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42)
“이게 다 훌륭하신 우리 공자님을 만난 덕분 아니겠소?”
일침괴가 고개를 휙 들어 천추신의를 노려봤다.
“그러니까 이게 전부 공자님 덕분이라······ 이거냐?”
천추신의가 씨익 웃었다.
“그거 아쇼? 요즘 댁 얼굴이 활짝 폈소. 피부도 좋아지고 왠지 젊어진 거 같단 말이오. 의원이니까 자기 몸은 나보다 더 잘 알 거 아니오?”
일침괴가 입을 꾹 다물었다.
솔직히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몸만 좋아진 게 아니었다. 무공 쪽 성취도 최근 상당히 높아졌다.
그동안 꽉 막고 있던 벽 하나가 얼마 전 정말 너무나 자연스럽게 부스러졌다.
왠지 침술도 더 좋아진 것 같고, 의술도 더 좋아진 것 같았다.
아니, 기분 탓이 아니라 진짜 그랬다.
이 모든 변화가 벽태산을 만난 이후에 시작되었으니 벽태산 덕분이라는 걸 어찌 부정하겠는가.
“그래도······ 시발 너무 아프단 말이다.”
일침괴가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터벅터벅 밖으로 걸어갔다.
천추신의가 히죽 웃으며 그 뒤를 따랐다.
“아프다니 무슨 말이오? 난 아직 그런 거 한 번도 못 겪었는데. 아이고, 이거 참 아쉽네. 우리 공자님이 댁을 그렇게 신경 써주고 있다는 뜻 아니겠소? 하아, 왜 공자님이 난 신경을 안 써주시는 건지 모르겠네.”
일침괴가 입을 꾹 다물고 걸음을 서둘렀다.
더 말을 섞어봐야 좋은 꼴 못 본다. 이럴 때는 무시하고 할 일만 하는 게 상책이다. 아니면 말을 돌리거나.
“그나저나 굳이 이래야겠소? 우리 공자님께서 어련히 알아서 잘 하실까.”
“그래도 명문세가의 자식들이다. 죽으면 곤란해. 팔다리 잘리거나 어디 깨지고 터지는 거야 우리가 고치면 되지만 죽은 놈을 살릴 수는 없잖아.”
“설마 죽이시기야 하겠소?”
“혹시 모르니까 하는 말이잖아. 혹시 모르니까! 그리고 빨리 치료하면 겉으로 드러나는 상처도 싹 지워줄 수 있으니까 더 좋지. 안 그래?”
“뭐······ 그야 그렇소만······.”
천추신의가 씨익 웃었다.
“이제 우리 공자님께 충성하기로 마음을 굳히신 거요?”
“난 애초에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다. 한 번 한 약속은 끝까지 지켜.”
“아하, 그러니까 애초에 충성하고 있었다? 이거 참 훌륭하신 분이었군. 내가 몰라봤소. 캬아, 그래서 우리 공자님이 그렇게 신경을 써주시는 거였군. 이거 부럽소이다. 하하하하.”
일침괴가 인상을 팍 쓰고 걸음을 빨리했다.
천추신의가 얼른 그 뒤를 쫓아가며 끊임없이 입을 놀렸다.
일침괴는 이 떠버리의 입을 꿰매버릴까 말까 끊임없이 고민했다.
* * *
“호오. 객잔 근처에 이런 곳이 있는 줄은 몰랐군.”
벽태산은 주위를 슥 둘러봤다.
금월객잔을 끼고 빙 돌다보면 나오는 작은 숲이었는데, 그 중심에 제법 널찍한 공터가 있었다.
나무가 병풍처럼 둘러싸인 곳인지라 제법 운치가 있었다.
아직 해가 지지 않아서 곳곳에 빛이 내렸는데, 그 모습도 제법 볼 만했다.
“어떠냐? 제법 괜찮지? 내가 여기 찾느라 발품 좀 팔았지. 사람 때려 패기 정말 좋은 곳 같지 않아?”
사실 서문제학이 여길 찾은 게 아니라, 금월객잔 뒤로 숲이 조성되어 있다는 걸 알고 그냥 온 것뿐이었다.
이런 널찍한 공터가 있다는 건 몰랐다.
그런 서문제학을 구양수와 추영학이 놀란 눈으로 바라봤다.
“대체 언제 이런 장소를 봐 두신 거요?”
“우린 정말 까맣게 몰랐소.”
두 사람의 감탄을 듣고 나니 아는 척 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내가 이 정도요.”
서문제학은 그렇게 말하며 가문의 무사들을 쳐다봤다.
“너희들은 밖으로 나가서 이 숲에 아무도 못 들어오게 지켜라.”
“예.”
서문세가 무사들이 우르르 나가자, 구양수와 추영학도 각각 가문의 무사들에게 같은 명령을 내렸다.
그들이 데려온 무사는 각각 일곱 명씩이었다.
그 정도면 이 숲에 당분간 아무도 얼씬 못하게 막는 데에는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자아, 이제 대화를 나눌 준비가 다 끝났다. 넌 어때? 마음의 준비는 좀 했느냐?”
“마음의 준비?”
“제법 아플 테니 말이다. 여기가 제법 한적하니 비명 좀 지른다고 들을 사람도 없을 테고······ 해가 지려면 시간이 제법 남았고······ 고통이 좀 길어지겠구나.”
서문제학이 빙긋 웃으며 벽태산을 쳐다봤다.
그리고 구양수와 추영학이 거리를 두고 벽태산을 둘러싸 도망치지 못하게 대비했다.
물론 그렇게 하지 않아도 도망치지 못하게 할 자신이 있었지만 이 정도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뭐야, 대화 하자더니 다짜고짜 싸움부터 하자고?”
벽태산이 흥미로운 눈으로 서문제학을 쳐다봤다.
아니, 흥미가 아니라 기대감 어린 눈이었다.
어찌 기대가 안 되겠는가. 그동안 일침괴를 통해 새롭게 익힌 것을 이놈들에게 써먹을 수 있게 되었는데.
이게 바로 실전훈련 아니겠는가.
“아, 대화. 하마터면 잊을 뻔했군. 너무 기분이 좋아서 말이야. 대화 해야지.”
서문제학이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대체 언제까지 연 소저에게 부담을 지울 셈이냐?”
“부담을 지운다고?”
“그래. 알아보니 네놈 금벽상단에서 내 놓은 거나 다름없다던데, 그 주제에 연 소저를 넘봐?”
벽태산은 흥미로운 눈으로 서문제학을 쳐다봤다.
“내가 연하린을 넘봤다고?”
“아니라면 왜 파혼을 하지 않는 거지? 얼른 연 소저를 놔줘야 그 사람이 좋은 혼처를 찾을 것 아니냐. 예를 들어 나라든가.”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은 그게 다야?”
벽태산이 이번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나머지 두 사람, 구양수와 추영학을 쳐다보며 물었다.
두 사람의 눈에서는 불똥이라도 쏟아질 것 같았다.
오늘 절대 곱게 보내지 않을 거라는 의지가 확실히 느껴졌다.
“네놈이 데려온 여자는 대체 뭐냐? 연 소저가 있는데 감히 다른 여자까지 데려와?”
벽태산은 그 말을 듣고 피식 웃었다. 참으로 욕망을 솔직하게 쏟아내는 놈들 아닌가.
“걔들은 내 시비인데?”
“시비라고? 말도 안 돼! 그런 여자를 시비로 쓴다고?”
벽태산이 더 듣기 싫다는 듯 손을 휘휘 내저었다.
“자, 시간 없으니까 얼른 끝내자. 그래야 즐길 시간이 늘어나지. 나 정말 기대 많이 하고 있으니까 잘해라.”
벽태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서문제학이 달려들었다.
서문제학은 갈퀴처럼 구부린 손으로 벽태산의 어깨를 꽉 쥐려고 했다.
벽태산은 가볍게 마주 손을 뻗어 서문제학의 소매를 살짝 쥐며 당겼다.
후웅!
서문제학이 구양수를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구양수가 깜짝 놀라 손을 들어 서문제학을 가볍게 받았다.
그러는 사이 벽태산이 추영학 뒤에 나타났다.
퍽!
추영학의 뒷목에 가볍게 손날을 한 방 먹인 벽태산은 곧장 서문제학과 구양수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최대한 동선을 단순하게 만들기 위해 둘을 일부러 한데 모은 것이다.
벽태산이 서문제학과 구양수 사이로 파고들었다.
두 사람이 당황해 팔을 뻗었지만, 벽태산의 옷깃 하나 스치지 못했다.
벽태산은 가볍게 주먹을 앞뒤로 쳐냈다.
뻐벅!
서문제학과 구양수가 눈을 까뒤집으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벽태산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세 사람을 한데 모았다.
* * *
서문제학은 희미하게 정신이 돌아왔다.
‘뭐지?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서서히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당했다고? 고작 벽태산한테?’
서문제학은 지금 엎드려 있었다. 온몸을 꼼짝달싹 할 수 없는 걸로 봐서 마혈이 제압된 모양이었다.
“어? 깼어? 마침 시작하려던 참이었는데, 조금만 기다려.”
뭘 하려는 거냐고 소리치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아혈까지 제압당한 것이다.
갑자기 두려움이 왈칵 밀려왔다.
그리고 그때 추영학의 비명이 귀에 확 꽂혔다.
“끄으아아아아!”
서문제학이 온몸을 덜덜 떨었다. 정말 무시무시한 비명이었다.
소리가 크진 않았지만, 고통이 얼마나 대단할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밖을 지키는 무사들이 얼른 와야 한다. 한데 이놈들은 대체 뭐 하고 있단 말인가.
자신이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명령을 내렸다는 사실 따위는 지금 중요하지 않았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공포가 서문제학의 머릿속을 장악해 버렸다.
끊임없이 추영학의 비명이 울렸다. 대체 얼마나 괴롭혀야 직성이 풀린단 말인가.
“쯧, 이상한데?”
벽태산의 담담한 말이 들려왔다. 사람을 저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물론 보이지는 않지만, 고작 한다는 말이 저거라니 대체 저놈은 뭐란 말인가.
“끄아아아아아악!”
이어서 구양수의 비명이 들려왔다.
서문제학은 너무 두려워 하마터면 오줌을 지릴 뻔했다. 하지만 끝까지 참아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비명이 끝났다.
그리고 벽태산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제발 하지 말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갑자기 지독한 고통이 밀려왔다.
“끄으아아아악!”
마치 누군가 온몸을 작신작신 두들겨 패는 듯한 고통이었다. 아니, 그뿐이 아니었다. 사람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온갖 고통이 하나로 모여서 몰려드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의식이 확 날아가 버렸다.
끝
일침괴와 천추신의는 서문제학 일당이 벽태산을 데려간 곳으로 향했다.
금월객잔 뒤쪽에 있는 작은 숲으로 흔적이 이어져 있었다.
그들이 떠난 지 시간이 좀 됐지만, 천추신의가 귀신같이 흔적을 찾아 여기까지 온 것이다.
“너, 제법 쓸모 있구나?”
일침괴가 의외라는 듯 천추신의를 바라봤다.
“내가 의술이 워낙 뛰어나니 의원으로 대접 받으면서 살고 있지만, 사실 다른 능력들도 만만치 않소. 뭐, 알아달라는 건 아니고, 그냥 그렇다 이거요.”
“어깨 좀 가만히 둬라. 그게 뭐라고 그렇게 으쓱대는 게냐? 알아달라고 온몸으로 얘기하는 것도 재주다.”
“그런 거 아니라니까 그러시네. 알아주지 않아도 저절로 다 알게 되는 건데, 내가 왜 굳이 그러겠소? 원래 송곳이 주머니를 푹푹 뚫는 법이거든.”
“됐다. 말을 말자. 내가 너랑 무슨 얘기를 하겠느냐. 갈 길이 바쁘다. 공자님이 그것들 싹 죽여 버리기 전에 얼른 가기나 하자.”
일침괴가 그렇게 말하며 걸음을 서둘렀다.
숲 초입에 무사 몇 명이 서 있었다. 복장을 보아하니 서문세가에서 온 무사들이었다.
그들은 천추신의와 일침괴를 보자마자 긴장하며 숲으로 들어서는 길을 막아섰다.
“죄송하지만, 오늘 여기는 들어가실 수 없소.”
천추신의가 피식 웃었다.
“이 숲이 당신들 소유라도 되는 거요? 서문세가가 형주에 있는 숲을 소유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서문세가라는 말에 무사들의 표정이 싹 굳었다.
“우리가 누군지 이미 알고 오셨군. 좋은 의도가 아니라고 판단해도 되는 거요?”
“감추고 싶으면 그 옷이나 어떻게 하시오. 대놓고 나 서문세가에서 왔다고 보여주면서 누군지 알고 왔냐는 말은 왜 하는 거요?”
그 말에 서문세가 무사들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아무튼 우리는 여기 들어가야겠으니 길을 비켜주시는 게 어떻겠소?”
“우리도 입장이 있으니 이해 부탁드리오. 비켜줄 수 없소. 그러니 우리 볼일이 끝날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 주시오.”
“그 볼일이라는 게 언제 끝나오?”
“그건······ 나도 잘 모르겠소. 하지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요.”
천추신의가 피식 웃었다.
“사람 하나 쥐어 패는 일이니 금방 끝날 것 같겠지. 한데 당신들 계산 잘못하셨소.”
천추신의의 말에 서문세가 무사들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아까랑 말이 다른 것 같소? 아까는 우리가 누군지 모르고 그냥 왔다고 하지 않으셨소?”
“내가?”
천추신의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일침괴를 바라봤다.
“내가 그랬소?”
“정확히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오해를 살 만하게 말하긴 했다.”
“댁은 대체 누구 편이오? 우리 공자님이요, 아니면 서문세가요?”
일침괴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천추신의를 쳐다봤다.
“선택지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됐고, 저리 비켜라, 언제까지 시간을 질질 끌 생각이냐?”
일침괴가 앞으로 나섰다. 그는 서문세가 무사들 앞에 서서 그들을 슥 훑어봤다.
그때까지 전혀 드러나지 않던 기세가 갑자기 확 뿜어져 나왔다.
갈무리하고 있던 기운을 일시에 뿜어낸 것이다.
그 거대한 압박감에 서문세가 무사들이 기겁하며 검을 꽉 쥐었다.
여차하면 검을 뽑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검을 뽑는다고 해서 눈앞에 있는 이 노인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좀처럼 들지 않았다.
싸움을 시작하기도 전에 패색을 뒤집어쓴 셈이었다.
“나 일침괴라고 불리는 의원이다. 혹시 들어는 봤느냐?”
“이, 일침괴?”
당연히 들어봤다. 한데 일침괴가 왜 여기 있단 말인가.
“호무련에서 날 초대했는데, 그 얘기는 못 들었나보지?”
“모, 못 들었습니다.”
“안 그래도 여기 들어간 서문세가의 애송이 공자가 날 모욕해서 기분이 굉장히 안 좋은데, 너희들도 거기에 한 숟갈 보탤 생각인가?”
그 말에 서문세가 무사들의 안색이 시꺼멓게 죽었다.
그제야 아까 금월객잔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눈앞에 있는 이 노인, 일침괴도 거기 있었다. 서문제학이 일침괴에게 한 말과 행동이 자연스럽게 기억났다.
“떨어진 평판을 다시 집어들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지 않느냐? 구양세가랑 추가장 쪽 평판은 이제 다시 올릴 기회도 없을 텐데 말이다.”
“드, 들어가십시오. 한데······.”
“한데 뭐?”
“좀 늦으셨습니다. 아까부터 안쪽에서 계속 비명이······.”
일침괴가 피식 웃었다.
“비명? 그럼 됐다. 죽이진 않은 모양이네. 우리 들어간 다음에 아무도 들이지 말고 아무도 오지 마라.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지?”
“무, 물론입니다.”
일침괴는 천추신의와 함께 숲 안쪽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던 서문세가 무사가 중얼거렸다.
“그런데······ 정말 일침괴가 맞나? 확인도 안 하고 들여보낸 거 아닐까?”
그제야 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이미 들여보낸 걸 어쩌겠는가.
그들은 애초에 일침괴의 기세에 짓눌려서 평소처럼 침착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괜히 확인을 안 한 것이 아니라, 확인할 겨를이 없도록 일침괴가 기세로 압박한 것이다.
아무튼 서문세가 무사들은 불안한 심정을 억지로 삼키며 다시 경계에 만전을 기했다.
* * *
“오, 이래서 사람이 이름을 세워야 하는구나. 그냥 별호 한 방에 바로 통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