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41)
“어쩌긴 뭘 어쩐단 말이오. 우리도 숙소를 잡아야지.”
그러자 추영학이 약간 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여기서 뭘 이러고 있는 거요? 얼른 따라가야지.”
같은 숙소를 잡아야 할 것 아닌가. 아니면 최소한 그 근처에 있는 숙소라도 잡아야 한다.
“일단 가면서 천천히 계획을 세워봅시다.”
가장 먼저 움직인 사람은 서문제학이었다. 그는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저런 표정을 지을 줄 알았단 말이지?’
연하린은 벽태산을 만나자마자 지금까지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던 미소를 지었다.
그것이 정말 짜증났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슴이 떨렸다. 그 정도로 아름다운 미소였다.
나머지 두 사람도 서문제학과 크게 다르지 않은 심정이었다.
그들은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앞을 바라봤다.
연하린과 벽태산이 가장 먼저 보였다. 절로 이가 갈렸다.
그리고 단영과 채월이 눈에 들어왔다.
“왠지······ 보물을 찾은 기분이로군.”
서문제학의 혼잣말에 구양수와 추영학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연하린은 객잔 앞에 서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이렇게 훌륭한 객잔이 형주에 있을 줄은 몰랐다.
이 정도 객잔은 무한에서도 본 적이 없었다.
“무한에도 없을 것 같은 객잔이 여기에 있을 줄은 몰랐네요.”
금월객잔이라는 현판이 달려 있었는데, 현판의 글씨조차 유려하기 그지없었다.
아마 보통 사람이 쓴 글은 아니리라.
“이름을 봐서는 금월상단과 관계가 있는 객잔인 모양이네요.”
금월상단 소유의 객잔이라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여기 형주가, 금월상단이 제법 신경 쓰는 곳이거든.”
천추신의가 자신의 식견을 자랑하듯 말했다.
시선이 집중되니, 약간 거만한 표정으로 설명을 이어갔다.
“천하제일상단에 가장 근접한 상단이 바로 금월상단인데, 아주 특이한 놈들이지. 상단 주제에 무림문파를 휘하에 셋이나 거느리고 있거든.”
다들 흥미로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상단이 무림문파를 휘하에 거느리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다. 대체 돈이 얼마나 많으면 그런 것까지 할 수 있을까?
금월상단이 대단하다는 건 다들 알지만 이런 내용은 들어보지도 못했다.
“아무튼 그 중 하나가 여기 형주에 있지. 이 객잔도 바로 그 문파가 운영하는 것이고.”
연하린이 감탄한 눈으로 천추신의를 바라봤다.
“정말 아는 게 많으시네요.”
“에헴. 워낙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이것저것 들은 게 많으니까. 원래 의원이라는 게 그렇거든. 환자가 있는 곳은 어디든 달려가야 하는 법이지. 환자와의 교감은 필수고. 당연히 여기 형주도 몇 번이나 왔었어. 말이 나와서 말인데, 예전 형주에 왔을 때······.”
천추신의의 말이 본격적으로 시작하려는 순간, 벽태산이 호흡의 틈을 끊으며 손을 올렸다.
천추신의는 그 가벼운 손짓 한 방에 입을 다물었다.
“자, 설명은 여기까지만 하고 일단 들어가지. 그래도 규모가 있어서 방이 없을 염려는 안 해도 될 것 같군.”
벽태산 일행이 금월객잔에 들어가자, 뒤이어 서문제학 일행이 도착했다.
“허. 금월객잔? 돈 많은 놈이라 그런지 씀씀이가 보통이 아닌데?”
금월객잔은 비싸기로 유명한 객잔이었다.
서문제학도 사실 이름만 들어봤지 직접 본 건 처음이었다.
그나마 서문제학은 가문에서만 틀어박혀 살지 않고 여기저기 자주 다녀봤기에 금월객잔에 대해 아는 것이지, 나머지 두 사람은 그조차도 몰랐다.
“금월상단에서 만든 객잔인 모양이오.”
“그렇소. 돈독이 단단히 오른 놈들이 만들었으니 오죽 비싸겠소. 다른 객잔의 열 배는 줘야 간신히 방을 잡을 수 있을 거요.”
“허어. 그렇게까지나?”
“아무튼 갑시다.”
그들은 객잔 안으로 들어갔다.
밖에서 볼 때만해도 그저 대단하구나 하는 정도였는데, 막상 안에 들어오니 기가 확 죽을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특히 안목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안에 쓰인 아무리 사소한 장식이라도 어설픈 게 없었다.
말 그대로 돈을 처바른 곳이었다.
이러니 그렇게 비싸게 받는 것 아니겠는가.
손님을 받는 객잔의 직원들도 평범치 않았다. 어디서 구했는지 기녀를 해도 괜찮을 법한 미모의 여인들이 곱게 차려입고 정중히 손님을 맞이했다.
서문제학은 당당히 말했다.
“방금 들어간 자들과 일행인데, 같은 곳에 방을 잡고 싶구나.”
그러자 직원이 담담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분들은 별채에 머무십니다. 일행이시라면 연락을 드려볼까요? 저희 금월객잔의 별채는 규모가 상당하기에 여기 있는 분들까지 함께 지내시더라도 불편함이 없습니다.”
서문제학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구차하게 연락을 해서 같이 머물자고 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건 자존심 문제였으니까.
“됐다. 우리도 별채에 머물면 되겠군. 최대한 가까운 곳에 위치한 별채로 안내해라.”
직원이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로 숙박비는 하루에 금 서른 냥입니다.”
서문제학의 발걸음이 뚝 멈췄다.
그의 표정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금 서른 냥?”
서문제학은 고개를 돌려 구양수와 추영학을 쳐다봤다.
두 사람은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금 서른 냥이라니. 이 정도면 다른 객잔의 열 배를 아득히 넘는 금액 아닌가.
웬만큼 괜찮은 객잔이라도 별채를 하루 빌리는 데 금 두 냥을 넘지 않는다.
서문제학의 표정을 읽은 직원이 최대한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설명을 덧붙였다.
아무래도 이런 상황을 자주 겪는 모양이었다.
“별채도 세 단계로 나뉩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더 조용하고 방비도 튼튼하지요. 아까 그분들과 가까운 곳의 별채가 서른 냥이고, 조금 밖으로 나오시면 금 열 냥이면 충분합니다.”
금 열 냥도 많다.
고작 하룻밤 자는데 무슨 금을 열 냥이나 내야 한단 말인가.
만일 여기서 이틀을 지내면 스무 냥이다.
“아까 그자들은 세 번째 별채로 갔고?”
서문제학은 이를 악물었다. 출혈이 크지만, 그래도 못 쓸 건 없었다.
“그분들은 그보다 더 깊은 곳으로 가셨습니다. 특별한 분이 계셔서······ 저희 객잔에 하나밖에 없는 별채라서 방을 내 드리지 못하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더······ 깊은 곳이라고?”
“예. 하루에 금 예순 냥짜리로 아주 특별한 분이 아니면 내드리지 않는 곳입니다.”
아주 특별하다는 말과 금 예순 냥이라는 말이 귀에 확 꽂혔다.
“허! 대체 그놈들 뭐지?”
직원이 공손한 자세로 서문제학의 결정을 기다렸다.
“가만, 특별한 사람이라고 했느냐?”
“예. 그렇습니다.”
“여기는 아무에게나 특별하다고 하는 건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내부적으로 정해진 기준이 있습니다.”
“그럼 방금 들어간 일행의 누가 그렇게 특별했는지 말해봐라.”
“그분들께서 비밀 유지를 요구하셨습니다.”
서문제학이 코웃음을 쳤다.
“흥, 되는 대로 돈만 주면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거겠지. 우리가 누군지 아느냐?”
직원이 잠시 일행을 스치듯 둘러봤다. 그리고 공손히 대답했다.
“추측하기로는 서문세가, 구양세가, 추가장에서 나오신 분들 같습니다.”
서문제학의 눈이 살짝 커졌다.
“제법이구나. 맞다. 우린 그 세 가문의 직계다. 자, 그럼 방금 들어간 자들보다 우리가 더 특별한 손님이라는 데 이의가 있느냐?”
“죄송합니다.”
직원의 대답에 서문제학의 눈썹이 또 꿈틀거렸다. 정말 마음에 안 들었다.
“죄송하다는 건, 우리를 무시해서냐? 아니면 안에 들어간 자들이 우리보다 대단해서이냐?”
직원의 표정에 처음으로 난감함이 깃들었다.
막무가내인 손님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선에서 해결이 불가능한 경우는 많지 않았다.
“일단 안에 기별이나 넣어라. 방을 바꿔주겠다고. 우리가 그 별채를 써야겠다. 설마 우리 자격이 부족한 건 아니겠지?”
“자격이야 차고 넘치십니다. 다만······.”
솔직히 차고 넘칠 정도는 아니다. 잘 따져보면 아슬아슬하지만, 상황에 따라 별채를 내줄 수도 있었다. 그래도 지금은 아니었다.
“다만, 뭐? 잘 생각해서 말을 해라. 나중에 험한 꼴 당하고 싶지 않으면.”
서문제학에게서 칼처럼 날카로운 기세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런 기세를 일개 직원이 감당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녀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때, 안쪽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그 특별한 사람이 나다. 그러니 행패 그만 부리고 할 말 있으면 나한테 해라.”
서문제학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그의 표정이 묘해졌다.
그것은 그의 뒤에 있는 구양수와 추영학 역시 마찬가지였다.
서문제학이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너······ 우리 감당할 수 있겠느냐?”
그 얘기를 들은 벽태산이 피식 웃었다.
“그러는 넌, 날 감당할 수 있겠어?”
서문제학은 벽태산을 노려봤다.
대체 저놈이 뭘 믿고 저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보아하니 아주 바보는 아니었다. 그러니 상황파악을 아예 못하는 건 절대 아니었다.
그렇다는 건 뭔가 믿는 구석이 있다는 뜻이리라. 그게 뭔지는 모르지만.
“너······ 뭘 믿고 이러는 거지?”
서문제학의 기세가 모조리 벽태산에게 집중되었다.
벽태산은 그 기세를 뒤로 가볍게 흘려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제법이긴 했다. 최소한 종리웅보다는 두어 단계 위였다.
서문제학뿐 아니라 뒤에서 눈을 부라리고 있는 구양수와 추영학 역시 마찬가지였다.
즉, 고만고만하다는 뜻이다.
벽태산은 대수롭지 않게 툭 말했다.
“원래 어설픈 것들이 힘자랑을 하고 싶어 안달을 내는 법이지. 힘은 쓸 데 써라.”
어디에나 어설프게 힘자랑 하는 놈들이 있기 마련이다.
예전에는 밖을 나다니다보면 그런 놈들이 꼭 몇 놈씩 꼬였다.
그 때마다 아주 친절하게 그래선 안 된다고 알려주었다.
몸으로 확실히 느낄 수 있게 말이다.
옛날 생각이 나서 해준 얘기였는데,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그러기가 참으로 어려웠나보다.
서문제학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후우우. 일단 네놈이 믿는 구석이 뭔지나 들어보자. 고작 금벽상단 따위가 우리 서문세가를 능멸해?”
벽태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기서 금벽상단이 왜 나와? 내가 너한테 한 건데. 설마 가문의 이름을 못 빌리면 아무것도 못하는 그런 찌질이는 아니지?”
서문제학의 화가 거의 폭발 일보직전이었다.
“후우우. 여기서 이러지 말고 나가자. 어디 조용한 곳으로 가서 차분히 대화를 나눠보자. 아무래도 우리 사이에 사소한 오해 몇 가지가 있는 것 같으니.”
서문제학은 그렇게 말하고서는 벽태산을 따라 나온 사람을 쳐다봤다.
나이가 제법 많은 노인이었는데, 정말 평범해 보였다.
“노인장은 여기 남는 게 좋을 거요. 그 나이에 잘못 넘어지기라도 하면 고생이 심할 테니까.”
반쯤은 협박이었다.
굳이 벽태산과 자신이 대화하는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참고로 난 뒤에서 내 얘기 하는 걸 정말 싫어하오. 그러니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거라 믿겠소.”
서문제학의 말에 노인의 표정이 기묘해졌다.
노인이 막 나서려는데, 벽태산이 손을 들어 그걸 막았다.
“됐으니까 여기 있어.”
노인, 일침괴가 억울한 표정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이 수모를 당하고 자신이 그냥 있어야 하는지를 눈빛으로 맹렬히 물었다.
벽태산이 고개를 저었다.
“나중에 기회가 또 있을 테니까 조금만 참아. 원래 음식은 기다렸다가 배고플 때 먹는 게 제일 맛있어. 이것도 마찬가지고.”
그제야 일침괴가 한 발 뒤로 물러났다.
생각해보니 벽태산의 말이 옳았다. 잠깐만 기다리면 진수성찬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일침괴는 서문제학뿐 아니라 그 뒤에 있는 구양수와 추영학의 얼굴도 찬찬히 확인했다.
절대 잊지 않겠다는 듯이.
“아까 쟤들 어디라고 했지?”
벽태산이 금월객잔의 직원을 보며 물었다.
직원은 최대한 담담함을 유지하려 애쓰며 대답했다.
“서문세가, 구양세가, 추가장입니다.”
“들었지?”
벽태산이 일침괴를 보며 묻자, 일침괴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기억했소.”
일침괴가 한 발 더 뒤로 물러나자, 벽태산이 서문제학을 쳐다봤다.
“자, 일단 안내해 봐. 참고로 멀리는 안 나간다. 돌아오기가 귀찮거든.”
서문제학의 얼굴이 점점 붉어졌다. 누가 봐도 화를 억지로 참고 있는 모습이었다.
구양수와 추영학, 그리고 서문세가 무사들은 이런 모습을 종종 봤는지 담담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굉장히 불안한 표정으로 벽태산과 서문제학을 번갈아 바라봤다.
“아주 좋은 곳을 아까 봐뒀지. 멀지도 않으니 딱 좋네. 가자.”
서문제학이 그렇게 말하고 휙 돌아서서 성큼성큼 걸어갔다.
벽태산이 느긋하게 그 뒤를 따라갔다.
그러자 나머지 사람들이 벽태산을 포위하듯 둘러싸며 우르르 몰려나갔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금월객잔의 직원이 일침괴를 바라보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괜찮겠습니까? 제가 일행분들께 연락을 해 놓을까요? 저희 객잔에도 무사들이 대기 중입니다. 어르신께서 중재만 약속해주신다면 무사들을 동원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사실 그녀는 일침괴가 나서면 모든 것이 해결될 거라 생각했지만, 일침괴에게 그걸 권할 수는 없었다.
이미 일침괴가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결정한 상황이었으니까.
일침괴는 고개를 저었다.
“됐다. 코가 막힌 놈들이니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봐야 구분을 하겠지.”
그녀는 그 말을 얼른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저 고개를 숙였다.
“뭐······ 설마 죽이진 않겠지.”
일침괴는 그 말만 남기고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약간 시간이 지난 후, 천추신의와 함께 다시 나왔다.
“내가 마차로 여기까지 오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그런 날 굳이 끌고 가야겠소?”
일침괴가 인상을 팍 썼다. 그리고 천추신의를 노려봤다.
“너 말투 안 고쳐? 내가 네 친구냐?”
천추신의가 씨익 웃었다.
“같은 종놈 신세인데 뭘 이 안에서 위아래를 가리려고 그러시오? 그리고 이 정도면 충분히 존중을 해주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안 그렇소?”
일침괴가 하늘을 올려다봤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하아아아. 내가 진짜 어쩌다 이 꼴이 됐는지······.”
천추신의가 일침괴의 어깨에 손을 턱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