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99)
‘그나저나 형님이 적결명이랑 싸우면 이기려나?’
적결명도 만만치 않은 강자다. 원래라면 일침괴가 약간 손색이 있다. 아무래도 상성이 좋지 않으니까.
하지만 이번에 깨달음을 통해 경지가 훌쩍 올라갔다. 그러니 일침괴도 어느 정도 할 만하지 않을까?
천추신의는 일침괴 말고 함께 데려갈 사람을 한두 명 더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불안했으니까.
* * *
벽태산은 눈을 지그시 감고 가부좌를 튼 채 침상 위에 앉아 있었다.
그의 몸 주변으로 영력이 요동쳤다.
온몸을 휘감은 영력을 가만히 느껴봤다. 질은 최상이었다. 양도 제법 많았다.
얼마 전 서도군이 데려온 반강시들로부터 뽑아낸 영력 덕분이었다.
당시 운 좋게도 벽태산의 몸에 맞는 영력을 많이 흡수할 수 있었다.
보통 백여 구 정도 되면 그 중에서 몸에 맞는 영력은 한 사람분도 채 안 된다.
한데 이번엔 평소의 네 배 정도 되는 영력을 뽑아냈다.
그리고 그걸 모조리 상처 나고 끊어진 기맥에 잘 발라두었다.
그동안 시간이 지나며 어느 정도 치유가 되어 이제 아예 끊어진 기맥은 더 이상 없었다.
그저 깊은 상처가 난 정도일 뿐이었다.
그렇게 상처 난 곳에 영력을 촘촘히 메워뒀는데, 최근 연하린의 수련을 도와주면서 얻은 깨달음 덕분에 영력의 회복 효과가 훨씬 커졌다.
죽으면서 깨달은 진짜 증혼마공이 벽태산으로 살아가면서 점점 더 성장하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천마이던 시절의 경지를 넘어선 건 아니었다.
이쪽이 옳은 길이긴 하지만, 한 번에 낼 수 있는 힘의 크기는 천마 쪽이 압도적이었다.
그때는 닥치는 대로 혼백을 태워서 모조리 빨아들였다.
그리고 그렇게 모인 거대한 영력을 조절하지도 않고 마구 쏟아냈다.
그렇기에 출력 자체가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했다.
아무튼 벽태산은 지금의 상태가 훨씬 더 만족스러웠다.
그때만큼 강하지는 않지만, 언젠가는 그때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부작용은 없을 테고.
벽태산은 요동치는 영력을 차분히 수습했다.
그동안 기맥에 달라붙어 있던 영력을 모두 소화해 온몸에 골고루 퍼트렸다.
이 영력이 오랜 시간을 들여 벽태산의 육체를 차츰차츰 변화시킬 것이다. 좋은 쪽으로.
모든 것을 마무리한 벽태산이 천천히 눈을 떴다.
벽태산의 입가에 미소가 살짝 맺혔다.
“끝났다.”
드디어 망가졌던 몸을 완벽하게 고쳤다.
이제 벽태산은 더 이상 절맥이 아니다.
끝
적결명은 기쁜 마음으로 금벽장으로 향했다.
천추신의와 약속한 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오늘 채월이라는 벽태산의 시비를 만나기로 했다. 그리고 그녀를 자신의 제자로 들일 것이다.
적결명은 채월이 자신의 제안을 거절할 거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
아무리 벽태산에게 은혜를 입었고, 채월이 의리를 지키고자 해도 마찬가지였다.
상식적으로 벽태산에게 은혜를 갚고 싶다면, 흑련의 실력자인 자신의 제자가 되는 편이 훨씬 낫다.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훨씬 강해질 테고, 권력도 얻을 것이다.
그리고 채월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더 큰 힘과 권력을 손에 쥘 수도 있었다.
현재를 생각하든 미래를 생각하든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모두에게 이득이었다.
그러니 채월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았다.
적결명이 걱정하는 건 벽태산이었다.
혹시 벽태산이 따로 채월에게 말해 그녀가 금벽장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면 곤란했다.
아직 채월의 성향을 파악하지 못해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돌아가는 분위기만 봤을 때, 그런 식으로 벽태산이 방해하면 아마 굉장히 곤란해질 것이다.
‘그걸 사전에 차단했어야 하는데······.’
적결명이 인상을 찡그렸다. 해야 할 일을 못했다.
사실 지난 번 벽태산을 만났을 때 이 문제를 처리했어야 한다. 한데 그날의 분위기가 그럴 수 없게 만들었다.
적결명은 아직도 그날 자신들이 왜 그랬는지 의아했다.
지금도 숨은 고수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금벽장과 벽태산 주변을 조사 중인데, 정말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고작 알아낸 거라고는 벽태산이 낭인시장과 약간의 연줄이 있다는 것과, 무한의 흑도 무리들 중 몇몇과 안면이 있다는 정도였다.
그리고 그건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사실이었다.
돈 좀 있는 상단의 공자쯤 되면 낭인이나 흑도 무리에 선을 대서 돈으로 그들을 이리저리 부리는 일이 흔했으니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금벽장에 도착했고, 미리 나와 기다리고 있던 금벽장의 총관을 만날 수 있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가무진이라 합니다.”
총관은 정중히 인사를 하고는 적결명을 안으로 안내했다.
“오늘 저희 공자님을 뵙지는 않으신다고 들었습니다.”
총관의 말에 적결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되었소이다. 오늘은 신의와 벽 공자의 시비 한 명만 만나고 바로 돌아갈 거요. 마침 바쁜 일이 생겨서······.”
“아, 그러시군요. 역시 흑련의 실력자다우십니다. 자, 이쪽입니다.”
적결명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총관을 따라갔다.
사실 오늘 벽태산도 만나고 싶었다. 솔직히 벽태산을 만나 담판을 지어야 채월을 데려가기 훨씬 편해지지 않겠는가.
하지만 벽태산이 바빠서 안 된다고 하는 바람에 만남이 무산되었다.
정말 괘씸했지만, 희한하게도 역정이 나지는 않았다.
그냥 좀 기분은 나쁘지만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갔다.
이것도 좀 이상한 일이었지만, 적결명은 벽태산을 못 만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솔직히 좀 편안했다.
‘내가 벽태산을 불편해 하고 있나? 대체 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더 생각을 이어갈 수 없었다. 어느새 접객실에 도착한 것이다.
“안에 들어가시면 됩니다. 신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적결명은 간단히 사의를 표하고 접객실 안으로 들어갔다.
순간 눈이 환해지는 경험을 했다.
‘예쁘긴 진짜 예쁘구나.’
접객실 안에는 여러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도 시선이 오직 채월에게만 향했다.
‘어째 그때보다 더 예뻐진 것 같은데?’
느낌은 그랬다. 처음 채월을 봤을 때보다 지금이 더 아름다웠다.
“일단 이쪽으로 앉으시지요.”
천추신의의 말에 적결명을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얼른 권하는 자리에 가서 앉았다.
채월과 천추신의, 그리고 일침괴를 마주하고 앉는 자리였다.
채월이 가운데 앉아 있었고, 그녀의 양옆으로 천추신의와 일침괴가 자리했다.
적결명은 그렇게 자리에 앉고 나서야 세 사람의 뒤쪽으로 시선을 돌릴 수 있었다.
천경완과 유서연이 두 사람의 뒤에 서 있었다.
적결명의 표정이 묘해졌다.
‘이것 봐라?’
적결명은 대번에 천경완과 유서연의 실력을 파악했다. 분명히 자신보다 한참 아래였다.
하지만 결코 만만한 자들이 아니었다.
적결명은 벽태산의 주변인물에 대한 정보를 떠올려봤다.
‘천경완과 유서연이로군. 이렇게나 뛰어난 자들이었나?’
적결명은 아무래도 돌아가면 벽태산과 금벽상단에 대한 조사를 처음부터 다시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눈앞에 앉은 일침괴도 만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사실 일침괴에 대한 정보는 아주 오래전부터 흑련 차원에서 잔뜩 수집했다.
뛰어난 의원에 대한 정보는 무력 조직의 입장에서 정말 중요했으니까.
한데 일침괴 역시 흑련이 조사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아슬아슬해.’
싸우면 자신이 이길 자신은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이 결코 순탄치 않을 것이다.
갑자기 이 자리가 약간 부담스러워졌다.
만일 뭔가 일이 터져서 싸움이 나게 된다면 좀 곤란해질 수도 있을 듯했다.
“자아, 자리는 마련되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하고 싶은 말씀을 하시지요.”
천추신의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적결명은 침착하려 애쓰며 채월을 바라봤다.
그리고 채월의 눈빛을 확인하고는 오늘 일이 잘 안 풀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 이걸 힘으로 압박할 수도 없고.’
솔직히 그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었다. 한데 오늘 여기 나온 자들의 면면을 확인하고는 깔끔하게 접었다.
여기서 그랬다간 본전도 못 찾을 것이다.
“혹시 내가 무슨 얘기를 할지 듣고 나왔느냐?”
“예. 들었습니다.”
“거절하려고 마음먹고 나왔구나.”
“맞습니다.”
“혹시 그것이 벽 공자 때문이냐?”
“반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난 나머지 반에 걸어야겠구나.”
나머지 반이 무엇이냐는 물음이나 다름없었다.
채월은 말로 대답하는 대신 주변을 천천히 둘러봤다.
옆에 앉은 일침괴와 천추신의, 그리고 뒤에 있는 천경완과 유서연, 그리고 이곳에는 없지만 금벽장 어딘가에는 있을 다른 사람들까지.
적결명은 헛웃음을 지었다.
“아예 바늘 하나 들어갈 틈도 주지 않는구나.”
적결명이 굳은 표정으로 채월을 노려봤다.
“너와 네 주변 사람들의 미래가 달린 일이다. 그렇게 감상적으로 결정하면 나중에 반드시 후회할 것이다.”
채월이 담담히 대답했다.
“감상적으로만 결정한 일이 아닙니다.”
적결명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리고 후회하지도 않을 겁니다.”
적결명은 말없이 채월을 가만히 바라봤다. 노려보는 건 아니었지만, 눈빛에 압박을 담아 응시했기에 아마 웬만한 사람이라면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채월은 적결명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했다. 심지어 눈도 깜빡이지 않았다.
적결명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얘기해봐야 소용이 없다는 걸 알아서였다.
“부디 지금 한 그 말을 끝까지 지킬 수 있었으면 좋겠군.”
적결명은 그렇게 말하고는 천추신의와 일침괴를 바라봤다.
“이만 돌아가 보겠소.”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는 돌아서서 접객실을 나서는 적결명을 보며 천추신의가 천경완에게 눈짓을 했다.
천경완이 얼른 따라가 적결명이 금벽장 밖으로 나갈 때까지 안내를 했다.
천추신의는 가만히 앉아 있는 채월을 바라봤다.
“괜찮으냐?”
“예. 괜찮습니다.”
“괜찮긴. 손을 그렇게 떨면서.”
일침괴가 핀잔하듯 말했다. 그리고는 종이로 잘 감싼 단약 하나를 불쑥 내밀었다.
“먹으면 심신이 좀 안정될 거다. 떨림도 가라앉을 거고.”
“아······ 감사합니다.”
“감사할 만큼 좋은 약 아니다. 얼른 먹기나 해.”
채월은 그런 일침괴를 보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는 종이를 벗긴 다음 단약을 입에 넣고 천천히 씹었다.
“하여간 말을 해도 꼭 그렇게 퉁명스럽게 해야겠소?”
“내가 뭘, 이놈아.”
천추신의가 채월을 보며 말했다.
“네가 이해해라. 평생 욕만 하고 살아와서 고운 말을 못 써. 저걸 대체 언제 고칠런지······ 쯧쯧.”
천추신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말을 이었다.
“내가 요즘 형님을 모시는 건지 애를 가르치는 건지 분간이 안 돼요.”
채월이 입을 가리고 살짝 웃었다.
그걸 본 일침괴가 버럭 소리쳤다.
“뭐가 웃기다고 웃어? 저놈 말에 그렇게 웃어주면 안 돼! 자기가 다 옳은 줄 안다니까?”
“어이구, 형님은 왜 채월이한테 화풀이를 하고 그러쇼? 아까 그놈 앞에서는 입도 뻥긋 안 하고선.”
“야! 지금 왜 그 말을 해! 그리고 네놈이 나보고 입 닫고 있으라고 했잖아! 시발, 지금이라도 가서 한 판 붙어?”
“욕 좀 그만 하쇼. 채월아, 네가 이해해라. 내가 아까 얘기했지? 욕만 하고 살아왔다고. 원래 사람이 바뀌기가 그렇게 힘든 법이다. 그러니 어쩌겠냐. 멀쩡한 우리가 이해해야지.”
일침괴가 주먹을 꽉 쥐고 들어올렸다. 부들부들 떨리는 주먹을 보고 있으니 분노가 꽉 찼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이구, 생각해보니 아직 약초를 덜 썰었네. 그럼 난 이만.”
천추신의가 후다닥 나가버리자, 일침괴가 성큼성큼 그 뒤를 따라갔다.
그리고 채월이 입가에 따스한 미소를 지은 채 그 두 사람을 바라봤다.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그런 채월의 어깨를 유서연이 토닥토닥 두드려 주었다. 그녀의 입가에도 어느새 채월과 비슷한 미소가 맺혀 있었다.
* * *
남궁준과 제갈관은 커다랗고 둥근 탁자에 앉아 술잔을 나누고 있었다.
남궁세가와 제갈세가의 사이는 딱히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두 세가가 활동하는 지역이 상당히 떨어져 있어서 범위가 겹치지 않기도 했고, 한동안 큰 사건이 벌어지지 않아 두 가문이 서로 도와서 무언가를 처리할 일도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두 가문이 그런 사이이니, 남궁준과 제갈관의 사이도 딱 그 정도였다.
원래는 그랬는데, 지금은 좀 가까워졌다.
계기는 얼마 전 있었던 벽태산과의 만남이었다.
그 날의 일에 대해 얘기를 하다 보니 만남도 잦아지고 대화도 많이 하면서 점차 가까워졌다.
오늘도 해가 지자마자 여기로 와서 술을 마셨다.
무한에서 가장 큰 주루였기에 둘만 따로 술을 마실 수 있는 공간도 많았다.
“그동안 우리도 서로 간은 많이 봤으니 오늘은 속을 좀 터놓는 게 어떤가?”
제갈관의 말에 남궁준이 슬쩍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시간은 서로 상대의 성향과 성정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어느 정도 각이 섰으니 이제 결론을 내릴 때가 된 것이다.
“나부터 솔직히 말하지. 내가 무한에 온 건, 우리 세가를 바닥에서 갉아먹는 놈들 때문일세.”
“나도 마찬가지라네. 우리 남궁세가를 흔들려는 괘씸한 놈들이 있어.”
“정체를 파악할 수 없고?”
“꼬리도 아주 잘 잘라내고.”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침묵이 맴돌았다.
“어쩌면 무림맹과 흑련도 그래서 여기로 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군.”
남궁준의 말에 제갈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럴 걸세. 우릴 건드린 놈들이니 무림맹이나 흑련을 건드렸을 가능성도 충분하지. 하지만 내가 보기에 적결명이나 진사홍은 그 일에 대해 모르는 게 분명해.”
“모른다고?”
“무림맹과 흑련은 아마 진사홍과 적결명을 미끼로 던지고 물밑에서 움직일 모양일세.”
제갈관의 말에 남궁준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쩌면 오대세가의 나머지는 당하는 줄도 모르고 당하고 있을지도 모르겠군.”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대화는 상당히 심각했다.
“호무련에서 벌어진 일도 그놈들 짓 같지 않나?”
“우리 쪽은 그 정도로 대놓고 움직이지 않았으니 솔직히 확신할 수는 없지만······ 가능성은 아주 높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