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39)
그랬다가 벽태산이 방해된다고 짜증이라도 내면 곤란하니까.
어느새 그들은 자신들의 모든 생활과 생각을 벽태산에게 맞춰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조용한 걸 도저히 참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천추신의였다.
그는 몇 번이나 몸을 비비 꼬더니 결국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대충 일정이라도 짚어봐야 하는 거 아닐까? 당장 오늘 어디서 묵을지도 정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아니, 이동을 계속 마차로만 하는 건가? 사실 의창이면 물길을 이용하는 게 훨씬 편하지 않나?”
“요즘 수적이 기승이라서 차라라 마차가 낫다고 합니다.”
유서연이 대답하자, 천추신의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마차 안을 슥 둘러봤다.
“별로 수적 신경 안 써도 될 거 같은데?”
일단 이곳에 있는 일침괴 혼자 나서도 웬만한 수채는 통째로 부숴버릴 수 있었다.
아니, 일침괴까지 나설 필요도 없다. 천경완과 유서연 정도면 웬만한 수적은 떼로 몰려와도 물고기밥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함께 탄 세 명의 시비도 그리 만만치 않다.
물론 아직 무공을 수련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익힌 무공이 워낙 뛰어난지라 수적 한둘 감당하는 정도는 충분하리라.
‘그리고······.’
천추신의의 시선이 벽태산을 슬쩍 훑고 돌아왔다.
벽태산이 일침괴와 싸우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솔직히 강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정도인 줄은 몰랐다.
물론 그렇게 싸운 다음에 후유증에 살짝 시달리는 것 같긴 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일침괴를 한 방에 잠재운 벽태산까지 있다.
일행의 면면이 이러한데 무슨 수적을 두려워한단 말인가.
오히려 수적을 걱정해 줘야지.
‘그나저나 저 양반은 뭔 눈치를 저렇게 봐?’
천추신의는 조금 떨어진 곳에 앉은 일침괴를 힐끗 쳐다봤다.
일침괴는 불안한 시선으로 벽태산을 힐끔힐끔 살폈다.
하는 꼴을 보니, 꼭 동네 형에게 괴롭힘 당하는 어리바리한 꼬맹이 같았다.
천추신의는 생각난 김에 마차에 탄 사람을 하나하나 살펴봤다.
세 명의 시비는 벽태산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눈도 거의 깜빡이지 않았다.
‘하여간 나와서도 똑같구나.’
벽태산의 시비들은 오직 벽태산만 바라보고 사는 걸로 유명했다.
지금도 혹시 벽태산이 불편할까봐 계속 살펴보는 중이었다.
저기서 그나마 좀 나은 사람이 소소인데, 오늘 보니 소소도 정상은 아닌 것 같았다.
유서연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표정으로 가만히 앉아 있었다.
하지만 천추신의는 분명히 볼 수 있었다. 그녀의 눈빛에 깃든 집착을.
요즘 제일 무서운 사람이 바로 저 유서연이었다.
‘그나저나 아직 그 독은 안 썼나?’
유서연이 독을 달라고 했을 때, 약간 꺼림칙하긴 했지만, 적당량을 넘겼다.
그렇게 위험한 독도 아니고, 당시 독을 달라던 유서연의 표정이 좀 무섭기도 했다.
아무튼 그렇게 넘겼는데, 과연 그걸 어떻게 쓸지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뭘 기다리는지 몰라도 아무튼 제법 볼 만할 것이다.
“아, 그런데 연가장에서도 호무련에 가는 사람이 있다고 들었는데, 아닌가?”
천추신의가 유서연을 보며 물었다.
유서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아가씨가 가기로 했습니다.”
“아가씨? 연하린 소저 말인가?”
“예.”
천추신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넌 원래 그쪽 호위무사 아니었나? 거기 안 가봐도 돼?”
“괜찮습니다. 그리고······ 제 임무는 여기 있는 겁니다.”
유서연은 그렇게 말하며 벽태산을 바라봤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벽태산의 아름다운 시비들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그녀의 임무는 벽태산을 지키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 임무는 별 의미가 없었다.
이제 그녀가 맡은 임무는 벽태산에게 접근하는 여자들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물론 그렇게 해달라고 연하린이 부탁한 건 아니었다. 그저 스스로 알아서 맡은 임무였다.
연하린은 그저 벽태산을 걱정할 뿐이다.
“연가장에서 따로 유능한 호위를 붙였을 겁니다.”
천추신의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연가장에서 호위를 붙이긴 했지. 하지만 그 호위 전부 다 합해도 너 하나만 못할 것 같은데?”
“그럴 리가요. 연가장은 생각보다 저력 있는 무가입니다.”
또한 연하린의 실력도 만만치 않았다.
천추신의는 유서연을 가만히 쳐다봤다.
‘아무래도 자기 실력을 제대로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군.’
최근 유서연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강해졌다. 천경완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 실력을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천경완밖에 없으니 자기 실력을 제대로 가늠하지 못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연하린 소저와 동행하는 자들이 있다는 건 알고?”
유서연이 서늘한 눈으로 천추신의를 바라봤다.
“동행이라 하심은······.”
“연가장에 최근 손님이 잔뜩 방문한 건 알고 있나?”
“모릅니다.”
“그 얘기까지는 못 들은 모양이군. 서문세가, 구양세가, 추가장에서 사람을 보냈다. 아마······ 다들 셋째라고 들었는데 확실치는 않고.”
“쟁쟁한 가문들이로군요.”
“제법 힘깨나 쓰는 가문이긴 하지.”
천추신의의 시선이 이번에는 벽태산에게로 향했다.
연하린이 벽태산의 정혼녀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그놈들이 열심히 껄떡대고 있는 모양이던데······.”
유서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듣기로 배를 타고 간다더라고. 힘깨나 쓰는 가문이 모였으니 웬만한 수적은 깃발만 봐도 도망칠 테고.”
유서연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벽태산을 바라봤다.
벽태산은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앉아 있었다.
“그렇게 봐도 소용없다. 우린 처음 계획한 대로 이동할 거니까.”
벽태산의 말에 유서연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감정이 흔들리는 바람에, 눈을 감고 있으면서 자신이 보는 걸 어떻게 아는지에 대해서는 생각도 못했다.
이들의 이동 계획은 마차를 타고 형주 근처까지 간 다음, 거기에서 배를 타고 의창까지 이동하는 거였다.
“그래도 우리가 더 빠르다.”
이어진 벽태산의 말에 유서연이 고개를 번쩍 들고 그를 바라봤다.
하지만 벽태산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당연히 눈도 뜨지 않았고.
마차는 제법 빠른 속도로 꾸준히 달리고 있었다.
* * *
“대체 내 아들이 어디가 못나서 거절했답니까?”
채미령이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벽천일을 노려봤다.
하지만 벽천일이라고 뾰족한 수가 있었겠는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일침괴가 선택한 일인데.
일침괴는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사람이다. 그를 거슬리게 했다간 무슨 짓을 할지 예측할 수가 없었다.
솔직히 그 일침괴에게 이번 호무련에 가는 데에 벽제혁을 데려가 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솔직히 죽을 각오까지는 아니어도 어디 몇 군데 부러질 각오는 했다.
다행스럽게도 일침괴는 담담히 거절했다.
“둘째 공자의 병에 흥미가 생긴 모양입니다. 고칠 때까지 붙어 있겠다고 하는데 제가 수를 쓸 방법이 없었습니다.”
“잘 생각해 보세요.”
채미령이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쓰며 차분히 말했다.
“벽태산 그놈의 병이 낫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벽천일은 쓴웃음만 지을 뿐 뭐라 대답할 수가 없었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벽태산의 마음에 따라 달라지지 않겠는가.
만일 벽태산이 별 생각 없다면 벽제혁이 금벽상단을 물려받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치열한 권력다툼이 벌어질 것이다.
벌써부터 금벽상단의 요직에 앉은 사람들 사이에서 벽태산에 대한 얘기가 회자되고 있었다.
“제가 잘 처리해 달라고 예전에 몇 번이나 부탁을 드렸는데, 아직도 멀쩡한 것도 모자라 병이 점점 호전되고 있네요?”
“이제 제 손을 떠난 것 같습니다.”
벽천일이 살짝 고개를 숙이며 그렇게 말했다. 실제로도 그랬다. 벽태산에 대한 일은 이제 그의 손을 떠났다.
하지만 채미령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죠. 아직 그 손에 있어요. 설마 이렇게 쉽게 손을 털 수 있을 거라 여긴 건가요? 제가 그걸 그냥 두고 보겠어요?”
채미령이 빙긋 웃었다.
그리고 벽천일의 표정이 굳었다.
“제가 나름대로 추진하던 일이 있는데, 그걸 좀 마무리 해주셔야겠어요.”
“추진하시는 일이라면······.”
“병들어 죽었으면 좋겠는데 건강해지고 있으니 어쩌겠어요? 그냥 눈앞에서 치워버려야지.”
벽천일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채미령은 그걸 보며 담담히 말했다.
“그런 표정 지으실 거 없어요. 나도 독한 수를 쓸 생각은 없으니까. 조만간 표국 사업을 새로 시작하는 거 알고 있죠?”
“예.”
최근 천금련의 목을 죄기 위한 여러 작업들이 진행 중이었다.
그 중 하나가 새로운 표국 사업이었다.
천금련의 가장 큰 자금줄 중 하나인 청룡표국을 직접적으로 견제하기 위해 벌이는 일이었다.
상당한 준비를 했고, 투자도 많이 했다.
다들 성공을 확신하고 있기에 어떻게든 한 발 걸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거기에 벽태산을 밀어 넣어요.”
“예? 정말로 그걸 원하십니까?”
“그래요.”
벽천일이 멍하니 채미령을 바라봤다.
솔직히 거기에 벽제혁을 넣으려는 줄 알았다.
현재 청룡표국의 상태가 워낙 안 좋아서 경쟁 표국이 근처에 생기면 아마 더 버티기 어려울 것이다.
들이는 노력에 비해 얻는 것이 많은 기회인데, 그걸 벽태산에게 준다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거 성공하지 못할 거예요.”
“예?”
“더 자세한 건 스스로 알아내 보세요.”
벽천일의 표정이 굳었다.
“그 정도 능력은 보여줘야 차기 조서각주 자리에 어울리지 않겠어요?”
벽천일은 화사하게 웃는 채미령의 얼굴이 왠지 무서웠다.
────────────────────────────────────
못보던 분들이 계시네요
연가장 일행은 커다란 배를 타고 이동 중이었다.
커다란 배를 다섯 척이나 동원했는데, 한 척의 배에 주요 인물이 모여 있고, 나머지 배에 호위하는 무사들이 나눠 타고 있었다.
연하린은 선실에서 거의 나가지 않았다.
밖으로 나가봐야 자신을 어떻게 해보지 못해 안달하는 놈들 때문에 차분히 풍광을 즐기지도 못하고 귀찮기만 했다.
하지만 선실에 틀어박혀 있다고 해서 그놈들이 그저 기다리기만 하는 건 절대 아니었다.
끊임없이 방문했고, 그때마다 어떻게든 자신을 드러내려 애썼다.
그래도 이들은 예전 종리웅에 비하면 훨씬 나았다.
종리웅은 노골적으로 음심을 드러내곤 했는데, 이들은 그래도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았으니까.
“아가씨, 곧 식사 시간입니다.”
방에 함께 있던 호위무사 하나가 말했다.
연하린의 호위무사는 전원 여자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래서 실력이 약간 떨어졌다. 아무래도 아직 실력 있는 여자 무사는 그리 흔하지 않았다.
연하린을 근접호위하는 무사는 총 다섯 명이었다.
그 중 두 명은 방에 함께 있었고, 나머지 셋은 문 앞을 지켰다.
무사들이 연하린을 챙기는 일까지 병행했는데, 연하린은 별로 손이 많이 가지 않는 사람이었기에 딱히 신경 쓸 만한 일은 별로 없었다.
지금처럼 가끔 정해진 일정을 알려주거나, 혹시 밖에서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알아봐주는 일 정도가 전부였다.
“언제쯤 도착할 거 같나요?”
“일정이 아직 확실히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아시다시피 중간에 멈추는 일이 잦은지라······.”
연하린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놈들은 무슨 놀지 못해 죽은 귀신이 붙었는지 틈만 나면 배를 정박하고 뭍으로 나가 시간을 보내곤 했다.
연하린도 무작정 배에만 있을 수 없어서 두어 번 어울려주긴 했는데, 그때마다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오늘 점심은 거를게요.”
“요즘 식사를 너무 자주 거르시는 것 같습니다. 제가 만두라도 챙겨올까요?”
호위무사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연하린을 바라봤다.
진심이 담겨 있는 것 같지만, 연하린은 저것이 연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이번에 따라붙은 다섯 명의 호위무사 중 세 명이 각각 서문세가, 구양세가, 추가장에 매수되었다.
그래서 그렇지 않은 두 사람을 방 안과 밖에 한 명씩 배치할 수밖에 없었다.
저렇게 살갑게 말하지만 그 만두 안에 무슨 짓을 해 놓았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사실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을 수도 있지만, 조심해서 나쁠 게 없었다.
“괜찮아요. 요즘 속이 별로 좋지 않네요.”
호위무사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말했다.
“곧 형주에 도착합니다. 그곳에서 하루나 이틀 정도 쉬어간다고 하니 아가씨도 뭍에서 좀 쉬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연하린이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그렇게 할게요.”
물론 진짜로 쉬기만 할 생각이었다. 피치 못할 사정이 발생하지 않는 한 말이다.
* * *
“공자님, 그건 뭔가요?”
소소가 호기심 가득한 눈을 반짝이며 벽태산에게 물었다.
벽태산은 방금 저잣거리를 지나가다가 누군가에게 작은 종이쪼가리 하나를 받았다.
그리고 확인한 다음 그걸 태워버렸다.
은밀히 하지도 않았다. 주는 사람도 당당하게 건네줬고, 받는 벽태산도 대놓고 받아 확인하고는 태웠다.
그러니 바로 옆에 있던 소소가 그걸 못 볼 리 없었다.
당연히 함께 나온 모두가 그걸 봤고 말이다.
방금 벽태산에게 종이를 준 사람의 정체를 알아본 건 천추신의가 유일했다.
그는 하급 하오문도였다.
“반 시진쯤 있으면 도착한다는데?”
벽태산의 말에 소소가 의아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연가장에서 출발한 배가 도착한다고 하니 가서 구경이나 할까 하고.”
그 말에 소소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그녀는 양손을 기도하듯 착 붙잡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그리고 고개를 휙 돌려 뒤따라오는 유서연을 바라봤다.
유서연의 표정도 소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공자님, 설마 일부러 시간 맞추신 거예요?”
벽태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럴 리가. 내가 왜 그런 번거로운 짓을 한단 말이냐. 오해하지 마라. 난 그냥 나대로 가는 것뿐이다.”
“아아, 그러셨구나. 그럼요. 누가 우리 공자님을 오해하겠어요? 그러셨구나.”
씨알도 안 먹힌 것 같자, 벽태산은 입을 다물고 몸을 휙 돌려 선착장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일행이 전부 호기심과 기대감이 뒤섞인 표정으로 벽태산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러다가 뭔가가 떠올랐는지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함께 있던 두 명의 시비, 단영과 채월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