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318)
쩌어어어어엉!
불구슬이 의선의 손바닥 앞에서 맹렬히 회전했다.
그리고 사방으로 뜨거운 열기를 내뿜었다. 의선이 입은 옷자락에 불길이 확 일어났다.
하지만 그것이 옷을 전부 태우거나 의선의 몸에 화상을 입히지는 않았다.
딱 거기까지였다.
의선은 손에 영력을 담아 불구슬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아마 예전이라면 이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불구슬과 힘 싸움을 하다가 많은 영력을 소모했으리라. 결과도 불투명했을 테고.
의선은 불구슬을 부드럽게 자신의 영력으로 감쌌다.
엄청난 힘으로 밀고 들어오던 불구슬의 추진력이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불구슬은 이제 그저 허공에 둥실 떠 있을 뿐, 그 어떤 위협도 되지 않았다.
염제는 그 광경을 보고는 입을 쩍 벌렸다. 어떻게 저럴 수 있단 말인가.
저 불구슬이 어떤 건데, 저걸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다룰 수 있단 말인가.
의선이 그런 염제를 보며 말했다.
“이건 자네 것이니 도로 가져가게.”
그렇게 말하며 불구슬을 감싸고 있던 영력을 슬쩍 밀었다.
후웅.
영력에서 빠져나간 불구슬이 염제를 향해 날아갔다.
아까와는 달리 그리 빠르지 않은 속도였다.
불구슬이 자신에게 날아오자, 염제가 기겁을 했다.
저건 이미 자신의 손을 떠난 힘이다. 당연히 저걸 다시 받아들이는 건 불가능했다.
아무리 자신이라도 저기에 어설프게 손댔다가는 무사하지 못하리라.
염제가 얼른 몸을 날려 불구슬을 피했다.
하지만 불구슬은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방향을 바꿔 염제에게 날아갔다.
염제는 어쩔 수 없이 손을 펼쳐 그것을 막아냈다.
화르르륵!
거대한 불기둥이 일어났다.
염제의 영력이 만들어낸 불기둥이었다. 불구슬은 그 불기둥 안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고 있었다.
염제가 땀을 뻘뻘 흘리며 불기둥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불기둥의 지름이 점점 줄어들었다. 그리고 그 안에 갇힌 불구슬도 점차 힘을 잃어갔다.
이내 불기둥이 사라졌고, 불구슬도 함께 사라졌다.
그리고 염제가 갖고 있던 영력도 대부분 사라졌다.
염제는 허탈한 표정으로 의선을 바라봤다.
의선은 여전히 처음 그 자리에 선 채 염제를 보고 있었다.
“그래서, 자네 정말 날 아나?”
의선의 물음에 염제의 표정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속에서 뜨거운 불길이 화르륵 타오르는 것 같았다. 아니. 실제로 타오르고 있었다.
염제가 의선을 노려봤다.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
“그래, 모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제는 결코 잊지 못하게 해주마.”
그의 심상 깊은 곳에서 작은 불꽃 하나가 나타났다.
끝
염제는 과거 의선에게 당했던 한 번의 패배를 곱씹으며 지금까지 몸과 마음을 갈고 닦아왔다.
뜨거운 용암 위에서 살며 영력과 복수심을 뜨겁게 불태워왔다.
한데 그렇게 했는데도 의선을 따라잡지 못했다.
아니, 따라잡기는커녕 오히려 더 멀어졌다.
염제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으로 의선을 노려봤다.
의선이 저 정도일진데, 천마는 그럼 얼마나 더 대단하단 말인가.
어쩌면 무명은 헛된 세월을 낭비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래도 여기서 이렇게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최소한 저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서 있는 의선에게 한 방은 먹여줘야 하지 않겠는가.
염제의 심상 깊은 곳에 생겨난 작은 불꽃이 점점 크기를 키워갔다.
그리고 이내 그 불꽃이 심상을 가득 채웠을 때, 염제는 기합과 함께 그것을 영력에 녹여냈다.
“으아아아아압!”
염제의 몸이 불길에 휩싸였다.
화르르륵!
처음 의선을 만났을 때 일으켰던 불과는 전혀 다른 불길이었다.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뜨거운 불꽃이 염제의 몸에서 확 솟구쳤다.
그 불꽃은 순식간에 범위를 넓혔다.
화르르르륵!
불꽃은 이내 거대한 불의 장벽이 되었다. 그리고 마치 현천장 전체를 집어삼키겠다는 듯 세력을 급격히 확장했다.
의선은 그걸 보며 당황했다
저 불은 그냥 불이 아니었다. 염제의 모든 것이 담긴 불이었다.
당연히 쉽게 끌 수 없다. 그리고 위험하다.
더 이상 염제는 여기 없었다. 저 불에 모두 녹아든 것이다.
이 불은 염제 그 자체였다.
염제는 자신의 목숨을 담아 여기를 불태워 버리려 한 것이다.
의선이야 도망치면 못 잡겠지만, 그래도 이곳, 현천장은 없앨 수 있지 않겠는가.
의선이 영력을 일으켜 불을 진압하려 했다. 하지만 이번 불은 조금 전 상대했던 불구슬과는 아예 달랐다.
의선이 일으킨 영력이 크게 펼쳐지며 불길을 막으려 했다.
한데 거대한 불의 장벽에서 불꽃이 확 튀어나오더니 그 영력을 잡아먹어 버렸다.
그러자 마치 불에 검불이라도 던져 넣은 것처럼 불길이 더욱 크게 타올랐다.
의선이 당황하고 있을 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재미있는 것이 왔구나.”
의선이 반가운 표정으로 뒤를 돌아봤다.
벽태산이 거기 서 있었다.
평소에는 만나면 심장이 떨어지는 것처럼 흠칫흠칫 놀라곤 하는데, 오늘은 정말 반가웠다.
벽태산은 의선을 슥 지나쳐 불의 장벽 앞으로 갔다.
이 불은 영력 그 자체이기도 하고 염제 그 자체이기도 했다.
염제의 육체와 혼백은 이미 없었다. 이 불을 만드는데 소모된 것이다.
벽태산은 가만히 불을 살펴봤다.
이 안에는 염제뿐 아니라 의선의 영력, 그리고 현천장에 흐르는 영력까지 복잡하게 담겨 있었다.
그 모든 것이 강렬한 하나의 의지로 묶인 것이다.
전부 불태워 버려라.
불이 타오르는 소리가 마치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벽태산은 고개를 슬쩍 돌려 의선을 쳐다봤다.
의선은 기대감이 깃든 눈으로 벽태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눈이 마주쳤다.
움찔 몸을 떤 의선은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요즘 따라 더더욱 벽태산과 눈을 마주치기 어려웠다.
“이제 이 정도는 할 수 있지 않나?”
벽태산의 말에 의선의 눈이 커졌다.
저 말이 무슨 뜻일까? 설마 자신도 저렇게 영력이 깃든 불이 될 수 있다는 뜻인가? 아니면 저 불을 처리할 수 있다는 뜻일까?
“거기 계속 서 있을 건가?”
벽태산의 말에 의선이 후다닥 다가갔다.
가까이 가니 불의 장벽에서 뿜어지는 열기가 확 덮쳐왔다.
그냥 열기가 아니라 영력의 힘이 담긴 열기였다.
아마 보통 사람은 이런 열기에 닿으면 그대로 증발해 버리리라.
의선의 표정이 굳었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위험한 불이었다.
“이걸 이대로 방치하면 안 되네. 우리야 괜찮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은······.”
“방치한 걸로 보이느냐.”
벽태산의 말에 의선은 그제야 불의 장벽을 전체적으로 살펴봤다.
워낙 거대해서 전체를 보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장벽의 끝이 어딘가에 막힌 듯 맹렬히 꿈틀거리기만 할 뿐,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건 금방 알 수 있었다.
의선은 괴물 보듯 벽태산을 바라봤다.
저걸 어떻게 저리도 간단히 막을 수 있단 말인가. 영력까지 전부 집어삼키는 아귀 같은 불길을.
의선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다시 한 발 불벽에 다가갔다.
그리고 뜨거운 불길에 과연 무엇이 담겼는지, 벽태산은 도대체 무엇을 보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집중했다.
처음에는 그저 영력이라는 것과 불의 성질을 품고 있다는 것 외에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집중한 채 시간이 흐르니 차츰차츰 무언가 보이기 시작했다.
어렴풋하게 불꽃이 흘리고 있는 작은 혼백의 알갱이들을 포착한 것이다.
‘복수, 원념, 갈증, 허기.’
그뿐 아니라 더 다양한 감정들이 느껴졌다. 영력 자체가 굉장히 복잡했다.
의선은 영력을 살짝 일으켜 불에 밀어 넣었다.
화르륵!
불꽃이 일어나 영력을 삼켰다.
그렇게 삼켜진 영력은 그대로 불벽의 것이 되었다. 잘게 쪼개져 복합적인 감정와 성질로 나뉘어 흡수된 것이다.
의선은 집중해서 그 과정을 파악했다.
처음에는 모호하던 개념이 점점 확실하게 자리를 잡아갔다.
그리고 이내 무언가 작은 깨달음 하나를 얻었다.
“허어.”
의선은 나직이 탄성을 흘렸다. 그리고 집중에서 깨어났다.
“끝난 모양이구나.”
벽태산의 말에 의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고 벽태산 만큼은 아니지만 영력의 성질을 바꾸는 일을 흉내나마 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럼 해봐라.”
벽태산이 그렇게 말하며 한 발 물러났다.
의선은 불의 장벽으로 바짝 다가가 거기에 손바닥을 갖다 댔다.
화르르륵!
불이 의선의 팔을 타고 올라왔다.
하지만 의선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손바닥을 통해 영력을 쏟아냈다.
평소의 영력이 아니었다. 굉장히 복잡한 속성을 가진 영력이었다.
장벽의 불꽃은 그 영력을 삼키지 못했다.
영력이 지나간 곳의 불이 사라졌다.
하지만 영력이 워낙 작았기 때문에 효과는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런데도 의선은 영력을 더 넣지 않고 그저 영력을 다루는 일에만 집중했다.
영력이 움직이면서 천천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주변의 불이 영력으로 소용돌이치며 빨려 들어왔다.
화르르르륵!
불의 장벽이 거세게 저항했다. 하지만 불길의 흐름을 바꾸지 못했다.
의선이 불의 장벽 안으로 넣은 영력의 덩어리는 그저 단순한 영력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의선의 의념이 강하게 깃들어 있었다. 또한 영력이 한껏 응축되어 있었다.
영력으로 빨려 들어온 불은 그대로 소멸되었다.
화르르르륵!
불의 장벽이 천천히 줄어들었다.
벽태산이 장벽을 가둬두지 않았다면 이렇게 간단히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불의 장벽이 워낙 컸기 때문에 가운데 조금 없앤다고 큰 타격은 아니었을 테니까.
그저 가운데를 뚝 떼어서 던져주고 밖으로 도망치면 된다. 만일 그렇게 되었다면 무한에 재앙이 내렸으리라.
의선은 마음껏 새로 얻은 깨달음을 써먹었다.
이렇게 벽태산이 도와주고 있을 때 못 해보면 언제 이런 귀중한 경험을 해보겠는가.
지금 의선이 하는 것은 영력에 소멸의 속성을 담는 일이었다.
아주 성공적이었다.
불의 장벽은 시간이 지날수록 쪼그라드는 속도가 빨라졌다.
그리고 이내 마지막 불꽃을 화려하게 피우고는 소멸해 버렸다.
그곳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불꽃도 염제도.
의선은 어떠냐는 듯 벽태산을 바라봤다.
약간 의기양양한 표정이었고, 어깨도 살짝 올라가 있었다.
벽태산은 의선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손바닥을 위로 해서 살짝 들어올렸다.
의선이 이건 또 뭔가 싶어서 벽태산의 손바닥을 바라봤다.
그러자 손바닥 위에서 작은 불꽃 하나가 훅 떠올랐다.
의선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방금 자신이 없앤 그 불꽃과 정말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영력으로 이루어진 건 말할 필요도 없고, 불꽃 안에 굉장히 복잡한 속성이 담겨 있었다.
벽태산은 그 불꽃을 의선에게 휙 던져주었다.
의선은 깜짝 놀라 뒤로 주춤 물러났다.
의선 앞 허공에 불꽃이 둥둥 떠 있었다.
“숙제다.”
벽태산은 그 말을 남기고 돌아섰다.
아직 밥도 못 먹었다. 시비들이 열심히 밥을 차려줬는데, 젓가락도 못 건드리고 여기에 온 것이다.
물론 꼭 그래서 의선에게 숙제를 내준 건 아니었다.
벽태산은 성큼 걸어 그 자리에서 사라져 버렸다.
의선은 멍하니 벽태산이 있던 자리와 자신 앞에 떠 있는 불꽃을 번갈아 바라봤다.
혹시나 싶어서 방금 불의 장벽을 없앴던 것처럼 영력을 뽑아내 불꽃에 갖다 대봤지만, 역시나 불꽃이 영력을 잡아먹어 버렸다.
대체 이걸 어떻게 없앤단 말인가.
이제 간신히 걸음마를 떼었는데, 왠지 이건 뛰지 않으면 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해가 지기 전까지 끝내야 하는데······.”
의선은 백화루에서 기다리고 있을 능설을 떠올리며 어금니를 꽉 물었다.
무조건 해낼 것이다.
* * *
무림맹주와 흑련주는 혼천마, 검귀와 함께 있었다.
그래서 기대도 되고, 안심도 됐다.
적어도 이들과 함께 한다면 어설픈 적을 상대하지는 않을 테고, 또한 이들과 함께라면 웬만해선 죽을 일도 없을 테니까.
“의선 어르신도 계실 줄 알았는데, 좀 의외이기 하군.”
무림맹주의 말에 흑련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우리가 제일 강한 자들을 상대할 듯한데, 의선 어르신이 안 계신 것이 좀 이상하긴 하군.”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혼천마가 말했다.
“진짜 대단한 놈이 하나 왔다.”
그 말에 다들 혼천마를 바라봤다.
“아까 슬쩍 봐뒀지. 아주 오싹오싹 하더군.”
이길 자신이 없는 자였다. 아마 의선은 그자를 상대하러 갔을 것이다.
“의선 어르신이라면 뭐, 누구든 잘 막아내시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