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40)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벽태산의 선택에 따라 그게 오히려 더 빠를 수도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더 신경을 쓰고 싶지도 않았고.
지금 벽태산은 반강시를 찾으러 가는 쪽으로 결심을 가의 굳혀가는 중이었다.
혁련비광은 반강시를 제조하고 연구하는 시설을 태원 아래쪽에 있는 진중현에 마련했다.
그곳의 위치를 알고 있는 사람은 혁련비광과 그곳에서 일하는 자들이 유일했다.
반강시를 연구하고 제조하는 자들은 혁련비광이 직접 뽑은 문사들과 강시술사들이었다.
그들은 그곳에 갇혀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다수의 무사들이 그들을 감시하고 혁련비광의 명령에 따라 반강시의 재료가 될 사람들을 조달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래서 원래라면 그곳에 가서 반강시부터 정리하고 다시 돌아오면 된다.
한데 문제가 있었다. 그들이 싹 사라진 것이다.
혁련비광에게서 뽑아낸 사념을 뒤적여보니 그 이유를 대충 알 수 있었다.
혁련비광은 자신의 죽음을 그곳에서 알 수 있게 해둔 것이다.
그들은 혁련비광의 죽음을 확인하자마자 바로 그곳을 정리한 다음 잠적해 버렸다.
지금 하오문도들이 그곳을 열심히 조사하는 중이었다.
아마 조만간 흔적을 찾아낼 수 있으리라.
그래서 문제였다. 그 흔적을 찾을 때까지 여기서 기다려야 하니 말이다.
벽태산도 직접 그곳에 가서 확인했다.
그곳에 반강시가 잔뜩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들어가자마자 느낌이 확 왔으니까.
아무리 반강시를 치우고 흔적을 지웠어도 결코 없앨 수 없는 영력으로 이루어진 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것은 반강시를 그곳에서 오랫동안 보관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발생한 흔적이었다.
다만, 그걸 가지고 추적을 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 하오문도들이 추적의 단서를 찾을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태원은 그다지 볼거리도 없고, 딱히 번화하지도 않은 도시였다.
눈에 띄는 기루가 몇 개 있긴 했지만, 거기에 갈 기분은 아니었다.
이름난 문파나 가문이 있는 것도 아니니 혁련비광이 은신처를 만들어두기에 제법 괜찮았을 것이다.
좀 더 거닐다 보니, 허름한 주루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저렇게 허름한 주루가 벽태산의 눈에 들기는 정말 어렵다. 한데, 벽태산은 그 주루를 보며 묘한 기분이 들었다.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주루 쪽으로 향했다.
허름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 층으로 된 그리 작지만은 않은 주루였다.
벽태산은 주루에 들어서서 안쪽을 슥 둘러봤다.
그리고 왜 이 허름한 주루가 자신의 눈에 들어왔는지 알아차렸다.
일 층에 있는 손님들 중에서 눈에 확 들어오는 자가 홀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탁자에 긴 검을 비스듬하게 기대 놓고 안주로 고기볶음 하나를 놓은 채 술을 마시는 중이었는데, 벌써 빈 술동이가 세 개나 옆에 놓여 있었다.
벽태산은 그를 향해 성큼성큼 다다가 마주보는 자리에 앉았다.
겉으로는 서른에서 마흔 사이로 보이는 사내였다.
그는 벽태산이 앞에 앉자 힐끗 쳐다보고는 담담히 말했다.
“어디서 온 철부지 공자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내 기분이 별로이니 그냥 조용히 돌아가시오.”
벽태산이 툭 말을 던졌다.
“월영단이 여기서 뭘 하고 있느냐.”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사내가 손에 들고 있던 술잔을 던졌다.
술잔은 공력이 가득 담긴 채, 맹렬히 회전하며 벽태산에가 날아갔다.
벽태산이 술잔을 막을 때, 도망칠 생각이었다.
날아오는 술잔을 향해 가만히 손을 뻗은 벽태산은 도망치는 사내를 가만히 쳐다봤다.
사방으로 튀어나가던 술이 고스란히 다시 술잔 안으로 들어왔다.
벽태산은 술잔에 손도 대지 않았지만, 술잔은 어느새 다시 모든 술을 머금고 탁자 위에 살며시 내려앉았다.
그리고 주루를 뛰쳐나가려던 사내가 문을 나서자마자 뒤로 휙 날아왔다.
마치 누군가 뒷덜미를 잡고 확 잡아당기기라도 한 것처럼.
사내는 바닥을 두어 차례 데굴데굴 굴렀다. 그러더니 위로 휙 뛰어올라 다시 원래 자리에 앉았다.
그는 멍하니 벽태산을 바라보고 자신의 상태를 확인했다.
방금 일어났던 일 중에서 자신의 의지로 한 것은 술잔을 던진 것과 밖으로 뛰쳐나간 것 딱 두 가지뿐이었다.
나머지는 뭐가 어떻게 되는 건지도 모르는 사이 벌어진 일이었다.
그리고 그걸 한 사람이 눈앞에 있는 자라는 건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사람이 물었으면 대답을 해야지, 그냥 도망가면 되겠느냐.”
사내, 장일독은 자신이 도망칠 방법이 없다는 걸 깨닫고 벽태산을 노려봤다.
“그냥 죽이시오.”
죽을 때는 죽더라도 그냥 죽지는 않을 것이다. 장일독은 품에 넣어둔 독 쪽으로 은밀히 내공을 움직였다.
독이 든 주머니에 내공을 잔뜩 불어 넣으면 그것이 터지면서 이 주루 안이 독으로 가득 찰 것이다.
그 독은 자신도 같이 죽이겠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좋았다. 살아남아 봐야 득 될 게 하나도 없었으니까.
이미 월영단에 들어온 순간부터 이런 식으로 죽을 각오를 했다.
“나한테 독은 안 통한다. 그거 터트리면 괜한 사람들만 죽는다.”
장일독이 흠칫 놀랐다. 자신이 독을 터트리려 한다는 걸 대체 어찌 알았단 말인가.
“보아하니 월영단은 뭔가 알고 있는 게 있었구나. 나만 몰랐어. 뭐, 보고할 만한 상태가 아니긴 했지.”
보아하니 여기서 제법 오랫동안 지낸 놈이었다.
그건 월영단이 무명이라는 조직에 대해 뭔가 낌새를 눈치챘다는 뜻 아니겠는가.
이곳에 남은 무명의 흔적을 조사 중이었을 것이다.
“월영단주가 언제부터 알았느냐.”
장일독은 벽태산을 노려보기만 했다.
아무리 봐도 모르는 자였다. 한데 월영단을 입에 담는다고 해서 믿을 수는 없지 않은가.
“무명을 조사하고 있었던 것 아니었느냐?”
“맞소.”
벽태산이 피식 웃었다.
“뭘 얼마나 알아냈느냐.”
장일독이 대답하지 않자, 벽태산이 대신 답해주었다. 너무나 뻔했으니까.
“거점 하나가 있다는 것과 그 거점이 얼마 전 불탔다는 것 정도를 알아낸 모양이군.”
워낙 정확히 찔렀기에 장일독은 깜짝 놀랐다. 하지만 놀란 티를 내지는 않았다.
그저 벽태산을 노려보기만 할 뿐.
벽태산은 그런 장일독을 서늘한 시선으로 쳐다봤다.
“그래서, 언제까지 내가 그따위 눈을 참아줘야 하느냐.”
장일독은 순간 온몸이 압착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몸을 무형의 힘으로 짓누르는 건 아니었다. 그저 그런 생각이 들 뿐이었다.
‘기세에 눌렸다고? 검마 어르신의 기세도 버틴 내가?’
하지만 부정할 수도 없었다. 실제로 기세에 짓눌렸으니까. 장일독은 식은땀을 흘리며 쓰러지지 않기 위해 버티고 또 버텼다.
“제법이구나. 그냥 일개 단원은 아닌 모양이야. 단주와 부단주까지는 아는데, 넌 모르겠구나. 네 직책이 무엇이냐.”
장일독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대체······ 누구십니까?”
“벽태산이다.”
“벽태산······.”
장일독은 한동안 무명만 파고들었는지라 최근의 정보에 대해서는 좀 어두웠다.
예전이라면 그럴 일이 없었겠지만, 지금은 월영단끼리의 연락조차 거의 안 되다시피 하는 상황이다.
월영단을 보조해주던 정보원들도 대부분 사라졌다. 정보원을 유지해주는 월영단 휘하의 하부 조직이 활동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벽태산이라는 이름이 너무나 생소했다.
장일독은 골똘히 생각하다가 문득 벽태산을 바라봤다.
그 서늘한 눈빛에 소름이 오싹 돋았다. 그제야 자신에게 벽태산이 물어본 것이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아, 저는 월영단주 직속 단원입니다. 따로 직책은 없습니다.”
“왜 비천단을 찾지 않았느냐. 월영단이라면 비천단 한두 곳은 알고 있을 텐데.”
장일독이 쓴웃음을 지었다.
“제가 아는 비천단은 없습니다.”
다른 월영단원들이라면 모를까, 장일독은 월영단주 직속으로 그가 지시한 일만 정확히 처리하는 자였다.
이곳 태원에서 무명의 뒤를 캐는 임무 역시 월영단주가 직접 내렸다.
그리고 설사 아는 비천단원들이 있었다고 해도 연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벽태산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럼 다른 월영단 놈들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느냐?”
“모릅니다. 연락할 방법은 있는데······ 그들이 그걸 받아줄지도 불투명합니다.”
벽태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됐다.
“연락이나 한 번 해봐라. 혹시 모을 수 있을지 모르니. 그리고 여기서 하던 일은 이제 그만해라. 다 끝났으니까.”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여기 숨어 있던 혁련비광은 내가 잡았다.”
장일독의 눈이 번득였다.
“혹시 하오문에서 나오셨습니까?”
벽태산이 피식 웃었다.
그동안 하오문이 무명을 찾고 있다는 걸 알아낸 모양이었다.
“내가 하오문에 있을 사람으로 보이느냐, 아니면 하오문을 밑에 두고 부려먹을 사람으로 보이느냐?”
당연히 후자다. 그게 아니라면 저런 말도 하지 않았을 테니까.
장일독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벽태산은 이제 할 말을 다 했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바로 주루에서 나가 버렸다.
장일독은 당황스러우면서도 황당한 눈으로 그런 벽태산을 바라봤다.
그는 결국 탁자에 기대놨던 검을 들었다. 그리고 술값을 탁자에 내려놓은 뒤, 벽태산을 따라 나섰다.
* * *
벽태산은 장일독과 함께 진중현에 들어섰다.
하오문도들이 진중현에서 반강시를 이동시킨 흔적을 발견한 것이다.
벽태산은 하오문도의 얘기를 듣고 혼자서 길을 나섰는데, 장일독이 따라붙었다.
따라오겠다는 걸 굳이 말릴 생각이 없었기에 그냥 빠르게 이동했다.
영력을 이용해 공간을 넘으며 이동해도 되지만, 태원에서 진중현까지는 그리 멀지 않기에 그냥 빠르게 걸었다.
물론 장일독 입장에서는 그게 걷는 걸로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장일독은 천마신교 월영단 출신이기에 빠르게 이동하는 것이 익숙했다.
“저······ 여긴 왜 오신 겁니까?”
장일독은 눈에 띄게 공손해졌다. 아무래도 자기 나름대로 벽태산의 정체에 대해 결론을 내린 모양이었다.
월영단쯤 되면 천마신교 내부의 정치적 상황에 대해서도 제법 잘 꿰고 있다. 비밀도 몇 가지 알고 있고.
그렇기에 벽태산이 특별하다는 걸 대번에 파악했다.
하지만 정확한 정체는 아직도 알 수 없었다. 그걸 알아낼 때까지는 끝까지 붙어 있어야만 한다.
“겸사겸사.”
벽태산의 대답에 장일독은 하마터면 인상을 쓸 뻔했다. 저런 성의 없는 대답이라니.
장일독은 지나가는 듯한 말투로 물었다.
“그런데 비천단과 하오문이 손을 잡은 것입니까?”
벽태산은 여전히 대수롭지 않은 말투로 대답해주었다.
“손을 잡고 말고 할 것이 뭐 있겠느냐. 어차피 둘 다 내 것인데.”
“하면 현천의 이름을 붙인 상단은······.”
벽태산이 피식 웃었다.
“그것 때문에 둘이 손을 잡았다고 여긴 모양이구나. 그 이름, 내가 붙였다. 이제 답을 찾았느냐?”
못 찾았다. 머릿속이 더 복잡해졌다.
적어도 천마신교 내에서 현천이라는 이름을 저렇게 마음대로 갖다 붙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처음에는 비천단이 배신했다고 여겼다. 신교의 힘을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썼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좀 이상했다. 아무리 등을 돌렸어도 그렇게 노골적으로 일을 벌일 리가 없으니까.
게다가 진짜로 그랬다면 현천이라는 이름을 대놓고 쓸 리가 없었다. 훨씬 조심했을 것이다.
그래서 판단을 보류하고 있던 와중에 벽태산을 만난 것이다.
복잡한 머릿속을 어떻게 정리할지 고민하면서 걷다보니, 하오문도들이 다가왔다.
그들은 정중히 벽태산에게 인사했다.
“공자님, 바로 모시겠습니다.”
벽태산은 하오문도들을 따라 그들이 발견한 흔적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 흔적을 발견한 후부터 하오문에서 이곳 진중현에 인력을 더 투입해 확실히 감시 중이었다.
흔적이 있는 곳에 도착한 벽태산의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하오문도들이 찾은 흔적은 정말 별 거 아니었다. 솔직히 추적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이게 무슨 흔적이 될 수 있는지 고민스러울 정도였다.
하지만 벽태산은 그 흔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영력의 흐름을 봤다.
“잘 찾았구나.”
여기서부터는 굳이 하오문도들의 도움도 필요 없었다.
이렇게 진한 영력이 줄줄 흐르고 있으니 설사 반강시가 없다 하더라도 그에 준하는 대단한 무언가가 있지 않겠는가.
벽태산은 영력의 흐름을 따라 걸어갔다.
이내 그들은 진중현 중심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거대한 전각 세 개가 품자 형으로 서 있었는데, 각각 기루, 주루, 객잔이었다.
영력은 그 세 전각의 중심부로 이어지고 있었다.
벽태산은 그곳에 서서 바닥을 발로 툭툭 건드려봤다.
계속 따라오던 장일독이 말했다.
“거긴 아무것도 없습니다. 빈 바닥에서 나는 소리가 아닙니다.”
아니면 그런 소리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잘 만들었거나.
예를 들어 진법을 이용한다거나, 아주 두껍고 단단하게 만들어 티가 안 나게 한다거나.
그것도 아니면 반강시를 아예 파묻어서 아래에 공간 자체가 없게 만들거나.
지금 이곳은 그 중 두 가지, 진법과 파묻는 방법을 썼다.
벽태산은 장일독을 보며 씨익 웃고는 발을 살짝 들었다가 그대로 내리찍었다.
쿵!
꽈드드득!
바닥이 마치 파도치듯 출렁이며 일어났다. 그리고 사방으로 토사를 쏟아냈다.
흙 아래에 깔려 있던 진법이 모래알처럼 부서졌다.
그렇게 한 차례 파도가 지나가고 나니, 벽태산이 서 있던 곳이 아래로 내려갔다.
발 구름 한 번으로 제법 깊은 곳까지 땅을 파낸 것이다.
다들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봤다.
벽태산은 그렇게 선 채로 지그시 눈을 감았다.
“이건······ 정말 대단하군.”
벽태산의 발아래에 반강시들이 묻혀 있었다.
지금 벽태산은 그 반강시들로부터 영력을 뽑아내고 있는 중이었다.
한데 지금까지 겪은 그 어떤 반강시보다 농밀하고 강한 영력이 나오고 있었다.
게다가 버릴 것도 없었다. 어찌나 잘 정제했는지 그냥 받아들이기만 하면 끝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이내 벽태산이 눈을 떴다.
모든 반강시의 영력을 뽑아먹은 것이다.
벽태산은 주위를 슥 둘러봤다.
세 채의 전각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자신의 곁에 서 있는 하오문도가 보였다.
벽태산은 하오문도에게 말했다.
“이 아래에 묻힌 것들 파서 꺼내라. 그리고 저것들 철저히 털어보고. 아마 무명 놈들일 것이다.”
하오문도들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예! 알겠습니다!”
장일독은 약간 떨어진 곳에서 그 광경을 멍하니 지켜봤다.
왠지 모를 기시감이 그의 머릿속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