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85)
이제 자신은 그 누구와 싸워도 지지 않는다. 상대가 영력을 쓰는 벽태산만 아니라면 말이다.
현재 두 사람은 노숙을 준비하는 일행들과 상당히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싸움의 여파가 미치지 않을 정도로 멀리 온 것이다.
주위에는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이었다.
의선은 새삼 벽태산이 이런 장소를 잘 찾는다고 생각했다.
“자, 먼저 오게.”
의선의 말투는 당당하기 그지없었다. 절대 질 리 없다는 자신감이 가득 담겨 있었다.
벽태산은 피식 웃고는 성큼성큼 다가갔다.
몸을 날릴 줄 알았던 의선의 눈가가 살짝 꿈틀거렸다.
“그렇게 여유를 부리면 내가 먼저 움직이는 수가 있네.”
“그럼 그러든가.”
벽태산의 대꾸에 의선이 씨익 웃었다.
“그럴 수야 있나. 자, 와서 마음껏 쳐보게. 영력만 안 쓰면 내가 얼마든지 받아줄 수 있지.”
벽태산의 걸음이 조금씩 빨라졌다.
의선이 눈을 빛냈다. 벽태산이 다가오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더니 나중에는 마치 공간을 뛰어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빠르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의선 앞에 도착한 벽태산이 그대로 주먹을 내질렀다.
의선은 일단 명치로 날아오는 주먹을 팔뚝으로 막아냈다. 아니, 그러려 했다.
한데 그 순간 주먹이 기묘하게 휘어지더니 의선의 팔뚝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 가슴을 파고들었다.
꽈득!
“응?”
영력으로 꽉 채워진 몸에 내공이 파고들었는데, 예상하던 것과 좀 달랐다.
마치 내공이 아니라 영력을 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벽태산의 내공이 빠르게 회전하며 안으로 쭉 치고 들어온 것이다.
다행히 영력을 완벽하게 뚫지 못해 치명상은 피했다.
하지만 식은땀이 나는 상황이었다.
“분명히 영력은 쓰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나!”
의선은 그렇게 외치며 뒤로 쭉 물러났다.
“이게 영력으로 보이나?”
벽태산이 순식간에 의선을 따라잡았다.
‘뭐 이리 빨라!’
벽태산은 벽태산이었다. 영력을 쓰지 않았는데도 더럽게 빠르고 강했다.
의선은 일단 먼저 공격하기로 했다. 싸움에서는 주도권이 중요하다.
의선은 손바닥을 아래에서 비스듬하게 위로 휘둘렀다.
영력을 이용했기에 그 속도가 이루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후웅!
의선의 눈이 커다래졌다.
분명히 때렸다고 여겼는데, 벽태산의 몸을 뚫고 그냥 지나가 버렸다.
그제야 상황을 파악했다.
벽태산이 상체를 앞으로 크게 숙여 손바닥을 피한 것이다. 그 동작이 워낙 빠르고 절묘해 마치 환영 같은 착각이 일어났다.
빠악!
의선은 무언가가 정수리를 콱 찍는 느낌에 몸을 움츠렸다.
백회에서 시작된 통증이 벼락처럼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벽태산이 상체를 앞으로 숙인 채 발을 크게 올려 뒤꿈치로 정수리를 찍은 것이다.
그 뒤, 상체를 다시 세워 뒤로 젖히며 발을 앞으로 쭉 뻗는 연속동작으로 이어졌다.
꽈득!
의선의 명치에 벽태산의 발끝이 파고들었다.
“크어억!”
의선은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그리고 손을 내저었다.
“그만! 이제 그만하게!”
벽태산이 그런 의선을 못마땅하게 쳐다봤다.
“영력 안 쓴다고 방심했군. 오히려 지난번이 더 재미있었다.”
의선은 숨을 조절하며 벽태산을 바라봤다.
“후우우. 오늘은 이만하고 내일이나 모레 다시 해보세. 나도 나름대로 수련을 좀 하고 준비도 좀 해야 할 듯하니.”
벽태산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지. 그럼 좀 쉬다가 와라.”
벽태산은 그 말을 남기고 일행이 노숙하는 곳으로 훌쩍 떠났다.
의선은 멍하니 그 뒷모습을 보다가 중얼거렸다.
“지난번에는 많이 봐줬던 거였구나.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호된 꼴을 당하겠어.”
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러다 문득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런데 대체 내 영력을 어떻게 내공으로 뚫은 거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
의선은 또 한 차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끝
벽태산 일행은 노숙 경험이 많아 다들 익숙했다.
특히 시비들은 잠자리 준비부터 요리까지 모든 일을 막힘없이 착착 진행했다.
모닥불이 곳곳에 타올랐다.
그 중 하나에 커다란 솥이 걸렸고, 그 안에서 먹음직스러운 음식이 팔팔 끓었다.
각 모닥불마다 하나씩 요리가 익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모든 요리가 마무리 되자, 시비들이 바삐 움직여 순식간에 그릇에 담아 모두에게 나눠주었다.
벽태산은 여전히 마차에 있었고, 모든 요리를 조금씩 담아 상을 차려 마차 안으로 들였다.
그렇게 다들 한창 식사 중일 때, 의선이 터덜터덜 돌아왔다.
“어라? 어르신, 어디 다녀오십니까?”
천추신의의 물음에 의선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할 것이 있어서 좀 걸었네.”
그러자 천추신의가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으흐흐. 대체 뭘 생각하셨을까.”
일침괴가 옆에서 천추신의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으익! 아, 뭐요! 깜짝 놀랐잖소! 내 옆구리가 얼마나 예민한데······.”
“눈치 좀 챙겨라. 지금 어르신 표정 안 보이냐?”
천추신의는 그제야 의선의 표정을 확인하고는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일침괴가 이번엔 소청명에게 눈치를 줬다.
소청명은 아차 하고는 벌떡 일어나 의선에게 얼른 다가갔다.
“스승님,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얼른 식사를 준비하겠습니다.”
“됐다. 오늘은 별로 밥 생각이 없구나.”
그러자 천추신의가 나섰다.
“그래도 드셔야지요. 사람이 먹어야 힘을 쓸 거 아닙니까. 오늘 아침에 듣자하니, 어제 아주 대단하셨다던데.”
의선이 천추신의를 가만히 쳐다봤다.
“내가 밥을 안 먹으면 안 될 사람으로 보이나?”
“에이, 뭐 신선은 물만 먹고 산답니까?”
그리고 아직 신선도 아니지 않은가. 물론 그 얘기는 하지 않았다.
아무리 천추신의라고 해도 그 말까지는 할 수 없었다.
의선이 한숨을 푹 내쉬더니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틀린 말은 아니지.”
소청명이 얼른 그릇을 가져다가 다양한 요리를 담아 의선에게 공손히 바쳤다.
의선은 그것을 받아 천천히 음미하며 먹었다.
“호오. 상당한 솜씨로구나. 노숙을 하면서 이 정도 요리를 먹을 수 있을 줄은 몰랐어.”
“공자님의 시비들이 직접 한 요리입니다. 다들 실력이 대단합니다.”
의선은 그 말에 벽태산의 시비들이 모인 곳을 유심히 살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대단하긴 대단하구나. 보통이 아니야.”
정말 여러모로 보통이 아니었다.
의선의 눈에는 그녀들이 가진 영력이 보였다. 영력의 기질이 평범하지 않았다.
‘대체 벽 공자는 어떻게 이렇게 많은 이들의 영력을 깨울 수 있었을까.’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예전에 듣기로 죽였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깨달음의 단초를 얻어 자신 역시 한 단계 발전했다.
하지만 깨달았다고 해서 그걸 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한 번 봤으면 좋겠구나.’
의선은 그런 생각을 하며 식사를 마쳤다.
음식이 어찌나 입에 쩍쩍 붙는지 하나도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그릇을 비웠다.
먹을 때는 딴 생각을 하느라 신경 쓰지 못했는데, 다 먹고 생각해보니 이 요리에도 영력이 영향을 미쳤던 듯했다.
저 시비들은 자신들이 가진 영력을 이런 요리나 청소 등에 쓰는 모양이었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아깝다고 여기겠지만, 의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도의 길은 언제나 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법이다.
어쩌면 저 시비들이 가장 먼저 경지에 오를지도 모를 일이다.
‘그나저나 대체 어떻게 한 걸까?’
의선은 다시 혼자만의 세상으로 파고들어갔다.
벽태산이 내공만으로 자신의 영력을 어찌 뚫어냈는지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내공만 쓴다고 해놓고 영력을 좀 섞었나?’
충분히 가능하긴 하다. 하지만 그랬다면 자신이 대번에 알아차렸을 것이다.
‘아니지 다른 사람의 영력이라면 모를까, 벽 공자라면 그조차 감출 수 있겠지.’
결국 그날 의선은 밤새 한 잠도 못 자고 고민만 계속했다.
* * *
벽태산 일행은 어느새 무한에 도착했다.
여정은 지극히 평범하고 조용했다.
저녁식사 전에 벽태산과 의선이 사라져 대련을 하고 오는 걸 제외하고는 대체적으로 그랬다.
의선은 벽태산과 대련을 하면 할수록 무언가 거대한 벽을 마주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 격차는 무한에 도착할 때까지 조금도 좁혀지지 않았다.
아니, 가끔은 오히려 격차가 더 벌어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 정도로 벽태산의 실력은 압도적이었다.
무한으로 들어선 벽태산 일행의 마차는 곧장 현천장으로 향했다.
“현천장이라······.”
의선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마차에 난 창을 통해 현천장의 전경을 바라봤다.
“허어. 참으로 기묘하군.”
의선은 현천장 안으로 들어갈수록 느껴지는 묘한 영력의 흐름에 탄성을 흘렸다.
슬쩍 고개를 돌려 벽태산을 살펴봤지만, 벽태산은 여전히 같은 자세, 같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뭘 하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수련의 일환이리라.
‘하여간 지독하다니까.’
의선이 보기에 벽태산은 언제나 강해지기 위한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그 대부분이 수련과 명상인데, 가끔 그 과정에서 흘러나오는 영력이나 내공을 느낄 때마다 흠칫 놀라곤 했다.
벽태산은 말도 안 되는 수준의 조절력을 갖고 있었다.
그것이 영력이든 내공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가끔 그 편린을 엿보는 것만으로도 의선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튼 지금 이 현천장에 흐르는 영력 또한 벽태산이 무언가를 한 결과물일 거라 예측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 창밖을 내다보는데, 벽태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한 거 아니다.”
의선이 다시 고개를 돌려 벽태산을 바라봤다.
“그럼 누가 했단 말인가? 자네 말고는 이 정도 수준으로 영력을 다룰 사람이 없을 것 같은데.”
“승도흥이라는 진법가가 한 거다. 소 뒷발에 쥐를 잡은 셈이긴 해도 확실히 진법 실력이 제법이긴 하지.”
의선은 눈을 빛냈다.
벽태산이 누군가를 이렇게 칭찬하는 모습을 보는 건 정말 드문 일이었다.
그러니 그 승도흥이라는 진법가가 과연 얼마나 대단할지 한 번 만나보고 싶었다.
‘뭐, 시간은 아직 많으니까.’
의선은 무한에서 한 달 정도 지내다가 돌아갈 생각이었다.
천추신의가 자신만 믿으라며 큰소리를 탕탕 쳤으니, 기대가 이만저만 아니었다.
의선의 기대감을 드높이는 시간은 대부분 밤에 이뤄지니, 낮에는 얼마나 긴 시간이 비겠는가.
그때 짬을 내서 승도흥이라는 진법가도 만나고, 또 자신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다른 사람들도 차근차근 만나면서 정신적으로 충만한 시간을 보낼 계획이었다. 가끔 수련도 하고 말이다.
이내 마차가 멈췄다.
의선이 먼저 마차에서 내렸고, 벽태산이 나중에 내렸다.
마차가 선 곳은 벽태산의 집무실 앞이었다.
모든 마차가 이곳에서 섰는데, 다들 마차에서 내려 벽태산에게 다가왔다.
긴 여정을 마쳤으니 인사를 하고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께 천무련에 다녀온 사람들이 인사를 하고 물러가자, 이번에는 현천장에 남아 있던 자들이 우르르 찾아왔다.
그들 역시 돌아온 가주에게 인사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다.
의선은 한 발 뒤에서 유심히 눈을 빛내며 그들의 면면을 살펴봤다.
한 사람, 한 사람 차분히 살펴볼 때마다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동안 천하를 돌아다니면서 별의 별 사람을 다 만나보고, 이름 높은 문파나 가문, 세력에 전부 들러봤다.
당연히 그곳에 있는 무수한 인재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영력이 담긴 감각으로 살펴봤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여기처럼 대단한 인재들이 모인 곳은 없었다.
개개인의 차이는 조금씩 있을지언정, 누구 하나 천하에서 손꼽히는 인재 아닌 사람이 없었다.
“대체 저런 사람들을 어찌 모았나? 정말 대단하군.”
의선은 그렇게 말하며 벽태산을 바라봤다. 진짜 어떻게 모았는지 궁금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 일종의 감탄사였다.
하지만 벽태산은 그 질문에 아주 친절히 답해주었다.
“자기가 진짜 죽었다고 생각할 정도로 굴리면 누구나 인재가 될 수 있다.”
의선은 그 말에 입을 꾹 다물고 멀어져가는 벽태산의 사람들을 바라봤다.
그의 눈빛에 안쓰러움이 담겼다.
하지만 꼭 안쓰럽기만 한 건 아니었다. 어쨌든 굉장한 인재가 되지 않았는가.
의선은 문득 자신도 벽태산에게 그런 식으로 굴려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당장은 아니었지만, 여기 오래 있다간 자신도 저 꼴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다. 그리고 이내 벽태산 주변이 조용해졌다.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은 의선과 화옥뿐이었다.
나머지는 전부 돌아갔다.
사실 의선도 이만 가서 쉬고 싶었다. 밤이 되기 전까지 좀 쉬어둬야 밤에 나갈 것 아닌가.
한데 갈 수가 없었다. 움직이려 하면 주변 영력이 꿈틀거렸다. 마치 가만히 있으라는 듯이.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여기 누가 있겠는가.
자신이 가는 걸 벽태산이 원치 않으니 그냥 남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 더 올 사람도 없는 것 같은데, 자네도 들어가서 쉬지 그러나.”
의선의 말에 벽태산은 고개를 돌려 화옥을 쳐다봤다.
그러자 화옥이 의선 앞으로 조용히 다가갔다.
의선이 의아한 표정으로 화옥을 바라봤다. 하지만 이내 표정이 확 굳었다.
“어······. 일이 있다는 걸 깜빡했군. 내 얼른 가봐야 하니, 다음에 다시 얘기하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