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319)
검귀가 그렇게 말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의선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건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그렇겠지. 한데······ 그놈 뭔가 느낌이 묘했다.”
“어떻게 말입니까?”
검귀의 물음에 혼천마가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뭔가 위험한 예감이 들었어.”
그 말이 왠지 아무리 의선이라도 자칫하면 당할 수 있다는 의미로 들렸다.
다들 놀란 눈으로 혼천마를 바라봤다. 그러자 혼천마가 피식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그냥 개인적인 느낌일 뿐이다. 잘 맞지도 않고.”
그때 저 멀리서 일단의 무리가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거리가 멀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이곳에 있는 네 사람의 감각이 닿아 있는 곳이었다.
한데 마치 땅에서 솟아나기라도 한 것처럼 기척들이 불쑥 나타났다.
“여기 진법은 정말 이상하고 대단하군.”
무림맹주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하자, 흑련주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하다면 우리 흑련에도 꼭 하나 설치하고 싶어.”
“나도 마찬가지일세.”
그러는 사이 십여 명쯤 되는 노인들이 다가왔다.
그걸 본 혼천마가 눈을 번득였다.
“호오. 전부 영력을 품고 있군.”
“게다가 강합니다.”
혼천마와 검귀의 대화를 듣고 있던 무림맹주와 흑련주가 앞으로 나섰다.
자신들이 여기에 와서 얼마나 더 강해졌는지 제대로 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오늘은 정말 미친 듯이 싸워볼 생각이었다.
저들은 그러기에 딱 적당한 상대였다.
무림맹주와 흑련주가 막 달려들려는데, 뒤에서 혼천마가 말했다.
“조심해야 할 거야. 저놈들 상태가 정상이 아니야.”
정상이 아니라는 말에 무림맹주와 흑련주가 동시에 고개를 돌려 혼천마를 바라봤다.
“싸우는 중간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정신 바짝 차리고 싸우라고.”
“알겠소.”
무림맹주와 흑련주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노인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 노인들이 먼저 네 사람에게 달려들었다.
무림맹주와 흑련주는 당황하지 않고 노인들을 상대했다.
굉장한 강자들이었지만, 무림맹주와 흑련주도 만만치 않았다.
게다가 이쪽에는 혼천마와 검귀가 있다.
양 측이 거칠게 부딪쳤다.
꽈아앙!
강렬한 폭음과 함께 싸움이 시작되었다.
노인의 수가 훨씬 많았지만 이쪽 네 사람이 싸움의 흐름을 장악하고 이끌어갔다.
무림맹주와 흑련주는 특히 더 열심히 싸웠다.
노인들이 워낙 고수인지라 매 순간이 위험했다. 하지만 무림맹주와 흑련주는 그 위험을 계속 넘어서며 싸움을 이어갔다.
그 아슬아슬함이 두 사람의 집중력을 점점 더 높였다.
두 사람은 싸움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싸움에 푹 빠져 버렸다.
무아지경에 든 것이다.
혼천마와 검귀는 약간 떨어진 곳에서 싸우다가 그걸 보고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저놈들 무림맹주랑 흑련주 맞아? 그런 자리에 있는 놈들이 무슨 싸움을 저따위로 오늘만 살 것처럼 해?”
무아지경에 들었으니 아마 이 싸움이 끝나고 나면 훌쩍 성장할 것이다.
혼천마는 부러움 반, 귀찮음 반 뒤섞인 눈으로 두 사람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어쩌겠는가. 저러다 죽으면 공자님 뵐 낯이 없으니 보호해주는 수밖에.
혼천마와 검귀는 노인들을 적극적으로 공격하는 것에서 무림맹주와 흑련주를 보호하는 쪽으로 싸움의 방향을 바꾸었다.
어차피 공격은 저 두 사람이 할 테니까.
저 두 사람을 잘 보호하기만 하면 이 싸움은 이긴 거나 다름없었다.
아마 싸우는 도중에도 계속 성장할 것이다.
싸움이 점점 더 무르익어갔다.
그렇게 무명과 현천장의 싸움이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끝
현천장에서의 싸움은 거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대부분 힘들게 싸웠다. 굉장히 치열하게 목숨을 걸고 싸운 것이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거나 의지의 힘으로 벽을 돌파해 성장한 자들이 제법 많이 나왔다.
중요한 것은 피해였다.
일단 현천장 쪽은 한 명도 죽지 않았다.
다만 다친 사람은 제법 많았다.
목숨을 걸고 치열하게 싸웠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도 재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다친 사람은 없었다. 다들 길든 짧든 치료를 거치면 완벽하게 회복할 수 있었다.
게다가 현천장이 어떤 곳인가.
여기에는 천추신의와 일침괴가 있다. 심지어 지금은 의선까지 있다.
의선의 제자인 소청명도 있고, 천약방까지 있다.
사실 즉사만 하지 않는다면 죽는 일이 더 어려울 것이다.
무명의 무사들은 칠 할이 죽었고, 삼 할은 사로잡았다.
사로잡은 자들은 하오문의 감시 아래 뇌옥에 가둬두었다.
아직까지 싸움이 진행 중인 곳은 무림맹주와 흑련주, 혼천마, 검귀가 싸우는 곳이었다.
사실 더 일찍 끝날 수 있는 싸움인데, 무림맹주와 흑련주 때문에 싸움이 좀 길어졌다.
이제 그곳의 진법은 사라졌다.
천뇌각에서 이곳의 싸움이 더 이상 주변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거라 판단해 진법을 없앤 것이다.
안 그래도 진법에 부담이 많이 가서 계속 유지하다가는 진법 자체가 망가질 가능성이 있었다.
아직까지는 그저 손만 조금 보면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었기에 지금 거두는 것이 맞았다.
진법이 사라졌으니 이제부터는 건물이나 조경이 다칠 수 있지만, 남은 싸움이 일어나는 곳은 그런 걸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넓은 공간이었기에 괜찮았다.
그렇게 진법이 사라지자, 네 사람과 무명의 노인들이 싸우는 모습이 드러났다.
그리고 좀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싸움을 구경하기 위해 여기로 온 사람들이 서 있었다.
아무래도 현재 현천장에서 의선을 제외하면 최고수들의 싸움이니 지켜보다 보면, 무언가 얻을 게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무림맹주와 흑련주는 여전히 몸을 내던지며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혼천마와 검귀가 두 사람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면서 싸웠고.
무명의 노인들은 혈기를 폭발시키며 거칠게 손발을 휘둘렀다.
그들의 상태는 굉장히 심각했다.
당장 폭발해도 이상할 게 하나도 없는 상태였다.
싸우는 와중에 이미 혈령이 한껏 자극되어 굉장히 불안정해졌다.
한데 거기에 무림맹주와 흑련주가 영력 섞인 공격을 연이어 퍼붓고 있으니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혈령이 흔들렸다.
그 상태를 제대로 알아볼 수 있을 만한 눈이 아직 혼천마나 검귀에게는 없었다.
그냥 가만히 서 있다가 저랬으면 최소한 혼천마는 알 수도 있었겠지만, 이렇게 격렬하게 싸우는 와중에 그걸 알아차리는 건 아직까지 불가능했다.
그러니 저렇게 뒤를 생각하지 않고 싸우는 것이다.
저러다 혈령이 폭발해 버리면 아마 한두 명 죽는 걸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아직 싸우고 있는 노인의 수는 일곱 명이나 됐다.
나머지는 바닥에 쓰러져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있는 자들이 몇 명 있었다.
게다가 일단 혈령이 폭발하고 나면, 죽은 노인들이 품고 있던 혈령들까지 반응해서 연쇄적으로 터질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막대한 폭발력이 나오겠는가.
한 명만 폭발해도 이 주변을 싹 휩쓸어 버릴 정도로 강력했다.
저들이 전부 터지면 적어도 현천장의 삼 할은 날아간다고 봐야 한다.
당연히 이 근처에서 구경하고 있던 자들도 전부 폭발에 휘말려 죽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한창 싸우고 있는 곳에 의선이 나타났다.
벽태산이 내준 숙제를 열심히 하고 있던 의선은 벽태산이 준 불꽃을 자신의 영력을 이용해 따라오게 만드는 법을 알아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자리를 이동했다. 언제까지 거기 서서 불꽃만 노려보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아무튼 정말로 조심해야 한다. 이 불꽃은 그냥 불꽃이 아니라 영력의 불꽃이다.
게다가 모든 걸 집어 삼켜버리는 아귀 같은 놈이었다.
이놈을 소멸시킬 수 있어야 하는데, 당장은 답이 안 나오니 어쩌겠는가. 그냥 달고 다니면서 궁리를 계속 해야지.
의선이 굳이 불꽃을 없애지 못한 상황에서 이렇게 서둘러 자리를 뜬 것은 진법이 걷혔기 때문이다.
진법이 걷히면서 무림맹주와 흑련주가 싸우는 곳의 기운이 그대로 감지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렁이는 위험도 함께 감지되었다.
아마 신경 쓰지 않아도 벽태산이 알아서 처리하겠지만, 의선은 자신이 직접 그것을 확인해보고 싶었다.
할 수 있다면 자신이 처리하고 싶기도 했고.
그래서 이렇게 왔다. 허공에 둥둥 뜬 불꽃을 달고서.
의선은 싸우는 광경을 유심히 바라봤다.
사실 모든 신경을 거기에 집중할 수는 없었다. 일부를 남겨 불꽃을 조절해야 했으니까.
이 불꽃은 그냥 알아서 따라오는 게 아니었다. 의선이 나름대로 영력을 흘려줘야 그걸 타고 따라왔다.
만에 하나라도 이걸 놓치면 큰일이기에 끊임없이 신경을 써줘야 했다.
불꽃은 의선의 가슴과 한 뼘 정도 거리를 두고 떠 있었다. 다른 사람이 손대면 안 되니 그렇게 가까이 둔 것이다.
의선은 싸움을 지켜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상황을 파악했다. 아직까지는 괜찮지만, 이대로 싸움이 진행되면 이 근방이 전부 날아가 버릴 것이다.
“구경꾼들을 돌려보내야 하나?”
의선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다들 어찌나 초롱초롱한 눈으로 싸움을 지켜보는지 차마 돌아가라는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또한 자신이 굳이 개입해서 싸움을 그냥 끝내 버릴 수도 없었다.
그건 모두의 가능성을 차단해 버리는 잔혹한 일이다.
의선은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는 영력 한 가닥을 뽑아냈다.
과연 자신이 그 정도로 세밀하게 영력을 다룰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시도는 해볼 생각이었다.
자칫해서 혈령을 자극해 더 빠르게 터트릴 수도 있지만, 의선의 영력은 그런 쪽으로는 또 제법 괜찮은 성질을 갖고 있다.
아마 혈령이 터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실처럼 가느다란 영력이 하늘하늘 날아가 싸우는 노인 중 한 명의 몸에 달라붙었다.
의선의 영력이 워낙 희미하기도 했고, 한창 싸우는 와중이라 감지하기 어려웠던 점도 있기에 의선의 영력은 별다른 방해 없이 노인의 몸에 달라붙어 안으로 파고들었다.
몸에 붙는 거야 그렇다 치고, 안으로 들어가는 건 얘기가 좀 달랐다.
노인이 그제야 알아차리고 흠칫 놀란 것이다.
하지만 싸움이 워낙 흉험한지라 계속 거기에 신경을 빼앗길 수는 없었다.
그러는 사이 몸으로 파고든 의선의 영력이 노인의 혈령에 닿았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거칠게 흔들리는 혈령을 의선의 영력이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혈령이 안정되었다.
의선의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성공이다.
의선은 그런 식으로 싸우는 노인들의 혈령을 안정시켰다.
심지어 바닥에 쓰러진 노인들의 혈령까지 전부 안정시켰다.
저들의 몸에는 이제 의선의 영력이 확고히 자리 잡았다.
그 얘기는 의선이 의지를 일으키는 것만으로 저들의 영력을 소멸시킬 수도 있다는 뜻이다.
물론 의선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일단 저들의 싸움이 끝날 때까지는 기다려줄 생각이었으니까.
그때, 등 뒤에서 벽태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법이구나.”
의선은 화들짝 놀라 휙 하고 뒤로 돌았다.
“노, 놀랐지 않나! 기척 좀 내고 다니게!”
벽태산은 대답 대신 의선을 가만히 쳐다봤다.
기척이야 충분히 냈다. 의선이 눈앞의 성공을 즐기느라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
물론 기척이 지극히 미약하긴 했지만, 어쨌든 낸 건 낸 거다.
벽태산의 시선이 의선의 가슴 어림에 있는 불꽃으로 향했다.
의선은 마치 벽태산이 숙제도 안 하고 여기서 뭐 하는 거냐고 추궁하는 것 같아 자신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들었다.
“저건 하면서 이건 왜 못하는지 모르겠군.”
벽태산은 그렇게 말하고는 돌아서서 성큼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대로 사라졌다.
의선은 멍하니 벽태산이 있던 자리를 바라보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가슴 어림에 떠 있는 불꽃을 조금 더 밀어낸 다음, 거기에 집중했다.
영력을 일으켜 불꽃을 부드럽게 감쌌다.
방금 노인들의 몸에서 혈령을 다루던 감각을 떠올리면서 불꽃을 감싼 영력을 조였다.
퍽!
불꽃이 소멸했다.
의선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해냈다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마치 짜 맞추기라도 한 듯, 무림맹주와 흑련주, 혼천마와 검귀의 싸움도 끝났다.
노인들 중 절반이 죽었고, 나머지 절반은 쓰러져 있었다.
하오문도들이 우르르 달려가 노인들을 꽁꽁 묶었다.
이미 혼천마가 영력을 이용해 혈도를 제압했기에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지만, 하오문도들은 노인들의 실력을 봤기에 허투루 할 수 없었다.
무림맹주와 흑련주는 바닥에 주저앉아 호흡을 고르고 있었다.
혼천마와 검귀는 두 사람에 비하면 상태가 좀 나았다. 그래도 워낙 힘든 싸움이었는지라 그리 편안해 보이지는 않았다.
의선은 쓰러진 노인들을 살펴봤다. 혈령이 아주 명확히 느껴졌다.
천천히 손을 들어올린 의선이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자 노인들의 몸속에 자리 잡은 혈령들이 일제히 소멸되었다.
의선은 또 한 번의 성공에 빙긋 웃었다. 그리고는 주저앉아서 쉬고 있는 네 사람에게 다가갔다.
“수고했네. 보아하니 이 싸움으로 얻은 것이 좀 있는 모양이로군.”
의선의 말에 무림맹주와 흑련주가 빙긋 웃었다.
“예.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무림맹주와 흑련주가 그렇게 말하자 의선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말 하지 말게. 정말로 그게 운이라고 생각하나?”
무림맹주와 흑련주는 입을 다물었다. 당연히 운이 아니다. 자신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노력했는데 그게 운이겠는가.
노력에 따른 보상이지.
하지만 고작 노력만으로 이렇게 될 수 있다면 천하는 고수로 넘쳐날 것이다.
거기에는 현천장의 도움이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한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 거라 믿네.”
그 말에 무림맹주와 흑련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안다. 아마 무림맹과 흑련은 앞으로 현천장과 굉장히 긴밀한 관계가 될 것이다.
맹주와 련주가 직접 나서서 챙기는데 그렇게 안 되는 것이 더 이상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래서 더 걱정이다.
무림맹주와 흑련주는 바보가 아니다. 현천장에서 제법 오래 지냈는데, 현천장의 힘을 모를 수 있겠는가.
현천장은 지금 이대로도 천하제일장이다.
아마 무림맹이나 흑련도 현천장과 싸우게 된다면 이기기 어려우리라.
한데 무림맹과 흑련이 현천장에 더 힘을 실어주면 과연 나중에는 어찌 되겠는가.
어쩌면 그 누구도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괴물이 되지 않을까?
“뭐, 알아들었으면 됐네.”
의선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돌아서서 자리를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