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84)
“예.”
사실 이 일은 천무련 내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천무련과 연계해 낙양 전체에서 세작을 솎아내는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이미 비슷한 일을 한 번 해본 경험이 있는지라 아주 매끄럽게 진행 중이었다.
보고를 하던 보천각주는 문득 무한의 일이 떠올랐다.
무한에 무명의 정보원들이 대거 들어왔다는 보고를 얼마 전에 받았다.
그쪽 일은 화옥이 맡아 진행하기로 했기에 나중에 결과만 들으면 된다.
‘어느 정도 진행되었으려나······.’
다른 사람도 아닌 화옥이 하는 일이니 실수가 있을 리 없다. 아마 조만간 무한 쪽도 정리가 끝나리라.
보천각주는 그렇게 생각을 마무리한 다음 사마위홍에게 자잘하게 남은 보고를 이어갔다.
* * *
“헉헉헉.”
혁련국은 단내가 날 정도로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용담호혈이었어. 젠장.”
무한은 무서운 곳이었다.
섣불리 정보원들을 보내 안을 들여다볼 정도로 허술한 곳이 결코 아니었다.
아니, 솔직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무한은 도시다. 이 안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겠는가.
그 많은 사람들이 전부 하오문은 아닐 것 아닌가.
일반인들과 섞여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하오문은 정확히 무명의 세작들을 골라냈고, 무한으로 온 정보원들을 단숨에 파악해 감시했다.
혁련국은 자신이 지금까지 잡히지 않은 건, 자신이 잘 해서가 아니라 운이 좋아서였다는 걸 지금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심가와 악가에서 나온 자들은 잡힌 지 오래였다.
그들은 혁련국의 수하들보다 며칠이나 먼저 잡혔다.
놀라운 건, 죽은 자들이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이는 상대의 실력이 압도적이라는 뜻이었다.
어떻게든 살아서 빠져나가야 한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
혁련국은 그 일념 하나만으로 뛰다가 죽을 각오로 열심히 달렸다.
물론 그냥 달리기만 하는 건 아니었다. 최대한 은밀하게 이동했다.
‘여기가 고비다.’
골목에서 벗어나 넓은 대로를 지나쳐야 한다. 저기를 지나고 나면 다시 골목이 이어지고, 별다른 일이 없으면 무한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걸로 끝나는 건 아니었지만.
혁련국은 면밀히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몸을 날리려 했다.
한데 그 순간 뒤에서 뭔가 묘한 느낌이 들었다.
혁련국은 그대로 앞으로 한 바퀴 굴렀다.
방금 그의 목이 있던 곳을 무언가가 훑고 지나갔다.
자세를 잡고 몸을 일으킨 혁련국은 냅다 달리려 했다. 하지만 어느새 흑도 놈들이 앞을 막고 있었다.
“젠장.”
혁련국은 천천히 돌아섰다. 방금 자신에게 위협을 준 자가 누군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제법이로구나. 오랜만에 싸울 맛이 나겠어.”
검을 든 사내가 흥미진진한 눈으로 혁련국을 보고 있었다.
그는 검을 뽑으며 말했다.
“나중에 염라대왕이 묻거든 검귀가 보내서 왔다고 해라.”
물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죽일 생각은 없었다. 사로잡으라는 지시가 내려왔으니까.
계획을 세운 사람은 화옥이고, 세부 작전을 짠 것은 천뇌지만, 이 모든 건 벽태산의 지시로 이뤄지는 거나 다름없었다.
저놈을 죽이면 나중에 벽태산을 봐야 하니 절대 그럴 수는 없었다.
검귀가 혁련국을 향해 검을 겨눴다.
끝
“무한으로 잠입한 무명의 정보원들을 정리했습니다. 정리 과정에서 열일곱이 죽었고, 나머지 백삼십여 명을 사로잡았습니다. 현재 심문 중인데,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심문이 거의 먹히지 않습니다.”
화옥의 보고에 벽태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한에 박혀 있던 세작들은?”
“이번 기회에 싹 정리했습니다.”
“당분간은 세작을 심기 어렵겠군.”
“예. 마지막으로 세작들의 보고 수단을 써서 무명을 한 번 움직여 볼까 합니다.”
벽태산의 입가가 살짝 올라갔다.
“알아서 진행해라. 결과만 보고하고.”
화옥이 고개를 살짝 숙이고 물러갔다.
그 보고를 본의 아니게 같이 듣게 된 의선이 굉장히 불편하고 난감한 표정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보아하니 중요한 보고 같은데······ 그러니 내가 나가 있겠다고 하지 않았나.”
“상관없다.”
정말로 상관없었다. 어차피 의선도 이제 한배를 탔다. 그러니 알 건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진짜 알아선 안 될 내용이라면 벽태산이 영력을 움직여서 소리와 기척을 차단할 수도 있었다.
영력 쪽으로는 의선이 아무리 뭘 해도 이제 벽태산에게 안 된다.
벽태산에게는 영력의 성질을 똑같이 만들어 상대의 영력을 침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걸 어찌 막는단 말인가.
아무튼 이 정도는 알아야 한다고 여겼다. 슬슬 의선도 무명이라는 놈들에 대해 제대로 알 때가 되었다.
“무명이라는 놈들, 그렇게 대단한가? 자네와 함께한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솔직히 별로 대단한 힘을 쓰는 것 같지는 않던데······.”
“뭐, 대단한지는 잘 모르겠군. 하지만 현 무림만을 놓고 보면 만만한 놈들은 아니지.”
아니, 만만하지 않은 걸 넘어서 현 무림만으로는 결코 무명을 막아낼 수 없다.
천마신교까지 더해진다면 모를까.
물론 제대로 된 천마신교여야 한다. 지금의 천마신교로는 모자랄지도 모른다.
아직 벽태산은 무명에 대해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했다.
그저 가끔 날뛰려고 달려드는 놈들이나 잡은 정도니까.
혁련비광 같은 놈들은 솔직히 무명 입장에서 보면 장난 같은 거였고.
그런 혁련비광조차 벽태산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무림을 한 차례 들었다가 놨을 수도 있다.
아니, 분명히 천하 무림에 큰 타격을 줬을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혁련비광이 쓰던, 오래전 죽었던 마두들을 되살리는 비법은 대단했으니까.
게다가 혁련비광 놈들을 도와주던 무명의 고수들도 있었다. 그들의 실력도 만만치 않았다.
아마 혁련비광이 제대로 마음먹고 전력을 퍼부었다면, 최소한 무림맹이나 흑련 둘 중 하나는 바닥까지 끌어내릴 수 있었으리라.
그런 놈들보다 훨씬 대단한 것들이 아직 웅크리고 있었다.
그러니 현 무림만으로 무명을 막아낸다는 건 쉽지 않은, 아니,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벽태산은 굳이 그런 설명을 구구절절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의선은 그 분위기만으로 충분히 상황을 파악했다.
“진짜 보통 놈들이 아닌 모양이로군.”
“보통 놈이 아닌지 그런지는 더 겪어봐야 알지. 아직 뭐가 더 나올지 모르니까.”
그래서 더 재미있기도 하고 말이다.
“아무튼 난 천무련에서 무명 놈들만 막으면 되는 건가?”
벽태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중에서 사마위홍이 감당하지 못할 것 같은 놈들만.”
의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자신이 지나치게 개입하는 건 여러모로 부담스러웠기에 다행이라고 여겼다.
* * *
“무한에 간 놈들에게서는 아직 연락이 없나?”
심가의 가주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물었다. 간 지가 언제인데 아직 연락조차 없단 말인가.
문제가 생겼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이번에 보낸 놈들이 어떤 놈들인데 문제가 생기겠는가.
다만, 연락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기에 그냥 투덜거리고 넘어가는 것뿐이었다.
“아직 연락이 오기에는 시기가 좀 이릅니다. 우리만 보낸 것이 아니라 악가와 혁련가에서도 함께 보내지 않았습니까.”
총관의 대답에 심가의 가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의견 조율하느라 정신이 없긴 하겠군.”
이번 임무는 그들이 얼마나 잘 하느냐가 아니라, 세 가문이 각각 정보원들을 파견했기에, 그 관계를 조화롭게 조율하는 부분이 가장 중요했다.
사실 임무야 성공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했기에 그 부분에 관해서는 다들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번에 잘 맞춰보고, 그 경험을 토대로 적절한 규정을 만들어두면, 향후 함께 일을 진행할 때 굉장한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고 있을 때, 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가주님, 악가의 가주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악가주가? 접객실로 모셔라.”
“예.”
밖의 인기척이 멀어지자, 심가주는 총관을 바라보며 물었다.
“악가주가 갑자기 왜 찾아왔을까?”
“혁련가 때문 아니겠습니까?”
“하긴.”
심가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차피 만나면 알게 될 일, 굳이 시간이나 심력을 낭비할 필요가 없었다.
집무실에서 나간 심가주는 곧장 접객실로 향했다.
접객실에는 악가주가 조용히 앉아 차를 마시며 기다리는 중이었다.
심가주는 악가주와 마주앉았다.
“여긴 웬일이십니까? 이렇게 우리 가문에 직접 찾아오신 건 처음이로군요.”
심가주의 말에 악가주가 빙긋 웃었다.
“이제부터라도 자주 찾아오려고 합니다. 그게 서로 좋지 않겠습니까?”
심가주도 동의하는 상황인지라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면 저도 자주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심가주는 악가주를 지그시 바라봤다. 어서 오늘 찾아온 용건을 말하라는 뜻이었다.
“우리 무명은 세 가문이 균형을 이루며 지탱하고 있습니다.”
심가주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악가주가 말을 이었다.
“한데, 그 균형이 무너졌으니 마땅히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혁련가 때문입니까?”
악가주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혁련가가 너무 앞서 나가고 있습니다. 그들이 가진 힘이 너무 커졌습니다. 설마 천마신교에 손을 써뒀을 줄이야······. 게다가 준비하는 것이 또 있다고 하니 이대로 방치하면 나중에 감당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건 심가주 역시 충분히 생각하고 있었는지라 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어쩌자는 말씀이십니까? 혹시 악가에서는 따로 준비한 것이 있으십니까?”
“당연히 있긴 합니다. 혁련가보다야 못하겠지만. 그건 심가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저도 있긴 합니다. 하지만 천마신교에 비할 바는 아닌지라······.”
악가주가 고개를 저었다.
“천마신교는 당분간 생각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어차피 현천진에 막혀 오도 가도 못하고 있을 테니.”
“그렇지요. 하지만 혁련가에서 뭘 어떻게 준비했을지 모르니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심가주의 말에 악가주가 눈을 빛내며 제안했다.
“하면 일단 서로의 패부터 확인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아무래도 향후 오랫동안 손을 잡고 함께 가야 할 듯한데.”
“동의합니다.”
“제가 먼저 패를 뒤집도록 하지요. 제가 준비한 건 백혈궁입니다.”
“백혈궁? 그놈들은 이미 멸문하지 않았습니까?”
백혈궁은 아주 오래전 천마에게 멸문 당했다.
새외에서 제법 큰 세력을 자랑했는데, 천마신교를 간 본답시고 천마신교 소속 아녀자들을 간살하고, 월영단을 함정으로 끌어들이려다가 천마에게 걸려 몰살을 당한 머저리 같은 놈들이었다.
무명은 항상 천마신교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는지라 그 정도 큰 일이 일어나면 아주 빠삭하게 조사를 하곤 했다.
“멸문했었지요. 하지만 이젠 아닙니다. 당시 천마가 백혈궁을 지우긴 했지만, 살아남은 자들이 제법 있었습니다.”
살아남은 자들이 많은 건 백혈궁의 규모가 컸기 때문이다.
궁 내에 있던 자들은 전부 죽었지만, 외부로 나가 있던 자들은 다들 살아남았다.
하지만 그렇게 박살이 났으니 백혈궁을 유지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백혈궁은 자신들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모두를 핍박하고 패악을 일삼았다.
그러니 한 번 무너지기 시작하니 걷잡을 수 없었다.
백혈궁 주변의 모든 방파와 가문, 세력들이 백혈궁을 잡아먹으려 달려들었다.
“제가 거기에 살짝 손을 댔습니다.”
악가주는 백혈궁을 보호해주고, 그들을 되살렸다. 그리고 그들은 천마와 천마신교에 대한 증오를 밑거름삼아 빠르게 강해졌고.
악가가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으니 발전하는 속도도 어마어마했다.
심가주는 그 모든 얘기를 듣자 크게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좋은 패를 준비하셨군요. 대단합니다.”
심가주가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하면 이번엔 제가 패를 뒤집을 차례로군요.”
잠시 뜸을 들이던 심가주가 입을 열었다.
“묵검산장입니다.”
그 말에 악가주가 깜짝 놀랐다.
“묵검산장? 그게 정말입니까?”
심가주가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과 공을 좀 들였습니다.”
악가주가 이렇게 놀라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묵검산장은 십대고수를 둘이나 보유한 문파였다.
상당히 큰 규모의 문파였기에 십대고수 말고도 다수의 고수들이 소속된, 단일 문파로는 천하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문파였다.
물론 오대세가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묵검산장은 전통적으로 무림맹과 밀접한 관계에 있지 않습니까. 손에 넣기가 정말 만만치 않았을 터인데······.”
심가주의 입가에 드리운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그들이 무림맹과 친해진 건, 그것이 우리 심가의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허어. 대단하십니다. 이거 제가 백혈궁을 패로 꺼낸 것이 부끄러워지는군요.”
“무슨 그런 말씀을. 백혈궁은 새외 세력 중에 손꼽히지 않습니까. 다른 세력들과의 관계도 좋고 말입니다.”
그러니 백혈궁을 이용해 새외 세력들을 충동질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에 그들이 벌일 일도 그와 비슷하고 말이다.
“일단은······ 상황을 좀 살펴보도록 하시죠.”
“물론입니다. 어차피 천무련과 조만간 싸워야 하니, 그때를 기회로 움직이면 괜찮은 성과를 얻을 수 있을 듯합니다.”
지난번 심가가 주축이 되어 벌인 일은 실패했다. 그래서 무명 내부에는 다음 공격을 서둘러야 한다는 생각이 팽배했다.
조만간 제대로 준비해서 천무련을 치게 될 것이다.
천무련을 무너뜨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천무련과 오랫동안 싸울 전선을 구축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때 새외 세력이 준동하면 아마 제법 재미있어질 것이다. 더불어 내부에서는 묵검산장이 분란을 조장하고 말이다.
“이 정도면 혁련가를 견제할 수 있을까요?”
“모자랍니다. 아무래도 몇 가지 수를 더 준비해두는 것이 나을 겁니다.”
심가주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쉽지 않겠지만, 어떻게든 해내야지요. 죽 쒀서 혁련가 입에 전부 넣어버리면 곤란하니까요.”
“맞습니다. 적당히 나눠 먹어야지, 혼자 전부 삼키려다간 목구멍이 찢어지는 법입니다.”
두 사람은 그 뒤로 일상적인 대화를 잠시 나누다가 기분 좋게 헤어졌다.
그 뒤로 무명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무련에 대한 작업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 * *
“정말로 영력은 안 쓰는 거 확실히 해 두세.”
“안 쓴다.”
“믿겠네.”
의선은 그렇게 말하고는 슬그머니 영력을 움직였다. 영력이 의선의 몸을 꽉 채웠다.
의선의 표정에 자신만만함이 깃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