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79)
세상에 나서는 일도 별로 없었다.
하지만 일단 나서고 나면 명성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곤 한다.
누구도 고칠 수 없을 불치병을 치료한다거나, 전염병으로 다 죽어가는 마을을 다시 일으켜 세운다거나.
“정말 놀랐어요.”
사공예랑은 그렇게 말하며 벽태산과 의선을 번갈아 바라봤다.
왠지 두 사람 사이에 접점이 있다는 사실이 잘 안 믿겨졌다. 너무 안 어울렸다.
의선은 그런 사공예랑에게 불쑥 말했다.
“내 제자가 될 생각 없나?”
의선의 갑작스러운 말에 사공예랑의 눈이 커다래졌다.
“예? 하지만······ 전 의술은 아무것도 모르는걸요.”
“몰라도 상관없네. 자네는 정말 큰 재능을 갖고 있어. 꼭 의술을 익히라는 게 아닐세. 의술은 자연스럽게 따라가는 거고, 내게 선술을 배우면 자네는 분명 대성할 걸세.”
사공예랑은 당황했지만, 왠지 의선의 말에 솔깃했다. 의선의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확 끌렸다.
한데 그 순간.
“건방지게 내 것을 넘봐?”
벽태산의 목소리와 함께 갑자기 세상 모든 것이 부서지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아니, 실제로 세상이 와르르 무너지고 있었다.
“헉!”
사공예랑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진짜로 세상이 무너진 건 아닌 모양이었다.
‘대체 뭐지?’
그녀는 일단 이 상황을 일으켰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 벽태산을 바라봤다.
벽태산은 담담한 눈으로 의선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의선은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중이었고.
방금 의선은 사공예랑에게 말할 때, 목소리에 영력을 실어 보냈다.
사공예랑이 의선의 말에 갑자기 혹한 것은 그 때문이었고.
그걸 벽태산이 적절히 끊은 것이다. 역시 말에 영력을 담아서.
의선은 뜨끔해서 벽태산의 시선을 피하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자신이 이렇게까지 벽태산에게 저 자세로 나가야 하는 건지 회의가 들었다.
자신이 영력도 더 많고, 경험도 더 많다. 벽태산이 좀 특별한 힘을 가진 듯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은가.
그걸 본 벽태산이 씨익 웃었다.
지금 의선에게서 미약한 투기가 흘러나왔다. 이건 명백히 자신과 싸우고 싶다는 뜻 아니겠는가.
“한 판 놀아볼까?”
벽태산이 의선을 보며 물었다.
의선이 벽태산을 바라봤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벽태산을 가늠하기 위함이었다.
이건 그동안 벽태산을 생각할 때마다 들었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잠시 벽태산을 살피던 의선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지.”
“적당한 장소로 가야겠군. 따라와라.”
벽태산이 밖으로 나가자, 의선이 그 뒤를 따랐다.
결국 방안에 홀로 남겨진 사공예랑이 멍하니 두 사람이 나가는 모습을 바라봤다.
이게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녀는 결국 근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왕 칼을 뽑았으니 뭐라도 베어야 하지 않겠는가.
벽태산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 * *
의선은 벽태산을 열심히 따라갔다.
벽태산이 말하는 적당한 장소가 천무련에서 가까운 곳에 있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러니 빠르게 움직여야 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벽태산이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그저 걷는데도 어마어마한 속도로 쭉쭉 나아갔다.
의선은 그 뒤를 무난히 따라갔다. 이 정도는 별로 힘들 것도 없었다.
한데 그 순간, 눈이 커다래질 만한 일이 벌어졌다.
벽태산이 갑자기 공간을 뛰어넘은 것이다. 순식간에 거리가 쫙 벌어졌다.
의선은 그때부터 온 힘을 다해 달려야 했다.
영력을 쓰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이내 아주 넓은 벌판에 도착했다.
둘이서 싸우기 아주 좋은 장소였다.
벽태산은 기대감 넘치는 눈으로 의선을 바라봤다.
그동안 무명에서 나왔던 영력을 쓰는 놈들은 너무나 어설퍼서 상대가 되지 않았다.
무공도 모자라고 영력도 모자라니 어찌 벽태산의 상대가 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의선은 다르다.
의선은 오랜 세월을 살아온 만큼 무공도 높은 경지에 이르렀고, 영력의 양은 오히려 벽태산보다 많다.
그렇다고 영력의 질이 나쁘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굉장히 좋은 영력이었다.
혈령마공으로 쌓은 불순한 영력 따위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니 어찌 두근거리지 않겠는가.
의선은 벽태산과 좀 떨어진 곳에 섰다. 그리고 벽태산을 다시 한 번 유심히 살폈다.
제대로 싸워본 지가 정말 오래 됐다.
힘을 쓸 일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무도한 산적이나 수적 놈들을 좀 잡았고, 세상일에 조금씩 관여하면서 무가와도 싸울 일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몸이나 가볍게 푸는 정도지, 진짜 싸움이라 할 수 없었다.
의선은 영력을 뽑아내 온몸에 꽉 채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대로 싸웠던 기억을 떠올렸다.
싸울 준비가 끝났다.
벽태산은 의선이 싸울 준비를 하는 과정을 호기심어린 눈으로 쳐다봤다.
역시 여기로 데려오길 잘했다. 정말 재미있지 않은가.
“자, 그럼 시작해 볼까?”
꽈앙!
두 사람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중간쯤에서 다시 나타났다.
막대한 영력이 두 사람을 중심으로 회오리치듯 회전하며 하늘로 솟구쳤다.
끝
일단의 무리가 빠르고 은밀하게 이동 중이었다.
세 사람이 가장 앞에서 나란히 달렸고, 그 뒤를 백오십 명에 달하는 자들이 마치 그림자가 흐르듯이 이동 중이었다.
앞장서 달리던 세 사람은 어느 순간 조금씩 속도를 늦췄다. 그리고 이내 멈춰 섰다.
뒤따라가던 자들 역시 일제히 멈춰서 명령을 기다렸다.
셋 중 하나가 앞을 바라보며 말했다.
“일단 흩어져서 시간을 두고 조용히 들어가는 게 나을 듯하군.”
“뭐, 그러지.”
“그리고 이렇게 지휘권이 셋으로 갈려 있으면 좋을 게 없으니 이쯤에서 하나로 합쳐야 하지 않나?”
사내의 말에 나머지 두 사람이 눈을 번득였다.
“무한에서 활동할 때에 한해서 그러자는 말일세. 어떤가?”
나머지 두 사람은 여전히 대답을 하지 않았다.
지금 이들은 무명의 세 가문에서 각각 나온 정보원들이었다.
그러니 이럴 때 주도권을 빼앗기면 안 된다.
“그걸 자네가 하겠다는 건 아니겠지?”
“물론이지. 공평한 방법으로 뽑고, 무한에 있는 동안은 철저히 협조하는 걸로 하세. 아무래도······ 느낌이 좋지 않아.”
그 말에 나머지 두 사람이 피식 웃었다.
“너무 조심하면 될 일도 안 돼. 뭐든 적당해야 하네.”
그들은 무명의 세 가문 내에서도 정보 쪽으로는 손꼽히는 자들이었다.
정보뿐 아니라, 잠입, 추적, 암살에도 아주 뛰어났다.
다들 자신이 최고라는 자부심으로 꽉 찬 자들이었다.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않은가. 아무튼 내 의견은 그러하네.”
나머지 두 사람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한 사람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난 구역을 나눠서 따로 활동하는 것이 낫다고 보네. 연락망만 갖춰놓으면 협조야 어렵지 않으니까. 잘 맞지도 않는 지휘체계에 저 녀석들이 휘둘리면 오히려 안 좋을 것 같군.”
그가 그렇게 말하며 뒤쪽을 엄지로 가리켰다.
그곳에는 수하들이 미동도 않고 서 있었다.
나머지 한 사람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동의한다는 듯.
사실 억지였다.
각 가문마다 지휘체계나 정보 전달 방식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고작 그 정도에 흔들릴 정도로 어설프면 아예 이 자리에 오지도 못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저 둘이 함께 하기 싫다는데.
“알았네. 그럼 구역을 나누지. 신경을 써야 할 부분도 함께 확인하고. 그리고······ 정말 조심해야 하네.”
“알았으니까 이제 그만하게.”
짜증까지 내려고 하니 그제야 사내가 한 발 물러났다.
“자, 구역 나누지.”
그들은 그 뒤로 빠르게 구역을 정하고 살펴야 할 부분을 세밀히 검토했다.
할 일은 빠르게 끝났다. 그러자 혁련가에서 나온 자가 나머지 두 사람을 잠시 보다가 몸을 돌렸다.
“나 먼저 가지.”
그가 움직이자, 혁련가에서 온 정보원들이 그 뒤를 따라갔다.
남은 두 사람은 그가 아예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그곳에서 기다렸다.
“하여간 누가 혁련가 아니랄까봐.”
“그러게 말일세. 혁련가가 아무리 대단해도 정보 쪽은 우리가 더 위인데 말이야.”
“그건 확실히 그렇지.”
“그나저나······.”
심가의 사내가 은근한 목소리로 입을 열자, 악가의 사내가 의미심장하게 눈을 빛냈다.
“왜 그러나? 설마 우리끼리 손을 잡자는 말은 아니겠지?”
“싫은가?”
악가의 사내가 씨익 웃었다.
“싫기는. 이런 좋은 기회가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데.”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보며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각자의 무리로 돌아갔다.
이내 그곳에 있던 자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한두 명씩 무리를 이뤄 시간을 두고 무한으로 조용히 들어갔다.
* * *
콰우우우우!
두 가지 상반된 영력이 충돌하며 뒤섞이고 반발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격렬하기 그지없었다.
벽태산과 의선이 가까워진 순간 영력이 폭풍처럼 날뛰었다.
먼저 손을 쓴 것은 의선이었다.
온몸에 영력이 꽉 채워져 있기에 그저 몸을 움직이면 거기에 따라 자연스럽게 영력이 움직였다.
내공 따위는 필요도 없었다. 아니, 의선은 애초에 내공을 익힌 적이 없었다. 처음부터 선술을 익혔을 뿐이었다.
무공은 선술을 좀 더 자연스럽게 쓰기 위해 나온 부산물 같은 거였다.
하지만 거기에 깊은 경험이 덧씌워진 순간, 천하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굉장한 무공이 되었다.
영력을 가득 담은 의선의 손바닥이 벽태산의 가슴을 향해 날아갔다.
벽태산은 주변에 몰아치는 영력의 폭풍이 자신의 움직임을 제한하는 걸 느끼며 의선의 손바닥을 피해 비스듬하게 한 발 나아갔다.
꽈아아앙!
의선의 손바닥에서 쏟아져 나간 영력들이 주변을 둘러싼 영력의 폭풍을 찢어발기며 폭발했다.
벽태산은 자연스럽게 몸을 회전하며 주먹을 뒤로 휘둘렀다.
빠악!
의선이 팔을 들어 간신히 그것을 막아냈다. 그리고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크윽!”
뼛속까지 저릿한 통증이 팔뚝을 파고들었다.
“이 무슨······!”
이 고통은 영력의 충돌로 인해 나타난 현상이었다.
벽태산의 영력이 자신의 영력과 충돌하는 동시에 폭발하며 주변에 피해를 입힌 것이다.
의선은 반사적으로 벽태산의 표정을 확인했다.
‘표정 변화가 없어? 참는 건가?’
방금 그걸 겪고도 고통이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의선이 그런 생각을 하는 찰나의 순간, 벽태산이 다시 다가와 아래에서 위로 손을 휘둘렀다.
의선은 고개를 크게 젖혀 그것을 피해냈다.
벽태산의 손등이 의선의 턱 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한데 그 순간, 의선은 갑자기 머리가 핑 돌았다.
‘이런, 못 피했구나!’
완벽하게 피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원래라면 여기서 싸움이 끝나야 정상이다. 하지만 의선의 몸은 영력으로 꽉 찬 상태였기에 뇌진탕을 순식간에 극복했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 벽태산이 빈틈을 파고드는 걸 피할 수는 없었다.
벽태산은 손을 휘두른 힘까지 이용해 부드럽게 발을 차올렸다. 휘두른 손과 반대 쪽 발이었다.
상체가 뒤로 기울어지며 발이 쭉 뻗어 올라왔다.
의선은 수십 겹의 영력을 옆구리에 덧씌웠다. 그 위에 벽태산의 발등이 작렬했다.
꽈드드드득!
“커억!”
의선이 눈을 부릅떴다. 또 아까와 똑같은 방식의 공격이었다.
수십 겹이나 덧씌운 영력의 벽이 모조리 폭발하듯 부서졌다.
그리고 그 여파가 옆구리로 스며들었다.
몸이 받은 타격은 영력이 전부 해소했다. 하지만 고통은 어쩔 수 없었다.
의선은 고통을 참으며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일단 거리를 두고 판을 다시 짜야 한다.
벽태산은 의선의 의도를 읽었기에 구경만 할 생각이 없었다. 빠르게 의선을 쫓아갔다.
하지만 발차기에 맞은 힘까지 이용해 거리를 벌렸기에 의선이 상황을 수습할 시간은 충분했다.
의선의 몸에서 영력 다발이 쏟아져 나왔다.
마치 온몸으로 화살을 무더기로 쏘는 듯했다.
벽태산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영력의 화살을 향해 손을 휘둘렀다.
꽝! 꽝! 꽝! 꽝! 꽝!
영력의 화살을 손으로 때릴 때마다 영력의 충돌로 폭발이 일어났다.
아마 영력이 없는 평범한 무인이었다면, 그가 아무리 강해도 이 화살 한 방이면 싸움이 끝났을 것이다.
그 정도로 강력하고 특별한 힘이 담긴 화살이었다.
물론 눈으로는 볼 수도 없는 화살이었다.
벽태산은 그런 화살을 모조리 박살 냈다.
의선은 질린 표정으로 그런 벽태산을 바라봤다. 하지만 싸움은 이제 막 시작이다.
벽태산이 화살을 전부 박살 내기 직전에 의선이 몸을 날렸다.
꽝!
벽태산이 마지막 화살을 박살 냈다. 영력의 화살은 마치 눈이라도 달린 것처럼 모두 벽태산을 향해 날아왔기에 피해도 소용이 없었다. 이렇게 전부 부숴야만 했다.
마지막 화살이 박살 난 순간, 의선이 자세를 살짝 낮춘 채, 벽태산의 가슴 아래로 파고들었다.
의선은 양 주먹과 양 발을 무자비하게 쏟아냈다.
꽈과과과과과광!
벽태산이 물 흐르듯 그걸 모조리 쳐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