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Demon Faction RAW novel - Chapter 776
외전 126화. 운명으로 (1)
호광과 진요성을 데리고 서남으로 남하하는 일행.
그들의 체력이라면 쉼 없이 반나절을 이동해도 괜찮았겠지만, 임부가 있어 빠른 이동은 불가능했다.
호광도 무공 한 줌 배운 적 없는 범부였고, 위찬 역시 부상이 상당해서 차라리 쉬엄쉬엄 가는 것이 좋긴 했다.
문제는 적들의 추격이었다.
“마인으로 추정되는 이들이 한 시진 반 전에 통과했던 경번 마을 옆 관도 샛길로 접어들었답니다.”
분타를 통해 정보를 받아 온 유상천의 얼굴은 상당히 험했다. 별다른 상처는 없지만 쉬지도 않고 분타를 들렀다 돌아온 탓에 지칠 수밖에 없었다.
“그럼 한 시진이라고 봐야겠군.”
“그보다 더 빠를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렇겠지.”
이천상이 호광과 진요성을 힐끔거렸다.
직접 달리는 게 아니더라도 오랫동안 등에 업혀 이동하는 것 역시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임신한 아내 걱정에 호광은 힘든 티도 낼 수 없었다.
‘어렵군.’
적당히 거리를 벌리면 따돌릴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놈들은 명확하게 이쪽이 통과했던 길을 밟아서 오고 있었다. 추적에 능한 존재가 있거나, 신교의 정보원에게도 걸리지 않는 그들만의 정보 체계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무조건 교전이 발생한다. 그렇다면…….’
이천상이 유상천과 위찬을 바라보았다.
유상천은 지쳤고 위찬 역시 정상이 아니었다. 진득하게 앉아서 치료해도 모자랄 판에 쉬지 않고 달렸으니 상처가 지금쯤 더 벌어졌을지도 몰랐다.
‘어쩔 수 없는가.’
이천상이 물었다.
“적의 숫자는?”
“이전과 변함은 없습니다. 오십여 명 정도이고 추가 정보라고 한다면…….”
유상천이 위찬을 힐끔거렸다.
“혈향검급의 고수가 끼어 있다고 합니다.”
위찬의 눈이 깊어졌다.
고개를 끄덕이던 이천상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많은 별이 보였다. 구름 없는 밤하늘은 생각보다 더 밝았다.
추격하는 자에게는 축복인, 도주하는 자에게는 암울함 그 자체인 상황이었다.
“복건이다.”
뜬금없는 말에 유상천과 위찬이 이천상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하늘을 주시하며, 이천상이 말을 이었다.
“복건 무이산(武夷山) 남쪽에 건양현이 있다.”
“예, 알고 있습니다.”
“복건까지만 가도 신교의 영향력이 막강해서 놈들도 쉽게 들어오진 못할 것이다. 거기에, 건양현 북쪽 운정소로(雲井小路) 인근에 홍은장(泓恩莊)이라는 곳이 있다.”
“……?”
“두 사람을 그곳으로 데려간다.”
유상천의 얼굴에 의아함이 깃들었다.
“안가(安家)입니까?”
“그 비슷한 곳이라고 볼 수 있다.”
홍은장은 이천상의 양부, 이가상단의 단주가 보살피던 고아 중 하나가 장사로 제법 성장하여 세운 장원이었다.
일대에 제법 넓은 부지도 구입한 덕에 주변도 쾌적했고 장원 자체도 제법 넓었다. 그곳은 사업장이 아니라 이가상단의 운행단이 들르면서 쉴 수 있는 장소였다.
이가상단의 표식이 있는 자들에게는 무조건 편한 숙식이 제공되니, 증명만 된다면 귀교 중의 첫 거점으로는 최고의 휴식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도달할 수만 있다면.유상천의 얼굴이 밝아졌다.
“무이산만 넘으면 되는군요. 뭐, 넘어가기까지가 고비겠지만 애초에 복건으로 들어가면 놈들도 주춤할 테니까요.”
“그렇다. 다만, 혹시 모르니 홍은장으로 들어가서 인근 마도 문파에 연락을 취해도 되겠지. 적들을 교란하는 정도만 되어도 제 몫은 충분히 한다고 볼 수 있다.”
“마도 문파들이 말을 들을까요? 게다가 독단으로 저지른다면…….”
“그 정도는 무마할 수 있다.”
도헌, 나아가 형법당주 공무외에게까지도 선이 닿아 있는 그였다.
게다가 스스로 잘 드러내지 않지만, 유상천은 백골신마의 하나뿐인 손자였다. 그 사실만으로도 도우러 올 사람들이 넘쳐 날 것이다
필요하다면 자신의 배경이라도 써야 하는 법.
위찬이 다소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적과의 거리가 애매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시각각 가까워지고 있을 텐데, 복건으로 들어가기 전에 교전이 벌어지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이 속도로 간다면 그럴 확률이 높겠지.”
게다가 일행은 한 번씩 마을에 들러 최소한의 식량과 식수를 구했다.
그들이야 건조한 육포와 샘물 따위만 마시고 달려도 되지만, 임부에게까지 그런 음식을 먹일 수는 없다. 혈향검 일행에게 잡혀 있을 때도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 못하지 않았는가.
아무리 급하다 해도 챙길 건 챙겨야 하는 법이다. 정말 어쩔 수 없는 순간이라면 모를까.
‘그게 문제지.’
정말 어쩔 수 없는 순간이라는 것.그 순간, 그 상황의 선을 어디까지 잡아야 하는가.
“두 사람은 잘 들어라.”
이천상 특유의 단조로운 음색이 조금 더 무심해진 것 같다고 느낀 것은 두 사람의 착각일까.
“이호언(李浩言)의 첨탑공(尖塔公)은 복건 끝에서 잠들었으니, 그분의 은혜를 받은 이가 홍은장에 도움을 받고자 하오.”
“……?”
“홍은장의 장주에게 이 말을 그대로 전하면 정체를 묻지 않고 들여 줄 것이다.”
“예?”
“홍은장에 무사는 없지만, 상단의 수행원들을 노리는 이들이 많아 상당한 수준의 진법이 깔려 있다고 들었다. 그 수준이 어떤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최소한 쉽게 무너질 수준은 아니라고 본다.”
“……군주님?”
“마도 문파의 지원 요청은 너희의 판단에 맡기겠다. 어떻게든 무마할 수 있는 일이지만, 일부러 도움을 요청해서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 필요까지는 없을 테니 끊임없이 정보를 확인하고 어떤 상황인지를 인식하도록 해라.”
“군주님.”
유상천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지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천상이 동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곳으로 오면서 한 시진 내의 지형을 통째로 외워 두었다. 최소한 반 시진 이상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군주님!”
유상천이 버럭 소리쳤다.
“설마하니 우리더러 군주님을 내팽개치고 도주하란 말입니까?”
“문제라도 있나?”
“당연히 문제가 있습니다! 미끼 역할을 해도 저희가 해야 합니다! 어째서 군주님이……!”
“혈향검급의 고수를 상대할 수도 없을 텐데, 그 외에 오십이나 되는 병력을 막을 수 있는 복안이 십 조장에게 있나?”
유상천이 이를 악물었다.
“어떻게든 막아 보겠습니다. 그러니 명령을 재고해 주십시오. 저 역시 이곳까지 오면서 몇몇 지형을 외워 두었으니…….”
그때, 위찬이 말했다.
“진행 속도는 지금 정도로 유지하면 되겠습니까?”
“그 또한 너희의 판단에 맡기겠다. 큰 문제가 터지기 전까지는 속도 변경 없이 남하해도 괜찮을 거다. 다만, 임부에게 큰 무리가 될 상황이면 속도를 조절해야 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유상천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위찬을 노려보았다.
“너!”
“저는 호승심에 눈이 멀어 다치지 않아도 될 부상까지 입었습니다.”
“……!”
“이건 임무입니다. 다시는 그런 실수를 해서는 안 돼요. 그렇지 않습니까, 군주님?”
이천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하다. 임무를 달성하기 전까지 그 마음가짐을 절대 잊지 말아라.”
“명심하겠습니다.”
위찬이 절도 있게 포권했다.
이천상이 유상천을 바라보았다.
이를 악문 유상천이 결국 고개를 숙였다.
“살아서 뵐 수 있도록…….”
“아니.”
“…….”
“내 앞이라면 몰라도, 다른 사람 앞에서 위기의 순간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된다.”
“…….”
“자네는 조장이야. 이미 열 명의 조원들을 거느리고 있다. 백골신마의 손자도, 유상천 개인도 아닌 야차사령 일군의 십 조장으로서 다시 말해라.”
흔들리는 눈으로 이천상을 보던 유상천이 재차 고개를 숙였다.
“임무는 반드시 완수하도록 하겠습니다.”
“좋다.”
이천상이 두 사람의 어깨를 두들겼다.
이제 그도, 사람들이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마음으로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반 각 후 출발하도록.”
* * *
두 사람을 다독이고 호광과 진요성에게 간 이천상이 품에서 잘 싸인 육포 덩어리를 건넸다.
“앞으로는 다소 힘든 길이 될 거요. 체력 배분에 신경을 써야 할 터, 임부를 위한 음식과 식수를 제외하면 구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이것으로 최대한 버틸 수 있도록 하시오.”
두 사람이 흔들리는 눈으로 이천상을 바라보았다.
그도, 그녀도 세 사람의 대화를 다 듣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천상이 말을 이었다.
“홍은장이라는 곳에 도착하기만 하면 한시름 놓을 수 있을 것이오. 저 조장들은 내가 직접 뽑았소. 믿고 지시를 따르시오.”
호광이 입을 열었다.
“저희를 위해서 목숨까지 거시는 겁니까?”
“당신들을 위해서가 아니오. 임무를 위해서요.”
“그러기에는 저의 내자(內子)를 너무나도 잘 챙겨 주셨습니다.”
이천상이 진요성을 바라보았다.
진요성은 이를 앙다물고 있었다.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얼마나 강인한 정신력의 소유자인지.
건장한 남자들도 짓눌리는 공포에 극도로 날카로워질 수 있는 상황인데도, 그녀는 한 번의 불평도 하지 않았다.
이천상이 고개를 숙였다.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르겠지만, 부디 순산하기를 바라겠소.”
“다시 뵙지 못하게 된다면 저희는 목숨을 살려 주신 은공에게 빚 일부도 갚지 못하고 살아가게 됩니다.”
어쩔 수 없이 떨리는 목소리.
진요성이 애써 담담한 기색으로 말했다.
“부디 살아서 돌아오셔서, 저희를 후안무치한 이들로 만들지 마십시오.”
“말했듯, 나의 행동은 당신들을 위한 것이 아니오. 임무를 위해서지. 당신들이 내게 부채감을 느낄 필요가 없소.”
“그 말씀 때문에 더더욱 저희는 은공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건 알아서들 하시오. 내가 신경 쓸 바는 아닌 것 같소.”
“은공의 이름이라도 알려 주실 수 없겠는지요?”
“당신들이 사는 세상과 다른 곳에서 사는 사람들이오. 스쳐 지나가는 인연들이니, 이름을 알 필요는 없소.”
“그렇다면 이름을 지어 주세요.”
이천상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이름?”
“네.”
진요성이 호광을 바라보았다.
호광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제 부친께서는 돌아가셨을 겁니다.”
친부의 사망을 입에 올리면서도 담담한 기색을 유지한다. 그야말로 울부짖고 싶을 텐데 어떻게든 표정을 관리하는 걸 보면, 호광의 정신력도 진요성에 못지않은 듯했다.
“저희 호씨 가문은 대대로 선대가 자식의 이름을 지어 줍니다. 학자로서 세상을 보는 것을 업으로 삼는 가문이기 때문에, 후대의 인생이 더 올바르고 강하게 나아갈 수 있도록 지혜로운 선사께서 지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가 직접 지어도 되지만, 저희는 물론 아이의 목숨까지 살려 주셨으니 가문의 은인이라 할 만합니다.”
“…….”
“은공께서 저희 아이가 살아갈 인생을 위해 이름을 지어 주신다면, 감히 영광으로 알고 최선을 다해 키우겠습니다.”
점점 평범한 사람처럼 변해 가면서도, 가문이니 전통이니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그였다.
이천상이 진요성을 바라보았다.
흑백이 또렷한 눈은 무척이나 강인하고 지혜로워 보였다.
“나는 작명에 재능이 없소. 느긋하게 이름이나 생각할 상황도 아니오.”
“…….”
“그러나, 어머니가 될 이의 정신력과 올곧음이 내게도 제법 인상이 깊었소.”
이천상이 호광을 돌아보았다.
“성은 아버지를 따르고, 이름은 어머니를 따르면 좋겠소. 두 분의 강인함을 이어받을 수 있도록.”
“……호요성.”
호광과 진요성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인생을 바쳐 올바르게 키우겠습니다.”
이천상이 몸을 돌렸다.
“몸조리나 잘하시오.”