런 하오문도의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정신을 잃고 있는 연하린을 보고 있었다.
“너희들이 챙겨라. 보아하니 오늘 중으로 깨어나기 힘들어 보이는구나.”
“예, 공자님.”
“저희가 잘 돌보겠습니다. 염려하지 마세요.”
시비들이 그렇게 대답하고는 얼른 연하린을 챙겼다.
산을 타고 내려가야 하니 한 사람이 업고 나머지 두 사람이 보조해 주기로 했다.
가면서 힘들면 번갈아 업고 말이다.
하오문도는 시비들이 연하린을 어떻게 할지 정하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다섯 사내와 홍여익을 바라봤다.
다섯 사내는 그렇다 치고, 홍여익은 또 어쩐단 말인가. 그는 아직 정신을 잃지도 않았다.
호시탐탐 도망칠 기회만 엿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홍여익이 얼마나 대단한 고수인지는 아까 싸우는 걸 구경했기에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런 고수를 자신이 어떻게 관리한단 말인가.
하오문도는 벽태산의 눈치를 살피고는 홍여익에게 다가갔다.
“저······.”
하오문도가 조심스럽게 홍여익을 불렀다.
홍여익은 마침 다른 곳을 보고 있었는데, 하오문도가 불렀음에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저기······ 어르신.”
하오문도는 감히 홍여익에게 함부로 말할 수 없었다.
저 사람이 손가락 한 번 까딱하는 걸로 자신을 죽일 수도 있다는 걸 잘 아는데, 어찌 함부로 하겠는가.
“저게 언제부터 저렇게 되었지?”
홍여익의 뜬금없는 물음에 하오문도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예?”
“저기 말이다. 저기 절벽 아랫부분.”
하오문도는 그제야 홍여익이 뭘 말하는지 알아차리고는 빙긋 웃었다.
“아, 거기 말씀이십니까. 우리 공자님께서 하신 겁니다.”
“뭐?”
홍여익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하오문도를 바라봤다.
“그럼 아까 그 소리가······ 허, 어처구니가 없군.”
아까 산채에 있을 때 엄청난 굉음을 들었다. 밖에서 뭔가를 했다는 건 알았지만, 그게 저거일 줄은 몰랐다.
하오문도는 홍여익의 표정을 보고는 신이 나서 설명했다.
“아까 제가 저 위에 있는 산채를 보고 대체 저걸 어떻게 만들었는지 궁금하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공자님께서 이렇게 한 거라고 하시면서 손을 이렇게 슥 하시더군요.”
홍여익이 멍하니 하오문도를 바라봤다.
“그 손짓 한 방에 저기가 저렇게 되었단 말이냐?”
“예. 저도 보고도 믿기지 않았습니다. 하여간 대단하신 분이라니까.”
홍여익은 절벽 아랫부분과 벽태산을 번갈아 바라봤다.
아까 싸우기 전에 저것부터 발견했어야 한다. 아마 그랬다면 일단 도망부터 치고 봤을 것이다. 부하들을 싹 먹잇감으로 던져주고 말이다.
절벽 중간에 산채를 만든 건 홍여익이었다. 제법 오랫동안 공을 들여 만든 산채였다.
완성했을 때의 성취감은 상당했다.
한데 절벽 아래쪽에 벽태산이 만들어 놓은 광경을 보고 있으니 왠지 허무해졌다.
“저기······ 어르신.”
“왜?”
“조금만 도와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홍여익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하오문도를 노려봤다. 이놈의 머리통을 단박에 깨뜨려 버릴까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그 고민은 떠오른 순간 사라졌다. 벽태산과 눈이 마주친 것이다.
온몸의 피가 싸늘하게 식는 듯했다.
퍽!
홍여익은 머리통이 날아가는 듯한 고통과 함께 정신을 잃었다.
하오문도가 당황해서 쓰러진 홍여익과 벽태산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 순간, 홍여익을 비롯한 다섯 사내가 허공에 둥실 떠올랐다.
“으헉!”
하오문도가 화들짝 놀라 뒤로 주춤 물러나다가 엉덩방아를 쿵 찧었다.
허공에 둥둥 뜬 여섯 사람이 미끄러지듯 스르륵 움직였다.
하오문도의 시선이 그들을 따라갔다.
벽태산 일행이 산을 내려가고 있었다. 여섯 사람은 그 뒤를 둥둥 떠서 따라가는 중이었고.
하오문도는 얼른 일어나 다급히 움직였다.
빠르게 벽태산 옆으로 따라붙은 하오문도가 서둘러 앞으로 나섰다.
여기까지는 벽태산을 따라왔지만, 오는 길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안내는 자신의 몫이었다.
* * *
벽태산 일행이 떠난 무한은 굉장히 평화로웠다.
하오문 본단이 있는 곳이 바로 무한이다. 당연히 그 어느 도시보다 많은 하오문도가 활동 중이었다.
게다가 비천단원이 가장 많은 곳도 무한이었다.
무한의 흑도는 비천단 조장 출신인 장각우가 완벽하게 장악했다.
또한 무한의 낭인시장은 역시 비천단 조장 출신인 육태구가 완벽하게 장악했고.
거기에 무한의 상계를 장악하다시피 한 것이 바로 금벽상단과 하오문이었다.
더구나 무한에 새로 자리 잡은 천약방이 하오문의 도움을 받아 무한의 의방과 약방을 휘어잡았다.
이런 식으로 무한 내에서는 어느 하나 벽태산의 영향력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무한에서 원래 활동하던 크고 작은 정보조직들이 제법 많았는데, 그들 역시 전부 하오문에 흡수되었다.
그런 상황이니 뭔가 잡음이 생길 일이 거의 없었다.
계속해서 평화가 이어지니, 무한에 파견을 보냈던 무림맹, 흑련, 남궁세가, 제갈세가의 관심이 확연히 식어 버렸다.
이곳에 남은 자들은 말 그대로 버려지고 방치된 기분을 떨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들은 지속적으로 상부에 철수를 건의했다.
처음 무한에 왔을 때는 상황에 따라 지부를 세울 수도 있을 거라 예상했는데, 막상 이렇게 되고 나니 남은 자들의 박탈감이 상당했다.
그냥 지부를 세우자고 하기에는 현재 세상 돌아가는 상황이 녹록치 않았다.
지금 무림맹, 흑련, 오대세가가 세운 화두는 단연 무명이라는 조직이었다.
그들을 상대하기 위해 힘을 한데 모아야 하는데, 그런 와중에 무한에 지부를 세운다고 힘을 분산시킬 수는 없었다.
또한 현재 무한 자체가 무림맹이나 흑련을 배제한 채 꽉 짜여 돌아가고 있었다. 그들이 끼어들 틈이 거의 없었다.
아마 억지로 지부를 세운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자리를 잡는 데 굉장히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아무튼 그런 상황이었다.
그렇게 되고 나니, 같은 처지로 전락한 네 사람이 좀 더 가까워졌다.
속내는 몰라도 겉으로는 동병상련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만남이 잦아졌다.
오늘도 네 사람이 주루의 별실에 앉아 술잔을 나누고 있었다.
진사홍과 적결명, 남궁준과 제갈곽이 빙 둘러앉아 두런두런 얘기를 나눴다.
한데 오늘은 평소와 약간 분위기가 달랐다.
“결국 우리 쪽은 안 된다는군.”
진사홍의 말에 적결명도 쓴웃음을 지었다.
“나도 마찬가지야.”
남궁준과 제갈곽도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렇습니다.”
“저 역시.”
이들은 꾸준히 상부에 철수 의견을 제출해왔다.
한데 오늘 그 답을 받은 것이다. 공교롭게도 넷 모두 같은 날 답을 받았다.
“하긴, 이게 어떻게 생긴 기회인데 철수를 하겠어.”
여긴 수로 물류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무한이다.
애초에 이곳에 지부가 없는 것이 이상한 일이었다.
지금 세상이 어수선하니 보류하고 있을 뿐, 결국은 숟가락을 얹기 위해 이곳에 본격적으로 진출할 것이다.
문제는 그게 언제인지 기약이 없다는 점이고.
“뭐라도 할 수 있으면 이렇게까지 답답하지는 않을 텐데.”
진사홍의 중얼거림에 적결명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난 이 와중에 임무까지 받았어.”
“임무?”
“천약방을 포섭하라는군.”
그 말에 다들 피식 웃었다.
“현장 돌아가는 상황을 모르니 내릴 수 있는 임무지.”
그들이라고 천약방을 포섭하면 좋다는 걸 모르겠는가. 당연히 시도도 여러 번 해봤다.
하지만 천약방은 이미 벽태산 아래로 들어갔다. 그 어떤 조건을 내세워도 코웃음도 치지 않았다.
“힘으로 누를 수도 없는 상황이니······.”
무한에 있는 벽태산의 세력은 아주 유기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만일 천약방을 힘으로 압박하려고 시도한다면 하오문이 먼저 움직일 것이다.
그리고 흑도와 낭인들이 하오문의 도움을 받아 은밀히 힘을 쓸 것이다.
허튼짓 하다가는 골로 갈 수도 있었다.
이곳에 있는 네 사람은 내부적으로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몰라도 직감적으로 무한에 뭔가가 있다는 사실은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금벽상단과 관계되었다는 것까지 짐작했다.
“이거······ 지속적인 압박을 통해 금벽상단이 꿈틀하면 대대적으로 나서서 쓸어버리겠다, 뭐 이런 계획은 아니겠지요?”
제갈곽이 서늘한 눈으로 적결명을 바라보며 물었다.
적결명이 코웃음을 쳤다.
“내가 그 속을 어찌 알겠나? 뭐······ 그럴 것 같기야 하지만. 그리고 우리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닐 듯한데?”
적결명의 시선을 받은 나머지 세 사람이 동시에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 역시 각각의 조직이나 가문이 어떤 논의를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
아마 당장은 아니더라도 조만간 어떤 식으로든 지시가 내려올 것이다.
게다가 적결명이 움직인다면 흑련에 천약방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서두를 것이다.
진사홍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출세는 물 건너갔다고 봐도 되겠군.”
그 말에 다들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임무 실패에 대한 불이익을 받을 테니 향후 출세에 상당한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지속적으로 지원을 요청하는 수밖에 없는데······.”
하지만 지금은 어디든 인원을 추가로 지원할 여력이 남은 곳이 없었다.
그리고 높으신 분들은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속성이 있다.
인력 지원 요청을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라면, 이쪽 임무에서 인력이 더 필요 없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릴 공산이 컸다.
이제 무능으로 임무에 실패하는 일만 남았다.
“음······ 그러지 말고 이번에 한해 힘을 모으는 건 어떻겠습니까?”
제갈곽의 말에 다들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들은 각자 다른 조직에 속해 있다. 그리고 천약방은 하나다. 한데 힘을 모아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여러분은 금벽상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갈곽의 뜬금없는 말에 다들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그동안 무한에서 쭉 지켜보셨으니 누구보다 잘 아실 것 아니십니까. 금벽상단, 아니 거기 둘째 공자인 벽태산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걸 말입니다.”
“뭐, 그야······.”
그 정도야 이제 다들 눈치채고 있다.
현재 무한은 금벽상단이 대부분 장악한 것처럼 보인다. 겉으로 보기에는 말이다.
금벽상단이 상권을 휘어잡았고, 하오문이 그 밖의 것들을 장악했다.
그리고 하오문은 금벽상단과 굉장히 밀접했다.
하지만 실체를 아는 사람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
그 모든 것이 벽태산 아래에 있었다.
심지어 그 천약방까지도 말이다.
“그래서 뭘 어쩌잔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